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7화 (7/296)

<-- 버림받은 자들의 나라 -->

그렇게 에덴에 와서 첫 나들이가 시작되었다. 로드는 신분을 숨기기 위해 후드가 달린 온 몸을 덮는 검정색 로브를 입었다. 오히려 이런 차림이 더 눈에 띄지 않겠냐고 로드가 물었지만 이브는 워낙 수상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로브 차림은 아주 흔하다고 말했다.

이브가 제일 먼저 로드를 데려간 곳은 상업지구였다. 그녀의 말로는 언더하임의 번화가 정도 되는 곳이라고 했는데, 왕실을 기준으로 왼편에 위치해 있었다.

"오오."

상업지구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로드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그녀의 말대로 번화가라 불릴만했다. 거리가 꽉 차 보일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는데 특히 놀라운 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드워프나 엘프, 하피, 수인족 등등 대륙의 온갖 종족들이 여기 다 모여있다는 점이었다.

"어이, 비켜!"

쿵! 쿵! 로드의 키보다 배는 커 보이는 거대한 코뿔소 인간이 그의 옆을 지나갔다. 넋 놓고 있다간 깔려 죽어도 할말이 없었다.

"자, 가죠."

멍해있는 로드를 보며 이브가 재촉하듯 말했다. 그녀와 로드가 나란히 걸어갔고 호위 역으로 온 베아트리체가 몇 발짝 뒤에서 주위를 경계하며 그들을 따라왔다.

"오, 아가씨! 벌써 퇴근이야?"

길가의 노점 상인이 손을 흔들며 이브에게 아는 척을 했다. 어디에서나 있을법한 평범한 광경이었지만 한가지 색다른 점은 그 상인의 머리가 '늑대'라는 것이었다. 이브 또한 수인족이었으나 쫑긋 솟은 곰돌이 귀를 빼면 인간과 거의 똑같은 반면, 이 남자는 이족 보행을 한다 뿐이지 한 마리 늑대 그 자체였다. 이브가 웃으며 말했다.

"아직 일하는 중이에요. 왕실에 신입이 와서 구경시켜 주고 있어요."

"오? 신입이라고?"

늑대 상인이 턱을 문지르며 로드를 바라보았다.

듣지 못한 설정이지만 못 맞춰줄 것도 없지. 로드가 얼굴에 익은 아르바이트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오늘부터 어비스 왕실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

"아, 그래. 자네는 어디서 왔는감?"

다른 계약자들이라면 당황했겠지만, 카오스월드의 광팬이었던 로드는 달랐다. 그는 머릿속에서 대륙의 지도를 떠올리며 적당히 어비스와 떨어졌으면서도 무난한 설정의 나라를 떠올렸다.

"에브게니아에서 왔습니다."

"아아, 그 말쟁이들 동네?"

로드가 피식 웃었다. 에브게니아는 기마의 나라다.

"그래도 그 쪽은 꽤 살만 하지 않나? 왜 이런 허름한 곳까지 왔나?"

"에이, 살만하긴요. 말 한 필씩 가지고 있는 전사들이야 모르겠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서민들이 죽어나는 건 어느 나라나 똑같아요."

"크하하하! 그렇긴 하군! 맞는 말이야!"

늑대 상인이 유쾌하게 웃어댔다. 어떻게든 잘 속여 넘긴 듯 했다. 이번엔 그의 시선이 베아트리체에게로 향했다.

"오오오! 우리 단장 나으리도 왔구만!"

두 사람의 뒤에서 머뭇머뭇 거리던 베아트리체가 이내 수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늑대 상인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어이, 이 아저씨야. 당신이랑은 종족이 틀려! 종족이!

"크으! 기분이다. 오늘은 내 반값에 주도록 하지! 어떤가?"

"네?"

로드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뭘 파는 노점이지? 느낌상 먹을 것을 파는 곳 같기는 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이브는 로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녀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저희는 괜찮아요! 그리고 이 친구는 윗세계에서 온지 얼마 안 돼서 아직 그런걸 먹기엔……"

"오오! 궁금한데요?"

로드가 재빨리 말했다.

"먹어 보고 싶어요. 두 선배님도 드실 거죠?"

결국 로드는 이브에게 받았던 지갑을 꺼내 세 명분의 돈을 지불했다.

그리고 잠시 후 늑대 상인이 건넨 것은…

'헉!'

거대한 전갈이 통으로 막대에 꽂혀있는 전갈 꼬치였다.

'엄청나군.'

예전에 로드가 여행 차 방문했던 중국 야시장에서 본 전갈 꼬치와는 크기부터가 달랐다. 비쥬얼이 훨씬 끔찍했고 다리도 몇 개나 더 달려있었다.

지켜보고 있는 이브는 걱정부터 되었다. 아무리 다른 차원에서 온 사람이라지만 몸뚱이는 허구한 날 값비싼 고기만 먹던 왕이었다. 돈이 없는 하층 서민들이나 사먹는 먹거리를 입에 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가 타이르듯 말했다.

"저기, 정 못 먹겠으면……"

"오, 생각보다 먹을만하네."

로드가 전갈을 야무지게 와그작 와그작 씹어 먹으며 중얼거렸다. 지켜보던 두 여자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크흐흐! 이거 윗세계 샌님이라 생각했는데 제법 맛은 아는구만! 아하하!"

"이거 집게 부위도 다 먹는 건가요?"

"그럼! 그럼! 집게가 제일 맛있다네!"

로드가 전갈을 씹고 있는데 베아트리체가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머리."

"응?"

"…머리 괜찮아요?"

'어이! 정말로 그 말도 안 되는 화장실 변기 설정을 믿는 거냐!'

*

세 사람은 전갈꼬치로 가볍게 배를 채우고는 다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이브."

"네, 폐하."

"정말 그 전갈 같은 게 인기 있는 먹거리인 거야?"

이브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언더하임 사람들에게 그 정도면 최고의 먹거리라 할 수 있죠. 쥐나 큰 곤충, 혹은 작은 몬스터들의 살점같이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거라면 특히 좋아요."

"……식량 상황이 많이 열악한가 보네."

"사실 그렇죠. 이 땅은 농사를 짓기에는 지질 조건이 몹시 나쁘거든요."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바닥의 흙을 한 움큼 집었다. 보통 흙보다 더 짙은 빨간색을 띠고 있었다. 그녀가 손바닥을 펼치자 흙이 고운 가루처럼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농사에 대해 잘 모르는 로드라도 지질 조건이 썩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에덴의 세계관에는 사막이 없다. 단 사막화가 진행되어가고 있는 황무지는 있는데 그곳이 바로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버려진 땅'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살지 않는 이 황량한 곳에 대륙 각지에서 낙오자들과 문제아들이 나라의 눈을 피해 모여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국가가 바로 '어비스'였다.

'버려진 땅 위에 사는 버려진 사람들인가.'

그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기로 한 이상, 식량 부족은 땔래야 땔 수 없는 운명과 같을 것이다. 로드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흙과 모래밖에 없는 황무지에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아온 것이다. 농업만으로는 이 인구를 충족시킬 수확량을 기대하기 힘들 테고 뭔가 고정적인 다른 수입원이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조금 더 돌아보면 알 수 있겠지.'

그때 상념에 잠겨있는 로드의 몸을 누군가가 툭 치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로드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어머, 괜찮으세요?"

이브가 물었다.

"응."

로드가 뒤를 돌아보니 어린 꼬마 아이 둘이 그를 지나쳐 거리를 내달리고 있었다.

'잠깐, 이거 설마?'

이브도 낌새를 눈치챘는지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로드가 다급히 로브의 안 주머니를 살펴보았다. 지갑이 없었다! 세상에, 안주머니에 넣은걸 어떻게 알아보고 소매치기를 했단 말인가?

'크으, 역시 무법자의 나라야. 아직 애들인데도 소매치기의 급이 다르군.'

꼬마들은 잽싸고 날렵했다. 어른인 그들이 지금 뛰어가도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거리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덩치가 작은 꼬마들 쪽이 유리했다.

'끙, 이를 어쩐다?'

바로 그때, 베아트리체가 팟! 하는 소리와 함께 거리를 내달렸다.

그녀는 주위의 인파들을 요리 조리 피하면서도 엄청난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도 금방 인파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우리도 가보자!"

"네."

두 사람도 꼬마들과 베아트리체를 찾으러 뛰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아야!"

"아파아!"

베아트리체가 꼬마들을 붙잡아 바닥에 눕혀놓았다. 소란스러운 광경이었지만 주위 사람들은 가끔 눈길 한번 던질 뿐, 그대로 자기 가던 길을 갔다. 이 동네에서는 그냥 흔한 광경인 듯 했다.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지갑은?"

꼬마들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여태껏 단 한번도 어른들에게 잡힌 적이 없었는데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당해버린 것이다.

꼬마들이 멍하니 있자 베아트리체가 냉랭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다시 한번 묻겠다. 지갑은?"

꼬마 하나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로드의 지갑을 꺼내 바닥에 내려 놓았다.

스르릉!

아이들을 무릎과 왼팔로 제압한 채로, 베아트리체가 비어있는 한 손을 써서 허벅지에 맨 단검을 꺼내 들었다.

"왕의 피습 및 탈취 행위. 암살단장의 권한으로 즉각 처형하겠습니다."

"……!"

그녀의 단검이 번쩍 들어올려졌다.

"야! 야! 그, 그만!"

로드가 다급히 다가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

"이게 무슨 짓이야? 고작 이런 일로 죽일 필요까진 없잖아."

베아트리체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뭔가를 깨달았는지 '아' 하는 탄성을 흘리며 단검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벗어라."

"……엉?"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폐하께서 너희들의 몸을 취하겠다고 하시니, 성은에 감사해야 할 것이……"

"그게 아니잖아아!"

로드가 귓불까지 붉어져서 소리쳤다. 사람을 로리콤으로 만들어도 정도가 있지!

베아트리체가 다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럼 어떤 처벌을 원하십니까?"

"처벌 안 할거야. 돈도 되찾았고."

그녀가 경악한 눈으로 로드를 바라보았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처벌을 안 한다는 선택지는 아예 그녀의 머릿속에 없었던 모양이었다.

"뭐, 정 처벌이 필요하다면 하는 수 없지."

로드는 그렇게 말하며 쪼그려 앉아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친히 이마에 딱밤을 한대씩 날려 주었다.

"아, 아야!

"아파아!"

"이제 됐지?"

로드가 베아트리체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듯 머뭇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가 저 멀리 노점을 하고 있는 늑대 상인을 바라보며 외쳤다.

"저기요, 아저씨! 반값 세일 아직도 유효하죠?"

*

로드는 두 아이들에게 전갈 꼬치를 하나씩 쥐어주고는 그들이 살고 있다는 고아원으로 함께 향했다.

고아원은 바로 이 근처에 있었는데, 그곳의 주인은 매부리코에 마치 마녀를 연상케 하는 인상의 늙은 여성이었다.

"아아, 미셸! 라우!"

그녀가 허겁지겁 달려와 두 아이를 한번에 와락 끌어안았다.

"말도 없이 사라져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그런데 저 분들은?"

그녀는 로드 일행과 죄지은 표정의 아이들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너희들 무슨 잘못 했구나. 설마 또 도둑질을 했니?"

꼬마들이 훌쩍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배고파서. 사과 먹고 싶어서."

"사과만 사먹고 돌려주려고 했어! 정말이야!"

노파가 두 꼬마의 이마에 꿀밤을 먹이고는(로드의 딱밤과는 소리의 격이 달랐다.) '어서 들어가라! 어서!' 하고 외쳤다. 두 꼬마가 부리나케 고아원 안으로 들어간 후에, 노파는 본인의 썩 좋지 않아 보이는 허리를 연신 혹사시켰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폐를 끼쳤군요. 요즘 교단이 어려워서 풀죽만 끓여 먹였더니 배가 고프다며 기어코…… 대체 어떤 말씀으로 사죄를 드려야 할지……."

로드의 시선은 그녀의 모자에 향해 있었다. 저 노란 눈동자의 검은 고양이 마크는 마녀의나라 켈타인의 마녀회 문양이었다. 인상만 마녀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마녀였다.

"어느 교단이십니까?"

로드가 물었다.

"아, 흑마술의 칼리 교단입니다. 여기 옆의 건물에 새를 들어 연구를 하고 있죠."

대놓고 흑마술 교단인 것을 밝히다니…… 로드의 눈이 가늘어 졌다. 마녀와 어린 아이들. 마녀가 부모가 없는 고아원을 운영한다. 그림이 분명해도 너무 분명하지 않은가?

"실례지만, 흑마술 교단에서 무슨이유로 고아들을 키우고 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예?"

그 말을 듣는 순간 노파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대성통곡을 터뜨렸다.

"아이고오오! 나으리! 나으리도 저희를 의심하는 겁니까아아아!"

'어, 어라?'

========== 작품 후기 ==========

kss0419 / 전작은 '왕들의게임'이고 아르곤으로 플레이합니다. 조아라에서는 습작이라 이제 못보시고 카카오페이지나 네이버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