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67화 (167/207)

#167화. Chapter 40. 진실 (5)

***

이곳에 당도하기 전까지 한태강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심정웅과 심이수가 습격해온 건 물론 기억한다.

딸아이와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맞서 싸웠고, 심이수가 그에게 정신 마법을 걸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전에 걸려 있던 마법을 해제한 것이다.

그것으로 깨달았다.

자신은 이미 한 달도 더 전에, 심이수와 심정웅의 합공을 이겨내지 못하고 패배했음을.

그들은 한세라와 이도진에게까지 위해를 가하려 했고, 한태강은 그걸 잊고 말았다. 기억이 지워졌기 때문에.

이도진이 심가와 교류하는 게 걱정스러웠던 것도, 그가 무사한 모습을 봐야 안심이 될 것 같아 휴가를 따라간 것도, 파혼 서약을 늦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영향이 컸다.

기억이 지워졌음에도 간절한 마음이 남아있어서.

이도진이 위험하다고.

그 애를 지켜줘야 한다고.

하지만 의문스러웠다.

어째서 심정웅은 자신을 쓰러뜨리고도 기억만 지워서 돌려보낸 걸까.

오늘의 사건은 그 연장선에 있을 텐데, 그렇다면 이도진은 무사한 걸까.

답을 알지 못하고 한태강은 의식을 잃었다. 팬텀의 제안에 응한 딸아이가 그를 공격해 기절시킨 것이다.

자기 목숨이 중요해서가 아니겠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정신이 들고 보니,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파혼 서약을 하려고 왔던 공터가 아니다. 전투의 충격파가 울리고, 멀찍이 각성자들이 쓰러져 있다.

와본 적이 있는 정경이었다. 심가의 저택.

어째서 자신이 여기 있는 걸까.

팬텀의 보스는, 흰 가면을 쓴 사내는, 용 가면을 쓴 단원은, 딸아이와 이도진은…… 모두 어디에 있는 걸까.

팬텀은 심가와 싸우려 했다. 저 충격파가 울리는 곳에 그들이 있겠지. 하지만 딸아이는?

아직 공터에 있을까. 이도진은 다친 데 없이 무사할까. 둘이 합류해 자리를 피했을까.

그즈음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딸은 무사해. 그러니 안심하고, 우리를 도와줘야겠어. 이곳으로 와. ……진실을 알고 싶다면.>

팬텀 보스의 전언.

한태강은 저택을 가로질러 달렸다. 하늘에 두 사람이 싸우고 있는 게 보인다.

심이수와 팬텀의 이인자.

둘 다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고,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사투를 벌인다.

그들을 눈여겨보며 한태강은 몰래 접근했고, 불과 일이백 미터 떨어진 곳에 이르러…… 홀로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가슴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피를 쏟아내는 심정웅. 기척을 알아챈 노인이 그를 보며 씁쓸하게 웃는다.

“자네도…… 왔구먼……. 잘, 왔네…….”

바로 그때.

퍼억! 둔탁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심이수의 주먹이 흰 가면을 쓴 사내의 얼굴을 강타한 것이다.

가면의 절반이 떨어져 내렸고, 한태강은 가리지 않은 그의 옆얼굴을 봤다.

“……!”

깜깜한 밤이지만.

저 멀리 하늘에 떠 있지만.

고작 얼굴 반쪽이 얼핏 드러난 것뿐이지만.

그래도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후우…….”

그 순간부터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번의 호흡.

마음은 초조했고, 정신은 강철처럼 벼렸다. 악마의 군주를 쓰러뜨린 영웅이, 무신 한태강이 전력을 끌어냈다.

콰아아아아아-!

심이수가 쏘아낸 마탄이 적에게 들이닥친다.

한태강은 두 번째로 호흡했고, 주먹을 내질렀다.

“흐읍-!”

푸른빛이 하늘로 뻗었다.

타아앙!

그 힘이 심이수의 마탄을 지워냈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소멸시켰다.

심이수가 제자리에 멈춘다. 흰 가면의 사내는 계속 다가간다.

퍼어억!

가슴이 꿰뚫리는 소리.

이내 힘없이 낙하한 심이수가 모습을 감춘 다음.

한태강은 눈을 마주했다. 반으로 쪼개진 가면을 쓰고 있는 사내, 이도진과.

그가 심이수가 떨어진 곳으로 향한다. 어떠한 말도 없이 냉혹한 표정으로. 그리고 심정웅이 일렀다.

“이보게…… 한 대표…….”

“말씀하시지요.”

노인이 손을 들어 올린다. 한태강의 옷깃을 간신히 잡고서 청한다.

“나를, 저리로 좀 데려다주게나……. 죽기 전에…… 쿨럭, 커흑……! 할 일이 남았어…….”

피거품을 내뱉으며 이른 말을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차가운 몸을 들쳐 메고서 이도진이 하강한 곳으로 걸어 나갔다.

노인이 가늘게 말한다.

“고맙네…….”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싶다면 입을 다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버려두고 가지 않은 것만 해도, 숨통을 끊지 않은 것만 해도, 한태강으로서는 대단히 인내한 결정이었다.

노인이 피 흘리며 웃는다.

“괜찮네……. 내 죽을 자리는, 죽을 때는…… 정해놓았으니…….”

터억.

앙상한 손이 한태강의 목을 덮는다. 심정웅이 선물을 주듯 인자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도,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겠지…….”

위유우웅.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빛이 한태강에게 스며든다.

정신계 마법. 심이수가 했던 것처럼 난폭한 방식이 아니다.

가능한 한 충격이 없게, 명확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신이 아는 것을 전해주는 것이다.

그가 심이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고통 속에 살아온 심이수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들이 무엇을 소원했는지.

심정웅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그리고…….

“이게, 대체…….”

“그 아이가…… 한 대표 자네와…… 자네 딸아이를…… 참으로 각별하게 생각하더구먼…….”

노인이 이도진에 대해 알고 추측하는 모든 것을, 이제 그도 알게 됐다.

한태강을 살리고자 거래를 제안한 것.

납치당해 모진 고초를 겪었던 것.

오늘도 정체를 드러낸다는 위험을 감수하며 심가와 맞선 것.

한태강과 한세라를, 그와 딸아이를,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아마도…… 아니, 틀림없이 그 이유로, 그래서 지금까지 숨겨오고, 저 혼자서 감당해왔을 거라는 것.

세간의 모욕과 조롱을 견디고, 가당찮은 오해를 받고, 경멸 섞인 말을 듣고, 싸늘한 표정 앞에 고개를 숙이고, 단 한 번도 변명하지 않고, 그저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그걸 다 참고, 또 참고, 십 년씩이나…….

“…….”

한태강은 어느새 자신이 호흡조차 멈추고 있음을 깨달았다. 심정웅이 위로하듯 묻는다.

“한 대표, 자네는…… 영웅이었지?”

“후우우…….”

정돈되지 않은 숨을 내쉰 그는 답할 겨를이 없었다. 빨리 이도진과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만을 했고, 다른 걸 떠올리면 더는 발을 떼기 어려울 것 같았다. 작게 웃은 심정웅이 말을 이었다.

“나는, 이 심정웅이는 그럴 자격이 없지만…… 태강아, 너는 영웅으로 살았고, 지금도 그리하고 있음이야. 옳은 일을, 네가 해야 하는 일을…… 하려무나…….”

그들은 어느 곳에 이르렀다.

폐허에 가까운 건물. 바람에 날린 꽃향기가 끼쳤다.

그곳에 다섯 사람이 있다.

팬텀의 보스.

용 가면을 쓴 단원.

여우 가면을 쓴 단원.

그리고…….

“선배, 진짜 미안한데……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피 묻은 손으로 수국을 어루만지며, 심이수가 이도진에게 말한다.

***

“무슨 부탁?”

이도진이 무표정하게 묻는다.

그가 낸 상처에서 피를 흘리며 심이수는 담담히 긍정했다.

‘죽겠네.’

살 수 없다. 심장이 거의 다 파괴됐고, 체내의 마력과 장기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만월의 장생종이라 해도,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 정도 상처에서 회복할 수는 없다.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나…… 선배 원망하지 않아. 내가 나쁜 짓 했으니까. 선배한테도 소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싸울 수밖에 없고, 죽일 수밖에 없었어. 좀 아프긴 한데…… 나 이것보다 훨씬 많이도 아파봤거든. 참을 만하고, 이해하고, 별로 선배 미워하지 않아.”

“그래서?”

심이수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울음을 참고, 애써 표정을 밝게 하며, 그러면 이도진이 조금이라도 더 부탁을 잘 들어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근데 있잖아……. 나는 나쁜 짓 한 거 맞고, 안 죽고 살아있으면 또 이런 짓 할 테니까 죽어야 하는 거 맞고, 선배 이해하고, 다 인정하는데……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는 죄지은 거 하나도 없잖아……? 선배도…… 그건 인정하지?”

“……인정해.”

심이수의 마음에 벅찬 환희가 솟구쳤다. 있는 힘껏 기쁨을 억누르고, 핏방울 어린 수국 꽃잎을 바라보고,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도진에게 부탁했다.

“그래서 말인데…… 선배 진짜 엄청 천재잖아……? 당장은 못하는 거 아는데…… 나중에 방법을 알아내면, 해줄 여력이 있을 때, 그럴 때가 있으면…… 이런 부탁 해서 너무 미안한데……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진짜 불쌍하고 고생만 하셨거든……. 우리 엄마…… 혹시, 살려줄 수 있어?”

심이수는 손을 휘저었다.

스으으으-

정원 한쪽의 땅이 파이며 투명한 관이 하나 떠올랐다. 그녀의 곁으로 온다.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는, 심이수가 아닌 류이수와 많이 닮은 여성이…… 그 안에 누워 있다.

그녀는 다시 부탁했다.

“나 알고 있거든……. 선배 똑똑하니까, 언젠가 방법을 찾을 거라고. 선배한테 들어줄 의무 없는 거도 알고, 나 진짜 염치없는 거도 아는데…… 나중에 선배가 지금보다 세지고, 아는 것도 많아져서, 해주는 게 어렵지 않게 됐을 때…… 그때, 우리 엄마 살려주면…… 그러면 안 될까……?”

자신이 죽더라도.

어머니를 살리지 못하더라도.

이도진이 그녀를 대신해 어머니를 살려주기를.

그것이 심이수의 마지막 목적이었다.

‘제발…… 제발…….’

애달픈 소원. 잠시의 침묵.

그리고…… 이도진이 답했다.

“그렇게 할게.”

미안함, 기쁨, 고마움.

심이수는 눈물처럼 웃었다.

“고마워……. 선배, 진짜 너무 고마워……. 고마워,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한 걸음을 걸었다. 피에 젖은 몸으로 어머니가 누운 관을 끌어안았고, 이제야 슬프게 울며 되뇌었다.

“엄마, 미안해……. 못 보고 가서 미안해…….”

살리고 싶었는데.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그것까지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심이수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보고 싶어요……. 나 낳아줘서, 키워줘서 고마워……. 고마워요……. 사랑해요…… 엄마…….”

목소리가 잦아든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희미한 시야 속에서 꿈결처럼 본 광경.

어머니가 살아있고, 어찌 된 일인지 심이수 자신도 살아나서, 이도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가게를 나서는 그녀에게, 어머니가 꽃을 쥐여준다.

‘좀 너무 좋은데…….’

실제로 일어날 수는 없는 일이겠지. 하지만 행복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로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심이수는 꺼져가는 의식을 그러모으며 생각했다. 이도진에게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고.

차가운 말투와 표정으로 답했지만 본심은 그렇지 않을 거다.

너무너무 착한 사람이니까.

많이 아쉽다.

‘선배랑 얘기하는 거…… 재밌었는데.’

좀 더 많이 했으면 좋았을걸.

좀 더 잘 대해줬으면 좋았을걸.

앞으로 더 재밌었을 텐데.

그리고 다음 순간.

관을 어루만지던 손이 툭, 쓰러지듯 내려갔다.

이도진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거기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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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3권의 마지막 서브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습니다!

-클리어 조건: 8월 29일 자정까지 ‘천리안’ 심정웅의 손녀 심이수가 가진 진정한 목적을 파악할 것

-핵심 목적: 어머니 류혜원의 소생

-부가 목적: ‘최종보스’ 이도진에게 핵심 목적을 위탁해 승낙 의사를 확인할 것

-클리어 보상은 심이수와의 관계에 따라 차등 지급됩니다.

-핵심 목적을 파악했습니다.

-부가 목적을 파악했습니다.

-심이수와의 관계에 따라 최종 보상을 산정합니다. (랭크 A -> 랭크 SSS)

-클리어 보상:

1) OX 질문 2회

2) 주관식 질문 1회

3) 마력과 생명력 포인트 150p

4) 신체 포인트 3p

5) 소질 포인트 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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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3권의 고유 퀘스트 수행 현황을 전달합니다.

-제거한 서울 내 인외 지성체의 숫자

: 1개체 (심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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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이나 큰 성과였다.

내 기만과 위선의 대가는.

“하아…… 아아아…….”

겨우 그뿐.

잠깐 신음을 내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진실로 가능한가…….”

죽음을 목전에 둔 늙은 목소리. 안색이 거무죽죽한 심정웅이 다가오며 건넨 질문에 나는 짧게 답했다.

“불가능해.”

심이수에게 말했다. 어머니를 살려주겠다고.

사실은 거짓말이다.

죽은 사람은…… 살릴 수 없어.

방법을 안 찾아본 게 아니다. 마법, 홀로그램의 정보. 지난 십 년 동안 끈질기게 찾았다.

이시혁과 정세빈을 살릴 수 있을까.

올리비아 윈을 살릴 수 있을까.

하지만 불가능했다.

아주 오래전에, 내가 생각한 대로였다.

마법으로도, 그 어떤 힘으로도 생명을 되살릴 수 없다.

부활 따위는 없어.

죽으면 모든 게 끝이야.

예외는 둘뿐이었다.

내가 이 세상에 환생한 것.

홀로그램이 제시한 보상. 이시혁과 정세빈의 소생.

그것밖에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심이수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녀가 절망하며 죽지 않기를 바라는 위선.

서브 퀘스트의 보상을 위한 기만.

어느 쪽일까.

양쪽 다일까?

어느 쪽이든…… 나쁜 짓이었다.

“그렇구먼…….”

씁쓸히 중얼거린 심정웅이 주저앉는다. 여태 살아있는 것도 기적이고, 그에게는 남은 기력이 없다.

힘겹게 자세를 바로 한 노인이 다시 묻는다.

“거짓 없이 답해주게나. 영원히…… 방법이 없는고.”

“한마디만 더 지껄이면 당장 목을 날려주겠어.”

그만 물어봐.

불가능하다고 했잖아.

대답하는 것도 너무 힘이 들었다.

그러자 심정웅이 혼잣말처럼 이른다.

“그래……. 그렇다면…… 그것으로 되었네.”

그 직후, 그가 눈을 부릅떴다.

화르륵!

불길이 솟아오른다.

자신을 태우고, 심이수를 태우고, 그녀 옆의 관을 태우고, 피에 젖은 수국과 정원까지도 태운다.

모든 걸 정리해주고 떠나려는, 나를 위한 배려.

나는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봤다.

그렇게 떳떳하게 죽으려고 하지 마. 당신은……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어.

하지만 노인은 나를 보고 있지 않다. 조금 떨어진 곳을 바라보며, 망설이듯 묻는다.

“나는…… 이 심정웅이도…… 영웅, 이었-”

화아아악-!

불길이 거세졌다.

채 말을 끝맺지 못하고 그의 몸이 재로 휘날렸다. 어쩌면…… 본인이 그걸 원해서.

이윽고 불길이 잦아들었을 땐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심정웅도, 심이수도, 그녀의 어머니도, 정성껏 가꾼 수국도. 모든 것이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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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3권의 고유 퀘스트 수행 현황을 전달합니다.

-제거한 서울 내 인외 지성체의 숫자

: 2개체 (심이수, 심정웅)

-고유 퀘스트 클리어 조건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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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 쪼개진 가면, 드러난 얼굴로 보이는 시야가 선명하다. 모두가 말없이 나를 보고 있다.

서연희, 유해빈, 여우 가면.

그리고……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도.

차마 그를 대하지 못하고 외면하며, 나는 서연희를 바라봤다.

처음이었다.

서연희가 이렇게 원망스러운 건.

그녀가 용인하지 않았다면, 의도하지 않았다면, 저 사람이 이 저택에 와 있을 수 없으니까.

왜…… 어째서……?

나는 힘겹게 떨리는 목소리로, 책망하듯 말했다.

“말했잖아요……. 알릴 생각 없다고…… 안 말하고 싶다고…… 부탁했잖아요…….”

그때 무뚝뚝하게, 슬프게, 내가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들려왔다.

“왜…… 지금까지…….”

나는 마침내 견디지 못했다.

반만 남은 가면을 잡아채 벗었다. 저기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을, 한태강을 봤다. 더는 막지 못하는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어떻게 말해-!!!”

“…….”

“내가, 내가-! 아저씨한테 어떻게…… 그걸 어떻게 말해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태강이라는 사람을 아니까.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아저씨가 얼마나……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아는데…….”

어릴 때부터 강한 마음을 지니고 살았다.

영웅으로 세상을 구했다.

그 이후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다.

내가 제일 잘 안다.

어쩌면 한태강 본인보다도.

“말하면 아저씨가 죽는데…… 그게 아니게 됐어도…… 어떻게 말해요……? 다 죽여야 한다고, 대균열, 그 개새끼들 전부 다 쳐 죽여야 한다고…… 평생 떳떳하게 못 산다고, 테러하고, 죽이고, 훔치고, 숨기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아저씨한테, 내가 우리 아빠랑 엄마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한테…… 내가 그거 어떻게 말해요……? 나부터가 죄인인데……?”

대균열 때문에 이시혁과 정세빈이 죽었다.

대균열 때문에 올리비아 윈의 병세가 나빠졌다.

홀로그램은 이시혁과 정세빈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살리지 못해야 하는데.

그러면, 내가 이 세상에 환생한 영향이 전혀 없다고 어떻게 확신하는데?

“난 안단 말이에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대충은 안단 말이야……. 나 때문일지도 모르는데, 나 때문에 엄마 아빠가, 아주머니가…… 그럴지도 모르는데…… 내가 그걸…… 아저씨한테 어떻게 말해요? 내 잘못 아니다. 난 아무것도 안 했다. 죄 없다. 그러니까 같이 복수하자. 어떻게 그렇게 말해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한결같이 옳은 길을 걸어온 영웅에게 테러리스트가 되라고는.

그가 죽을 운명이었을 때도, 그걸 벗어났을 때도.

“그냥 나만 알고 있으면 됐잖아……. 아저씨까지 세라한테 숨기고, 그럴 필요는 없었잖아요. 그게 어떤 심정인지 내가 아는데…… 얼굴 볼 때마다 미안하고 숨이 막히는데…….”

세아한테 숨기고.

세라에게 숨기고.

오해받고, 떳떳하지 못해 쩔쩔매고,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이 관계가 틀어지고.

두 사람이나 그럴 필요는 없잖아.

“세아한테, 세라한테, 절대로 말하기 싫었어요. 걔들은 아예 몰랐으면 했어. 아저씨도…… 몰랐으면 했어요. 어떻게 변명해도…… 내가 하는 일이 옳은 건 아니니까.”

아무도 나를 결백하다고 말할 수 없다. 서연희조차 안 된다. 그녀는 당연히 내 편을 들 테니까. 그녀가 알지 못하는 사실들도 있으니까.

내가 짊어지고 있는 걸 서연희보다도 잘 알고, 그러면서도 내 편을 들지 않고, 그렇게 해줄 사람은 없잖아.

그러니 아무도 내게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저편을 응시하며 말했다.

“나도…… 심이수랑 똑같아. 별로 다른 거 없어요.”

제안한 자가 심정웅이었는지, 홀로그램이었는지.

그녀와 내 차이는 그것밖에 없다. 이걸 부정하는 건 너무 염치가 없는 것 같아.

“그래서 아저씨랑 세라는 몰랐으면 했어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홀로그램이 전달했다.

3권의 고유 퀘스트 클리어 조건을 어겼다고.

팬텀의 일원임이 발각되지 않을 것.

한태강이 알게 된 이상 그 조건은 위반될 수밖에 없고, 해결할 방법은 두 가지다.

그의 손에도 피를 묻히게 하거나.

지금이라도 기억을 지우거나.

나는 후자를 택했다.

그에게 다가가면서, 그래도 딱 하나 더 하고 싶은 말을 일렀다.

“그러니까 이런 일 하는 건, 나만 그러면…… 그걸로 충분해요.”

스으으으…….

내 손이 검은빛의 마력을 은밀하게 담았다. 한태강을 기습하고자.

한 번 더 죄를 짓는 거지만, 나는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손을 뻗어내려던 그때.

“아니, 네가 틀렸어.”

차분한 말이 들렸다.

내게 익숙한 목소리.

순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사람이 낼 수 없는 목소리인데.

여기 없는, 없어야 하는 사람의 목소리인데.

내게 말을 건넨 사람이 앞으로 나선다. 그 주위로 빛이 나고, 외견이 바뀌어 간다.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던 금발의 길이가 짧아졌다. 이전보다 훨씬 반짝이며 예쁘다. 체형이 바뀌고, 더 아름다워졌다.

그녀가…… 여우 가면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낸다.

여우를 연상케 하는 호박색이 아니라, 푸른빛의 보석 같은 눈동자.

맑고 굳건한 눈이 나를 응시한다.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이다.

태어날 때부터 알아 온 내 친구.

내 약혼자.

한세라가 내게 말한다.

“방금 네가 한 말.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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