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2화 (2/296)

<-- 신들의 기묘한 연회 -->

"야, 비켜! 비켜!"

"으아아아! 또 밀치기를!"

"1등이다! 꺄하하하!"

이시스가 게임패드를 던지며 꺄하하! 소리를 질러댔다. 진성은 곤란한 듯 웃으며 패드를 내려놓았다. 다른 건 몰라도 게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지만, 신은 신이었다. 처음 할 때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못했지만 겨우 한 두 판만으로 진성의 실력을 따라잡은 것이다.

"자아! 다른 게임! 다른 게임 없어?"

"저기요, 이시스 님…… 우리는 무슨 준비 같은 거 안 해요?"

여기로 불려온 이후로 진성이 한 일은 그녀와 함께 게임을 한 것 밖에 없었다. 그것도 96시간 내내. 물론 이곳은 영혼의 세계라서 눈이 아프거나 잠이 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지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준비? 뭐 특별히 할 거 있어? 우리가 지금 여기서 그 게임을 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게임은 사전 준비 없이 막 하는 게 아니라구요. 분석이라던가. 정보 수집이라던가. 다 사전작업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굳이 그런 걸 할 필요가 있을까?"

이시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너 지금까지 그 게임 경기 몇 번이나 돌려봤더라?"

"……."

셀 수 없이 많았다. 2년 전 그 시절, 대부분의 또래들이 그랬겠지만 특히 진성은 카오스월드의 광팬이었다. 했던 경기를 수십 수백 번 돌려보며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는 둥, 여기선 이런 전략이 실수였다는 둥 스스로를 경기에 대입하여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만큼 게임 개발이 중지되어버려서 받은 실망과 충격도 컸지만.

"…다 알고 계셨군요."

진성이 민망한 듯 뺨을 긁적였다.

"당연하지, 난 신이니까! 그리고 그 대단한 신님이 다른 대단한 프로게이머들을 제쳐두고 널 선택한 거야. 자부심을 가져, 꼬맹아! 지금은 신나게 놀고 내일부터 신들의 연회에 참석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이시스가 진성을 등을 퍽! 쳤다. 엄청난 완력이었다. 그가 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비실하기는. 정보 수집은 됐으니까 운동이나 좀 해야겠다."

"……괘, 괜찮아요. 전투는 밑에 부하들한테 맡겨둘 거니까요."

이시스는 피식 웃으며 뒤에 쌓아둔 과자 봉투 중 하나를 뜯었다. 저렇게 먹어대는데 어떻게 저런 몸매를 유지할 수 있을까? 역시 여신은 위대하다.

"아, 맞다!"

그녀가 문득 생각난 듯 운을 땠다.

"그러고 보니 미리 정해둬야 하는 게 있었구나."

"뭔데요?"

"그거 있잖아. 그거. 네가 플레이 할 '국가'말야!"

"오오, 우리가 고를 수 있는 겁니까?"

"응."

진성은 옆에 있는 냉장고에서 콜라 캔 하나를 꺼내 입에 가져다 댔다. 시원한 청량감이 목을 타고 흘렀다.

"크, 좋다. 사실 카오스월드가 썩 밸런스가 잘 맞춰진 게임은 아닙니다. 초반에 강한 국가가 있는가 하면, 발전을 하면서 시간을 들여야 점점 더 강해지는 국가가 있죠."

"흐응. 그럼 밸런스가 맞는 거 아냐?"

"그런 정보들을 다른 플레이어들도 다 알고 있다는 게 문제예요. 초반에 군사력이 떨어지는 약소국가들은 타 경쟁자들의 주요 타깃이 될 테니까요."

"아! 확실히 그렇겠네."

"그래서 초반을 무사히 넘기고 중반을 바라볼 수 있는 안정적인 전력을 가진 국가를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나라 수는 원작처럼 50개 맞죠?"

이시스가 고개를 저었다.

"22개야."

"헉, 왜요?"

"그야 주신전에 참가하는 신이 스물 두 명이니까."

"…아하."

진성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떤 국가들이 나오는 지 알 수 있을까요?"

"잠깐만."

그녀가 허공에 손가락을 톡 하고 가져다 대자 공간이 출렁이며 홀로그램 스크린이 나타났다. 그 안에는 게임에 등장하는 스물 두 개의 국가 리스트가 나와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홀로그램 스크린이라니, 요즘 신들은 세련됐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진성은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내리며 리스트를 살폈다.

"그럼 우리 꼬마는 어떤 국가를 하고 싶은데?"

"……."

진성은 반응이 없었다. 그의 모든 신경이 스크린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시스가 눈을 흘기며 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으앗! 죄, 죄송해요. 하하! 카오스월드를 한다는 생각에 너무 흥분해서……."

"이렇게 이쁜 여신님을 내버려두고 게임 같은 거에 흥분하는 거야? 내가 게임 따위에게 밀리는 거니? 흥, 이래서 폐인들이란……."

"폐인이 아니라 게이머라고 불러 주시죠."

목록을 모두 살핀 진성이 '흠흠'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주신전이 카오스월드와 동일하다는 가정 하에, 가장 인기가 많고 초 중 후 모두 강력한 국가는 세 개를 꼽을 수 있겠네요. 신성국가 가이아, 해양국가 다이달로스, 기사의 나라 카사르."

이시스가 세 이름을 곰곰이 곱씹어보았다.

"흐응…… 가이아가 그 교황이랑 성직자들이 나오는 국가였던가?"

"네, 맞아요. 광신도들의 나라죠. 가이아는 회복마법과 버프마법이 가능한 성직자들이 잔뜩 있어서 보조마법으로 떡칠한 극강의 군대를 만들 수 있어요. 내정이나 나라 운영도 쉽죠. '신의 이름으로!'라는 말 한마디면 돈이든 식량이든 가져다 바치는 헌신적인 국민들이 있으니까요. 2차 베타 테스트 때는 우승 국가였어요."

진성은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가이아 국가의 정보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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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국가 가이아〉

가이아는 여신 가이아를 섬기는 교황세력이 건국한 나라로서 국가의 토대가 종교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전 국민이 모두 가이아교의 신자들로 헌신적이고 희생적이지만, 여신의 뜻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무자비한 보복을 선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대륙 최고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팔라딘, 그리고 프리스트, 엑소시스트, 몽크 등 회복과 버프마법에 특화된 강력한 성직자들을 양성할 수 있습니다.

종교를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내정 관리와, 회복마법을 이용한 안정적인 전투를 선호하는 플레이어들에게 추천합니다.

군사력 : 최상

경제력 : 중

문화력 : 중

플레이 난이도 : Very Easy (매우 쉬움)

〈국가 고유 능력〉

1. 가이아의 축복 : 모든 유닛의 자연 체력회복속도가 20% 증가합니다.

2. 복음 전파 : 가이아는 다른 국가들에게 종교를 전파할 수 있습니다. 가이아를 종교로 채택한 국가들은 '가이아의 축복' 효과를 받으며 가이아에 전쟁을 선포할 수 없게 됩니다.

3. 여신의 이름으로 : 가이아의 세금 수입이 10% 증가 합니다. 가이아 국민들의 지지율과 행복도가 떨어질 확률이 감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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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설명을 모두 본 이시스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가이아는 또 뭐 하는 년이야?"

"……게임 설정 같은 거에 일일이 경쟁심 가지지 말아주세요."

"아, 몰라! 나 이거 안 해!"

"……게임을 하는 건 접니다만."

진성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스크롤을 내려 다음 국가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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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국가 다이달로스〉

다이달로스는 바다 옆에 인접하여 선박 및 항해 기술이 발달한 항만 국가입니다. 동시에 교통의 요지에 자리 잡고 있어 많은 상인들이 드나드는 상업 국가이기도 합니다.

해적들로부터 상선을 보호하기 위해 함선의 강화와 연구를 거듭하여 대륙 최강급의 함선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강력한 파괴력의 화포를 활용한 전술로 지상전도 밀리지 않습니다. 다이달로스의 함대는 대륙 모든 바다의 지배자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돈과 자원 걱정 없이 플레이 하고 싶다거나, 해상 지배권을 장악하고 싶은 플레이어들에게 추천합니다.

군사력 : 상

경제력 : 상

문화력 : 중

플레이 난이도 : Normal (보통)

〈국가 고유 능력〉

선박 혁신 : 다이달로스 모든 선박의 이동속도가 20% 증가합니다.

무적함대 : 다이달로스의 함선이 10척 이상 모여 움직이는 경우 해당 선박들의 공격력이 20% 증가 합니다.

교역 정책 : 교역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10%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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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바다 국가야? 나 이거 좋아."

이시스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확실히 좋은 국가죠."

진성도 동의했다.

"동부 끝에 바다를 끼고 있어서 지리적 이점도 있고, 함선도 강력하고, 치열한 영토 싸움에 끼어들 필요 없이 상인들만 관리 잘해도 돈 걱정은 없으니까요."

"오오! 좋다. 좋다! 다른 국가도 보여줘! 그…… 카, 카이사르?"

"……카사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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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나라 카사르〉

카사르는 전통적으로 기사도를 국가관으로 삼고, 기사들이 중심이 된 나라입니다. 기사도 정신에 입각한 강인한 정신력과, 7세 때부터 시작되는 혹독한 훈련을 거쳐 만들어진 강인한 육체로 무장한 카사르의 기사들은 주변 국가들에게는 언제나 선망과 공포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검 외에 마법이나 활은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어 원거리 화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그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 강력한 특화 보병 군대를 보유할 수 있습니다.

초 중 후반 모두 강력하고, 압도적인 힘을 이용해 천천히 대세를 굳히고 싶은 플레이어들에게 추천합니다.

군사력 : 최상

경제력 : 하

문화력 : 중

플레이 난이도 : Easy (쉬움)

〈국가 고유 능력〉

기사도 정신 : 카사르의 기사들은 체력이 떨어져도 사기가 줄어들지 않으며 상태이상 마법에 대한 저항력 20% 효과를 부여 받습니다.

불굴의 의지 : 카사르의 기사들은 적에게 포위 당할 시 '광분(중급)' 효과를 부여받으며 공격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검의 나라 : 검을 쓰는 모든 병사들의 공격력이 30% 증가합니다. 궁수와 마법사들의 명중률이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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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다!"

이시스가 대뜸 소리를 질렀다.

"우리 이거 하자! 멋진 기사들님이 잔뜩 나오는 거지? 엄청 세보이잖아!"

"……뭐, 센 건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이걸 지금 우리끼리 정한다고 해도 의미가 있나요? 정확히 어떻게 나라가 정해지는 건데요?"

"아, 그게 말이지."

룰은 간단했다. 먼저 스물 두 명의 플레이어가 1지망으로 플레이하고 싶은 나라를 선택한다. 선택이 중복될 경우, 그 나라를 선택한 플레이어들 중 무작위로 한 플레이어가 선택된다. 그런 식으로 모든 플레이어가 선택할 때까지 2지망, 3지망으로 이어지며 4지망까지 남아 있는 플레이어들은 남아있는 나라들 중에서 무작위로 하나를 선택받는다.

"간단명료하네요."

설명을 들은 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시스님의 말대로 1지망은 기사의나라 카사르로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가이아는 인기가 너무 많을 테니까 카사르 정도가 딱일 듯 하네요. 그리고 카사르를 뽑는데 실패하면 2지망은 다이달로스나 다른 국가로, 만약 3지망까지 가면 그때 남아있는 픽을 보고 다시 결정할게요."

"헤에… 그런데 그냥 1지망에서 안전빵으로 적당한 나라 하나 고르는 게 좋지 않아?"

진성은 '흠.'하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그것도 나쁘지 않은 전략입니다만, 카사르는 도박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픽이거든요. 그리고 앞서 말한 강대국들이나 초반이 상당히 힘든 몇몇 약소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무난한 픽 입니다. 한번 시도해보고, 2지망부터 안전한 픽을 골라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전 보기보다……."

진성이 턱을 문지르며 느끼한 목소리를 냈다.

"꽤 운이 좋은 편이니까요."

"……우웩, 징그러!"

이시스가 진저리를 치며 한 발짝 옆으로 떨어졌다.

"어쨌든 이제 다 결정된 거지? 얼른 그 리모컨이나 잡아. 연회 전까지 신나게 달려보자고!"

"리모컨이 아니라 게임패드입니다. 그리고 이거 제 자취방에서 가져온 거라면서요? 조금만 더 살살 다뤄주세요!"

"알았어, 알았어! 자아- 잔소리 그만하고 맥주나 꺼내!"

"……네."

그녀는 다시 패드를 잡고 플레이 할 게임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 순진무구한 모습에 진성은 웃음이 났다. 이 아줌마는 정말로 주신이 되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걸까?

가상현실이 상용화 된 시대에 진성은 살고 있었다. 친구와 만난다는 약속을 잡으면 각자 집에 들어가서 캡슐을 통해 가상현실에 접속해서 만나는 시대였다. 이런 구식 홀로그램 게임기를 가지고 노는 날이 올 줄이야. 새삼 어릴 적 생각이 나서 아련해졌다.

한편으로는 또 이시스가 가엾기도 했다. 진성이 떠나면 그녀는 또 이런 공간에서 수천 수만년을 살아야 할 것이다. 신들이 유희에 빠져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이나마 열심히 놀아줘야겠다고 진성은 생각했다.

"응? 야! 나 이거 싫어! 쓰단 말야. 바이네켄 복숭아 맛으로 꺼내와."

"……알았어요."

그래도 심부름꾼 취급은 참아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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