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6화 (6/296)

<-- 버림받은 자들의 나라 -->

충격을 연이어 받아 머리가 마비되었는지 진성은 좀처럼 상황판단이 잘 되질 않았다. 어떻게 이 세계의 사람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단 말인가?

"안심해 주시길, 저희 신관들은 계시를 받고 계약자 분들이 강림하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세계에서 여러분의 정체를 아는 자들은 나라에 각 한 명씩 있는 신관들뿐 입니다."

"……신관……인가."

진성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맑은 공기가 몸에 공급되자 정신이 서서히 되돌아오며 그제서야 머리가 굴러갔다.

"그러니까 신들이 우리에게 보낸 도우미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

"그런 셈이죠."

"일종의 튜토리얼 NPC?"

"……그건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 참, 여기는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진성은 뺨을 탁탁 치며 정신을 차렸다.

"방금 말은 잊어줘. 그런데 그… 여자애는 괜찮을까?"

"울면서 뛰쳐나가는 걸 보고 의아하단 생각은 했었습니다만, 설마……"

그녀의 시선에 경멸이 섞였다. 진성이 다급히 손을 휘저었다.

"그, 그런 거 아냐! 내가 여기에 오니까 그렇게 되어있었다고! 결코 내가 한 일이……!"

"후훗, 알고 있습니다."

이브가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몸의 원래 주인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어떤 그림이었는지 상상이 되는군요."

"아……."

"그리고 메이드는 폐하의 소유물이니 손을 대는 걸로 뭐라 말씀 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최소한 업무 시간 중엔 자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글쎄 내가 한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진성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 그 소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자신의 옷을 벗기던 왕이 멈칫하더니, 느닷없이 '왔구나아!' 하고 소리를 지른다.

와우… 정말 훌륭한 변태가 아닐 수 없다.

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붙어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윤기 있는 짧은 금발 머리에 보라색과 남색이 섞이다 멈춘듯한 기묘한 색상의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대한민국의 하진성과는 달랐다. 하지만…….

'뭐야? 이 다크 서클은!'

자랑스러운 폐인의 상징이자, 진성의 콤플렉스인 눈 아래에 시커멓게 칠해진 다크서클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게다가 왠지 흐리멍덩해 보이는 눈매 또한 그대로였다. 뭔가 안 좋은 특징들만 이 금발의 남자에게 옮겨진 듯한 느낌이었다.

익숙한 느낌이라 정감 가긴 했지만, 이런 곳에서만큼은 완벽 꽃미남으로 지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살짝 들었다. 진성은 눈을 크게 떠보기도 하고, 입을 삐쭉 내밀어보고 엽기 표정을 지어보기도 했다.

"남이 거울을 보며 쪼개는 모습을 보는 건 꽤 고역이군요."

"……그거 미안하게 됐다."

거울에서 눈을 땐 진성은 이번엔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이브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시스템의 작동법이 완벽하게 들어 있었다. 특별한 동작도, 말하는 것도 필요 없다. 그저 '스테이터스 창'을 연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발현한다.

진성은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이질적이고 푸르스름한 스크린 하나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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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로드 폴렌티아

소속 : 어비스 왕실

직위 : 왕

종족 : 인간

무력등급 : (D)

- 개인의 전투 능력을 나타낸 수치입니다. 이 수치는 순수 무력뿐만 아니라 마법이나 이능, 고유능력 등 전투에 동원되는 모든 힘의 총합입니다.

통솔등급 : (E)

- 부대의 지휘 및 리더쉽, 카리스마 등을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통솔 등급에 따라 지휘하는 병사들에게 보너스 효과가 부여됩니다.

지략등급 : (B)

- 책략가로서의 재능을 나타내는 수치로 개인의 전략적 사고나 계략, 지모, 지술 등을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주로 군사들이 이 수치가 높습니다.

정치등급 : (B+)*

- 내정, 연구, 외교, 상술, 기술 등 국가 운영에 관련된 전반적인 모든 능력들을 종합하여 나타낸 수치입니다. 기술자, 과학자, 예술가 등도 이 수치에 영향을 받습니다.

당신은 B+급 정치형 클래스 입니다.

고유능력 : 마안 - 감정 증폭

폴렌티아 가의 이능력은 언제나 정신 계열의 권능이었습니다. 차남인 로드가 가진 증폭의 권능은 상대방의 가면을 일시적으로 벗기고 현재 품고 있는 감정을 순수하게 격앙시켜 표출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미 사용한 상대에게는 그 효과가 떨어지며 사용한 횟수만큼 그 효과는 점점 더 큰 폭으로 떨어집니다. 한 번에 한 명의 대상에게만 시전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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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세계에서는 이제 로드 폴렌티아구나. 흐음, 능력치는 나름대로 잘 뽑혔네.'

카오스월드의 '등급'은 레벨 업을 통해 능력치를 향상시키는 개념이 아닌, 개인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능력과 적성 등을 표시해놓은 일종의 성적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주신전에 참가하는 플레이어의 스테이터스는 원래 이 육체의 주인이 아니라 플레이어 본인의 능력으로 결정된다고 했다. 정치등급이 B+급이라면 꽤나 후하게 성적표를 받아 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무력등급은… 좀 열 받긴 해도 납득은 되는데, 통솔등급이 왜 이렇게 낮은 거야?'

플레이어들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위와 같은 스테이터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 한 등급이라도 D급이 넘으면 카오스월드의 게이머들은 그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는 용어인 '영웅'이라는 말을 붙여준다. 요직에 앉혀도 문제가 안 생길 만큼 쓸만한 인재라는 뜻이다. 그런데 E급이라면 사실상 최하급 영웅보다 못한 수치였다.

진성, 아니 로드는 분노했다. 나름대로 학창 시절엔 반장을 넘어 교실의 실세라고 불리는 환경 미화 부장도 몇 차례 했고, 대학 다닐 때는 조장도 몇 번 떠넘겨 받…… 아니, 도맡아 했건만!

'쩝, 뭐 됐어. 어차피 세상은 한가지만 잘해도 먹고 사는 법.'

로드는 그렇게 자기위안을하며 이번엔 고유능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감정 증폭이라…….'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별로라고 해야 할지. 아직 정확히 감을 잡기 힘든 능력이었다. 나중에 한번 시험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로드는 본인의 스테이터스 창을 닫았다. 그리고는 이브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 와서 만난 내 첫 영웅이군. 한번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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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브

소속 : 어비스 왕실

직위 : 신관 / 왕실 행정관

종족 : 수인 (웅인족)

무력등급 : (C)

통솔등급 : (D)

지략등급 : (D)

정치등급 : (B)*

B급 정치형 클래스 입니다.

고유능력 : 잡학의 달인

이브는 주특기인 행정 업무뿐만 아니라 교역, 군사, 연구, 군무, 교육, 마법 등 대부분의 학문에 평균 이상의 식견과 지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박학다식한 그녀는 어떤 복잡한 임무가 주어져도 기어코 해내고 마는 능력과 끈기를 갖추고 있으며, 다른 업무들이 겹쳤을 때에도 의외의 파훼법을 발견해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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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으, 엄청 좋다! 플레이어 뺨치는 능력치로군. 신관들은 원래 다 이정도 인가?'

능력치, 고유능력 모두 빠지는 부분 없는 팔방미인이었다. 게다가 내정이 어렵기로 소문난 어비스에 B급 정치형 클래스가 있다는 건 사막의 오아시스요, 어둠 속 한줄기 광명이라 할 수 있겠다.

등급에 대해 감이 잘 안 잡힌다면 F~E급은 일반인 수준, D급부터는 우수한 인재, C급은 나라의 요직을 차지하는 실력자들, 그리고 B급은 나라를 대표하는 주력이며 사실상 게임이 끝날 때까지 함께하는 특급 인재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B급 영웅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국력 자체가 틀려진다. 물론 A급은 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아직은 어느 나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중 후반이 넘어서야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지금은 B급이 최상타! 라고 할 수 있겠다.

로드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스테이터스 창을 닫았다.

"대충 정보는 확인했어. 나라 상황은 좀 어때?"

"……후후."

이브가 대답 대신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리며 묘한 미소를 흘렸다.

저 미소는 의미는 뭐지? 로드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왜, 왜 그래?"

"오늘은 사실상 폐하의 첫날이시기도 하니 스트레스 예방 차원에서 말씀 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어어?"

"단편적으로 말씀 드리면 '그리 좋지는 않다.'가 되겠네요."

불안하다. 대체 얼마나 상황이 안 좋으면 저러는 걸까? 하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로드는 이번엔 국가 정보 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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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자의나라 어비스〉

시대 : 기원시대

(기원시대 -〉 개척시대 -〉 문화시대 -〉 국가별 고유 시대로 발전합니다.)

수도 : 언더하임

발전방향 : 아직 발전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영토 : 2 (영토가 부족합니다. 추가적인 영토를 확장을 권장합니다.)

인구 : 50K

문화력 : 50 (교육 시설의 부족으로 문맹인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교육을 받지 못한 국민들은 지극히 원시적으로 행동할 것입니다.)

기술력 : 50 (지속된 기아로 인해 나라의 기술자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자원은 번번히 그 가족들을 위해 빼돌려지고 있습니다.)

지지율 : 20% (왕에 대한 평판이 나빠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비록 실권은 각 클랜들이 쥐고 있지만 대중들의 불만은 왕실에 향하고 있습니다.)

행복도 : 120

〈주요 자원 보유 현황〉

골드 : 3000

자원 : 적당함 (+)

식량 : 매우 부족함 (+)

(농작물 수확량과 보급량이 크게 줄었습니다. 식량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배를 굶주리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국민들은 곧 그 책임을 국가에 물을 것입니다.)

〈병력 현황〉

언더하임 : 500

드러그팜 : 200

(병력이 부족합니다. 치안 유지조차 버겁습니다. 타 국가의 침공을 막아내기 힘들 것입니다.)

〈가신 현황〉

주요 가신 : 이브(B), 베아트리체(B).

C급 : 1명.

D급 : 4명.

(핵심 무장이 부족합니다. 더 많은 인재를 모으십시오.)

〈외교 상황〉

동맹 : 없음.

본국 : 없음.

속국 : 없음.

〈진행중인 연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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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나, 무슨 좋은 말이 하나도 없냐.'

난이도 Hell(지옥)의 나라이기에 각오는 했지만, 차마 이 정도일 줄은 로드도 전혀 예상 못하고 있었다. 영토 부족, 문화 및 기술 부족, 지지율 부족, 식량 부족 등등.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 지 막막했다.

'일단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주어진 정보들을 정리해보자.'

로드는 이번엔 모든 나라들이 표시되어 있는 지도 창을 열었다.

그가 플레이하는 어비스는 대륙의 중앙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그 북쪽으로 강율이 플레이하는 기사의나라 카사르가, 동쪽으로는 야만국가 아로게쓰와 상인의나라 유나이티드. 남쪽엔 엘프의나라 알브헤임, 서쪽에는 마법의나라 오펙투스와 과학의나라 알란드가 있었다. 주위에 있는 국가만 6개국. 정말이지 최악의 위치였다. 언제 어디서 어떤 국가가 공격 해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가장 약하면서도 가장 공격당하기 쉬운 위치. 어비스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심지어 에덴으로 넘어오면서 국가의 위치들이 조절되었는데 어비스의 경우는 오히려 난이도가 더 올라간 느낌이었다.

반면 다른 국가들의 경우, 어비스를 차지하면 대륙 어느 곳이든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얻는 셈이기에 틈만 나면 노릴 것이다. 따라서 어비스가 살아남기 위해 외교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 할 수 있었다.

'딱 초반, 초반만 버티자.'

로드가 시선을 내리니 지도 밑으로 '공용 채팅창'이 보였다. 이것은 플레이어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직접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그들의 실질적인 외교 수단이었다.

이미 몇몇 플레이어들은 가벼운 인사말이나 잘 해보자는 덕담을 한마디씩 남기고 있었다. 로드도 간단하게 인사말을 남겼다. 귀찮았지만 이정도 성의는 보여야 할 듯했다.

그때 똑똑! 하면서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로드가 창을 모두 닫고는 시선을 돌렸다. 이브가 물었다.

"누구시죠?"

"……단장입니다."

"아, 들어오세요."

딸칵.

문이 열리며, 처음 보는 소녀가 방으로 들어왔다. 로드는 잠시 고민도 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달빛을 머금은 듯 보랏빛이 살짝 감도는 은발에, 제비꽃과 같은 청자색 눈망울. 다소 성장이 덜 됐지만 굴곡이 드러나는 타이트한 복장, 검은 스커트 사이로 살짝 보이는 허벅지를 감싸는 포켓. 그 안에는 단검들이 가지런히 꽂혀있었다.

이브도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그녀는 더 독특했다. 한 방에 있는데도 마치 유령처럼 희미한 느낌이었다.

'누구지?'

진성은 그녀 몰래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니 문제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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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베아트리체

소속 : 어비스 왕실 암살단

직위 : 암살단장

종족 : 하프밴시

무력등급 : (B)*

통솔등급 : (C)

지략등급 : (E)

정치등급 : (F)

B급 무력형 클래스 입니다.

고유능력 : 영혼의 계약

하르츠 가(家)의 후예로서 베아트리체는 자신의 몸을 영체화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15세가 되는 해 밴시의 피가 깨어나게 되며, 살아있는 존재와 계약을 하지 않는 한 그녀 또한 육체를 읽고 망령이 될 운명이었습니다. 그녀는 계약자에게 자신의 영혼을 바치며, 영원히 종속되기를 서약함으로써 세계에 계속 존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영혼의 계약으로 계약자와 자신의 몸을 순간적으로 뒤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계약자 : 로드 폴렌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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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무력형 클래스……! 상당히 좋다. 이 아이가 사실상 내 주력이겠구나.'

그녀가 로드의 앞으로 다가와 공손히 고개를 꾸벅 숙였다. 뭔가 본인은 절도 있는 동작을 하려는 듯 했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니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나이도 10대 중후반? 정도로 꽤 어려 보였다. 아마 여동생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기분이 좋아진 로드가 말했다.

"안녕. 내 이름은 로드 폴렌……."

그때 베아트리체의 뒤에서 이브가 맹렬하게 고갯짓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 그렇군. 카오스월드와는 달랐다. 영혼만 옮겨왔을 뿐이지. 그녀는 이 몸뚱이와 쭉 알고 지낸 사이일 것이다. 로드가 재빨리 이어서 말했다.

"……티아라는 사실은 자네도 익히 잘 알고 있겠지만 한번 말해봤네! 킹 조크! 웃게나! 하하하하!"

"……?"

베아트리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아, 좋다. 여동생 귀여워!

반면 이브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아, 이 말투가 아닌가? 왕이니까 당연히 근엄한 말투를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로드가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힉!"

그 순간 베아트리체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너무 갑작스런 반응에 로드가 오히려 더 놀랐다. 머리를 긁느라 팔을 들어 올렸을 뿐이었다.

'왜, 왜 그러지?'

로드는 양 팔로 머리를 감싼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소녀의 눈동자에서 감정을 읽었다.

그것은 '공포'. 그리고 '두려움'이었다.

"……."

갑자기 싸한 정적이 집무실에 감돌았다.

"호, 호호호! 어서 와요. 단장."

이브가 나서서 발 빠르게 수습했다.

"폐하가 좀 이상하죠? 사실 화장실을 가다가 바닥에 발이 미끄러져서 변기에 머리를 처박고 말았거든요. 그래서 좀 기억이 오락가락한 듯 해요."

'……저기요! 설정이 조금 이상합니다만!'

이브가 이어서 암살단 업무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브가 그녀의 대답을 듣는 도중 슬쩍 로드를 노려보았다.

'어이, 내가 뭘 잘못했는데!'

억울하긴 했지만 뭔가 또 마음 한 구석에서 자책감을 느끼는 로드였다. 대체 이 몸뚱이의 원래 주인은 '로드 폴렌티아'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하아, 아무튼 이브."

"네, 폐하."

"밖에 나가봐도 될까?"

로드는 시스템 창으로 확인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간단한 현황은 나와있어도 피부에 직접 와 닿지는 않았다. 나가서 직접 자신이 다스릴 나라를 눈으로 보고 느끼고 싶었다.

이브는 잠시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외출 준비하겠습니다."

========== 작품 후기 ==========

실리네 / 네? 동률픽이면 거기서 추첨으로 결정하는거 맞아요. 음, 그리고 코믹과 긴장감있는 전개를 위한 연출때문에 한건데 그렇게 느끼실수도 있군요. 의견은 존중합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구리44 / 하하 사실 아르곤이 주인공 국가 느낌이긴 한데 전작이 이르곤이라서요! 이번엔 다른 국가를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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