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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13화 (13/296)

<-- 탄탄한 내정은 국력! -->

유니벨이 나가고, 로드는 베아트리체를 의무실로 보내고는 이브와 함께 어지럽혀진 집무실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브."

로드가 서류를 한데 모아 테이블 위로 쿵쿵 내리 흔들며 말했다.

"네, 폐하."

"이제 전부 말해줘도 괜찮지 않아?"

"……"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두꺼운 책을 책장에 꽂아 넣으며 한숨을 한번 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차분한 어조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어비스 내부에는 '3대 세력'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세력은 왕실. 왕인 로드 폴렌티아와 암살단장인 베아트리체가 속해있으며, 가용한 병력으로는 타국의 기사단 격인 서른 명의 암살단원들, 그리고 200명의 왕실 친위대를 보유하고 있다.

두 번째는 세력은 어비스를 대표하는 최대 규모의 상단인 '흑익'을 필두로 한 상인 연합이다. 우두머리는 흑익의 상단주인 '유니벨 풀하우스'이며 300명의 사설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언더하임에 뿌리내리고 이 나라와 함께 성장해왔으며 지금의 '암시장'과 '상업지구'를 만들어낸 장본인들이다. 상인세력이지만 나라의 재정에 크게 공헌하고 있어 세 세력 중에서는 국민들의 지지도가 가장 높았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마틴 워커가 이끄는 '마피아'이다. 마틴은 명실상부 어비스의 최강자이자 최고 권력자이며, 그의 조직은 200명의 마피아 조직원들과, 언더하임에만 400명의 하위 조직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소 600명 이상의 병력이다.

이브는 로드를 왕위에 옹립한 인물이 다름아닌 마틴이라고 했다. 어비스의 왕좌가 공석이 되었을 때, 마틴은 본인의 여러 지저분한 커리어들 때문에 직접 왕위에 오르는 건 문제가 생길 것이라 판단, 한 때 명망 높았던 몰락 가문의 귀족 자재이자 좀 더 상징적인 의미가 큰 로드 폴렌티아를 왕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본인은 뒤에서 왕을 보필하는 역할을 수행했으나 나라의 실권은 모두 그와 마피아들이 쥐었다. 특히 국가 기반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테라광산이 국가가 아닌 마틴 개인의 소유지가 되었다는 것만 봐도 그랬다.

"……그 광산 전체가 그 사람 거라고?"

"네. 테라가 채굴되는 우수한 광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나라가 궁핍한 건 바로 이 때문이에요."

테라광산의 채굴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마틴은 굶주리는 언더하임의 국민들을 고용하여 광물을 캐게 했다. 모든 광물들은 마피아 조직의 손에 들어오며 대신 광부들은 일급과 식사를 지급받는다. 테라를 직접 채굴한 광부에게는 성과금을 지급하며, 만약 광물을 빼돌릴 시에는 마피아들의 끔찍한 보복을 받게 된다.

그리고 마피아들은 테라와 광물들을 팔아 얻은 수익의 '일부'로 타국에서 식량을 사들여와 어비스 국민들을 상대로 판매했다. 광부들은 광산에서 일하면 그들의 끼니는 해결할 수 있지만, 가족들을 부양해야 했기에 그나마 받은 돈을 다시 전량 소모하여 마피아들로부터 식량을 구매해야만 했다. 식량의 매입 및 매출 또한 마피아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즉, 마틴은 일자리를 핑계로 국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왔으며 그나마 노동의 대가로 준 금액 또한 노동자들에게 식량을 비싼 값에 구매하게 하여 다시 회수해 버리는, 사실상 지출 없는 노동력 착취 행위를 반복해왔던 것이다.

어비스의 교육 수준은 낮은 편이다. 국민들은 입장에서는 마틴은 그저 그들의 사장으로서 일을 주고 먹고 살도록 도와주는 존재라고 여길 뿐, 그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다들 직장을 잃을 까봐 노심초사하며 마틴의 눈치만 보는 상황이었다.

힘든 광부일을 하며 하루하루 힘들게 먹고 살지만, 생활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모든 불만들은 나라의 왕좌에 앉아있는 로드 폴렌티아와 왕실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정작 로드 폴렌티아도 실권 없이 마틴에게 붙들려있는 꼭두각시. 타의에 의해 책임자로 내세워져 국민들의 불만을 받아들이는 악역 역할일 뿐이었다. 한번은 로드 폴렌티아가 마틴에게 저항한 적이 있었으나, 그 일의 대가로 상당한 굴욕과 망신을 겪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그는 모든걸 내려놓고, 여자와 재물을 밝히는 무능하고 방탕한 한량으로 전락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데 로드 폴렌티아의 방탕한 생활이 얼마나 거슬리고 불쾌했겠는가, 따라서 왕실의 지지도는 더욱 바닥을 기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현 상황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정말 골치 아프네.'

이야기를 모두 들은 로드는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이 나라에 이런 비밀이 숨어있었을 줄이야. 시작하자마자 국가 지지율이 비정상적으로 낮았던 건 이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똥 치우기 인가.'

실제 하는 세계인 에덴에서 펼쳐지는 이번 주신전 같은 경우, 카오스월드에서처럼 접속하자마자 플레이어가 그 나라의 왕이 되어있는 형태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왕이었던 자의 영혼을 뒤바꾸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방식 때문에 로드의 플레이 체감 난이도는 더욱 올라갔다. 기본적으로 나라가 어려운 상태에서 왕의 방관과 무능함으로 상황이 더욱 어려워 진 상태가 되었고, 힘이 되어줘야 할 인재들조차 이브나 베아트리체 같은 최측근들을 제외하면 등을 돌리고 있는 판국이었다.

로드는 새로운 왕으로서 나라를 키워나가는 게 아닌, 이미 누군가가 심각하게 망쳐놓은 것을 수습해야 하는 입장이 된 셈이 되었다. 이쯤 되니 로드는 원작인 카오스월드의 난이도인 '지옥'으로도 부족함을 느꼈다.

'불지옥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로드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의자에 풀썩 앉았다. 그리고 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죠?"

이브가 물었다.

"어떻게 하긴."

손가락으로 이마를 툭툭 두들기던 로드가 씩 웃어 보이며 말했다.

"어떻게든 엉킨 실타래를 풀어나가려고 애를 써봐야겠지."

"……하지만 당분간은 마틴의 눈에 들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

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이쪽 세력이 너무 약하니까 그 편이 내 안위에는 좋겠지. 하지만 말야, 기에 눌려서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면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기만 할 거야."

로드가 펜을 빙그르르 돌리다가 착하고 잡았다.

"저번 왕처럼 말야."

다른 나라의 경쟁자들은 이 순간에도 점점 더 앞서나가고 있을 것이다. 내부 문제는 최대한 빨리 해결을 보고 그들을 따라잡아야 했다.

로드가 주먹을 꽉 쥐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한 번 해보겠어."

*

로드가 에덴에 온 첫날 이후 시간은 쉴새 없이 빠르게 흘러갔다.

우선 로드가 연구 탭에서 정보 특화 체계를 선택함에 따라 따라 왕실 내에 정보부라는 신설 부서가 세워졌다. 그 요원들은 언더하임의 정보길드 중 빼어난 인물들로 이브가 직접 선출했다.

덕분에 지휘관 창의 '병력 파트'에는 기존의 검병과 궁병말고도 새로운 특화 병종이 활성화되었다. 바로 '어비스 스파이'이다. 로드는 현재 사용 가능한 최대치인 스파이 여섯을 모두 훈련시켜 어비스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6개국에 뿌려 두었다.

어비스 스파이는 적진에 숨어들어 전서구나 통신 수정구등을 통해 적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보고한다. 뿐만 아니라 플레이어인 로드는 24시간에 한번 지휘관 창을 통해 스파이의 눈으로 직접 주위를 살펴볼 수 있었다. 즉, 스파이가 로드의 눈이 되어 주는 셈이다.

그런데 스파이를 파견 보내는 작업을 하던 와중에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어비스의 동쪽에 위치한 아로게쓰에서 병력의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그들은 서쪽인 어비스 방향으로 전력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로드는 입가가 바싹 말랐다.

'역시 가장 먼저 움직이는 건 아로게쓰인가……'

야만국가 아로게쓰.

아로게쓰는 동남쪽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목민들이 결집하며 만들어진 국가로, 대추장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여럿의 추장들을 거느리는 부족 결합 형태의 국가이다.

아로게쓰의 전사들은 싸움을 놀이처럼 즐기며, '진정한 전사'를 칭송한다. 그래서 순수한 힘의 겨룸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쟁 중에 세워두는 전략이나 계책 같은 것들을 '치졸하고 비겁한 행위'라고 단정 지을 정도였다.

아로게쓰의 강점은 역시 초반이 몹시 강력하다는 점이다. 초반부터 '아로게쓰 엑스 워리어'라는 강력한 특화 병력을 운용할 수 있는데, 특화 병종답게 일반 병종인 '검보병'으로는 막아내기 버거울 정도로 화력이 뛰어났다. 대신 중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초반부인 '기원 시대'에 재미를 보는 게 중요했다. 따라서 초반 최강인 그들이 초반 최약인 어비스를 노리는 건 당연한 선택처럼 보였다.

'그럼 어디 한번 살펴 볼까?'

아직은 추측 단계일 뿐, 좀 더 명확한 확신이 필요했다. 로드는 어비스의 국가 고유 능력인 〈그림자에 숨은 자들의 이야기〉의 효과로 아로게쓰의 현황을 열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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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국가 아로게쓰

- 아로게스 엑스 워리어 '300' 훈련 중.

- 궁병 '100' 훈련 중.

- '강화된 칼날' 연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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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병력 증강에 공격력 연구까지. 아로게쓰의 플레이어는 내정 관리는 조금도 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초반부터 이렇게 무리하는 걸 보니 전쟁을 준비하는 게 거의 확실해 보였다.

이제 막 주신전을 시작한 단계다. 왕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왕권을 강화하며, 각 나라마다 있을 수 밖에 없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소해야 할 상황에 아로게쓰는 모든 자원을 긁어 모아 병력을 증강하고 있었다.

비단 카오스월드뿐만 아니라 어떤 게임이든, 게이머들은 이 극단적인 전략을 흔히들 이렇게 많이 부른다.

'초반 올인 전략.'

로드는 침착하게 지휘관 창을 켜서 공용 채팅방에 접속했다.

이미 몇몇 플레이어들이 열심히 수다를 즐기고 있었는데 그 수가 꽤 많았다. 다들 자기 일들은 다 끝내고 여기서 놀고 있는 걸까? 로드는 그런 생각을 하며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마침 딱 아로게쓰의 플레이어도 있었다.

'흠, 이쪽 세계에서의 이름은 자무카구만.'

로드는 잠시 이야기의 화제가 멎어 들기를 기다렸다가 잠잠해진 틈을 타 말을 입력했다. 지휘관 창 밑에 키보드 모양의 팝업 창이 나타나서 그것으로 입력할 수 있었다.

- 로드 : 이거야 원, 무서워서 발전을 할 수가 없네요.

몇몇 플레이어들이 '왜요?' '뭐가요?'하고 관심을 보였다.

로드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다름아닌 정보로 먹고 산다는 어비스의 왕이다. 최약체 약소국이었지만 적어도 이 채팅창에서만큼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나라가 어비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 로드 : 아로게쓰요. 초반부터 모든 자원 다 털어서 병력을 계속 모으고 있으니 주변국으로서 겁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반응은 로드의 예상보다 더 격렬했다. 플레이어들은 물어뜯듯이 자무카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 인가요?'

'올인 러쉬?'

'누구 치려고?'

'중부는 벌써부터 재밌게 돌아가네요.'

등등.

모든 플레이어들이 아로게쓰가 초반에 강력한 국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힘을 그냥 썩히지 않을 거라는 사실 또한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로드가 운을 띄워주자 기다렸다는 마냥 마녀사냥에 가까운 견제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자무카는 채팅창에 접속해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로드의 말이 거짓이라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은 이야기를 먼저 꺼낸, 그리고 정보 국가인 어비스쪽의 이야기를 더 신뢰할 것이다. 지금 와서 거짓이라고 해봐야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로드는 슬쩍 웃었다.

'모든 전략은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

초반 올인 전략을 사용하는 플레이어가 가장 싫어하는 것. 그것은 바로 정보의 유출이었다.

========== 작품 후기 ==========

Lgb / 그렇습니다. 강해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만 괜히 난이도가 지옥이 아니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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