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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들은 최종보스-205화 (205/207)

#205화. Chapter 50. 태고의 수호 (3)

그건 아마도 가능하다. 굳이 홀로그램의 서브 퀘스트가 보증해주지 않았더라도 나는 이 발상을 떠올렸을 것 같다. 수호검과 태고의 지팡이를 단일한 무구로 만들어내는 일.

겨우 형체만 유지하고 있는 두 개의 무구를 각각 복원하는 건 불가능하다. 근간이 되는 마력 구성이 외부 충격을 버티지 못할 거고, 복구하겠답시고 덤벼들었다간 되려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겠지. 하지만······.

“애초에 파손될 걸 전제로 하면 합칠 수는 있을 거예요. 개별 마력 구성체가 최대한 손상되지 않게 해체하고, 순정 상태에서 새롭게 창조하는 방식으로요.”

이미 확신에 차 있는 내 설명에 서연희가 답한다.

“하나로 만드는 건 가능할 거야. 기술, 자원, 연구 설비가 괜찮은 수준이라면.”

“네 기준으로 그 셋이 다 괜찮아야 하는 거면 어지간해서는 답 없지 않나?”

자꾸 끼어들어 주절대는 윤의성의 목소리를 듣는 건 싫었으나 하는 말 자체는 일리가 있었다. 본인이 입신양명에 뜻이 없을 뿐 타고난 천재성은 그 어떤 영웅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일컬어지는 서연희다. 그녀의 기준으로 ‘괜찮다’라고 평가할 만한 수준의 마법 공학, 그걸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는 자원과 연구 설비. 그런 게 쉽게 마련될 리 없으니까.

그때 두 영웅이 나섰다.

“진, 내가 도와주지. 네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시도해도 좋아.”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라.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줄 테니까.”

아르노 뒤레와 한태강. 두 사람 다 굳건한 신뢰를 보내는 눈빛이고, 팔짱을 낀 채 지켜보던 샬럿 테이트까지 지지를 표했다.

“난 기술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조언 필요하거나 구해야 할 게 있으면 알려줘. 여왕님한테 부탁하면 어지간한 건 다 구해줄 수 있으니까.”

이걸로 영웅 네 명의 지지를 얻었고, 남은 이들도 넷이다. 원가륜, 윤의성, 카타세 쇼코, 매기 도슨.

그중 매기 도슨은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으나 원가륜과 윤의성은 뭔가 탐탁잖다는 표정.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이 말했다.

“도진 군, 잠깐만.”

차분한 어조. 채 마흔이 되지 않은 듯한 외견이며 흰색 전통 의상을 입은, 단아한 인상의 미인이 나를 응시한다.

일본의 영웅, ‘주술사’ 카타세 쇼코.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도진 군의 말대로 손상 없이 해체할 수 있다면······ 그 상태에서 복구할 수는 없겠니?”

질문이 아니라 부탁에 가까운 말. 그녀의 시선이 수호검과 태고의 지팡이로 향한다. 그립고, 애달픈 감정이 절절히 묻어나오면서.

카타세 쇼코.

그녀는 이시혁을 많이 좋아했다.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정세빈과 썩 친하지 않았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끝내 가까워질 수는 없었다.

그들이 사망한 지 어느덧 십 년이 지났고, 카타세 쇼코는 여전히 그들의 기일마다 위령제를 연다. 그리움과 미안함 때문에. 그렇기에 그녀가 물은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좋아했던, 좋아하는 사람의 유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까이 지내면 미워하게 될까 봐, 그러고 싶지 않아서 거리를 두었던 사람의 유품.

훼손하고 싶지 않은 거다. 이시혁과 정세빈이 이 세상에 남긴 흔적을.

나는 어설프게 그녀를 위로하려 들지 않고 사실만을 담담히 일렀다.

“그건 무의미해요.”

두 개의 무구를 구성하는 재료들이 있다. 물리적으로도, 마법적으로도. 그걸 조립한 게 이시혁과 정세빈이다. 해체해 본래의 재료로 돌린다면······.

“그렇게 하고 나면, 그다음부턴 재조립한다 해도 제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든 것과 같지 않아요. 단지 형태가 아주 비슷한······ 제가 만든 무구예요.”

“그래······.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카타세 쇼코가 옅게, 쓰라린 어조로 답했고, 매기 도슨도 열심히 하라며 덕담을 해줬다.

이제 여섯 명. 그리고 원가륜과 윤의성이 묻는다.

“어떤 무구로 만들 거지? 지팡이? 아니면 검?”

“만드는 거야 도진이 네 자유니 그렇다 치고, 다 만들면 누구 줄 거냐? 혹시 협회에 기증할 생각은- 에이, 농담 좀 한 거니까 다들 무섭게 째려보지 마시고.”

두 놈에게 한꺼번에 답할 수 있는 말을 나는 단출하게 꺼냈다.

“마검사의 무기로 만들 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마검사라······.”

“이놈 이거 누가 연구자 아니랄까 봐. 세아 준다는 말을 뭘 그리 빙빙 둘러서 하냐?”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이 윤의성처럼 이해했겠지. 부모님이 남기신 유품으로, 동생에게 선물할 무구를 만들려는 생각이라고.

나는 그 이상 답하진 않았고, 무구의 거취는 정해졌으니 슬슬 다른 걸 논할 차례였다. 아르노 뒤레가 침음하며 말한다.

“어떻게 발견됐는지, 그게 의문인데 말이야.”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정말로 우연이거나.

아니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발견되게 했거나.

솔직히 후자 쪽에 더 무게가 실리긴 하나 이렇다 할 물증이 없다. 두 무구를 살핀 여덟 영웅과 대균열 연구소의 연구진, 그리고 나까지 확언할 수 있었다.

“누군가 개입한 흔적은 없어요. 파손되기만 했고 제가 봐왔던 수호검과 태고의 지팡이가 맞습니다.”

“그렇지······. 그래서 더 수상해······.”

윤의성이 되받은 말. 한 사람도 반론을 제기하는 이가 없고, 나는 놈과 원가륜의 동태를 눈여겨봤다.

모른 척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놈들, 혹은 에블린 그레이스, 더 나아가 균열 너머의 마왕들. 검과 지팡이를 발견되도록 한 게 놈들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지금 보기엔 윤의성과 원가륜은 되려 경계하는 것에 가깝다. 떳떳하지 못한 놈들이기에, 자신이 꾸미지 않은 수상한 일을 경계하는 거다. 그즈음 윤의성이 혀를 내두르며 씁쓸하게 중얼거린다.

“그나저나 이거, 얘네 상태만 봐도 알겠네. 엄청나게 고생했겠어.”

물리적인 수단으로 파괴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두 개의 무구. 그것들에 온통 금이 가고, 마력 구성마저 복구할 수 없게 흐트러졌다. 나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슬픔과 분노를 간신히 삼켰다.

저게 저 지경이 되려면, 그래야만 막아낼 수 있던 거라면······.

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 걸까.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던 걸까. 다시 한번 세상을 지켜내기 위해서.

여기 더 있다간 감정을 제어하기 어려울 것 같아 나는 나지막이 말했다.

“죄송한데, 저는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같이 가도 돼?”

내 옆에 다가와 물은 세라가 대답은 듣지도 않고 먼저 연구실을 나섰고, 내 등 뒤로 한태강의 경고가 들린다.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다음에는 말로 안 끝난다.”

“······실언했습니다. 미안하다, 도진아.”

“괜찮습니다. 나쁜 의도로 하신 말씀 아닌 거 알아요.”

당장 찢어 죽이고 싶은 걸 참고, 희미하게 웃어주며 윤의성에게 답한 나는 세라를 따라 연구실 문을 넘었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맑았다. 이곳 미래섬은 한국보다 시간이 얼마간 더 빠르고, 춥지 않게 적당히 햇볕이 내리쬐고 있다.

특정 국가에 속하지 않은, 영웅들이 공동으로 소유권을 지닌 섬. 그곳의 해안을 천천히 걸어 나가며 나는 세라와 대화를 나눴다.

“소식은 언제쯤 알리려고?”

“글쎄······ 보도 통제 걸어뒀다가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수호검과 태고의 지팡이가 발견됐다는 소식만으로도 세간이 떠들썩해지고, 의도치 않은 혼란이 찾아올 테니까. 그걸 될 수 있는 한 방지하려면 며칠은 시간을 두는 게 좋을 듯했다. 내 답에 고개를 주억인 세라가 말한다.

“당분간 여기 자주 오겠네. 나도 시간 날 때마다 들를게.”

오늘 수호검과 태고의 지팡이를 서울로 들고 갈 수는 없다. 만에 하나 좋지 않은 의도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니까.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진 미래섬에서 작업을 해나가야겠지. 나는 농담처럼 세라에게 일렀다.

“일도 많은 애가 이 먼 데까지 온다고? 귀국해서 몇 달 됐다고, 드디어 게으름도 좀 피우고 그러게?”

“응? 워프로 오는데 거리가 무슨 상관이야. 너희 집 놀러 가는 거보다 짧게 걸릴걸? 교통비가 좀 많이 들긴 할 텐데, 이럴 때 쓰려고 돈 버는 거니까.”

“난 여기 공동 명의자라서 워프 공짜로 쓰는데.”

부모님 두 분이 다 돌아가셔서 미래섬 지분이 온전히 나한테 있으니까. 자랑도 아닌 걸 꼭 자랑처럼 말하자 세라가 웃는다. 우울하던 기분이 나아진 걸 안 거겠지.

“지인 할인 이런 건 안 해줘?”

“그런 게 어딨어. 이럴 때 쓰려고 돈 번다면서?”

“아니면, 맞아, 너 올 때 나도 같이 오면 되겠다.”

“나 그냥 장난이었는데 보니까 진짜 일 설렁설렁하려고 하네?”

편안하게 퍼지는 웃음. 그리고 세라가, 흘려보내듯이 묻는다.

“사실은 세아 주려는 거 아니지?”

이걸 상의하진 않았는데 어떻게 안 걸까. 하지만 의아해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얘한테는, 어지간해선 숨기질 못하니까.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어떻게 할까 싶어. 누구 줄지는 정하진 않았고.”

“후보는 있고?”

“응.”

세라는 더 묻지 않았고, 다시금 연구소로 향하는 길에 담배를 피울 만한 장소가 보였다. 의도한 건지 아니면 우연인 건지, 혼자 그쪽으로 걷던 서연희와 우리 둘의 눈이 마주쳤고. 짧은 침묵. 세라가 앞장서며 내게 이른다.

“피우고 들어갈 거지? 나 신경 쓰지 말고 피워.”

“너는?”

내가 피울 때는 얘도 가끔 피우곤 했으니까. 한데 세라가 조금 곤란해하는 투로 답한다.

“음······ 아빠 안 나오실 거 같으면?”

그리고 넓지 않은 공간에 나와 세라와 서연희가 함께 자리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본 서연희가 말했다.

“엿듣는 사람 없고, 여기서 간단히 상의하면 되겠네. 도진이 넌 누구일 것 같아?”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일렀다.

“우선 토끼한테 연락해주세요.”

어쩌면 그녀일 수도 있다.

윤의성도 아니고, 에블린 그레이스도 아니고, 마왕들도 아니고.

수호검과 태고의 지팡이를 놓아둔 게 토끼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토끼가?”

세라는 회의적인 눈치. 서연희는 선선히 내 청에 응해줬다.

“알겠어. 특별한 일 없으면 수요일쯤 만날 수 있도록 할게. 나도 가도 괜찮지?”

“네.”

“나도 시간 낼 테니까 같이 가도 되려나?”

“세라 네가?”

“심상치 않은 일이잖아요.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나보다 앞서 나온 서연희의 반문에 태연하게 답한 세라가 내게 손을 내민다. 얘 담배 빌려 달라는 것 같은데. 빌려놓고선 한 번도 갚은 적은 없지만.

나는 잠자코 한 대를 꺼내 건네줬고, 세라가 입에 문 담배로 라이터도 가져가 주기 전에 서연희가 손가락을 튕겼다. 치익- 예전보다는 익숙하게 나온 연기. 이내 세라가 서연희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한다.

“염려할 것 없어요. 내가 나서야 할 때 나설 테니까.”

일리가 있다. 세라가 내린 판단이 나와 서연희가 생각지 못한 관점까지 짚어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좀······ 타이밍이 심각하게 좋지 않았다.

이십 미터쯤 떨어진 곳. 갑자기 연구소 문이 열려 우리는 그쪽을 봤다.

그리고 한태강이, 내가 여태 본 적이 없이 놀라고 당황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는 세라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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