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84화 (184/207)

#184화. Chapter 45. 선전포고 (2)

“어머, 그 유명한 팬텀의 이인자께서 누구를 만나고 싶어서?”

삼십 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의 질문. 객관적인 외견만으로는 꽤 매력적이고, 생긋 웃음을 띠며 내게 다가온다.

“철권에 천리안. 이번엔 어떤 영웅을 노리려고?”

내가 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자 여유 있는 표정으로 이어서 말한다.

“아, 내 소개를 안 했네. 카일리 던이야. 아무리 그래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겠지?”

“물론.”

카일리 던.

S급 각성자로 추정.

본명과 나이는 불명이며 일급 테러조직 레스투르 마력 해방 결사의 수장.

한 걸음씩 다가올수록 입가의 미소를 더 짙게 하며 그녀가 말했다.

“전부터 당신이 궁금했거든.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뒷모습만 봐도 가면 안쪽이 기대된다고 들어서. 어때? 몸처럼 얼굴도 멋있는 사람이야? 한번 깊게 알아볼 기회가 있으면-”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자르는 대응이 동시에 나왔다.

“아······ 여기 뭔 연애하러 오셨나. 저기요, 어르신. 일하러 왔으면 일만 합시다. 네?”

유해빈이 목소리를 그라데이션으로 높이며 지적했고, 토끼 가면은 말보다 행동이었다. 앞으로 나서며 카일리 던을 제지하곤 나직이 경고했다.

“한 발만 더 접근하면 공격 의사로 간주하겠어.”

카일리 던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걸음을 멈추고선 유해빈 쪽으로 시선을 향한다.

“꼬마야, 방금 나보고 뭐라고 했니?”

“왜요. 십 년 전부터 그 얼굴이셨다고 들었는데 어르신 아닌가? 아니면 마담? 할머니? 그쪽 좋을 대로 골라도-”

“그만.”

내가 이르고 나서야 유해빈이 입을 다물었고, 토끼 가면도 제자리로 돌아간다. 나는 아까보다는 사교적인 어조로 카일리 던에게 말했다.

“우리 쪽에서 실례했군. 사과하지.”

“부하들이 충성심이 좋네. 좀 과한 게 흠이지만.”

그녀도 그 정도로 넘어가는 듯했고, 남자 한 명이 분위기를 환기했다.

“하던 얘기나 마저 듣지. 누구와 만나고 싶은지.”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 쿠엘라 순교회의 수장인 조르디 문트.

다른 세 수장은 여전히 관망 중이고, 나는 다시금 본론을 꺼냈다.

“당신들도 들어서 알 거야. 최근에 영웅의 아들이라는 작자가 헛소리를 지껄였더군.”

“이도진을 말하나? 수호자와 대마법사의 아들.”

“그래. 그런 이름이었지.”

이제 다섯 수장 모두가 집중한다. 그들 전원이 마력 원리주의를 신봉하니까.

마력을 신적인 힘이 아닌 인간의 소유로 격하시키려 하는 생명력 연구에는 당연히 격한 반감이 들겠지.

카일리 던이 묻는다.

“그러면 이도진이 연구를 더 진행할 수 없도록 만들어주는 게 목적이야? 그야 누가 해주면 고마운 일이지만, 겨우 그 일로 우리 다섯에 당신들 팬텀까지 개입하는 건 글쎄······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아?”

“나도 동감이다. 죽이는 건 간단하지. 무신과 곡예사의 동향만 주의한다면 이번 달 안에도 될 거다. 생각보다 계획이 시시한데.”

“내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어.”

조르디 문트가 거든 말을 나는 차갑게 되받았다.

“그러면?”

“죽이는 것 말고 달리 원하는 거라도 있어?”

두 범죄자의 눈에 힘이 깃든다. 열망이라고 해야 할까. 혹은 욕망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도진’을 언급한 시점부터 그들도 기대하고 있었겠지. 단순히 죽이는 게 아니라 데려와서 이용할 방법. 그 목적은 마력 원리주의에 부합해야 하고.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는 짧게 답했다.

“그자의 눈과 손이 쓸 만하다더군. 그 재능을 우리에게 바치도록 할 거다. 필요하다면 손을 자르고, 눈을 뽑아서라도.”

“뭘 위해서?”

눈을 빛내며 카일리 던이 묻는다.

나는 담담하게 답했다.

“마력을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게 아니라 그 반대가 되도록. 지금보다 더 신비로운 힘이 될 수 있도록. 수백 분의 일 따위가 아니다. 천과 만도 아니야. 최소한 십만, 잘 되면 백만 분의 일이 되도록. 진정 선택받은 자들만 마력의 영화를 누릴 수 있도록. 나는 그걸 원한다. 협조해주겠나?”

잠시의 침묵. 그리고······.

카일리 던이 환희처럼 말한다.

“너무······ 좋은데?”

“그런 거라면 협력하지. 쿠엘라의 모든 힘을 동원해서라도.”

어조에 힘을 실은 조르디 문트. 다른 셋도 저마다 환영의 뜻을 내비친다.

타악-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아공간에 뒀던 술병과 잔이 밖으로 나왔고, 공중에 머무는 걸 보며 말을 이었다.

“전체적인 목적은 이렇고, 자세한 계획은 천천히 논하도록 하지. 날이 밝으려면 한참이나 남았잖나.”

“그것도 반가운 말이야.”

입가에 한껏 웃음을 머금은 카일리 던이 술병을 쥐며 답했다.

***

한국 시각으로 10월 23일 오후 한 시 무렵.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이세아는 피곤함이 스민 한숨을 흘렸다.

“휴우······.”

집 청소를 얼추 마무리하는 데 무려 세 시간이나 걸렸다. 아홉 시쯤 오빠를 배웅하고, 잠이 덜 깬 채로 침대에 누워 꾸물대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하고 청소를 시작해 벌써 그만큼 지난 거다.

중간중간 쉬긴 했지만 할 땐 제법 열심히 한 터라 여러 가지를 했다.

세탁기도 돌리고, 빨래 건조기는 지금도 돌아가고 있고, 오빠가 씻어 놓고 나간 그릇들도 가지런히 제자리에 뒀고, 로봇 청소기와 합작해 바닥도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만들었다.

창틀 같은 곳은 직접 닦았고, 심지어 욕실까지 꼼꼼히 청소했다. 빨래 건조만 되면 개어놓는 걸로 모든 작업이 끝나겠지.

이세아는 청소하는 내내 머릿속에 일렁인 의문을 다시 한번 되뇌었다.

‘오빠는 이거 어떻게 다 했지?’

오빠가 청소할 때는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탁기를 돌리는 것부터 시작해 그게 끝날 때쯤에는 전부 끝나 있었다. 이세아 자신도 조금 거들었긴 하나 그걸 고려해도 시간 차이가 두 배 가까이 난다.

집안일이 서툴러도 요즘 오빠에게 배운 대로 한 건데 어째서 이만큼 다른 걸까. 오빠는 어떻게 이걸 불평 한마디 없이 혼자 다 해 온 걸까.

물론 간단하고 뻔뻔스러운 답을 그녀 자신도 안다.

‘내가 안 했으니까.’

여태 많이 안 해봤으니까 못하는 거고, 동생한테 집안일 시키는 게 싫으니까 오빠 혼자 다 했던 거다.

생각해 보면 오빠와 단둘이 십 년을 살며 이 집에서 생산적인 일을 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저 밥이랑 과자랑 용돈 축내고 집 안 어지르기만 하는 비생산 인원이었다.

‘개미와 베짱이······.’

개미는 성실히 일해 겨울에 결실을 얻고, 베짱이는 놀기만 하다 나중에 고생하게 된다. 하지만 둘이 한집에 산다면?

개미는 일 년 365일 할 일이 끝이 없고, 놀기만 하던 베짱이는 개미 덕에 겨울에도 편하게 살 수 있다.

이 집이 딱 그랬다. 도진 개미가 세아 베짱이에게 착취만 당하는 삶. 지난 십 년 내도록 그랬던 거다.

다만 오늘부터는, 세아 베짱이도 아주 조금은 달라지기로 마음먹었고.

‘언제 오려나?’

오빠 말로는 저녁까지 집에 온다고 했다. 이 반짝반짝 말끔한 광경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기특해할 것도 같고, ‘안 해놔도 되는데’라고 말할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싫어하진 않을 것 같다. 기뻐해 줄 것 같다. 지난주부터 이어온 냉전 상태를 종결하고, 화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사과했으면 됐는데.’

알고는 있지만 그게 몹시 어려웠다. 무언가 화해할 만한 구실과 명분과 계기가 필요했다. 왜 교수님이랑 화해 안 하냐고 진유리에게 타박을 들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제대로 하고 싶어.’

중간고사를 잘 치르고 오빠에게 채점한 시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조금이나마 더 오빠의 기분이 좋아지면, 조금이나마 더 잘 화해할 수 있을 테니까.

오빠가 가르쳐준 대로 집안일을 척척 해낸 걸 보여주면서 미안하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더 진심이 전해지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지난 일주일 동안 엄청나게 열심히 공부했고, 비록 서투르지만 오빠가 신경 쓸 일이 없도록 집을 치워뒀다.

가족이라는 핑계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물쩍 넘어가는 게 아니라, 정말 제대로 미안하다고 하고, 화해하고 싶어서.

‘미움받기 싫어.’

솔직히 말해서, 오빠의 마음에 티끌만 한 앙금조차 남기고 싶지 않았다. 다투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안 좋은 감정이 남는 게 싫다. 오히려 화해하고 나면 이전보다 더 가까워졌으면 한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로 대충 때우고 싶지 않았다. 오빠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했던 어린 시절과 닮은 감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이것도······ 말해도 되려나?’

오빠와 화해하면 이 생각까지 털어놔도 될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숨기는 게 좋을까.

그렇게 고민하던 즈음 진유리에게 연락이 왔다.

-유리: 내일 훈련 어떡할 거야?

-이세아: 밤에 말해줘도 돼?

-유리: 이번 주 훈련 많이 못했잖아

-유리: 어지간하면 와

-이세아: 오늘 보고 나서 (13:05)

이세아는 그렇게만 답하고서 대화를 마무리했다.

어제 시험이 끝나고 오늘 하루는 둘 다 휴식하기로 했다. 이번 주에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하고 바쁘게 지냈으니까.

하지만 이틀이나 쉴 순 없는 일. 진유리가 훈련을 독촉하는 건 타당했고, 이세아도 어지간하면 같이 가고 싶었다. 그래도······.

‘내일 놀러 갈지도 모르니까.’

만약 오늘 오빠와 화해하면 내일은 둘이 어디 나들이를 가자고 하지 않을까. 화해한 기념으로 드라이브라도 가고 싶었다. 요즘 주말마다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지난주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내일 훈련을 할지 확답해주지 않았다. 진유리 본인에게 말하면 응원 반 한숨 반으로 답해줄 듯한 생각.

그리고 또 한 가지.

오빠와 화해하면 좋은 게 있다.

‘피곤한데.’

오빠에게 매번 요구해서 받는 안마. 요 일주일은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그야 다투고 화해하지 않았으니까.

이세아로선 상당히 곤욕이었다. 바로 옆에 오빠가 있는데도 해달라고 못 하는 게.

그렇지 않아도 이미 중독된 터라 그걸 안 받으면 몸이 찌뿌드드해서 잠이 안 올 지경인데. 더군다나 요즘 매일 공부하느라 힘들었고, 오늘은 집안일까지 열심히 했다.

‘그거 받고 싶어서 화해하려는 건 아니라도······.’

그래도, 화해하면 실컷 받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소파로 비척비척 걸어간 이세아는 그대로 몸을 누였다.

어제까지는 그렇게 부지런했는데 긴장이 풀리니 또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

‘직접 해볼까?’

사실 오빠가 안 해주면 효과가 별로 없는 걸 이미 알고 있다. 혼자서도 해봤고 런던에 있을 땐 진유리에게도 부탁해봤으니까.

영문을 모르는 진유리는 내가 왜 너 안마까지 해줘야 하냐고 투덜대면서도 열심히 해줬지만 오빠가 해주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왜지?’

비슷하게 따라 해도 그 느낌이 나지 않았다. 무척 포근하고 부드럽게 스미는 감각. 그게 구현되지 않는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바로 그때.

“아.”

이세아는 불현듯 발상의 전환을 이루어냈다. 깨달은 바를 시험하고자 가지런히 누웠고, 그 상태로 마력을 끌어냈다.

‘이러면 비슷할 수도 있잖아.’

테크닉이야 오빠를 따라갈 수 없겠지만 정신적인 만족도는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빠가 해주는 게 아니라도, 눈을 감고 오빠가 해준다고 상상하면.

그러면 좋지 않을까. 아무래도 기분 문제가 크게 작용하는 듯하니까.

그리고······.

“흐으······.”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잡념을 비우고 오빠가 해준다고 생각하니까, 이전에 혼자 하던 것보단 훨씬 좋았다.

그즈음 드는 생각.

‘이거······ 해도 되나?’

단순한 안마니까 이상할 건 없겠지. 하지만 오빠가 해준다고 생각하면서 이러는 것 자체가 좀······.

‘뭐 어때서.’

이세아의 얄팍한 이성은 딱 거기까지만 제동을 걸었다.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 짓 하는 것도 아니고, 피곤해서 마력으로 몸 주무르는 걸 오빠가 해주는 거라고 상상하는 것뿐이다.

딱히 거리낄 건 하나도 없다. 들킬 리도 없고.

그 지점까지 합리화를 마친 그녀는 또 하나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어쨌든 오빠가 해주는 거 아니니까······.’

그러니까, 오빠에게 받는 것보다 좀 더, 손과 마력을 자유롭게 사용해도 되지 않을까.

오빠가 해준다고 생각해야 효과가 있으니까 그렇게 상상은 하지만, 어쨌든 실제로 오빠가 해주는 건 아니니까. 이세아 자신의 손이고 자신의 마력이니까.

“······.”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대감마저 담은 이세아의 손이 천천히 몸쪽으로 향했다.

오빠가 해줄 때는 직접적인 피부 접촉 없이 마력만 흘려주는 곳들. 팔 안쪽, 허벅지 윗부분, 그런 곳들.

이세아 자신의 몸이니 그런 곳도 마음대로 손댈 수 있고, 그러면 더 좋지 않을까.

‘나 천잰가?’

이렇게 논리적이고 훌륭한 발상을 떠올린 자신의 두뇌에 감탄하면서, 그리고 곧장 ‘아니야, 이거 오빠가 해주는 거야.’라고 되뇌면서, 드디어 손이 몸 어느 곳에 닿으려던 그때.

우웅, 우우웅-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렸다.

짜증이 솟구친 듯이 몸을 일으킨 이세아는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물었다.

“응. 왜?”

<아, 점심 먹었나 해서.>

호의적이고 부드러운 목소리. 전화를 건 사람은 한세라였다. 퉁명스럽게 나오려는 대답을 애써 자제하며 이세아가 답했다.

“배 안 고파서 안 먹었어. 언니는?”

<언니는 그냥 샌드위치. 세아 그러면 밥 언제 먹게?>

“모르겠어. 배고파지면?”

<그래? 그럼 언니 네 시쯤 일 끝나는데 집으로 갈까? 도진이 우리 집 있고, 언니랑 저녁 먹으면 될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치미는 화를 억누를 수 없게 된 이세아는 아주 조금만 냉랭하게 답했다.

“아니야. 괜찮아. 오빠 오면 저녁 같이 먹을게.”

<그럴래?>

한세라의 목소리에 미약하게나마 당황이 깃들어있다. 말수가 적긴 해도 그녀가 아는 이세아는 이런 식으로 거절하는 애가 아닐 테니까. 살며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세아는 재차 부연했다.

“아직 오빠랑 화해 안 해서, 둘이 얘기하고 싶어서. 언니랑 저녁 먹기 싫은 거 아니고······ 좀 부끄러워서.”

조용히 이른 말. 한세라는 다른 대답 없이 응원만 건네줬다.

<알겠어. 세아 화이팅.>

“응.”

띠리릭-

통화를 마친 이세아는 소파에 누웠다. 손으로 얼굴을 덮고서, 밀려오는 자괴감을 역력히 실감했다.

부끄럽다는 건 진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말하지 않았다. 한세라에게 보이면 부끄럽다는 마음도 있지만······ 방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부끄러움과 비슷하게. 혹은 그보다도 더 크게.

‘계속 얘기 못 했으니까.’

일주일이나 제대로 대화하지 않았다. 그걸 화해하려는 거다. 그러니 방해받고 싶지 않다. 누구에게도 나눠주기 싫다.

오빠와 둘만 있는 시간을 뺏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그런 욕구가 분명히 있다.

한세라조차도. 아니, 어쩌면 그녀이기에 더더욱.

‘더 심해졌나?’

그런 생각도 든다.

런던에 가기 전보다 더한 것 같다고.

이세아는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고, 겉으로는 평범하게 보이고 싶었다. 마음의 크기는 그대로이되 오빠가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게.

런던에서 훈련하고 심신이 성장하며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게 된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하나도 나아지지 않은 거다.

‘자기가 자기 이상한 거 알고 있으면 심각한 건 아니라던데.’

진짜 심각하게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그걸 자각하지도 못한다니까.

그렇게 보면 자신은 아직은 괜찮은 거 아닐까, 변명 아닌 변명을 되뇌며 이세아는 휴대전화 앱 하나를 열었다.

제1 아카데미 익명 커뮤니티.

시험 기간 동안 반쯤 정신이 나간 것 같던 제타가 정상화됐는지나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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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익명 (글쓴이)

날짜: 10/23 12:23

제목: 이거 진짜 미친 거 아님?

내용: 우리 도진쿤이 뭐 잘못했다고 욕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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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보이는 실시간 인기 게시글. 글 아래에 있는 링크. 이세아는 뭔지 모를 불길한 예감과 함께 접속했다.

인터넷 기사였다.

제목이······ 말도 안 되는 문장이다.

<이슈 논평: 영웅의 아들은 세상을 망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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