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96화 (196/207)

#196화. Chapter 48. 마왕 (1)

띠링!

내가 입을 뗀 직후, 마음을 바꿀까 조바심이 난다는 것처럼 홀로그램이 퀘스트 성공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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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4권의 첫 번째 서브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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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까지 생존해 있던 영웅은 절반. 모두 열여덟 명이었다.

‘천리안’ 심정웅 (80세, 한국)

‘무신’ 한태강 (51세, 한국)

‘곡예사’ 윤의성 (50세, 한국)

‘철권’ 염의준 (50세, 한국)

‘안개의 마녀’ 서연희 (47세, 한국)

‘푸른 눈’ 안드레이 일린 (60세, 러시아)

‘몽상가’ 아르노 뒤레 (52세, 프랑스)

‘소드 퀸’ 샬럿 테이트 (48세, 영국)

‘마탄’ 조셉 레너드 (63세, 미국)

‘협상가’ 릭 가델 (61세, 미국)

‘천재’ 에블린 그레이스 (54세, 미국)

‘불꽃 사막’ 페드로 카밀 (73세, 멕시코)

‘천궁’ 데보라 디아스 (52세, 브라질)

‘판관’ 원가륜 (68세, 중국)

‘주술사’ 카타세 쇼코 (55세, 일본)

‘현자’ 바히드 나세르 (79세, 이란)

‘묘지기’ 샤이마아 사다트 (71세, 이집트)

‘금빛 수리’ 매기 도슨 (66세, 호주)

그리고 지금.

마침내 나는 완벽하게 알아냈다. 배신자가 몇 명인지, 어떤 놈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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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어 보상을 지급합니다.

1) 생사를 막론한 배신자 전원의 이름

바히드 나세르, 원가륜, 안드레이 일린, 에블린 그레이스, 아르노 뒤레, 데보라 디아스, 윤의성, 염의준 총 8인

2) 현재 함께 자리한 배신자 4인의 동기와 목적

바히드 나세르: 에블린 그레이스가 제시한 정치·경제·군사·마법적인 원조

원가륜: 이시혁과 정세빈의 죽음

데보라 디아스: 정세빈의 죽음

윤의성: 마력의 항구적인 존속과 특권화

3) 소질 포인트 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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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된 거였네.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명쾌하게 알 수 있었다. 생존한 영웅과 그들이 소속된 국가, 이끄는 단체. 그 행보를 지난 십 년 동안 빠짐없이 파악해왔으니까.

제 나라가 얻을 지원, 주변국을 영도하는 패권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바로 인접한 나라, 인구와 영토는 비할 수도 없이 부족한 나라에 여덟 명의 영웅이 살고, 또 너무 강한 걸 용납할 수 없어서. 자기 계획에 걸림돌이 될 거라 판단해서.

정세빈이 이 세상에 없길 바라서. 염의준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은 이시혁을 사랑하고, 게다가 염의준보다 훨씬, 너무나 자존심이 강해서. 이십 년을 견뎌왔지만, 아무리 참고 인내하려 해도 도저히 안 돼서.

마력에 취해서. 그 힘을 가진 이들이 가지지 못한 이들을 지배하는 게 옳다고 여겨서. 그래서 마력이 사라지는 걸 원치 않아서.

전부 하찮다.

네 가지 이유 전부 다.

“미리 들었겠지만 나는 팬텀에서 왔다. 내 말과 행동은 보스의 뜻을 대리하며 팬텀의 총의이기도 하다. 부디 기탄없이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군.”

토끼 가면에게는 일단 대기하라는 명령을 전하고 입으로는 여유 있게 말을 걸어나가며, 나는 네 명의 배신자를 하나씩 바라봤다. 개중 가장 신장이 작고 체구가 날렵한 자가 차갑게 대꾸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가면이나 벗어봐.”

“그건 어렵겠는데. 당신들도 그 마력을 거둔다면 생각해보겠지만.”

아마 네가 데보라 디아스겠지.

세계 최고의 궁사.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밝게 빛나는 화살로 몇 번이나 동료의 목숨을 구해준 자. 고맙다고 할 시간이 있으면 빨리 가서 싸우라고 질책하면서도, 시위에 화살을 걸며 몰래 한 모금 미소를 머금었던 영웅.

“우리 넷이 다인가? 생각보다 좀 적은데.”

저자가 원가륜일까.

중국의 영웅. 세력을 일구고 싶어 하고 제 식구를 챙겼으나 최소한 대의를 잊지는 않았던 자. 정말로 중요한 순간에는 이치에 합당한 결정을 내렸던 자.

‘판관’은 당신을 격려하는 이명이었어. 언제나 공명정대했으면 좋겠다고.

“으음, 그렇지는 않을 듯싶네만······ 자네는 어찌 생각하지?”

성별과 연배를 분간할 수 없는 목소리가 윤의성에게 묻는다.

바히드 나세르. 심정웅만큼이나 오래 살았고, 심정웅만큼이나 제 나라와 혈족을 아끼고, 그러나 심정웅보다 성품이 온화하며 옳고 그름을 따졌던 자. 당신이 생각하기엔 대균열이, 배신이, 그릇된 일에 속하지 않은 건가?

마지막으로 윤의성이 답한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나. 우리도 서로 이름 모르고 몇 명인지도 모르는데. 이번에는 네 명이겠지. 아, 여기 이 친구에다 또 한 명까지 총 여섯인가?”

“어쩌면 이자가 죽인 둘 중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것도 일리가 있네. 어때, 네가 아는 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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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인식지배’를 발동합니다. (랭크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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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당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딱히 감이 안 오는데.”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윤의성과 원가륜을 바라보며 답했다. 데보라 디아스도, 바히드 나세르도, 인식지배를 발동했음에도 의심과 경계를 완전히 거두지는 않는다.

분노, 회의감, 의문. 여러 감정이 마음에 스민다.

이십여 년의 세월. 무엇이 당신들을 이렇게 만든 걸까.

서른여섯 명의 영웅.

영웅이라는 건 선인(善人)과 동의어가 아니다.

서른여섯 명 중에 선량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열다섯 명도 되지 못했다.

올리비아 윈, 한태강, 이시혁, 아르노 뒤레, 매기 도슨, 샤이마아 사다트, 카타세 쇼코, 그런 사람들.

히로인이자 또 한 명의 주인공이었던 정세빈조차 선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대개 평범한 사람이었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그냥 보통 사람. 하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알고, 그걸 이뤄내는 사람. 그러하기에 영웅.

어째서 이들만 타락한 걸까.

무엇이 이들을 바꾼 걸까.

이유가 있을 텐데. 생존한 모든 영웅이 이들처럼 배신한 건 아니니까.

일본의 영웅 카타세 쇼코도 이시혁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녀는 데보라 디아스처럼 증오를 품고 배신하지 않았어.

일본을 대표하는 무녀이기도 한 그녀는 이시혁과 정세빈의 사망 이래로, 매년 그날마다 자신이 기거하는 신사에서 위령제를 연다. 스물네 시간, 단 일 초도 쉬지 않고, 십 년이나 계속.

멕시코의 영웅 페드로 카밀은 원가륜만큼이나 야심이 큰 자다.

그도 선량한 사람은 아니야. 원하는 게 많고 적에게 잔혹하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되려 원가륜보다도 과격한 방식을 썼다.

하지만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진 않았어. 그는 부를 거머쥐기 위해서,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 악인을 사냥하고 있다. 멕시코의 범죄 카르텔 80% 이상이 그의 손에 궤멸했고, 페드로 카밀은 현재 명실상부 중남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권력자다.

이집트의 영웅 샤이마아 사다트는 바히드 나세르 못지않게 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다. 그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프리카와 중동의 평화를 바란다. 특정 국가의 패권이 아닌 모든 나라의 화합을 위해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샬럿 테이트의 마력에 대한 갈망은 결코 윤의성에게 모자라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노력하기만 했고, 기어이 집착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에 발을 들였다. 마침내 세계 최강이라는 칭호를 손에 넣은 그녀는, 여전히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도 있는데.

왜 당신들은 이토록 변한 걸까.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왜 악인이 된 걸까.

당신들은 애초에 영웅이 되지 말았어야 했을까. 이렇게 강하지 않았어야 했을까. 위기를 겪고, 극복하고, 한계를 뛰어넘어 성장하지 않았어야 했을까.

나는······ 이런 걸 의도하지 않았는데. 당신들의 삶을 내가 결정했다고 생각지 않는데.

그렇다면 누구에게 잘못을 물어야 할까.

어디부터 어디까지, 죄인의 경계선은 어디에 그어져 있을까.

나는 그걸 알지 못한다.

그걸 판단할 자격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피차 바쁘니까 본론만 간단하게 전달하지. 대균열을 열 거다. 거기 세 분이야 아실 거고, 너도 인제 와서 발을 뺄 생각은 아니겠지?”

“물론이다. 함께하게 되어서 영광이군. 한데 어디에서 연다는 거지?”

“그거야 뭐, 전에 열렸던 자리겠지.”

양심의 가책 따윈 내비치지 않고 답하는 윤의성, 여기에 모인 다른 세 놈.

이자들은 반드시 죽이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다.

나는 서술자였고,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고,

복수를 하려는 거니까.

그리고.

윤의성이 답하고, 내가 다짐한 직후.

슈아아아!

텅 빈 허공에 돌연 빛무리가 소용돌이친다. 칠흑처럼 검고 불길하게 일렁이는 힘. 세 갈래로 나타난 그 마력이······ 저마다 각기 다른 세 곳으로 날아간다.

“커허억!”

“······!?”

“뭐지?”

세 명이 동시에 외쳤다.

헛숨을 내쉰 바히드 나세르.

재빨리 뒤로 물러선 데보라 디아스.

황급히 마력을 끌어올리는 원가륜.

예기치 못한 사태.

콰앙! 윤의성이 땅을 박차며 뛰어오른다. 현란한 몸놀림으로 검은 마력의 권역에서 벗어나며 녹색의 마력을 전신에 둘렀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순간예지가 발동하지 않아. 내게 들이닥치는 위협이 아니다.

저 검은빛. 내가 이전에 겪어본 적 있는 것과 흡사한 성질을 띤 저 마력은······ 오로지 세 사람만을 노리고 있다.

바히드 나세르, 데보라 디아스, 원가륜.

“커억! 끄아아악!”

원가륜이 비명을 지른다. 괴로워하면서 계속해서 자기 몸을 후려친다. 주위에 일렁이는 검은빛을 떼어내려 하듯이.

저항은 무력했다. 그를 속박한 검은빛이 이내 그에게로 흘러 들어간다. 입과 눈, 코, 귀, 가리지 않고 잠식하려 한다. 다른 두 배신자도 마찬가지인 상황.

슈우우······.

어느새 그들의 몸에서 검은빛이 발산되고 있다. 마치 본래 가진 힘인 것처럼. 더 정확히 말하면······ 검은빛에 조종당하는 것처럼.

그리고, 빛이 팽창했다.

콰아아아아-!

조금 전까지 다섯이 있던 자리에 그들 셋이 서 있다. 새까만 빛이 아름답게 흐른다. 놈들에게서 각자 좌우로 후퇴한 나와 윤의성은 서로를 마주 봤다. 그가 황당해하며 중얼거린다.

“하······ 이게 이렇게 된다고?”

그는 저 셋에게서 흘러나오는 빛의 정체를 안다. 나도 안다.

인간의 마력이 아니다. 마기라 칭해야 할 힘.

몬스터의 것도 아니다. 고위 악마라 해도 저만한 순도의 마기를 발산할 수는 없다.

가능한 존재는, 균열 너머의 세상 전체를 그러모아도 고작해야 다섯뿐.

‘나태한’ 누엔.

‘온화한’ 모시즈.

‘무구한’ 블라셰.

‘우아한’ 티엘사.

‘미숙한’ 히티.

악마의 군주.

마왕.

그들이 나타났다.

스으으-

마력이 걷힌다.

세 배신자가 정체를 감추기 위해 둘렀던 마법이 사그라든다.

백발의 노인, 바히드 나세르.

노년에 접어들려 하는 남자, 원가륜.

삼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성, 데보라 디아스.

그들이, 그들의 영혼을 지배하는 세 마왕이 나를 본다.

그 시선을 직시하며 나는 깨달았다.

에블린 그레이스도 움직이고 있었다고.

내가 염의준을 죽이고 심정웅을 죽인 것처럼······ 그녀도 움직이고 있었다.

마왕들과 내통하고, 배신자들을 꼭두각시로 만들면서.

하늘거리는 걸음.

데보라 디아스가, 아니, 그녀를 조종하고 있는 마왕이 내게 걸어온다. 그리곤 생긋 웃으며 말한다.

-얘, 난 티엘사라고 하는데, 그 가면 좀 벗어 줄래?

‘우아한’ 티엘사.

소질 포인트의 매력 수치가 9.2 이상.

장생종 차대 여왕 일레이아나 라큘리만 제한다면 온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이라 칭할 수 있는 그녀가,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아까 약속했잖아? 우리가 마력을 거두면, 너도 가면을 벗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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