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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55화 (155/207)

#155화. Chapter 38. 일레이아나 (1)

“후우…….”

한숨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굳이 놀라고 당황한 척할 필요도 없었다.

저런 초고위 마법을, 저만한 규모로 발동하려 한다. 그리고 저 마법의 동력이 될 재료는, 마도 명문 심가의 모든 각성자라고 한다.

단순히 힘을 가져가는 정도에 그치지도 않고 마력과 생명력을 송두리째 빼앗으려는 거다. 당연히 모두 죽고 말겠지.

현시점 내 머릿속에 일렁이는 가장 큰 의문. 나는 심이수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걸로…… 대체 뭘 할 생각이지?”

내가 파악한 바로 저 구성체는 어떠한 목적성을 띠고 있지 않다. 그저 전능에 가까울 뿐이다.

모든 계통과 속성.

초월적이라 일컬어야 할 총량과 순도.

마법으로 가능한, 그럴 거라 추측되는 거의 모든 현상을 이뤄낼 수 있다.

그게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B급 수준의 각성자가 저 힘을 얻는다면 단번에 36 영웅과 대등한 무력을 갖추게 될 거다.

저걸로 무기를 만든다면 그 소유자는 S급 각성자와도 능히 맞서 싸울 수 있겠지.

만약 36 영웅이 손에 넣는다면…… 균열 너머 세상의 마왕만큼 강해지는 것도 어렵지 않다. 악마가 얻는다 해도 마왕이 하나 더 태어나는 꼴이 될 테고.

혹은 저 마력을 폭주시킨다면 어떨까. 그대로 서울 한가운데에 떨어뜨린다고 가정하면…… 가장 적은 피해를 상정해도 족히 칠백만 이상 사망자가 발생할 듯싶었다.

그 정도의 힘인데.

한데도 저 마법에서는 아무런 목적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힘을 성공적으로 구성해낸 그 시점부터 구성체의 회로가 끊겨 있다.

뭘 하려는 걸까.

저 마법으로 해내려는 일이 심이수의 진정한 목적인 게 틀림없는데.

그걸 알고자 나는 재차 물었다.

“목적을 말해. 말하지 않으면 협력해줄 수 없어. 애초에 정확한 목표를 모르는 상태에서 보는 덴 한계가-”

퍼억!

내 뺨에 격통이 일었다. 아까보다도 강하게 나를 후려친 심이수가 나직이 중얼거린다.

“선배, 자꾸 짜증 나게 하지 마.”

“…….”

“나랑 할아버지도 바보는 아니거든. 그런 거 몰라도 마법 손보는 건 문제없잖아?”

“그건-”

“한마디만 더 개소리 지껄이면 이번엔 뺨 때리는 선에서 안 끝난다는 거 알아둬. 눈은 못 건드려도 그 잘생긴 코랑 입 정도는 아예 박살 내버릴 수 있으니까.”

피식 웃으며 경고한 심이수가 나를 말 없이 훑는다. 내가 침묵하자 경고가 제대로 먹혔다고 생각한 건지 조금 더 어조를 사근사근하게 바꿔 말을 이었다.

“선배도 보면 알겠지만 이 마법이 완전하지는 않아. 나랑 할아버지가 나름대로 머리 싸매고 만들긴 했는데…… 이대로 가동해봐야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거지. 너무 허술해서 여기저기 다 새어나갈 것 같으니까, 선배가 찬찬히 보고 개량해주면 좋겠어.”

그때 심정웅이 말을 더했다.

“시간이 그리 많지가 않다.”

“아, 맞아. 난 뭐 크게 상관없는데 할아버지가 보기엔 건강해 보여도 요즘 좀 아프시거든. 아무래도 오래 못 버티실 것 같아서…… 선배, 언제까지 가능할 것 같아?”

“……아무리 적게 잡아도 열흘은 더 걸릴 거야.”

“그러면 열흘로 하면 되겠네. 다시 한번 말해두는데 할아버지랑 나 바보 아니야. 선배가 뭘 어떻게 할지 먼저 알지는 못해도 해놓은 거 보면 대충 했다, 이상하게 했다, 그런 것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으니까. 밤낮없이 연구하고 보고도 두 시간에 한 번씩은 꼭 해.”

“날 앞으로 열흘 동안 여기 붙잡아두려는 거야? 아무랑도 연락 못 하게 하면서?”

나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

서연희가 내게 말했다. 날이 지나고 오전 한 시까지만 기다리겠다고. 그때까지 내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유해빈에게도 진상을 알리고, 둘이 심가에 침입할 거라고.

그건 최대한 막아야 할 일이다. 다음 만월까지는, 서연희가 장생종으로서 힘을 발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난번의 폭주도 간신히 막았다. 완전히 안정되기 전에 또 힘을 꺼낸다면, 지난번 같은 위기를 또 겪는다면…… 그때는 정말로 어떻게 될지 장담하지 못해.

유해빈도, 그 애도 많이 걱정되고.

다행히 내 예상처럼 심이수는 열흘 내내 외부 연락을 차단하진 않을 모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 근데 나랑 할아버지도 의심 살 일은 피하고 싶거든. 선배가 집에 틀어박혀서 놀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연구 때문에 이래저래 연락하는 사람 많지?”

“……그래.”

“영원 길드 한 대표님도. 파혼 일도 있고, 선배가 계속 우리 집에 있으면 좀 미심쩍게 생각할 수도- 아…….”

흥얼거리듯 말하던 심이수가 갑자기 표정을 찌푸리며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심정웅이 흘끗 쳐다보자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답한다.

“괜찮아요. 살짝 두통이 와서.”

나는 심이수가 통증을 느낀 이유를 눈치챘다.

자신들이 한태강을 습격한 걸 발설할 수 없는 금제.

‘한태강이 미심쩍게 생각할 수도 있다’라는 대목에서, 심이수는 그게 금제와 관련한 언급이라고 여겼다.

기억은 지웠으나 그의 뇌리에 남아있을 편린이, 내가 심가에 머무르는 것에 의구심을 느끼게 할 거라고.

그런 관점에서 한 말이기에 고통을 느낀 거겠지.

여기서 짐작할 수 있는 문장이 있다.

기억이 지워지기 전의 한태강은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

심이수와 심정웅이 자신을 습격하고, 그다음에는 나한테까지 마수를 뻗칠 거라고.

그리고, 아직은 억측에 가까우나 이 추론에서 한 발 더 나간다면…….

세라와 내 파혼.

약혼 서약 그 자체.

그것조차 심이수의 목적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확률이 아예 0인 건 아니야. 만약 그렇다면…….

섬뜩한 예감이 나를 몸서리치게 했다.

첫 번째는 한태강이었다. 두 번째가 나.

이제 마지막 한 명.

어쩌면…… 세라까지도-

“왜 그래?”

의심스러워하는 물음.

심이수가 싸늘한 눈길로 나를 쏘아보고 있다. 나는 침울하게 답했다.

“네가 이 상황이었으면 멀쩡한 기분으로 있을 수 있겠어?”

“그것도 그러네. 곧이곧대로 들리진 않겠지만 선배한테 안 미안한 건 아니야. 근데…… 이게 진짜, 나도 어쩔 수 없거든.”

이윽고 금제를 통해 우리가 각자 지켜야 할 행동 범위가 정해졌다.

나는 최선을 다해 연구할 것.

어떠한 방식으로도, 그 누구에게도 나 자신이 협박당하고 있음을 알리지 않을 것.

내 집은 자유로이 오가도 좋으나 적어도 이틀에 하루씩은 심가에 머무르며 구성체를 연구하고, 어디에 있든 주기적으로 성과를 보고할 것.

그리고 내 일거수일투족은 탐지 마법을 통해 심이수에게 공개된다.

“이건 이해하지? 그렇다고 씻는 것까지 보고 그러진 않을 거니까 안심해. 어차피 감시 안 해도 누구한테 알리진 못할 거고, 선배는 예쁜 약혼자도 있잖아? 매너는 지켜줘야지.”

“…….”

“아, 한세라 씨 언급하니까 기분 나빴나? 여하튼 선배가 협조적으로만 나와주면, 맹세할게. 나와 할아버지는 결코 선배한테 위협을 가하지 않을 거야. 우리 자신뿐만이 아니라 힘이 닿는 모든 영역에서.”

내 안전만 고려한다면 상당히 합리적이고 수용할 만한 조건이었다.

입 다물고 연구만 열심히 해라. 그러면 널 해치지 않는다. 그런 의미니까.

그즈음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우웅- 우우웅-

“받아봐.”

심이수가 단출하게 일렀고, 나는 전화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서연희나 유해빈이 아니다. 세아였다.

“여보세요?”

<자고 있었어?>

“아니, 안 자고 있었지.”

<근데 톡 보낸 거 왜 안 봐?>

조금 뾰로통한 목소리로 불만을 표한 세아가 재잘재잘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은 뭘 했다, 내일은 뭘 할 거다, 실력이 늘어나는 게 느껴진다, 어젯밤에 진유리와 살짝 말다툼했는데 화해했다.

내 옆에 서 있는 심이수가 몹시 정겨워하는 표정으로 통화를 엿듣고 있다.

그 역겨운 얼굴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나는 세아에게 물었다.

“저녁은 뭐 먹게?”

<음…… 몰라. 정해줘.>

“영국 전통음식 같은 거 없나?”

<……있어. 이상한 거.>

안 먹겠다는 뜻이었다.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누다 세아와 통화를 마치고 나자 심이수가 말했다.

“선배, 톡 확인해보지? 무슨 사진인지 나도 궁금해서.”

“…….”

나는 메신저 앱을 열었다. 내 휴대전화 어디에도 팬텀과 관련한 흔적은 보이지 않고, 나는 세아와의 대화방을 열었다.

사진이 하나 전송돼 있다. 세아와 진유리가 나란히 꼭 붙어 찍은 사진. 평소와 달리 화장을 좀 한 것처럼 보이는데…… 진유리가 해준 걸까.

“귀엽네.”

피식 웃으며 말한 심이수가 내 휴대전화를 가져갔다. 내가 노려보자 태연한 어조로 묻는다.

“귀여워서 귀엽다고 하는 것도 안 되나? 이렇게 귀여운 동생이 있는데 앞으로도 아껴주려면…… 선배도 잘 해야지?”

협박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말. 연기를 떠나서 나는 진심으로 경고했다.

“절대로, 내 동생한테 손댈 생각하지 마. 그딴 짓 하면…… 널 죽일 거야.”

“와,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인간이 그런 말 하니까 되게 무섭네?”

생글거리며 지껄인 조롱에 나는 한 치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몇 초쯤 눈이 마주하다가, 심이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그래도 뭐, 가족끼리 우애가 깊은 건 보기 좋아. 이런 게 가족이지.”

그리곤 내 휴대전화의 모든 정보를 샅샅이 살핀 그녀가 물었다.

“어떻게 할래? 아까 물어본 대로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래? 술 아직 남았으니까 나랑 좀 더 마시다 연구 시작해도 되고, 아니면-”

“오늘은 집에 가겠어. ……갈 수 있다면.”

“좋아. 원래 오늘은 안 보내려고 했는데, 뒤에 말 붙인 게 마음에 드네. 별로 건방지지도 않고. 선배 원하는 대로 집에 가도 돼. 대신 게으름 피우지 말고 내일 정오 되기 전에 여기 와. 뭘 어떤 식으로 개량했는지 알기 쉽게 정리해서.”

“내가 같이 가지.”

“뭐, 그러시든가요. 선배한테 괜히 쓸데없는 말 하지는 마시고요.”

저택 정문 쪽으로 향하는 나를 심정웅이 따라나섰다. 심이수는 혼자 남아 정원을 살피고 있다.

걸으면서 심정웅이 내게 일렀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네.”

“어르신도…… 원해서 하는 일입니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구먼.”

씁쓸한 어조로 답한 심정웅이 나를 배웅했고, 차에 탄 나는 유해빈이 보내온 메시지를 읽었다.

-유해빈: 교수님

-유해빈: 아까 가서 찍은 사진이요 ㅋㅋ (23:57)

유해빈 본인의 사진, 바다를 찍은 사진, 그곳에서 먹은 음식을 찍은 사진. 그런 것들이 몇 장 보였고, 나는 유해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여보세요?>

쾌활한 목소리.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심이수가 감시하고 있는 이상 서연희와는 연락할 수 없다. 다만…… 간접적으로 의사소통할 방법은 있다.

유해빈을 통해서 알려야 해.

“집이냐?”

<집이죠. 교수님은 밖에 계신 것 같은데, 집에 안 가셨어요?>

“아, 급하게 일이 생겨서. 너한테도 뭐 좀 알려주려고 전화했다.”

<뭔데요?>

“다음 주에 연구하기로 한 거…… 미뤄야 할 거 같네.”

<어…… 그래요?>

유해빈의 어조가 정말 조금만, 낮게 잦아들었다.

우리는 다음 주에 연구 약속을 잡은 적이 없다. 방학이 끝나고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어떤 일’ 때문에 약속을 미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애라면 깨달을 수 있겠지. 내가 심가에 갔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해도, 서연희와 상의해야 한다는 결론까지는 도달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미루는 거면 언제로요?>

유해빈은 내 기대에 정확히 부응했다. 언제 만나겠냐는 질문. 진짜 의미는 따로 있다.

작전 결행을 언제로 잡아야 할지, 그걸 내게 묻는 거다.

다시금 이 애를 위험한 일에 말려들게 하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고, 또 한편으로는 나이와 맞지 않게 훌륭한 판단력에 내심 감탄하며, 나는 짤막하게 답했다.

“열흘? 그 정도는 걸리겠네. 다음 주 일요일쯤에 다시 연락해줄게.”

<네, 알겠어요. 저야 시간 많고 교수님 편하실 때 연락 주세요.>

“그래.”

통화를 끝낸 나는 운전석에 등을 기대며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숨결을 따라 희뿌연 연기가 흘렀고, 한 번의 호흡마다 마음을 조용히 가다듬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했어. 남은 건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뿐.

그리고 나는 한 가지 결심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심이수.

그 여자는 반드시 제거해야 해.

타협의 여지는 없다.

앞으로 열흘 후, 그녀는 내 손에 죽을 거다.

***

테러조직 팬텀의 멤버, 여우 가면은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물론 가면은 쓰고 있지 않았다. 테러리스트로 활동하는 것 외에도 일상의 삶이 존재하니까.

그녀는 사회적인 기준으로 볼 때 이미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또한 앞으로도 그러리라 기대받는 사람이고, 그런 만큼 아주 바빴다.

테러조직의 일은 기실 거추장스러운 짐에 가까웠다.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 이유만 아니라면 그런 데 시간을 쓰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

그녀는 고요한 시선으로 탁자 위를 바라봤다.

자그마한 물체 두 개가 올려져 있고, 가만히 그것들을 보던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탁자 쪽으로 걸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어루만지려 하던 그때.

우우웅-

허공으로 마력이 일렁였다.

다음 순간 반투명한 홀로그램이 떠오르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테러조직 팬텀의 보스.

그녀가 말한다.

[도와줘야겠어.]

“뭘 말이죠?”

차분한 물음.

이내 답이 나왔다. 여우 가면이 지금껏 원해왔던 말.

[네 방식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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