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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197화 (197/207)

#197화. Chapter 48. 마왕 (2)

***

@True_glass · 팔로잉

#훈련 #쇼핑

오늘 전적 3승 3패 :)

내일은 마나랜드 간다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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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전

“뭐 해?”

멀찍이서 들려온 물음에 이세아는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양손에 가을옷을 한 벌씩 든 진유리가 걸어오며 재차 묻는다.

“왜? 무슨 일 있어?”

“그냥 날씨 본다고.”

차마 가계정으로 몰래 팔로우한 네 SNS를 구경하고 있었다고 답할 수 없어 이세아는 그렇게만 둘러댔고, 자기가 올린 사진의 반응을 같이 찍은 애가 훔쳐보고 있었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진유리가 대수롭지 않게 일렀다.

“아침에 봤는데 내일 안 춥고 맑을걸?”

“진짜?”

“응. 너도 봤다면서.”

되돌릴 말이 궁해진 이세아는 입을 다물었고, 가까이 다가온 진유리가 그녀에게 겉옷 두 벌을 들이밀었다.

“이거 두 개 입어봐. 시간 없으니까 빨리.”

현재 시각 오후 여덟 시 십 분. 두 사람이 와 있는 백화점의 영업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진유리 본인은 내일 입을 옷을 모두 골랐고 이제 이세아 차례.

패션 감각은 자기가 전교 1등이라고 자부하는 친구가 고른 옷을 받아든 이세아는 슬쩍 눈으로 훑었다. 가격표가 어디 있을까. 안타깝게도 안감에 걸려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비쌀 거 같은데······.’

대충 아무거나 집어 들어도 가격이 세 자릿수에 달하는 명품매장에 온 건 아니다. 십 대 청소년부터 이십 대까지 주로 이용하는 캐주얼 편집샵. 하지만 그래도 가격이 제법 셌다. 아까 얼추 확인해본 바로 좀 괜찮다 싶은 건 이십만 원이 훌쩍 넘어갔으니까.

‘나 돈 없는데.’

오늘 가용 예산은 정확히 오십만 천 원. 이것도 굉장히 무리한 거였다. 원래 가지고 있던 돈에 더해 옷 사러 간다고 오빠에게 삼십만 원이나 더 받았으니까. 한데 현재 남은 액수라곤 겨우 십오만 원뿐.

나름대로 아낀다고 아낀 건데, 진유리가 골라준 신발 한 켤레 먼저 사고, 신발에 어울리는 바지도 진유리가 골라줘서 한 장 사고, 진유리가 골라준 셔츠랑 맨투맨도 예뻐서 한 장씩 사고, 그러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

오십 만원이면 넉넉히 쓰고도 남을 줄 알았는데. 남는 건 은근슬쩍 반납하지 않고 용돈으로 쓸 계획이었는데.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생각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빠에게 돈을 더 받을걸. 현금 말고 카드로 줄 테니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사라고 할 때 넙죽 받을걸.

하지만 때는 늦었고, 지갑은 얇아졌고, 정작 가을옷에서 가장 중요한 겉옷을 사기엔 돈이 부족하다.

“왜? 별로야?”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선에 진유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네가 옷을 너무 잘 골라줘서 이것저것 다 사버렸잖아, 라고 대놓고 탓할 만큼 양심이 없지는 않은 이세아는, 그러나 뻔뻔하게도 마음속으로만은 조금 하소연하며 답했다.

“아니, 둘 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더 문제였고.

돈이 모자랄 수도 있어서 망설이는 거라고 솔직히 말하기엔 열여덟 살 고등학교 2학년 이세아의 감성이 너무 섬세했다.

“입어보고 올게.”

“아우턴데 그냥 여기서 바로 걸쳐. 내가 봐줄게.”

“일단 나 좀 보고.”

그렇게 답한 이세아는 피팅 룸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곤 옷을 걸치기에 앞서 가격표부터 확인했다.

하나는 157,000원.

다른 하나는 268,000원.

둘 다 괜찮았으나 가격에서 상당히 차이가 났다. 불행히도 비싼 쪽이 좀 더 마음에 들었고.

‘어떡하지?’

만약 진유리에게 돈을 빌린다고 치자.

칠천 원이면 그럭저럭 허용 범위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십이만 원씩이나 빌리는 건 너무 좀 과하다.

‘근데 이게 더 예쁜데.’

더 비싼 옷을 입고 거울을 이리저리 살피던 이세아는 곧 결심했다. 이게 더 이쁘다고 생각한 건 단지 착각이라고.

‘다시 보니까 저게 더 괜찮아.’

실제로 그렇게 생각지 않더라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마음을 고쳐먹으려 하다 보니 정말 저쪽 옷이 더 나은 것 같······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

‘미안한데 나 혹시 칠천 원만 빌려줄 수 있어?’라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렇게 물어보자고 다짐한 이세아는 피팅 룸을 나서려 했다. 한데 바로 그때.

쾅, 쾅쾅!

밖에서 세게 문을 두드린다. 이어서 진유리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세아야! 이세아!”

“왜?”

“일단 좀 나와봐!”

안절부절못하는 듯한 재촉에 이세아는 문을 열고 나왔다. 진유리는 몹시 상기된 얼굴. 그리고 저쪽에 누군가 서 있다.

“아······.”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키가 크고 체형이 늘씬했다. 표정과 이목구비는 무척 차가운 분위기면서 예쁘다.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차림새가 아주 잘 어울리고, 손에는 이세아가 아예 들어갈 생각조차 안 했던 매장들의 쇼핑백이 들려 있다.

그녀가 이쪽으로 걸어온다. 이세아는 일단 허리부터 꾸벅 숙였고, 다가온 여성이 차분히 말을 건넸다.

“세아 오랜만이네. 잘 지냈니?”

“네, 안녕하세요, ······이모.”

‘안개의 마녀’ 서연희.

가장 어린 영웅이자 어머니 정세빈의 학교 후배.

이세아 옆에 어정쩡하게 선 진유리는 바짝 긴장한 눈치였고, 이세아는······ 사실 좀 많이 어색했다.

‘얼마 만에 뵙는 거더라?’

올봄, 염의준의 장례식장에서 오빠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은 있다. 하지만 그때는 얘기를 나누지 않았고, 이렇게 가까이서 대화한 건 중학생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모라 부르긴 하나 엄밀히 따지면 면식이 없다시피 한 사람. 그녀가 어머니와 교류가 있었을 때는 워낙 어린 나이여서 기억도 안 나고, 십 년 전부터는 얼굴 볼 일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일 년에 한 번 보면 많이 보는 사람이다.

“지나가다가 너 있는 게 보여서 와봤어. 쇼핑 중이었니?”

“네, 이쪽은 제 친군데-”

“앗! 다시 인사드릴게요, 진유리라고 합니다! 서연희 영웅님, 그으······ 아,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이세아의 소개를 급히 잘라먹은 진유리가 얼굴이 발개져 허리를 숙인다. 웃어줄 법도 한데, 서연희가 무미건조하면서 차갑게까지 들리는 어조로 답했다.

“알아. 샬럿한테 들은 기억이 나네. 세아랑 친구, 그거 계산하려고?”

그녀의 눈길이 두 사람의 손에 닿았다. 이세아가 들고 있는 외투 두 벌, 진유리가 바구니에 가득 담아놓은 옷들. 그리곤 곧바로 계산대로 향하며 말한다.

“사줄 테니까 가지고 와.”

“아······.”

“저희 괜찮은데-”

진유리는 당황했고 이세아는 사양하려 했으나 서연희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서슴없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뭔가 거부하기도 힘들다. 결정권이 이쪽에 있는 게 아니라 저쪽에 있는 느낌이랄까. 서연희의 말과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가 흘러나온다.

결국 이세아는 진유리에게 돈을 빌리지 않고 옷 두 벌을 다 얻었고, 이것저것 예뻐 보이는 옷은 전부 고른 진유리는 포스기에 가격이 뜰 때마다 점점 안색이 새파래지더니, 백 단위를 훨씬 넘겨서 계산이 끝나자 허리를 최대한 숙였다.

“진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둘 다 열심히 하고, 세아는 도진이 속 썩이지 말고.”

“······요새 말 잘 들어요.”

“그러니?”

의식하지도 못하고 발끈해서 답하자 서연희가 희미하게 웃었고, 그대로 매장을 나선다. 홀린 것처럼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던 진유리가 긴장이 덜 풀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멋있다······.”

“별로, 난 모르겠는데.”

왠지 모르게 인정하기 싫어서 한 대답. 한데 이세아를 흘끔 쳐다본 진유리가 조금쯤 자괴감을 내비치면서 말했다.

“가끔 이럴 때 보면 너랑 나랑 진짜 사는 세계가 다른 거 같아.”

“무슨 뜻이야?”

흠칫한 이세아는 대번에 되받았다. 또 날 친구로 생각하니 뭐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나 싶어서.

다행히 그 뜻은 아니었고, 은은하게 감탄이 어린 어조로 진유리가 말을 이었다.

“난 영웅분들 뵈면 막 저절로 긴장하는데 넌 그냥 아는 어른들 대하듯이 대하잖아. 애가 간이 큰 건지 감흥이 없는 건지.”

“실제로 아는 어른들 맞으니까.”

“그래, 너 잘났다.”

그즈음 백화점을 나서야 하는 시간이 됐고, 이세아는 진유리에게 당당히 요구했다.

“배고픈데 뭐 좀 먹고 가. 내가 살게.”

“어? 진짜로?”

아직 십오 만원이나 남아있으니까. 넉넉한 지갑만큼이나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이세아가 선언했다.

“대신에 내가 먹고 싶은 거 먹을 거야.”

“뭐 먹을 건데?”

“떡볶이.”

“······안 맵게?”

“가서 보고.”

매운 걸 전혀 못 먹는 진유리가 두려움에 인상을 찡그렸고, 반대로 가장 매운 단계도 여유로운 이세아는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

-아까 약속했잖아? 우리가 마력을 거두면, 너도 가면을 벗기로.

대전제.

절대로 가면을 벗을 수 없다. 차라리 윤의성 혼자만이었다면 될지도 몰라. 입을 막을 방법을 찾아낸다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마왕이 이쪽 세상에 개입하고 있다.

균열이 열린 것도 아닌데.

설령 균열이 열렸다 해도, 파르투스의 강림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말이 안 된다.

놈이 특수하게 제작한 S급 상당의 균열조차 놈을 강림시키는 게 한계. 통상적인 균열과 달리 대단위 몬스터 군단은 나올 수 없었다.

한데 지금은 무려 셋이나 되는 마왕이 이 땅에서 자신의 의지를 행사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상정할 수 있는 가설은 오직 하나.

저들은 지금 강하지 않아. 아마 에블린 그레이스의 소행이겠지만, 배신자들의 영혼을 지배하고 그들의 능력까지 끌어다 써야 겨우 육신을 조종할 수 있을 만큼의 연결일 거다.

싸운다면 이길 수 있어. 그랬다간 계획이 흐트러질 가능성이 크고.

뭐가 있을까. 저들과 적대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서도 가면을 벗지 않을 방법. 그걸 알아내야 했다.

-얘, 부탁인데 벗어주면 안 될까? 보고 싶은데.

-걱정하지 말려무나. 우리는 너를 해치거나 위협을 가하려는 게 아니란다. 단지 우리가 네게 나타났듯이, 너도 우리에게 너를 알려주기를 원할 뿐이야.

티엘사에 이어 바히드 나세르를 조종하는 마왕이 말한다.

-소개가 늦었구나. 나는 모시즈라 한단다. 우리 셋의 대리자에게 네 이야기를 이따금 들어왔었지.

‘온화한’ 모시즈.

가장 너그러운 학살자.

그리고 마지막, 원가륜을 조종하는 마왕이 권태로워하며 일렀다.

-누엔이다.

‘나태한’ 누엔.

놈이 한 말은 그게 전부였고, 그것이 잔혹한 경고임을 나는 알았다. 그는 이 상황 자체를 불쾌해하고 있다.

자신이 귀찮게 강림한 것도.

내가 뻗대고 있는 것도.

이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어떤 패를 꺼내 들어야 할지를.

계획이 틀어질 걸 감수한다면 윤의성을 이용해서 이 자리를 빠져나갈 수도 있다. 오히려 그러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3권 마지막 문장을 없던 일로 해버리려는 목적을 위해서도.

서연희를 불러 함께 이 사태를 타개할 수도 있다. 다만 리스크가 존재한다. 세 마왕이 눈치챌 가능성이 있어. <세계의 수호자> 최후반부의 결전에 참전했으니까.

당시 ‘악랄한’ 조네티아를 일격에 참살한 수수께끼의 조력자와 팬텀의 보스가 동일인이라는 걸, 서른여섯 영웅 중 한 명이기도 하다는 걸, 저들이 알아챌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녀에게 걸어봐야 할까.

등장 비중이야 어쨌든 <킬 더 이블>의 중요 인물이라 추정되는 자.

아직 이곳 상황을 모르는 듯한, 산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는 토끼 가면.

그녀를 데리고 온다면 변수가 발생할까. 그걸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까.

그때 누엔이 말했다.

-셋을 셀 거다. 나는 움직이고 나서는 멈추지 않아. 결정해라.

-오랜만에 와서 싸우고 싶진 않은데.

-부디 옳은 선택을 해주렴.

한숨을 포옥 내쉬는 티엘사와 부드럽게 타이르는 모시즈.

윤의성이 나를 본다. 저자도 정해야 할 때가 왔으니까. 내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윤의성의 행보도 달라질 거다.

-하나, 둘.

그리고.

누엔이 ‘셋’을 입에 담기 직전.

스아아아아악-!

은빛 마력이 쏜살같이 이쪽을 향해 쇄도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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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이블> 13권의 세 번째 서브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클리어 조건: 지금 즉시, ‘전능한’ 이도진에게 달려가 그를 지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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