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Chapter 40. 진실 (1)
자신만 위험한 게 아니니까.
아버지인 한태강의 목숨까지 달려 있으니까.
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팬텀과 싸우는 게 아니라 항복해서 살아날 확률을 올리는 방법을 택했다고.
각성자가 지켜야 할 원칙은 물론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신념에 우선하지만.
그래도 그건 나 혼자일 때의 이야기라고.
가족의 목숨이 걸려 있다면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진심으로 그리 여기니 저렇게 당당할 수 있겠지.
‘변명이야.’
유해빈은 마음속으로만 차갑게 되받았고, 그러나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변명이라고 되뇐 어조에 전혀 힘이 실리지 않았다고.
‘내가 잘못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저 운 좋게 뛰어난 재능과 조건을 갖고 태어난 거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허울 좋은 소리만 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한세라는 결코 그따위 얼간이가 아니었다.
변명이 아니라 양립.
고민하고, 고뇌하고, 노력하고, 발전하고. 매 순간 그렇게 나아가야 할 길을 정한 거겠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정확히 알고, 언젠가는 지금 가능한 최선의 너머까지 다다르려 하는 거다.
유해빈이 생각하기에…… 많이 닮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과.
이도진의 방식이 꼭 그랬다.
‘아니, 아니야. 우리 도진쿤이 고생한 게 얼만데. 난이도가 다르잖아.’
고개를 흔들며 불경한 생각을 떨쳐낸 유해빈은 최대한 냉담한 목소리로 일렀다.
“글쎄…… 그건 영웅이 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자 한세라가 옅게 웃는다.
“부모님이 영웅이라고 자식도 반드시 영웅이어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이어서 그녀가 한 말과 행동.
유해빈은 그걸 평생 잊지 않으리라 확신처럼 예감했다.
마음에 안 들지만, 약이 오르고 열이 받지만, 보고 있으면 괜히 얄밉지만, 그래도…… 그래도 진짜 존경스러운 사람.
한세라라는 존재가 유해빈에게 있어 미래에 도달해야 할 지향점이자 뛰어넘어야 할 목표로 자리매김한 첫 순간이기도 했다.
***
키이이이잉-!
음울한 빛을 띤 마탄이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날았다. 녹색의 마력과 검붉은 힘. 교차하며 폭발적인 파괴력을 자아낸 빛줄기가 소리조차 떨쳐내고 적을 쫓는다.
그에 맞서는 상대는 검은 드레스 차림에 챙이 넓은 모자를 착용한 여성. 텅 빈 하늘을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오가며 그녀가 손을 뻗는다.
파아아!
반투명한 구체가 인다. 물리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방어를 수행할 수 있는 보호막. 하지만…….
콰아앙!
억지로 궤도를 튼 마탄이 기어이 보호막을 때렸다.
한 번은 막아냈고, 콰앙! 콰아앙! 두 번의 공격이 재차 날아왔다.
쩌저적-
보호막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때는 이미 세 개의 마탄이 그녀를 포위한 상태. 곧바로 매섭게 날아든다.
콰아아아!
마침내 보호막을 부순 마탄이 적을 타격했다. 폭풍 같은 충격파에 여성이 쓰고 있던 모자가 날렸고, 그녀는, 서연희는 저편에 있는 심이수가 의기양양하게 건넨 말을 들었다.
“우쭐대더니 이 정도뿐이야? 그래도 보름달인데, 지난번에 회까닥 돌았을 때보다 약한 것 같은데?”
“그러니?”
건성으로 답한 서연희는 굳이 정답을 일러줄 생각이 없었다.
‘난 너랑 다르게 신경 쓸 게 많거든.’
그야 온전히 집중하면 죽일 수 있다. 그녀가 파악한 심이수의 전력은 명백히 마왕 이하. 힘의 총량은 상당하고, 기술적인 완성도 역시 그럴듯하지만…….
‘결정적으로 싸우는 데 소질이 없네.’
일반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면 전투 감각도 괜찮은 편이겠지. 그러나 구성원 상당수가 역사에 남을 재능인 36 영웅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다. 당연히 서연희의 기준에는 한참이나 미치지 못했고.
그러니 심이수를 압도하지 못하며 방금 공격까지 허용한 데는 무력 외의 요인이 대단히 크게 작용했다.
‘힘을 많이 빼두라고 했지?’
첫 번째로 이도진의 부탁. 그는 적들을 당장 죽이고 싶지 않은 듯했다. 납치당했을 때 완성한 마법의 목적을 알아내려 하고, 서연희는 그의 결정에 따라 전황을 조절하는 중이었다.
‘살짝 까다롭긴 한데.’
생명까지 잃는 각성자가 없도록 마법을 방해하면서, 외부 세력이 이곳의 싸움을 알지 못하게 결계를 유지하고 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마왕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듯한 감각. 그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나서도 되겠죠?>
심이수 몰래 발동한 워프 마법. 그것을 통해 불러들인 여우 가면이 그녀에게 묻는다. 서연희는 차분하게, 도발하듯이 답했다.
<네가 알아서 판단하면 돼. 내 귀염둥이 다치지 않게 부탁할게.>
대답은 없었고, 곧 지상에서 여우 가면이 참전해 이도진을 돕는다.
겉보기엔 심이수를 막는 데 집중하는 듯하면서도 서연희는 지시 사항을 일렀다.
<너도 알겠지?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고, 다음에 나랑 다시 얘기해.>
<……그러죠.>
여우 가면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다. 절반은 아쉬움이 스민 낙담. 나머지 절반은 다행이라 안도하는 거겠지.
‘미안해.’
서연희는 내심 사과를 전했다.
처음 세운 계획과 현재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
꽤 많이 달라졌고, 실패라면 실패였다. 그녀 자신에게도, 여우 가면에게도.
‘더 중요한 게 있으니까.’
아쉬워할 것도 없다. 가장 소중한 게 확고하니까.
조금 더 고생하고, 조금 더 머리가 아프고, 조금 더 수습할 일이 늘어나고.
서연희는 그런 걸 하나도 번거롭다 여기지 않는다. 여우 가면도 그럴 테고.
그즈음 통신 마법이 또 한 번 가동됐다. 이번에는 여우 가면이 아니다. 오늘 계획이 틀어짐으로써 수습해야 하는 일 중 하나. 거의 혼잣말 같은 유해빈의 말이 들린다.
<어…… 보스……?>
역시나 당황한 기색.
서연희는 짧게만 일렀다.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일단 대기하고 있어 줘.>
둘이 아니라 셋.
유해빈이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이끌어주려던 건 절반쯤 성공이겠지. 하지만…… 걱정되고 무섭다.
‘이건 정말 화날 것 같은데…….’
평소처럼 믿고 이해해주는 걸 넘어서.
육체적으로 완전한 굴복이니, 주인님이라고 부르느니, 그런 장난 반 진담 반인 사과로 될 게 아니다. 그것도 분위기를 봐가면서 해야 하는 거니까.
“후우…….”
일이 꼬여도 너무 꼬인 것에 한숨을 쉰 서연희가 정면을 응시했다. 굉장히 드물게도 화가 난 눈초리.
‘왜 못된 짓을 벌여선.’
그녀 자신이 잘못 판단한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저 애한테 있지 않을까.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는지 우쭐대며 접근해오고 있는 심이수.
“뭐야, 안 덤빌 거야? 겁이 나서 못 오는 건가?”
조소하는 표정이 보기 싫다. 현시점에 할 수 있는 만큼은 수습해뒀고, 서연희는 몹시 싸늘하게 선언했다.
“너…… 혼날 줄 알아.”
“응? 뭐라고-”
콰앙!
전방 수십 미터의 공간이 찢겨 나갔다. 그 중심부를 단숨에 돌파한 서연희가 손을 후려쳤다. 약간의 감정을 실어서.
심이수는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저 붉은빛이 번쩍이며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이미 눈앞에 있다는 것을, 그 정도만 겨우 인지할 수 있었을 뿐이다.
파아아아아아-!
본능에 가깝게 펼쳐낸 보호막. 장생종으로서 지닌 권능, 본연의 무력, 심가 각성자들을 제물로 삼아 얻어낸 힘. 모두 바닥까지 그러모아 공격에 대비했다.
콰아아앙!
보호막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고도 여전히 어마어마한 힘을 담고서 손이 뻗어온다. 심이수의 얼굴을 정통으로 때렸다.
퍼어어억!
음속을 넘어선 속도로 튕겨 나간 그녀는 뒤늦게 피를 토했다.
“커헉-!”
스아아아아!
공간이 조여온다. 심이수를 가두듯 주변 하늘과 유리된 광경을 만들었고, 그녀는 반격하고자 마력을 끌어올렸다.
“으아아앗!”
쿠우웅-
심이수의 아래편 땅이 크게 갈라졌다. 지하에서 솟아오른 폭풍우가 외부의 충격을 차단했다. 한데 그 직후.
“그런 거로 될 것 같니?”
스으으으-
폭풍우에 붉은빛이 깃들고, 이내 힘없이 걷혔다. 어느새 그녀의 지척에 이른 서연희의 손짓 한 번이 이루어낸 결과.
다시금 손이 뻗어온다.
콰악!
방어하려 얼굴을 감쌌으나 무력한 저항이었다. 심이수의 양팔을 젖혀내고, 그녀의 멱살을 잡아챈 서연희가 반대편 손을 휘둘렀다.
짜악! 짜악! 퍼어억!
두 번 뺨을 후려치고, 한 번 주먹을 쥐어 코뼈를 부쉈다.
“끄아악! 아아아악!”
고통과 분노에 소리친 심이수가 발길질했다. 서연희의 마법이 아무런 타격 없이 공격을 막았고, 도리어 무릎과 정강이에 극심한 통증을 느낀 건 심이수 쪽이었다.
‘샬럿 걔였으면 잘만 하면 이길 수도 있겠네. 승산이 낮긴 해도.’
영웅보다 좀 더 강하고, 마왕보다는 훨씬 약하다.
그쯤으로 심이수의 전력을 평가한 서연희는 이제 마력을 끌어냈다.
위유우우웅-
붉은 기운이 피어올라 심이수의 머리 부근을 감쌌다. 팬텀 단원들의 소원 계약과 비슷한 방식. 기억까지 보는 건 전투 상황이니 아무래도 어렵겠지만 마음의 흐름과 감정을 살피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뭘 원하는 거야?’
심이수가 구현하고 있는 마법. 그것과 그녀의 감정이 어떤 식으로 연결돼 있는지. 대체 무엇을 원하기에 많은 인명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그토록 이루고 싶어 하는지.
서연희는…… 정답을 깨달았다.
“……!”
예상치 못한 결과이기에, 아주 잠깐 생겨난 빈틈.
“끄아아아아악!”
콰아앙!
심이수가 죽을 힘을 다해 그녀를 밀쳐냈다. 서연희가 받은 타격은 크지 않았다. 속이 조금 울렁이다가 곧 가라앉는다. 하지만…….
‘이러면…….’
서연희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지상을 살폈다. 이도진과 여우 가면이 심정웅을 상대로 열심히 싸워나가고 있다.
이도진은 알고자 하는데. 심이수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런 다음에 죽이려 하는데.
‘도진이가…… 이걸 알아야 한다고?’
그러도록 해야 할까.
방금 알아낸 걸 말해줘야 할까.
이 세상과 균열 너머 세상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지식과 지혜를 갖춘 그녀라 해도, 그게 옳은 일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얼마나 똑똑하냐의 문제가 아니니까. 소중한 사람의 마음이 걸린 문제니까.
그때 심이수가 중얼거린다.
“죽여버릴 거야.”
쿠오오오오오오오-!
녹색의 마력이 그녀에게 모여든다. 서연희가 억제하고 있던 마법이 드디어 최대치까지 활성화했다.
여태 막아내고 흩어낸 마력. 심가 각성자들의 생명력. 모두 심이수의 힘이 된다.
스으으으-
한 발 뒤늦게 제어했으나 이미 흡수한 힘을 돌이킬 수는 없다.
“으으…… 하아아…….”
심가의 각성자들은 정확히 죽지 않을 만큼만 살아있다. 반대급부로 심이수의 힘은 한계까지 치솟아 올랐다.
빌려 쓰듯이, 아껴서 꺼내 쓰는 게 아니다. 완전히 자기 것으로 다루며 마력을 폭발시킨다.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서.
아무리 전투 감각이 부족해도 저만한 마력이라면 이전처럼 가벼이 상대할 수만은 없다.
“…….”
서연희는 슬프게 심이수를 바라봤다. 불과 일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그리고, 말해주기로 했다.
‘결정하는 건 내 몫이 아니야.’
몰랐다면 모르되 알게 됐다면 알려주지 않을 수 없다. 적들을 제압하고 나서 알려주는 건 그를 위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면 너무 늦다.
‘지금이어야 해.’
알고 나서, 알면서 싸우고, 그리고 결정해야 한다.
비록 육체적으로 더 많은 상처를 입게 되더라도.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이 일을 계기로 앞으로도 잘 해나가려면.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힘내.’
부디 감당해내기를.
너무 많이 마음이 다치지 않기를.
이겨낼 수 있기를.
그럴 수 있도록 돕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녀는 이도진에게 일렀다.
<도진아.>
***
순조롭다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서연희 쪽도, 내 쪽도.
심정웅과 그가 소환한 거인 셋.
아직 심정웅에게는 이렇다 할 타격을 주지 못했으나 염두에 둔 바가 있어 나는 여우 가면에게 지시했다.
<할 게 있으니까 시간을 끌어줘.>
<얼마나요?>
<삼십 초. 그 이상은 아닐 거야.>
<알겠어요.>
타아앙!
여우 가면이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쿠워어어어! 심정웅을 호위하는 거인 하나만 제외한 나머지 둘이 그녀의 진로를 막아선다.
콰아아아!
오른손에는 붉은 마력, 왼손에는 푸른 마력. 복합 마법을 구사한 여우 가면이 세차게 손을 휘둘렀다. 타격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멀리 밀쳐내고자 하는 목적이다.
퍼어엉!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나며 밀려난 거인들이 심정웅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
“으음…….”
낮게 침음한 심정웅이 지팡이를 두드린다. 그에 따라 그를 호위하던 거인이 몇 걸음 앞으로 나섰다.
거인 셋. 내 쪽에서 보면 삼각형을 거꾸로 세워둔 것 같은 대형. 자신의 안전을 지키면서도 셋이 힘을 합쳐 여우 가면을 상대하게 하려는 의도였고, 그가 다시 한번 지팡이를 세게 찧었다.
쿠웅!
지팡이로 두드린 곳부터 지반이 갈라진다. 쩌저적- 길게 뻗어나가며 내가 서 있는 곳까지 도달해왔고, 땅을 박차고 피하자 곧장 강력한 마탄이 내게 쏘아진다.
콰앙! 쿠아아앙!
시간을 끌고자 했던 내 의도는 읽혔다. 거인 셋이 여우 가면과 맞서는 동안 내가 어떤 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마법. 그러나 나는 방어 태세를 취하지 않고, 접근해오는 마탄을 무시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타아앙!
여우 가면이 찰나의 여유를 만들어 마력을 발현했다. 배리어에 지형지물까지 동원한 방벽이 나를 공격하려던 마탄을 막는다.
콰아아앙!
방어벽이 흩어졌으나 심정웅의 공격이 내게 닿지도 않았다. 나랑 그렇게까지 친하진 않아도 능력 자체만 보면 여우 가면도 무척 뛰어난 사람이니까.
나는 계속 정신을 집중했고, 심정웅이 연이어 지팡이를 찧는다. 단순한 마탄이 아니라 세 종류의 속성과 계통이 깃든 일급 마법.
퍼억!
거인의 주먹을 막아낸 여우 가면이 뒤로 튕겼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를 엄호할 마법을 펼쳐줬다.
15, 16, 17…….
여우 가면이 점차 위기에 몰린다. S급 각성자만큼이나 강한 거인 셋에 심정웅의 마법까지 막는 건 힘이 부치는 거다. 나는 초조함을 뒤로하며 의식의 흐름을 더욱 빨리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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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발동형 특성 ‘엿보는 눈’을 발동 중입니다. (랭크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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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그램의 능력과 내 통찰력을 전부 다 끌어내, 기어이 알아냈다.
저 거인들의 움직임을 멈추게 할 디스펠 마법.
파아아아아-!
내게서 물결 같은 마력의 파도가 일었다. 그 힘이 전방으로 뻗었고, 여우 가면을 포위하던 거인 셋에게 닿았다.
우워어…… 크륵-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소리.
덜컥, 덜커덕.
강력한 거인들이 멈춘다. 마치 고장이 난 것처럼.
“이런…….”
심정웅이 눈을 가늘게 뜬 직후, 나는 그에게 짓쳐 들어갔다.
콰아앙!
노인이 다급히 지팡이를 휘두른다. 견제 마법. 이어서 허공을 날며 거리를 벌리려 했다. 여우 가면이 나선다.
“가요.”
내게 짧게 이른 그녀가 심정웅의 마법을 모조리 쳐낸다. 피싯- 퍼엉! 내가 그를 쫓을 수 있도록. 자신은 상처를 입으면서.
“고마워.”
나직이 답한 나는 마법적인 지지대를 몇 번이나 박차며 속도를 높였다. 심정웅이 눈을 부릅뜨며 외친다.
“내가 두려워 피한 것 같은가!”
화르륵-
쿠오오오오오오!
심정웅의 지팡이가 불길에 휩싸이며 재가 된다. 그 정도까지 마력을 담아낸 압도적인 공격이 내 전신을 불태우려 이글거리며 다가온다.
+
-스킬 ‘마력흡수’를 발동합니다. (랭크 S)
-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의 랭크가 소량 회복됩니다. (랭크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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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김없이 흡수하진 못해. 치명상을 입지 않을 만큼만. 양팔을 십자로 교차하고 방어 마법을 총동원하며 나는 불길을 뚫어냈다. 그 결과, 노인 앞에 이를 수 있었다.
파아아앙!
오는 길이 어려운 게 문제일 뿐 근접전이라면 이자는 나를 당해내지 못해. 내 손과 발이 그의 머리와 심장을 노리고 뻗었다.
촤아악!
손끝이 심정웅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튄다. 노인이 이를 꽉 물며 마력을 발산했다.
퍼어어엉!
반탄 계열의 국소 결계. 내가 뚫어내는 동안 거리를 벌리거나 공격하려는 거겠지. 그러나 여우 가면이 다가와 강하게 손을 내리친다.
퍼걱-
결계에 미세한 실금이 생겨났다. 그 대가로 여우 가면은 입에 피를 흘리며 튕겨 나갔고, 나는 그녀가 만들어준 틈새로 손을 찔러넣었다.
콰아앙!
결계를 깨뜨리고,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심정웅의 어깻죽지가 내 손에 잡혔다.
콰아악!
“으윽……!”
오른쪽 어깨를 으스러뜨렸다. 이어진 발길질.
퍼억! 충격을 모두 해소하지 못한 심정웅이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그를 쫓으며 나는 해야 할 일을 생각했다.
이자는 죽여도 돼. 목적을 알아내는 건 심이수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나는 승부를 결정할 일격을 내뻗었다.
최소한 치명상.
운이 좋다면 즉사.
하지만 홀로그램이 내게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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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발동형 특성 ‘순간예지’가 발동됩니다. (랭크 A+)
+
콰아아아아앙-!
피슈우우우우웅-
보호막을 치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왜 허공을 날아가고 있는지. 점차 멀어지고 있는, 지금껏 싸워온 장소를 보고서야 알았다.
심이수가 마법을 최대로 끌어올렸고, 심정웅에게도 마력을 더해줬다. 그걸로 강화한 힘이 나를 떨쳐낸 거다.
쿠아앙!
백 미터를 훌쩍 넘게 날아간 나는 땅에 나동그라졌다. 주위를 보니 그곳이다. 내가 열흘 동안 머무르던 심이수의 거처. 거기 꾸며져 있는, 그녀가 가꾸는 정원.
그때 서연희가 내게 말했다.
<도진아.>
<네?>
<심이수의 목적, 알아냈어.>
<뭔데요?>
심정웅과 다시 싸우고자 힘을 모으며 나는 이어질 말에 집중했다. 심이수의 목적을 알아냈다면 상황이 좀 더 간단해지니까.
그리고.
서연희가 답했다.
<저 애…… 살리고 싶어 해.>
정원을 걸어 나가던 나는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아주 작게, 실낱같은 목소리로 서연희에게 물었다.
<살린다는 게…… 그게, 무슨 뜻이에요?>
<자기한테 정말 소중한 누군가, 이미 죽은 사람을.>
“…….”
마침 내 옆에 꽃이 보인다.
수국이, 예쁘게 피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