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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62화 (162/207)

#162화. Chapter 39. 만월야 (4)

“하…….”

나도 모르게 한숨처럼 흘린 실소. 한태강은 어렵사리 힘을 모으고, 세라는 가라앉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서연희와 유해빈. 정황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은, 얼굴을 가리고 있어 보이진 않지만…… 안타까워하는 것 같다.

세라가 내게 묻는다.

“내 말이 우습게 들린 건가요?”

알고 있었다. 내가 아는 한세라라면 분명 저렇게 말할 거라고.

자신은 죽더라도 아버지만은 살릴 수 있기를. 그게 여의치 않다면 최소한 자신부터 죽이라고.

세라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래서 알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게 되면 틀림없이 저 말을 들을 거라고. 알고 있고, 각오하고 있었는데…….

“아니, 사과하지. 그런 건 아니야.”

그래도, 이 모습으로 세라와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어. 나를 테러조직의 일원으로 대하는 걸 내 눈과 귀로 보고 듣길 원치 않았어.

비웃는 조소가 아니었다. 그냥 좀…… 많이 자괴감이 들어서. 세라에게 미안해서.

그런 심정을 얼굴에 쓴 가면으로 감추며 나는 차가운 말을 이었다.

“우리에겐 시간이 별로 없어. 방법은 둘뿐이다. 당신들을, 죽여서…… 그래서 입을 막거나, 절대 외부에 발설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거나. 미리 말해두지만 이건 제안하는 게 아니야. 어느 쪽이 좋을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겠지?”

사실 선택지를 주는 것에 큰 의미는 없다. 어차피 결과는 같으니까.

행여라도 세라와 한태강이 전자를 택한다면 제압해서 기억을 바꿔야 한다.

후자를 택한다 해도 기절시켜두거나 금제를 걸어 운신을 제한한 다음, 심가의 일을 마무리하고 와서 기억을 바꿔야 한다.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건 아니다. 아주 조금 서연희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탓할 처지는 아니니까. 이미 한태강의 기억을 조작한 적 있고, 지금도 그 방법이 최선임을 인지하며 실행에 옮기려 하고 있으니까.

근본적인 잘못은…… 나한테 있어.

그때 서연희가 나섰다.

“내가 누군지 알겠지? 전에 한 번 싸운 적 있으니까.”

이 공터로 오기 전, 내 복장을 바꾸고 가면을 준 시점부터 서연희 역시 본래 모습이 아닌 변장한 상태였다. 악마의 손을 탈취할 당시 한태강이 목격한 외견.

그녀가 여유로운 어조로 일렀다.

“승산이 없다는 건 잘 알 거고, 정확히 5초 줄게. 저항하다가 죽든지. 아니면 우리가 다시 올 때까지 입 다물고 기다리고 있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

“그건-”

“기다리고 있을게요.”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망설이던 한태강에 앞서 세라가 답했다.

“세라야!”

“……죄송해요.”

터억!

세라의 손이 한태강의 목덜미를 타격했다. 재빠른 결단. 그렇지 않아도 힘이 급감해 있던 한태강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내가 처리해둘게.”

내게 이른 서연희가 세라 쪽으로 다가간다. 조치에 걸린 시간은 십 초. 한태강이 깨어나지 못하게 하고, 세라는 기절까지 시키진 않았으나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곤 유해빈에게 감시를 맡겼다.

“나랑 내 귀염둥이 금방 일 마치고 올 테니까, 우리 용용이는 미안한데 여기 남아줄래?”

“저만요?”

“응, 여기 덩그러니 두고 갈 수도 없잖아.”

“……알겠어요. 빨리 오세요.”

잠시 머뭇거리던 유해빈이 썩 내키지 않는다는 태도로 고개를 끄덕인다. 전투에서 제외되는 게 속상한 걸까.

“보스 말씀대로 무사히 처리하고 올 거다. 너도 고생했으니까 일 끝나면 뭐 좀 먹고 며칠 푹 쉬자.”

“그러면 뭐…… 열심히 감시하고 있을게요.”

그나마 기분이 나아진 듯한 유해빈이 답했고, 워프 공간으로 걸어가며 나는 마지막으로 세라를 봤다.

마력이 제한당하고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

미안해. 마음속으로만 사과한 나는 세라에게 일렀다.

“이도진이라고 했던가? 요즘 이 나라에서 꽤 유망하다는 연구자.”

“…….”

“아까 근처에 쓰러져 있는 걸 봤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듯했으니 안심해도 좋아.”

불필요한 말. 세라가 답하기도 전에 나는 공간을 넘었다. 워프 마법을 타고 이동하는 도중에 서연희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 정말 미안해.”

평소처럼 장난기 어린 말투가 아니다. 그만큼 자책하고 있는 거겠지. 내 기억으로도 서연희가 직접 꾸민 일 중에 이만큼 계획이 어그러진 건 이게 처음이고.

“저 솔직히 좀 화났어요.”

“응, 알고 있어. ……미안해.”

“그러니까 책임져요.”

“책임?”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깔며 한 말에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고, 나는 그제야 은근한 어조로 답했다.

“세아 귀국할 때까지 우리 집에서 저랑 같이 지내면서, 저랑 밥도 같이 만들어 먹고, 해빈이까지 셋이서 조직 친목 다질 겸 단합회도 다녀와요. 그리고 저 놀리지 마시고 엄청 상냥하게 대해주고. 그거면 조금은 화 풀릴 것 같은데.”

“육체적으로 완전한 굴복은 필요 없고?”

“그건 괜찮다고 했잖아…….”

좀 더 화내는 척할걸.

하도 어이가 없어 나 자신도 의식하지 않은 채로 반말이 나왔는데, 또 그걸 노린 서연희가 몹시 공손하게 답한다.

“그럴게요, 도진 씨.”

“…….”

“도진 씨는 너무 예의가 없었나? 아니면 보스? 근데 보스는 나니까…… 마스터? 맞다, 주인님이라고 부르면-”

“화 안 났으니까 안 그래도 된다고…….”

“네, 주인님.”

“………….”

“주인님 반말하시는 거도 되게 듣기 좋은데, 앞으로 종종 부탁드릴게요. ‘연희야’ 같은 느낌으로.”

“그래, 연희야.”

“어머?”

그즈음 우리는 심가의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저 멀리서 느껴지는 기파. 마력의 총량으로 보면 파르투스와 동급이다.

엉망이 된 저택을 걸어 나가고 있으려니 상대 쪽에서도 마중을 왔다. 심이수와 심정웅. 그들과 대치하며 서연희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

저만큼 마력 총량이 상승했다면 그녀가 심이수를 상대해야 한다. 내가 심정웅을 맡아야겠지. 나는 짤막하게 부탁했다.

<인명 피해가 없는 선에서 최대한 힘을 빼줘요.>

당연히 서연희가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무리 강한 마왕이라도, 보름달이 뜬 밤에 일레이아나 라큘리와 일대일로 맞서 이길 수는 없으니까.

내가 심정웅을 상대하는 동안 서연희가 심이수를 무력화하고, 진정한 목적을 알아내고, 둘 다 내 손으로 죽이는 게 가장 좋은 결말이다.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고.

<알겠어, 준비한 게 있으니까 걱정하진 말고.>

이제 심이수가 내게 말한다.

“안녕?”

이도진을 대할 때와 같은 말투.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아무래도 들킨 모양이네.

답하지 않고 나는 심정웅에게 접근했다. 심이수와 서연희는 공중에 떠올라 대화하고 있다.

“우리도 시작할까?”

“전처럼 제정신 못 차리고 날뛰게 해줄게. 이번에는 그 몸에 흐르는 피를 남김없이 다 마셔줄 테니까.”

“음…… 아마 못할걸?”

“일단 그 나불거리는 입부터 찢어줄게.”

콰아아아아앙-!

달빛이 흐르는 허공에서 두 장생종이 격돌했다. 세찬 충격파가 뻗어나가며 지상으로 폭발 같은 여파를 끼친다.

그리고 심정웅과 대치한 나는, 늙은 목소리가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다.

“이유가 무엇인고.”

왜 실패자를 가장해 테러리스트로 활동한 건지.

왜 지금에서야 재능을 내보이는 건지.

그런 걸 묻는 거겠지.

나는 단출하게 답했다.

“당신이 알 필요는 없어.”

나한테는 당신을 죽여야 할 이유가 셋이나 있으니까.

+

<킬 더 이블> 3권, ‘새로운 세대’가 진행 중입니다.

-3권 태그: [여름방학] [캐릭터 중심] [어반 판타지]

-진행률: 83.1%

‘최종보스’ 이도진의 고유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클리어 조건: 3권 종료 시점, 테러조직 팬텀의 일원으로서 서울 내의 인외 지성체를 일 개체 이상 제거할 것 (팬텀의 일원임이 발각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은 유지)

-클리어 보상은 달성률에 따라 차등 지급됩니다.

+

내가 팬텀의 일원이라는 걸 알고, 서울 내의 인외 지성체로 분류될 거고, 제 집안의 사람들까지 희생시키려 한다.

죽이지 않을 이유가 없어.

배신자는 아니지만.

대균열에 관여한 자는 아니지만.

그 나름대로 세월에 타락했다. 가장 오래 산 영웅, 천리안 심정웅은.

쿠우우웅-

심정웅의 전신이 두 가지 색으로 일렁인다. 그가 지니고 있던 녹색의 마력. 장생종을 연상케 하는 검붉은 힘.

+

-스킬 ‘마력흡수’를 발동합니다. (랭크 S)

-스킬 ‘존재흡수’를 발동합니다. (랭크 SS)

-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의 랭크가 소량 회복됩니다. (랭크 D -> 랭크 C)

+

오히려 공터에서 심이수와 싸웠을 때보다도 저자가 상대하기 더 까다로울 거다. 상성에서 내가 유리한 건 마찬가지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정말 만만치 않았다.

전성기 때의 신체 능력. 심가 각성자들의 마력을 공급받고 있는 데다 장생종으로서의 능력까지 갖추었다.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간 내가 당할 거야.

그리고, 심정웅이 오른손 주먹을 꽉 쥐어낸 직후.

콰아앙! 콰아아앙!

저택의 땅이 갈라지며 신장이 십 미터는 될 듯한 거인이 셋이나 나타났다. 몬스터의 시체와 귀중한 마법 재료, 단단한 금속을 한데 모아 만들어낸 듯한 형상.

S급 각성자에 상당하는 마력이 느껴질뿐더러 실제 전력은 그에 못지않을 거다. 한 놈은 심정웅을 호위하듯 멈춰 있고, 다른 둘은 육중한 발소리를 내며 내게 접근해온다.

“어디 쓰러뜨려 보게나. 자네라 해도 쉽지 않을 걸세.”

한 명의 영웅과 S급 각성자가 셋. 위기라면 위기였고, 거인들이 괴성을 지르며 내게 짓쳐 들어온다.

쿠오오오오-!

정통으로 맞으면 뼈가 산산이 부러질 주먹질. 땅을 박차며 피하자 후방에 있던 심정웅이 마력을 모은다.

위유우우웅…… 쿠아아앙!

그가 내쏜 마탄이 급속도로 나를 향해 치닫는다.

스으으으-

마력흡수로 일부는 흩어냈고, 나머지는 쳐냈다. 다시 거인 두 마리의 돌진. 방금 공방으로 틈이 생긴 터라 후속 동작을 깔끔하게 이어가지는 못했다.

공격을 피하고 마법에 직격당하거나, 손해를 감수하고 심정웅에게 접근하거나.

두 가지 외에는 내가 택할 수 있는 수단이 없으리라고, 심정웅은 그렇게 여기고 있겠지. 그러나…….

파아아아아아-!

나와 심정웅 쪽에서 보이지 않던 사각지대. 쏜살같이 날아온 금빛 마력이 거인 하나의 팔을 부서뜨렸다.

나머지 한 놈의 공격은 여유 있게 피해내고, 제법 놀란 눈치인 심정웅을 흘끗 살피며 나는 무사히 착지했다.

타악-

이어서 방금 기습 공격을 성공시킨 사람이 내 곁에 자리한다.

준비한 게 있다는 서연희의 말대로. 팬텀의 정규 단원, 여우 가면이 내게 말한다.

“오랜만이네요.”

***

밤이 늦은 시각, 공터에는 적막한 공기가 흐르고 있다. 지시에 따라 혼자 남은 유해빈은 복잡한 감정을 담아 숨을 내쉬었다.

“후우…….”

자괴감, 불만, 걱정, 난처함.

오늘도 어린애 취급을 받았다.

서연희와 이도진은 그녀를 보호할 대상으로만 여기며 둘이서 싸우러 갔다.

그래서 드는 자괴감과 불만이고, 그래서 걱정이 된다.

‘안 다치고 와야 해요.’

다쳐서 돌아오면 불평할 수도 없을 테니까.

왜 그때 말해주지 않은 거냐고, 나도 할 수 있으니까 지켜봐 달라고, 그런 말을 꺼낼 수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난처함은…….

“…….”

유해빈은 시선을 저편으로 향했다. 평평한 땅에 한태강이 누워 있고, 한세라는 차분한 눈빛으로 그녀를 마주 본다.

‘어색한데…….’

감시 역할이라지만 사실 할 것도 없다. 서연희의 속박 마법은 완벽하고, 한태강이 깨어나거나 한세라가 마력을 되찾아 움직일 수는 없다. 상급자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게 문제야.’

이렇게 한세라와 둘이 마주하고 있는 것. 테러리스트가 살갑게 말을 걸기도 뭣하고, 유해빈 자신도 한세라에게 호감이 없다. 솔직히…… 마음에 안 든다.

‘나쁜 놈처럼 으름장이라도 놔야 하나?’

썩 내키진 않는데.

하지만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도 주어진 책무를 다하지 않는 느낌이 들고, 한세라는 전혀 눈을 피하지 않고 있다. 가면 속의 자신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일 텐데.

그게 약이 오르는 터라 유해빈은 결국 이렇게 물었다.

“순순히 말을 들을 것처럼은 안 보였는데.”

“무슨 뜻이죠?”

“무신과 방벽의 딸. 촉망받는 각성자. 길드 영원의 차기 대표. 그런 사람이 테러리스트한테 협조해도 되는 건가?”

제일고에 특강을 왔을 때는 각성자라면 올바르게 힘을 사용해야 한다고 해놓고선. 정작 본인이 위험해지자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꾼 것이다.

‘흥, 잘난 척 말하더니 겨우 이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어?’

괜히 화가 난다.

그런 말을 한 것도 화가 나고, 지키지 않은 것도 화가 난다. 이거든 저거든, 어쨌든 마음에 안 든다.

그리고…….

한세라가 거리낌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나만 위험한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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