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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81화 (181/207)

#181화. Chapter 44. 쌍방과실 (3)

***

한편 이세아는 두려웠다.

이도진은 여태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낸 적이 없다. 짜증을 부린 적도 없다. 나이 차이가 일곱 살이나 나니까 그런 것도 있을 테지만, 오빠는 기본적으로 화를 거의 내지 않는 성격이다. 그야 화를 내고 싶거나 짜증이 치미는 일도 있겠지. 하지만 그 기분이 태도로 직결되지 않는 사람이다.

그나마 가장 심하게 꾸중을 들은 게 올봄에 있었던 일. 강의실에서 진유리와 난투를 벌였을 때 말리느라 소리를 크게 낸 적이 있고, 하교하면서 그녀를 나무랐다.

그때는 솔직히 좋았다. 오빠가 자신을 평범하게 대해주는 것 같아서. 그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지금은 다르고.

“······.”

아무 말 없이 진유리와 자신을 보는 눈빛. 화가 정말 많이 난 것 같다. 그게 무섭고, 또 억울했다.

숨긴 건 미안하지만······ 걱정할까 봐 말하지 않은 건데. 왜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걸까.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안 다쳤으니까 됐잖아.’

어쨌든 무사히 돌아왔는데. 다치지 않았는데.

오빠를 지켜주고 싶어서. 좀 더 강해지고 싶어서. 그래서 런던에 간 건데. 그러다가 싸우게 된 건데.

왜 저만큼이나 화를 내고, 참아 보려는 걸 감추지도 못하고, 결국 언성을 높인 거나 마찬가지로 대하는 걸까. 어째서?

그리고 이세아는 진유리를 봤다.

“아······.”

안색이 창백해져선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 본의 아니게 말실수를 한 거니 탓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화가 난다.

왜 쓸데없는 말을 해선.

오빠를 이성으로 생각하고 가까워지려는 게 마음에 안 들어도, 친구니까 꾹 참는 건데. 그녀 나름대로 심란한 기분을 내비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면서 왜 다 망쳐버리는 걸까. 왜 말하란다고 곧이곧대로, 시시콜콜, 전부 털어놓는 걸까.

“그래서······ 그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요······.”

진유리가 설명하고 있다. 런던에서 처음 토끼 가면과 만난 일도, 두 번째로 만나 그녀의 습격에 겨우 살아난 것도. 문장 하나를 끝맺을 때마다 이도진의 한숨이 짙어진다.

“후······ 그러니까, 그 토끼 가면 쓴 여자가 너희를-”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마치 저절로 흘러나오듯 이세아가 툭, 내뱉은 말. 이도진이 그녀를 본다.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이세아는 마음속으로만 계속 말했다.

그냥, 걱정 끼치기 싫었던 건데.

오빠가 싸울 수는 없으니까. 아무리 천재라도, 아무리 연구를 잘해도, 그래도 내가 지켜줘야 하니까.

그래서 그랬던 건데.

이세아는 그 너머를 헤아리지 못했다.

오빠가 왜 이렇게나 화를 내는지. 사실은 동생이 위험한데 해줄 수 있는 게 없던 자신을 탓하는 마음이 섞여 나왔다고, 아직 어리기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진 못했다. 그녀는 이제 날 선 어조로 친구에게 원망을 돌렸다.

“너 그만 말해. 계속 그런 거 말할 거면······ 그냥 집에 가.”

“뭐?”

방금 말에 진유리도 화가 치밀었다.

오늘 이세아가 자꾸 눈치를 준 것도. 이도진에게 추궁을 당하는 이 상황도. 이도진과 한세라가 보는 앞에서 면박을 들은 것도.

어쩌면 자격지심 같은 마음이다.

‘너는······ 나 친구로 생각하긴 해?’

그녀 자신은 그렇게 여긴다. 예전엔 시기하며 나쁘게 대했다. 꽤 오래 그랬다. 그만큼 의식하는 애여서.

지금은 아니다. 그때 일을 반성하고, 미안해한다.

‘난 좋았는데······.’

친구가 돼서 기뻤다. 따라잡으려 노력하고, 잠시 우위에 서면 또 저쪽에서 따라오고, 서로 경쟁하며 발전해나가는 게 기뻤다. 하지만 이세아는 어떨까.

저쪽도 친하게 생각하는 걸까.

면역체만 없으면 너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렇게 깔보는 게 아닐까.

전혀 가망도 없는데 오빠에게 들러붙는다고 비웃는 것 아닐까.

비단 오늘 일만이 아니다.

이도진에 대한 것만도 아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진유리가 이세아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폭발하려 했다. 바로 그때.

“이세아, 너 친구한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이도진이 이번에야말로 언성을 높이며 혼을 냈다. 이세아가 몸을 움츠렸고, 이내 진유리를 더 원망스럽게 본다.

그 시선에 마침내 감정이 터져 나온 그녀는, 서러움에 떠듬떠듬 말했다.

“나는 너 그때 진짜 죽는 줄 알고······ 그래서 너무너무 복수하고 싶었는데, 내가 죽어도 원수 갚아준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너는 나 진짜 동등하게 친구로 생각해······?”

이세아의 눈빛이 흔들렸고, 진유리는 그녀의 생각을 알지 못했다.

얘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지.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건지. 내가 어쩌면 얘를 그렇게 대했던 건지.

순간적으로 그런 것들을 고민하느라 눈빛이 흔들렸다는 걸 몰랐다.

그냥 집에 가라는 말이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되는 실언이었음을 깨닫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는 것도 몰랐다.

‘맞나 보네······.’

들켜서 당황한 거라고, 그렇게 오해했다.

갑자기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힘겹게 진정시키며 진유리는 손을 뻗었다. 가방을 들고, 집에 가겠다고 말하려 했다.

여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사태를 지켜보던 한세라가 나서기 전까지만.

“넌 왜 애들한테 화풀이해?”

이도진에게 한 말.

집 안이 싸해진 가운데 한세라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할 수 없네······.’

누군가는 악역을 맡아야 했다.

잘못을 지적하며 날카롭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걸 들어야 하는 제일 잘못한 사람도 있어야 한다.

당연히 한세라 자신과 이도진이, 성인 두 사람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세아 간단히 갈아입을 옷만 챙겨서 나올래? 오늘은 언니랑 외박하자. 세아랑 나랑 하루 같이 자도 되지?”

“갑자기?”

“아니다, 이거 허락 구하는 거 아니야. 세아 오늘 내가 데리고 있을게. 유리도 내일 일요일이고, 혹시 괜찮으면 언니랑 어디 좀 갔으면 좋겠는데. 언니랑 같이 집에 말씀드리고.”

“어디 가려고?”

이도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은 말. 한세라는 짧게 답했다.

“우리 길드에 찜질방 있잖아.”

“찜질방······? 애들 데리고?”

초일류 길드 영원에는 훈련 시설이 아주 잘 갖추어져 있다. 길드원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한 공간도.

규모가 대단히 크진 않으나 길드 내에 스파 시설도 마련해뒀다. 사설 스파가 아니니 밤늦게까지 머무르는 사람은 사실상 없고, 지금 가면 무척 한산하겠지. 그래도 일단 하루 24시간 운영은 하고 있다.

이도진도, 진유리도, 이세아도, 생각지 못한 말에 멍한 표정. 살짝 겸연쩍은 심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한세라가 말했다.

“내가 너무 참견하는 것 같기는 한데······ 봤는데 나 몰라라 집에 갈 수도 없잖아?”

그녀는 이도진이 무어라 답할지를 알고 있었다.

말리지는 않겠지. 하지만······.

“태워다줄게.”

역시나 맞췄다.

그리고 도착해서 무슨 말을 할지도, 그것도 알고 있다.

***

+

<킬 더 이블> 4권, ‘영웅의 자격 上’이 진행 중입니다.

-4권 태그: [아카데미] [사건 중심] [헌터]

-진행률: 12.6%

‘최종보스’ 이도진의 고유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클리어 조건: 4권 종료 시점, 대균열을 막고 제1 아카데미 고등 과정 2학년 진유리·이세아와 이도진으로서의 관계를 단절할 것

-클리어 보상은 달성률에 따라 차등 지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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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아홉 시 삼십 분.

영원 길드의 주차장.

세 명은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 하고, 혼자 담배를 피우면서 나는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진행률이 계속 오르고 있다. 아까 집에서 일어난 다툼이 4권에 상세히 서술되는 사건이라는 뜻이다.

운전석에 앉아 연기를 흘려보낸 나는 마력을 끌어냈다.

[응? 왜 차에 있어? 세라 데려다주고 온 거야?]

서연희가 웃으며 묻는다. 표정은 웃고 있는데, 기분이 좋은 것 같진 않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 더 그럴 테고.

“찜질방 왔어요.”

[찜질방?]

간략히 요약해 자초지종을 일렀고, 다 듣고 나서 서연희가 확인처럼 물었다.

[그러니까, 네가 세아한테 화풀이하고, 집에서는 수습이 안 돼서 데리고 나왔다는 거지? 세라랑 세아 친구랑.]

“누나가 보기에도 화풀이 같아요?”

[아니야?]

“······화풀이 맞죠.”

자괴감을 담아서 답했다. 세라와 서연희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 어른스럽지 못하게 화풀이나 한 거다.

세아가 왜 말을 안 했는지 이해하는데. 나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감정의 동요를 다스리지 못한 거다.

팬텀. 내가 속한 조직의 단원이 세아를 죽일 뻔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언젠가 내가 세아와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창피하고 못난 모습이었다.

나를 물끄러미 보던 서연희가 묻는다.

[근데 도진이 너도 거기서 자? 내가 안 봐서 잘은 몰라도, 오늘은 걔들 셋이 얘기하는 게 맞지 않아?]

“혼자 집에 있기도 그래서요.”

나까지 화해할 수 있으면 좋고.

그게 아니더라도 어떻게 편하게 집에 있어.

안쓰럽다는 듯한 눈길로 보며 서연희가 말했다.

[아무튼 알겠어. 기왕 갔는데 목욕도 하고. 맞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계획을 묻는 거다.

생명력 이론으로 파장을 일으켰으니까. 그에 따라서 반응할 자들이 있을 테고, 그자들을 통해 향후 행보를 구체화할 생각이었다.

“다음 주 주말에 움직이려고요.”

[멤버는 어떻게?]

“네 명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우선 나.

그다음으로 유해빈.

“오랜만에 저쪽에서도 한 명 차출해서 같이 작전 수행하고, 그리고 네 번째는······.”

그건 정해뒀다.

“토끼한테 연락 부탁드릴게요.”

[그럴 줄은 알았는데······ 싸우려고?]

서연희가 조금 근심 어린 목소리로 묻는다. 지금 내가 토끼한테 감정이 좋지 않을 걸 알고 있으니까.

이것도 머리로는 이해가 된다.

내가 알기로 토끼는 런던에서 활동하며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 뭔가를 없애고 다녔다고 하는데, 그 일에만 집중하며 헌터든 민간인이든 누구도 해치지 않았다.

세아는 꽤 강하게 공격한 것 같지만 아마 그 이상도 어렵지 않았겠지. 객관적으로 보면 살려준 거다. 나로선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고.

“다짜고짜 뭐라고 할 생각은 없어요. 작전은 작전이니까. 여유 있을 때 걔랑 얘기 좀 해보려고요.”

런던에서의 사건만 염두에 둔 게 아니다.

은마산의 벽화.

심정웅에게 들은 이야기.

이전에 객관식 질문으로 얻은 정보. 등급 외 보물 ‘동쪽으로 흐르는 달’.

토끼와 만나서 알아내야 할 게 많으니까.

고개를 끄덕인 서연희가 답했다.

[그래, 토끼한테 연락해보고 답 오면 알려줄게. 세라한테 안부 전해주고.]

그리곤 통신 마법이 꺼졌다.

세라한테 안부는······ 그건 좀 안 될 것 같은데.

차에서 내린 나는 길드원들만 이용하는 곳치고는 시설이 대단히 훌륭한 스파 건물로 들어섰다. 남자 목욕탕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생각도 할 겸 사오십 분 머물다가 탁 트인 공간으로 나왔다. 세라랑 애들이 오려면 더 걸릴 듯싶은데.

그리고 삼십 분쯤 더 지났을까. 셋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손을 들어 부르진 않고 기다렸는데······.

스윽-

셋 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는다. 분명히 봤을 텐데도 본 척을 안 한다. 나는 침묵하며 홀로그램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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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4권, ‘영웅의 자격 上’이 진행 중입니다.

-4권 태그: [아카데미] [사건 중심] [헌터]

-진행률: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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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지났다고 그새 3%나 상승한 진행률. 뭔 얘기를 했는지는 몰라도 짐작 가는 게 있다.

이거 아무래도······ 나 혼자 죄를 다 덮어쓴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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