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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64화 (164/207)

#164화. Chapter 40. 진실 (2)

나는 내 두뇌 회전이 느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추측 가능한 단서만 주어진다면 정답에 근접한 결론을 끌어낼 수준은 된다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니 아마 진실에 가깝겠지. 지금 떠올린 결론도, 그걸 뒷받침할 단서도.

항거할 수 없는 재앙처럼 내 정신이 속삭인다.

서연희의 말이 옳다고.

나는 이미 근거가 될 정보를 가지고 있고, 줄곧 겪어왔다고.

장생종의 시체.

내가 알던 모습과 확연히 달라진 심이수의 외견.

이따금 불안해 보였다. 핏발 선 눈동자로 격하게 기침을 했고, 현기증이 난다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기도 했다.

인체 실험을 한 거다. 수명의 한계와 노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심정웅의 명령으로.

처음엔 그랬겠지.

하지만 최근 들어 심이수가 예상 이상으로 급격히 성장했다. 서연희의 피를 흡수하면서.

조부와 손녀의 위치가 뒤바뀌었고, 이제는 심정웅이 심이수의 하수인 신세로 전락했다.

한태강을 습격하고 나와 세라까지 잡아들이려 한 이유를 알겠어.

약혼 서약 때문에.

내 어머니 정세빈의 마법. 그녀의 의지가 아직도 변함없이 작용하고 있으니까.

그 원리를 밝혀내려고.

영생에 가까운 장생종의 생명력.

심가 각성자들을 희생시켜 얻어낸 힘.

죽은 자의 의지마저 존속해내는 서약 마법.

셋을 하나로 모아서 되살리려고 하는 거다.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을.

그게 누구인지는…… 물어볼 것도 없이 잘 알겠고.

“…….”

나는 정원에 피어난 꽃들을 바라봤다. 심이수가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저 이 집 들어오기 전에는 엄마랑 둘이 살았거든요. 저희 엄마가 꽃가게를 하셨는데…… 보고 들은 게 이거라서 저도 꽃 관련은 그럭저럭 잘 알아요.’

‘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솔직히 잘 됐어요. 저희 엄마 병 때문에 너무 많이 아프셔서, 보는 저도 힘들었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이 집 들어와서도 꽃은 계속 가꾸고 있어요. 엄마가 보면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정원에 핀 꽃과 나무가 예쁘다. 정성 들여 소중히 가꿔온 걸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그중에서도 내 눈길이 닿는 곳. 저마다 다른 색으로 물든 수국이, 멀리서 불어오는 충격파에 가늘게 흔들린다.

이 꽃을 보며 심이수와 나눈 대화를 기억한다.

‘저건 수국이에요. 여름에 피는 꽃인데, 시기 따라서 색이 변하고 어디서 키우느냐에 따라서도 다른데, 그래서인지 꽃말도 여러 개예요.’

나는 꽃말을 물었고, 심이수가 답했다.

흰색은 변덕. 청색은 냉담. 분홍색이랑 보라색은 꿈과 진심 같은 긍정적인 의미.

그리고 마지막 하나.

의연하게 웃는 얼굴로 말해준 꽃말.

‘인내심이 강한 사랑이라는 뜻도 있고요.’

“후우, 후우…….”

그저 꽃을 보고 있을 뿐인데 참기 어려울 만큼 격한 숨이 치닫는다.

심이수가 뭐라고 했더라. 날 납치할 때 이 수국을 어루만지면서…….

‘내가 되게 크고 원대한 목표가 있는데…… 이게 참 쉽지가 않거든. 그럴 때마다 난 이 꽃들 보면서 생각해. 버텨야지, 해내야지. 숨 내뱉을 때마다 피 토하고 눈알이 뽑힐 것 같은데…… 뭐, 어쩌겠어. 안 하면 안 되는데. 내가 원하고 선택한 길인데.’

안 하면 안 된다고.

내가 원하고 선택한 길이라고.

그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살리는 일이라면-

<도진아?>

걱정스러워하는 목소리. 서연희에게 답하지 않고 있었다. 집중이 흐트러졌던 걸 자책하며 나는 차갑게 일렀다.

<바뀌는 건 없어요. 아무것도.>

이번엔 서연희가 침묵한다. 정말 그걸로 충분하냐고 묻는 것처럼. 질문에 답하듯 나는 해야 할 부탁만을 전했다.

<계속 힘을 빼주세요. 죽이는 건 제가 할게요.>

<……알겠어.>

통신이 끊겼고, 나는 땅을 박찼다.

콰아아앙!

여우 가면 혼자 맞서고 있던 심정웅을 공격하며 나 자신에게 되뇌었다.

달라지는 건 없어.

심이수를 죽여야 해. 그녀의 목적이 무엇이든지.

내가 팬텀이라는 걸 알고 있어.

서울 내의 인외 지성체야.

막지 않으면 심가 각성자들이 희생될 거고, 소모한 힘을 보충하기 위해 서연희와 나를 노릴 거야. 한태강과 세라를 습격할 거고, 유해빈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어.

심이수를 인간으로 되돌려 3권의 고유 퀘스트를 클리어한다고?

기억 조작과 영혼지배로 죽이지 않고 살려둔다고?

나약한 마음이 지껄인 역겨운 위선. 나는 단번에 일축했다.

어떻게 되돌릴 건데.

방법도 모르잖아.

방법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야. 기억 조작? 영혼지배? 그건 아니잖아.

어머니를 살리려는 목적. 그게 있는 한 심이수는 앞으로도 뭔가를 하려 할 텐데. 멈추려면 기억을 지우는 수밖에 없는데.

그런 걸 원하진 않을 거잖아.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그따위 기만에 기대 살고 싶지는 않을 거야. 나도 그럴 거니까.

기왕 쓰레기 짓을 할 거라면 효율적으로 행동해.

심정웅을 살리는 건 그나마 괜찮아. 안드레이 일린에게 했던 것처럼 추후 써먹을 패로 만드는 거야. 오늘 일의 수습도 훨씬 편해질 테고.

그건 전략적으로 나쁘지 않아. 오래 버티지 못한다곤 했지만 찾아보면 육체를 유지할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내가 여태까지 그런 짓을 안 해본 것도 아니니까.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돼. 그렇게 하면 되는데…….

근데 심이수는 아니야.

그건 진짜 못하겠어.

걔를 위해서니 뭐니 같잖은 변명이 아니라…… 그냥, 그러면 내가 못 버틸 것 같아서.

+

<킬 더 이블> 3권의 마지막 서브 퀘스트를 부분적으로 달성했습니다.

-클리어 조건: 8월 29일 자정까지 ‘천리안’ 심정웅의 손녀 심이수가 가진 진정한 목적을 파악할 것

-핵심 목적: 어머니 류혜원의 소생

-부가 목적이 존재합니다.

-심이수와의 관계가 급변할 여지가 존재합니다.

-클리어 보상의 최종 산정을 보류합니다.

-조건:

1) 부가 목적의 파악 여부

2) 심이수와의 관계

-핵심 목적 파악에 따른 부분 보상을 선지급합니다.

-스킬 ‘염화(念話)’를 습득합니다. (랭크 A)

+

꽤 쓸만한 능력이다. 활용하기에 따라선 서연희가 그러하듯 타인의 기억과 감정까지 파악할 수 있겠지.

왜 보상으로 이 스킬을 준 걸까. 이걸로 심이수의 기억을 확인하고, 동정심에 그녀를 살리라고?

그럴 생각은 없는데.

스아아아-

심정웅이 쏘아낸 마법이 닥쳐온다. 파아악! 양손으로 잡아챈 나는 그걸 그대로 찢어발겼다.

피슈웃!

내 손에서 피가 뭉클 솟구친다. 여우 가면이 놀란 듯이 나를 쳐다봤고, 심정웅 또한 경계하며 말한다.

“심경에 변화가 있었구먼…….”

“알 거 없어.”

+

-수동발동형 특성 ‘엿보는 눈’을 발동 중입니다. (랭크 S)

+

피하는 것과 받아내는 건 엄연히 다르다. 전자일 때 파악하지 못하는 걸 후자일 때는 알아낼 수 있다.

방금 상처를 입을 걸 알고도 찢어발긴 것보다 수준이 낮거나 위력이 약한 마법은 이제 통하지 않아.

더는 지지부진하게 끌고 싶지 않기에 나는 심정웅에게 선언했다.

“어디 한번 버텨봐. 버티지 못한다면 죽을 거고, 버텨낸다면…… 그 이후에 얘기를 나눠보자고.”

“……자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랐건만.”

“그래?”

싸늘하게 되받은 나는 심정웅을 향해 돌진했다.

콰앙! 슈아아아-!

들이닥친 마법을 피하지 않았다. 죄다 직접 받아냈고, 온몸을 피로 물들이며 노인에게 접근했다.

여우 가면이 날카로운 어조로 추궁하듯 묻는다.

<지금 뭐 하는 거죠?>

<신경 쓰지 말고 하던 대로 해.>

보조만 해주면 돼. 나는 내가 알아서 하는 거고.

심이수의 목적을 알고부터 심장이 빨리 뛴다. 불길이 치미는 것처럼 뜨겁다.

하지만 그럴수록 머릿속이 차분해지고, 손끝의 감각도 무척 예리해졌다.

틀림없이 지금 내 전투 감각은 최고조에 다다라있다.

염의준을 죽였을 때. 파르투스를 상대할 때. 어쩌면 그 이상으로.

콰아아앙!

근거리에서 심정웅이 발출한 마법이 내 오른쪽 팔뚝을 강타했다.

후두둑- 사방으로 튄 피가 심정웅의 옷깃에 조금 닿는다. 의도를 들키고 싶지 않아 나는 미동조차 없이 마법을 발동했다.

파아아아!

피에 스민 마력이 디스펠 효과를 자아냈다. 이전까지 내가 받아낸 모든 공격 마법이 순간 무력화됐고, 노인이 다른 수단을 꺼내기 전에 나는 힘껏 발을 굴렀다.

콰앙! 퍼어억!

정통으로 들어갔다. 명치를 얻어맞은 심정웅이 입에서 피를 토한다. 하지만 그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아 힘겹게 내 몸을 끌어안으며 마력을 폭발시켰다.

쿠아아아아아아-!

불길 같은 고통이 치닫는다. 단숨에 떼어낼 수는 없고, 나는 여우 가면에게 지시했다.

<팔다리를 다 끊어버려.>

스아아앗-

여우 가면의 마력이 다가온 직후. 파아앙! 내 몸이 뒤편으로 날았다.

그녀가 나를 구해낸 것이다. 지시에 따르지 않고 심정웅의 마법만 갈라내면서.

살갗이 타오르는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나는 그녀를 다그쳤다.

<제대로 못 들었나?>

<무모하게 나서지 마요. 효율적으로 싸우는 게->

<이게 가장 효율적이야. 지시를 어기지 마.>

<…….>

여우 가면은 대답 없이 멀리 하늘을 올려다본다.

쿠오오오오오-!

어마어마한 힘을 다루고 있는 심이수의 맹공을 서연희가 쳐내고 있다. 아주 간단하지는 않겠지. 이쪽이 빨리 끝내야 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빠르게.

“허억, 허어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얼굴을 찡그리며 힘겨워하는 노인이 입술을 달싹인다. 심이수에게 말을 전하고 있는 걸까.

타악.

그를 향해 걸으며 나는 결심을 되새겼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심이수가 어떻니, 심정웅이 어떻니, 주저하면 안 돼.

원래 떳떳하지 않았잖아. 착한 척한다고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딴 가책은 아무런 도움도 안 돼.

잊으면 안 된다.

내가 뭘 위해서 살고 있는지.

내 부모님을, 이시혁과 정세빈을 살리기 위해서.

나는 그걸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거야.

그게 제일 중요해.

문득 입가에 호선이 그어진다. 나도 모르게 나온 웃음.

자조인 걸까, 목적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는 기쁨인 걸까.

전자는 위선이야. 부디 후자이기를 바라며 나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스으으으…….

검은빛의 날개 같은 힘이 내 몸을 감싼다. 하잘것없는 자책감을 감추듯이.

그때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여우 가면이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

“…….”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기색. 그걸 막아서듯 나는 그녀에게 일렀다.

<이번 걸로 팔 하나는 잘라버려.>

***

콰아앙! 쿠아아아아앙!

서연희는 걱정 어린 눈으로 지상을 살폈다. 이도진이 심정웅을 몰아붙이고 있다. 평소와 사뭇 다른 전법.

콰앙! 콰아앙! 퍼어어어억!

방어와 공격을 적절히 연계하는 게 아니라 공격 일변도에 가깝다.

상처 입는 걸 감수하고, 오히려 그걸 원하는 것처럼. 마치 자기 자신을 깎아내듯이.

목소리가 들려온다.

<……계획한 대로 하겠어요.>

나직하지만 괴로워하는 말.

서연희도 동의했다.

“죽어어어어-!”

검붉은 눈으로 들이닥치는 심이수를 막아내며 그녀는 결심했다.

‘오늘 해야겠어.’

진심으로 화를 내더라도.

원망을 듣게 되더라도.

그래도…… 저렇게 괴로워하는 걸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서연희는 손을 휘둘렀다.

위유웅-

그녀가 발동한 마법이 먼 곳으로 향했다. 이 저택조차 넘어서, 멀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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