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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57화 (157/207)

#157화. Chapter 38. 일레이아나 (3)

무신 한태강을 미끼로 삼겠다는 말.

들은 즉시 이해가 되지는 않아 유해빈은 내심 서연희의 의도를 짐작해 봤다.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나?’

한태강을 끌어들여 심가의 핵심 전력이자 원흉, 심정웅과 심이수를 저택 바깥으로 보내놓겠다는 건 알겠는데, 찬찬히 생각해보면 득보다 실이 많은 계획이어서.

‘잘못하다가는 적이 세 명으로 늘어나는 거잖아.’

심정웅과 심이수만 해도 백 퍼센트 승산을 장담할 수 없건만 거기에 더해 한태강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번 일은 팬텀으로서 계획하는 작전이고, 일급 범죄자들을 앞에 둔 영웅이 가만있진 않을 테니까.

심정웅과 심이수에 한태강. 36 영웅 수준의 강자 셋과 동시에 맞서야 할 확률도 그리 낮지는 않겠지.

게다가 또 한 가지.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있다.

‘도진쿤 진짜 싫어할 거 같은데…….’

아무리 봐도 이도진이 그걸 달가워할 것 같지는 않다.

비록 마주칠 때마다 구박이나 듣는 신세라지만 그가 한태강을 무척 소중히 여기고 있는 건 분명하다. 남이섬에 여행을 갔을 때 유해빈은 그걸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서글서글한 성격이면서도 맺고 끊는 건 그렇게나 철저한 사람이 한태강 앞에서는 쩔쩔매며 어쩔 줄 몰라 했으니까.

해서 유해빈이 생각하기에 서연희의 계획은 여러모로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

위험 부담이 크고, 설령 성공한다 해도 일이 모두 끝나고 나서 이도진에게 좋은 소리를 듣긴 힘들겠지.

하지만 그렇게 부정적인 예측을 하면서도 그녀는 이렇다 할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내가 더 좋은 작전 제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서연희를 믿으니까.

그녀의 판단력을 믿고, 이도진에게 해가 될 일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믿으니까.

이제 여우 가면이 싸늘하게 물었다.

[미끼라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야. 내가 그쪽에 언질을 둘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한태강을 미끼로 심정웅과 심이수는 저택 밖에 나와 있게 하고, 그 틈에 심가에 침입하는 거지.]

[…….]

유해빈 자신과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건지 여우 가면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으나 서연희가 태연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리도 처음엔 인원을 나눌 거야. 나도, 여우도, 우리 귀여운 용용이도, 합류하기 전까진 각자 행동할 거고, 다들 맡은 바 임무만 잘 이행하면 성공할 수 있어.]

그 말에 유해빈은 생각했다.

‘흥, 날 용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우리 도진쿤뿐이야.’

현재 악의 소굴에 붙잡혀 있는 이도진 공주. 오직 그밖에 없다.

물론 이 자리에서 대놓고 할 수는 없는 말이었고, 어쨌든 결론이 났다.

결행 날짜는 8월 22일.

구체적인 시각은 오후 8시 이후.

공주를 구하러 가기까지 남은 시간은 사흘이었다.

***

“응? 할아버지, 그 은마산 초인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오래 살았어요?”

심이수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은마산 전설은 9세기 중반에 있었던 일. 하지만 심가는 그로부터 백 년이 더 지나 10세기 중엽에야 세워졌다.

서연희가 태어나기 거의 직전. 그때도 이 땅에서 활약하고 있었다는 거다. 은마산 전설의 주인공, 팬텀의 토끼 가면이.

“연대가 안 맞지 않나?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거니까 실제로 은마산 초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쳐요. 근데 그때 스무 살이라고만 잡아도 백 살 훨씬 넘잖아요. 말이 안 되는데? 싸움은커녕 밥숟가락만 잘 쥐어도 잔치할 나이 아닌가.”

심이수의 의문은 타당했다.

각성자라 한들 그 나이까지 전성기의 힘을 유지할 수는 없다. 아주 조심해서 전투에 참여한다 해도 지금 심정웅의 말처럼 모든 이들을 이끌며 싸우는 건…… 아무래도 어렵다.

“이수 네 말이 상식적으로는 옳겠지. 그러나 선조께서 전하시기로 그분은 아주 강했고, 아주 젊었으며, 항상 선두에 나서며 믿을 수 없을 만큼 용맹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은마산 전설의 초인이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적이 없으셨다고 하지.”

“어…… 혹시…….”

심이수가 말을 흐린다. 추측해볼 만한 가설을 떠올린 거겠지.

평범한 각성자가 120세를 넘어서까지 지닌 무력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평범한 각성자가 아니라면?

인간보다 오래 사는 존재라면 능히 가능하다. 가령 인간들에게 흡혈귀라 불린 종족, 장생종이라면.

심정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분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고, 당시 그렇게 추측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더구나.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지. 그분이 마귀들을 무찌른 것만은 틀림없으니까. 이 땅에 재앙을 가져오려는 악귀를 모두 베어낸 다음, 찬란한 부귀와 명성을 마다하고 홀연히 종적을 감추셨다 들었다. 될 수 있다면 자신의 이름을,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말라고 하셨다더구나. 본가의 시조께서는 약속을 절반만 지켜 이 사실을 대대로 한 사람에게만 알렸고, 이수 너와 자네를 제외하면 이걸 아는 자는, 어쩌면 이제 나뿐일지도 모르느니라. 다른 이들은 그분의 말씀을 온전히 따랐거나, 그게 아니라 해도 지금은 마도 가문으로서의 맥이 끊겼으니.”

“선배, 오늘 여기 있길 잘했지? 술안주가 이렇게 좋을 줄은 나도 몰랐는데.”

가볍게 술을 한잔 비운 심이수가 내게 한 말. 그리곤 흥미진진하다는 눈초리로 심정웅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말해보려무나.”

“그 은마산 초인이라는 사람, 그러면 얼마나 셌다는 거예요? 들어보니까 지금 기준으로 봐도 되게 셀 거 같은데, 영웅 정도 됐으려나? 아니면 좀 높게 쳐주면…… 영원 길드 한 대표님이나 샬럿 테이트 정도? 정치 안 하는 에블린 그레이스? 이건 좀 과하려나요?”

그러자 심정웅이 희미하게 웃는다. 이내 손녀가 재촉하듯 따라준 술을 마시고, 오래 산 노인이 말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들은 것이 이십 년 조금 넘었구나. 이수 네게 증조부가 되는 분, 내 부친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일러주셨지. 나 또한 이수 너와 같은 질문을 했단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해 내려온 이야기. 그 초인이 과연 얼마나 강했을지가 궁금했지.”

“그래서, 증조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셨는데요?”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야. 저마다 당대의 기준으로, 말로 설명한 것이니 세월이 지날수록 점차 오차가 생겨났겠지.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내 부친께서는 이리 말씀하셨다.”

그리곤 심정웅이 잠시 뜸을 들였다. 나와 심이수는 침묵하며 기다렸고, 마침내 노인이 답을 일렀다.

“내가 그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 이 세상에서 가장 강했던 이들. 아니,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각성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두 영웅. ‘수호자’ 이시혁과 ‘대마법사’ 정세빈. 그 둘이…… 한 명으로는 아마 미치지 못할 테고, 둘이 힘을 합친다면 은마산 초인과 맞설 수 있으리라고…… 그리 말씀하셨지.”

“어…… 그으…… 이런 말 하긴 좀 그런데요……. 증조할아버지가 좀, 과장? 허풍? 그런 게 심한 성격이었어요?”

심이수가 황당해하며 물었으나 심정웅이 침착한 어조로 부정했다.

“네 증조부께서는 헛된 말을 하지 않는 성품이셨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그것을 면밀히 판별해 스스로 믿는 것만을 말하는 분이셨다.”

“근데 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셨대요? 그 정도 평가면…… 거의 최강 아닌가? 딱 한 놈만 빼고요.”

모든 존재를 통틀어 역사상 가장 강했던 자는 균열 너머의 세상을 지배한 악신이다.

그 아래로 악마의 열네 군주와 내 부모님 두 분. 그중에서 다시 우열을 따진다면 내 부모님이 더 강했다는 게 정설이지만,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솔직히 내가 알기로 객관적인 무력은 마왕이 더 강하고.

그다음이 36 영웅 중 최상위권.

‘무신’ 한태강.

‘소드 퀸’ 샬럿 테이트.

‘천재’ 에블린 그레이스.

근력, 민첩, 체력, 내구. 신체 포인트가 최소 팔십 후반대에, 특히 강점이 있는 부문은 구십 대에 이르렀을지도 모르는 강자들.

둘만 협공해도 마왕과 정면 대결을 벌일 수 있고, 셋이 힘을 합치면 사실상 필승이라고 봐도 되겠지.

은마산 붕괴 당시 내가 상정한 토끼 가면의 무력도 얼추 그쯤이다. 마왕보다는 약하고 일반적인 영웅보다는 강한 정도. 하지만 심정웅의 말이 사실이라면…….

“증조할아버지 말씀대로면, 낮게 잡아도 마왕 수준이라는 말이잖아요.”

이시혁과 정세빈보다 위라면 신체 포인트 평균을 내도 90을 충분히 웃돈다는 뜻. 마왕들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야 심정웅도 그의 부친도 직접 본 게 아닌 만큼 오차 범위가 넓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충격적인 언급이었다.

“그저 네 증조부께 들은 그대로 말해준 것뿐이니라. 이만하면 술안줏거리가 되겠느냐.”

“중간까지는 괜찮았는데 너무 과장이 심해서 오히려 흥이 식었네요. 잠깐만 둘이 계세요. 쓸데없는 얘기는 하지 마시고요.”

화장실에 다녀오려는지 자리에서 일어선 심이수가 농담처럼 이르곤 방을 나섰다.

둘만 남은 자리. 나는 심정웅에게 대놓고 물었다.

“어르신은 이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수십 년을 이끌어온 가문. 마도 명문 심가.

이 가문을 심이수 하나의 사리사욕으로 희생시키는 게 옳냐고. 당신은 정녕 그걸 바라고 있냐고. 그렇게 따져 물은 것이었다.

“옳냐고 물었는가…….”

나직이 뇌까린 심정웅이 잔을 든다. 나는 술을 따라줬고, 잔을 비우며 적막한 시선으로 밖을 바라보던 그가 답했다.

“옳고 그르고, 나는 그것을 따질 자격이 없네. 내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 수가 없어.”

“어째서 말씀입니까.”

절반쯤 남은 잔을 마저 비운 노인이 탄식처럼 일렀다.

“그야 나는…… 영웅이 아니니 말일세.”

“…….”

“어쩌면 과거엔 그랬을지도 모르지. 한때 그랬는지도 몰라. 하지만 그조차 확신할 수 없고, 지금은, 나는 영웅이 아닐세. 이시혁이, 정세빈이, 영웅으로 살다가 영웅으로 죽은 자네의 부모와는 달라. 내게 옳고 그르고를 묻지 말게나. 나는, 이 심정웅이는, 영웅이 아니야.”

자조적인 말. 그러나 담담한 어투.

나는 차갑게 답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영웅이 어쩌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영웅만이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테러 조직의 일원인 내가 할 말이 아닌 건 안다. 하지만, 최소한 결정만큼은 나 자신의 몫이어야 해.

영웅이고, 영웅이 아니고, 그런 허울 따위에 구애받을 게 아니라.

“제가 질문을 잘못 드렸군요. 어르신은, 심정웅이라는 한 인간은, 지금 자신이 바라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

심정웅이 대답 없이 나를 응시한다. 그도 받아칠 말이 있겠지. 그러는 너는, 끌려와서 잔혹한 연구에 동참하고 있는 너는, 네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느냐고.

하지만 노인은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가만히 나와 눈을 마주하다가…… 입을 떼려 했다.

“그것은-”

“어? 분위기가 좀 심각한데 무슨 얘기 중이셨을까?”

방으로 들어온 심이수가 나와 노인의 대화를 가로막았다. 감시하고 경고하는 시선. 이어지려던 말이 끊겼고, 그즈음 내 휴대전화로 메시지가 왔다.

우우웅-

진동 소리에 심이수가 묻는다.

“누구 연락이야?”

말로만 물은 것이 아니라 내 쪽으로 다가와 휴대전화 화면까지 확인했고, 피식 웃으며 말한다.

“마침 잘됐네. 바쁜 일 다 처리할 수 있겠다.”

한태강에게서 온 메시지.

‘오는 22일 일요일 밤에 파혼 서약을 해야겠구나. 세라는 그러겠다고 했으니 그날 시간이 되는지 답장으로 알려다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필연인 걸까.

두 가지 일이 한 번에 막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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