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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65화 (165/207)

#165화. Chapter 40. 진실 (3)

‘이게 맞는 걸까.’

본래 오늘 하려 했던 일, 그러나 훗날을 기약하며 미룬 계획을 다시금 실행하고자 한다.

이도진은 원하지 않지만……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기에.

‘화내도 돼.’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좋다. 원망하고, 소리를 지르고, 탓하고, 분노하고. 서연희는 이도진이 토해낼 그 모든 감정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각오했다.

이전만큼 그녀를 믿지는 못하게 된다 해도.

천천히, 조금씩 커져 이제는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는, 너무도 기쁘고 행복한 그의 말과 행동이 애달프게 흐려진다 해도.

다시 그 예쁜 색채를 되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도.

그래도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나는 네가 제일 중요하니까.’

나아갈 길에 힘들고 괴로워도, 그래서 많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어도…… 그래도 그런 순간 속에서 가끔은 웃을 수 있기를 바라니까. 단단하고 강한 마음으로 헤쳐 나가기를 바라니까.

서연희는 정면을 응시했다.

초록빛에 검붉은색 피가 아른거리는 듯한 마력으로 공격해오던 심이수가 어째선지 허공에 멈춰있는 상황.

심정웅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모습이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조부의 가당치 않은 제안. 심이수는 야멸찬 어조로 되받았다.

<엿 같은 소리 집어치워요.>

심정웅의 요구는 간단했다.

그녀가 구현 중인, 심가 각성자들의 모든 마력과 생명력을 제물로 삼는 마법. 그 제어권을 자신에게 일부분 넘겨 달라고. 당연히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이미 많이 줬잖아요. 그걸로 부족하다고? 그러면 당신이 무능한 거지 더 줘봐야 소용없잖아.>

<……그렇지 않아. 얻어서 쓰는 힘과 제어권을 가지는 건 달라. 지금으로선 이들을 상대할 수 없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심이수가 노인에게 힘을 넘겨준 방식은, 말하자면 거대한 마력 저장고를 하나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공급받은 힘을 온전히 제 것처럼 다룰 수는 없다.

심이수 자신만 해도 그 방식으로 싸우다 크게 밀려 마력을 전부 끌어냈고, 지금은 얼추 대등한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으니까. 조부도 상당히 강해질 수 있겠지.

그가 재차 설득한다.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나는 결코 너를 배신할 수 없다. 내가 저들을 제압한다면 그건 오롯이 너를 위하는 일이 될 것이야. 믿어다오.>

<그렇긴 하네요.>

심정웅을 습격해 인간이 아닌 존재로 탈바꿈시킨 과정에서 걸어둔 금제.

저 노인은 그녀의 안위에 해를 끼치거나 뜻에 반하는 일을 행하지 못한다. 몸이 산산이 터져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러니 제어권을 일부 넘겨줘도 위험 부담은 없을 테고, 게다가…….

<열심히 해요. 할아버지도 오래 살고 싶잖아요?>

그도 분명한 목적이 있다. 더 살고 싶다는 욕망.

설령 딴마음이 있더라도 당장은 뒤통수를 칠 수 없겠지. 허튼수작을 부리다간 이도진에게 죽을 테니까.

<기다려봐요.>

심이수는 한계에 다다른 마법을 더욱 쥐어짜며 지상을 바라봤다.

“으, 아으…….”

“살려, 줘…….”

마력과 생명력을 거의 다 빼앗긴 각성자들이 몸을 꿈틀거린다.

몇 년간 알고 지낸 사람들. 굴러들어온 사생아라면서 그녀를 무시하던 이들도 있고, 차후 가문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을 걸 알고 미리부터 줄을 대는 자들도 있었다.

개중에 괜찮은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다.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고, 그녀가 온 이후로 집안 분위기가 밝아졌다며 좋아하고, 그녀의 재능에 감탄하고,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이들도 있었다.

음침하기 짝이 없는 집안. 이런 곳에도 좋은 사람들이 살았다. 나쁘지 않다고 여겼던 사람들이 있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모두 죽어가고 있다.

그녀에 의해서.

‘알고 있어.’

마음에 스미려 하는 가식적인 아릿함을 심이수는 조소하며 떨쳐냈다.

그야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박대에 상처 입은 적이 있다. 환대에 웃은 적도 있다. 밤낮으로, 그야말로 앉은 채로 혼절할 때까지 마법을 공부하기도 했다.

눈도 뜨지 못하고 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어머니. 그 모습을 힘없이 지켜만 보는 게 아니라, 예전처럼 오순도순 함께 살고 싶어서.

꽃과 나무를 가꾸고, 그러다 잔소리도 듣고, 가게 일을 도와주고, 해가 지면 같이 장도 보러 가고, 그렇게 살고 싶어서.

어떻게든 살아줬으면 해서. 살리려는 일념으로. 그것 하나만을 소원하면서 버텼다. 그랬는데…….

‘잘 모르겠네.’

모르겠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아무리 해도 방법을 찾을 수가 없어서, 거울 속의 얼굴이 낯설고 옷이 하나도 맞지 않게 돼서, 자고 일어나면 침대와 베개가 피로 얼룩져 있어서, 숨을 쉬고 눈을 깜빡이고 손을 움직이는 것조차 고통스러워서.

그래서, 마음이 계속 깎여 나간 것 같다. 매일 그렇게 살다 보니까…… 점점 뭐가 뭔지 모르게 됐다.

나쁜 짓이라는 건 아는데, 죄책감 같은 걸 느껴야 하는 것도 아는데,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거면 돼.’

심이수는 자신에게 일렀다.

단 하나의 마음만 남아있으면 족하다. 다시 보고 싶다고. 그것만 중요하니까.

위유우웅-

심정웅에게 마법의 제어권을 2할 정도 넘겨준 그녀는 마지막으로 시선에 한 사람을 담았다.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고, 그 위로 검은빛 마력을 일렁이는 이도진.

‘……부탁할게.’

염치없는 말을 되뇐 그녀는 힘을 모았고, 복잡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팬텀의 보스를 향해 들이닥쳤다.

부디 이룰 수 있기를 바라면서.

***

치열하던 싸움이 서서히 우리 쪽의 우위로 흘러가고, 곧 마무리를 지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시점.

쿠아아아아-!

심정웅에게서 느껴지던 기파가 뚜렷이 강해졌다.

“물러서 있어.”

여우 가면을 제지하며 나는 노인에게 일어난 현상을 파악했다.

힘 자체만 강해진 게 아니다. 종전보다 자유롭게 마력을 다루고 있다. 심이수가 마법의 제어권을 어느 정도 넘긴 걸까.

노인이 경고처럼 말한다.

“죽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할 걸세.”

파아아아아아-!

제어권을 얻은 게 확실했다. 심이수가 지배하고 있던 저택의 결계. 그것들이 일제히 활성화하며 나와 여우 가면을 가두려 한다.

<뚫는 건 내가 할 테니 방해해.>

여우 가면에게 짧게 이른 나는 결계 중심부로 들어갔다. 슈아아아아! 실재와 환상을 구분하기 힘든 광경이 펼쳐지며 시야가 뒤집혔고, 강철을 쪼갤 마력의 줄기가 소용돌이치며 내 육신을 찢으려 한다.

타앙! 퍼어억! 쳐낼 것은 쳐내고, 감당할 수 있는 건 몸으로 받았다. 어깨에 움푹 팬 상처가 뼛속까지 파고든다.

스으으- 마력으로 출혈만 겨우 막은 나는 하늘에 선 것처럼 보이는 심정웅이 뭘 하고 있는지 살폈다.

쿠오오오오오…….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마력이 아득하다. 결계로 시간을 벌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일격으로 승부를 결정지을 속셈이겠지.

스아아앗!

여우 가면이 접근해 견제한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서 노인이 왼손 주먹을 쥔다.

콰아아앙!

다섯 갈래의 복합 마법이 여우 가면의 마력을 떨쳐내고 그녀를 쫓는다. 견제로 방해한 시간은 찰나. 심정웅의 마법이 완성돼 간다.

+

-수동발동형 특성 ‘엿보는 눈’을 발동 중입니다. (랭크 S)

+

아주 강력한 효과를 지닌 디스펠. 그것 말곤 감지되지 않는다. 그 이상은 힘에 부칠 테고, 하기야 저 마법에 닿은 순간 완벽하게 무력화될 테니까.

그사이에 여우 가면이 몇 초의 시간을 더 벌었다. 결계를 부수고자 내가 준비하고 있던 마법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콰아앙!

스아아아아!

두 개의 소음이 동시에 들렸다.

하나는 심정웅이 고위 마법을 연사해 여우 가면을 멀리 떨쳐낸 소리. 다른 하나는 내가 결계를 깨부수며 발생한 소리였다.

쿠오오오오……!

심정웅의 앞에 새하얀 빛무리가 일렁인다. 접촉하자마자 내 모든 마력을 단번에 흩뜨려낼 디스펠.

타아앙! 나는 주저 없이 내달렸다.

+

-스킬 ‘마력흡수’를 발동합니다. (랭크 S)

-스킬 ‘존재흡수’를 발동합니다. (랭크 SS)

-상시발동형 특성 ‘검은 심장’의 랭크가 회복됩니다. (랭크 C -> 랭크 B)

+

심장이 두근, 하고 울렸다. 킬킬거리는 웃음이 내 안에서 희미하게 들린다.

마치 비웃음 같다. 꼴 좋다고. 아등바등 위선이나 떨더니 결국 이 꼴이라고.

네가 해온 일이 옳은 것 같냐고. 절친한 친구이자 약혼자를 속이고, 그녀의 아버지를 속이고, 그녀의 어머니가 죽고, 동생을 속이고, 동생의 친구를 희생시키려 하고.

검은 심장이 마구 나를 비난한다.

너나 저기 저 여자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목적을 이룰 수단을 고를 만큼 형편이 좋지 않았어도, 지금처럼 그나마 깨끗한 척하며 살 수 없었어도, 홀로그램의 도움을 받지 못했어도, 그래도 너는 행동했을 거라고.

저 여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거라고. 그런 주제에 저 혼자 소원을 이루고 싶어 그녀를 죽이는 거라고.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너는 악인이고, 여태 지은 죄를 씻을 수 없고, 앞으로 더 많은 죄가 쌓일 거라고.

나는 나직이 되받았다.

한 번도 부정한 적 없다고.

홀로그램이 없었다면 어땠을지, 내가 미래에 뭘 해나갈지.

그런 건 모르겠어.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야.

검은 심장이 웃는다.

기뻐하는 말이 들린다.

[기대…… 하겠노라.]

이제 심정웅이 눈앞에 있다. 그가 자아낸 마법이 어두운 밤을 밝힌다.

내가 염두에 둔 방법은 하나였다.

디스펠을 피하지 않고 파고 들어가는 것.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마력흡수와 존재흡수 스킬로 얼마간 힘을 보충할 수 있으니까.

나와 노인 사이의 거리는 불과 일 미터. 나는 칠흑처럼 검게 물든 손을 뻗었다.

파아아아아-!

아주 잠깐 든 의문.

순간예지 특성이 발동하지 않는다. 이 정도로 급박한 상황에서는 으레 발동하는데. 내 위기에 맞춰 지금부터 일어날 일을 보여주는데.

하지만 내 손은 이미 심정웅의 가슴 중앙으로 향하고 있고, 되돌릴 수는 없다.

“으아아아압-!”

노인이 기합성을 내며 양손을 뻗었다. 내 손이, 공격이 다가오는 방향이 아니다.

저 멀리, 하늘 위편으로.

퍼어어어억!

손에 불쾌한 감촉이 치밀었다. 디스펠의 영향이 없던 건 아니다. 가면으로 가린 얼굴과 변장한 체형이 되돌아온다.

그러나 내가 상정한 것보다는 월등히 강한 힘으로, 나는 심정웅의 가슴을 꿰뚫었다.

“커헉-!”

노인이 울컥 피를 토해냈다. 내 공격에 당한 타격만이 아니다. 피슈웃! 콰아아악! 팔과 다리, 어깨와 목, 눈과 코와 입, 모든 곳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스아아아아아아-!

그가 하늘로 쏘아낸 새하얀 빛줄기가 심이수에게 닿았다. 그녀가 구현하고 있던 마법, 이 저택의 생명력을 앗아가던 힘의 제어력이 모래성처럼 흩어져 간다.

터억-

비틀대며 뒷걸음질하던 심정웅이 쓰러졌다.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 절대로 살리지 못해. 아직은 숨이 붙어있으나…… 그의 죽음은 확정적이다.

“……어째서?”

애초에 날 막으려 한 게 아니다.

심이수에게서 제어권을 일부분 넘겨받고, 디스펠로 마법을 해제한 거다. 이 저택 사람들의 마력과 생명력을 송두리째 앗아가지는 못하도록.

그 결과 내게 극심한 상처를 입었고, 그것도 모자라 몸이 갈가리 찢기는 통증 속에서 죽게 됐다. 심이수가 걸어뒀을 금제를 어긴 대가로.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언제부터, 이유가 뭐지?”

노인이 꺼져 가는 목소리로 답한다.

“자네가…… 물었잖나. 옳은 일을…… 아니, 하다못해…… 내가 바라는 일을, 하고 있냐고…….”

“…….”

그가 희게 웃는다.

“그렇게, 했네…….”

나는 깨달았다.

그전부터 그는 살 생각이 없었다고.

한태강을 습격할 당시 장생종의 시체를 소각하는 데 동의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까.

살고 싶지 않아져서. 그 욕심을 포기해서. 미련을 버리기 위해서.

그래서였을까.

오래 살기를 원했으면서.

심이수에게 인체 실험을 강행했으면서.

마지막 순간엔 사람들을 살리려 했다.

“웃기지 마…….”

나는 이를 악물며 답했다.

그 추악한 이기심을 더 마주하기 어려웠다. 계속 보고 있기에는…… 너무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어서, 가보시게……. 자네…… 할 일이 남았잖나.”

피에 절어 이르는 노인. 나는 대답 없이 몸을 돌렸고, 내 곁으로 다가온 여우 가면에게 일렀다.

“감시하고 있어.”

그리고 곧바로 땅을 박찼다.

콰아앙!

아무것도 모르겠다. 정말 미칠 것처럼 답답하고 막막했다.

그저 떠밀려가듯 하늘을 날았고, 저편에 보인다.

“아아악, 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피눈물을 줄줄 흘리며, 심이수가 비명처럼 소리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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