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20화 (20/296)

<-- 유세 기간 -->

"괴, 괴물이다……!"

"저런걸 어떻게 이겨!"

"으으으, 찐따들 노는 곳에 저런 게 왜 온 거야! 마이너 리그를 존중 하라!"

베아트리체의 압도적인 활약으로 조직원들은 점점 전의를 상실해 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맨손으로 적진에 파고들어 자기보다 머리 하나 큰 남자들을 손수 바닥에 하나하나 처박아 버리는 위용을 보았다면 누구나 전의가 꺾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감히 내 아우들을……!"

피닉스가 베아트리체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도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자신이 그녀를 막는 것이 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베아트리체도 기척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감정 없는 청자색 눈동자에 피닉스의 모습이 비춰졌다.

"네 이년!"

"……?"

피닉스가 손가락을 뻗어 그녀를 척! 가리켰다. 강자를 앞에 두고도 당당한 보스의 모습에 그의 조직원들이 눈을 빛내며 다음 한마디를 기다렸다.

"너를 지명하겠다아아!"

"……"

"……"

좌중이 침묵으로 뒤덮었다.

"소녀여, 돈은 얼마든지 줄 터이니 어느 업소인지 밝혀라!"

"혀, 형님."

그의 옆으로 다가온 칠리가 땀을 삐질 흘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은 업소 아가씨가 아니라 암살단장……"

"그렇군! 이번엔 암살단장 콘셉트인가! 내가 그녀의 팬인 건 또 어떻게 알고! 그런데 암살단장이라면서 왜 메이드복이지?"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하지만 난 그러한 엇갈리는 콘셉트에 오히려 더 점수를 주고 싶구나. 어느 업소장의 기획인지는 모르겠으나 혁신적이야! 훌륭해!"

"아, 형니임!"

베아트리체가 공포스러운 기운을 흩뿌리며 또각 또각 다가왔다. 칠리가 헉! 하는 겁먹은 소리를 내며 슬금슬금 물러나는 반면 피닉스는 여유롭게 어깨를 풀었다. 그의 어깨가 움직일 때마다 뚜둑! 뚝! 하는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져 갔다.

슈콰악!

먼저 공격해온 쪽은 베아트리체였다. 그녀가 기습적으로 돌진하여 곧게 편 손날을 휘둘렀다. 검이 아닌 맨손일 뿐이었지만 마치 대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피닉스가 공격을 피하며 웃었다.

"크하하! 역시 암살단장 콘셉트야! 쉽게 수청을 들지는 않겠다는 건가!"

"아, 그게 아니라 진짜 암살단장이라고요!"

칠리가 답답한 듯 소리질렀으나 피닉스는 듣지 않았다. 대신 그는 폭풍같이 몰아치는 팔과 다리를 피해나가며 이 전투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했다.

'정했다.'

허리를 기역자로 숙여 베아트리체의 돌려차기를 피한 그가 그녀의 치렁치렁한 메이드복 치마를 붙잡고 확 잡아당겼다.

부우우욱!

치마의 삼분의 일이 통째로 찢어나가며 그녀의 뽀얀 맨다리가 드러났다.

"하하하하! 어떠냐?"

"……"

베아트리체가 주먹의 방향을 꺾어 정교한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퍼억! 안면을 얻어맞은 피닉스의 머리가 젖혀졌으나 자세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의 반대편 팔은 이미 그녀의 메이드복 상의 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지이익!

메이드 복이 뜯겨나가며 윤기가 흐를 것만 같은 복부와 귀여운 배꼽, 그리고 살짝 보이는 보라색 브라가 드러났다.

"……!"

베아트리체가 당황하며 뒤로 스탭을 밟아 물러났다. 피닉스는 코피가 철철 흐르는 처참한 몰골이었지만, 마치 개선 장군과 같은 기세로 그녀의 찢어진 옷자락을 들어올렸다.

"와아아아아!"

그 모습을 본 조직원들이 격렬히 환호했다. 만세를 부르고 휘파람 소리를 냈다.

'뭐, 뭐냐? 이 싸움은……'

로드는 어이가 머릿속을 가출하여 안드로메다로 갔음을 느꼈다. 이것이 바로 뒷골목의 싸움이란 건가? 그 신사력은 런던에 사는 영국 신사들의 뺨을 왕복으로 후려갈길 듯 했다.

이상함을 느낀 로드가 피닉스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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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피닉스 다크파이어

소속 : 어비스 조폭클랜 황동파

직위 : 황동파 두목

종족 : 인간

무력등급 : (C)*

통솔등급 : (D)

지략등급 : (F)

정치등급 : (F)

C급 무력형 클래스 입니다.

고유능력 : 집념의 도전자

피닉스는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를 만나면 오히려 더 불타오르는 성향이 있습니다. 강자로부터 나오는 모든 방해 효과로부터 해방되며, 일시적으로 능력치 상승 보너스를 부여 받습니다. 또한 피닉스는 거의 본능적으로 강자의 약점을 간파해내어,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과 끈질김을 보입니다. 이 효과는 자신보다 높은 무력 등급 클래스를 상대했을 때만 발현되며,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강한 상대에게는 발현하지 않습니다. 또한 본능에 의존하기 때문에 약점 간파가 어떤 식으로 발현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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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런 거였냐.'

베아트리체의 무력등급은 B. 피닉스의 고유능력 효과가 적용된다. 그러니까 피닉스는 베아트리체의 약점으로 '노출'을 선택한 것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본능에만 의존한 약점 간파 능력이라지만 이건 그냥 본능에 충실할 뿐인 것 같은데……'

그런데 또 황당한 건, 이게 먹히고 있단 점이었다. 본래는 실력 차가 커서 일방적으로 밀리는 싸움이 되어야 했지만, 피닉스의 공격에 베아트리체가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로드는 불안 반 긴장 반으로 베아트리체의 싸움을 지켜 보았다.

전엔 그 부끄러운 차림을 보여 주고도 괜찮았으면서 이번엔 또 왜 이렇게 부끄러워한단 말인가?

"차아아아압!"

"……�!"

피닉스는 신나게 얻어맞아 코와 입술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집요하게 베아트리체의 옷만을 공략했다. 그는 왼쪽 다리를 내주는 대신 그녀의 치마를 완전히 잡아 뜯어 양쪽 맨다리를 모두를 드러내게 했으며 부러진 코뼈를 재차 희생하는 대신 상의를 잡아당겨 깜찍한 리본이 달린 브라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뻐억! 이번엔 베아트리체의 무릎이 그의 복부에 작렬했으나 그 와중에도 피닉스는 마지막 남은 아슬아슬한 하의 조각을 붙잡아 벗겨내 그녀의 팬티를 드러내게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거리를 벌렸다.

착 달라붙어있는 속옷으로부터 탱탱한 둔부의 궤적이 드러나자 조직원들로부터 '우오오!'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아예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도 있었다.

"……"

베아트리체는 얼굴을 붉히며 전투 자세를 취해야 할지 몸을 가려야 할지 모르는 어정쩡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분명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는 건 피닉스였는데 이상하게 지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이대론 조금 위험한데.'

로드가 아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 틀리면 일기토고 뭐고 병사들을 동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병사들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까마득한 상관이 당하고 있는 것이라 나름대로 자제하고는 있었지만, 그들의 기대감 가득한 눈빛과 벌려진 입, 거친 숨소리로 봤을 때 속으로는 피닉스를 응원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 틀림없었다.

그야말로 놀라운 상황, 서로 양립하는 물과 기름과 같은 왕궁 병사들과 조폭들이 하나가 되는 대 통합을 피닉스는 이룩해낸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소속은 의미가 없었다. 그저 본성에 충실한 수컷들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매우 처참한 몰골의 피닉스가 기세 좋게 팔을 척 뻗으며 소리쳤다.

"다음은 속옷이다! 암살단장 콘셉트의 소녀여! 내 그대의 실오라기 하나 없는 은밀한 나체를 여기 있는 모든 남자들에 진상할 것이다!"

"우와아아아!"

조직원들이 아지트가 떠나가라 환호성을 내질렀다. 심지어 그 환호에 동참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로드가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든 해야겠군.'

물론 로드도 이 뒤의 상황이 궁금하긴 했지만(몹시 궁금하긴 했지만) 자신만의 것인 소중한 베아트리체의 나체를 다른 냄새 나는 남자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기에 손을 쓰기로 했다.

로드는 피닉스를 바라보았다. 저런 망상증 환자를 상대하기 위해선 그 망상을 맞춰주는 게 최고다.

피닉스가 다시 달려들려고 하는데, 로드가 재빨리 앞으로 나와 손뼉을 짝짝 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자, 자, 거기 삼촌! 거기까지 해요. 더 이상 우리 상품을 훼손하시면 추가 청구 들어가요!"

피닉스가 고개를 홱 돌리며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헉! 아, 안 되는 거야? 이제 막 달아올랐는데?"

"저희도 장사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이보시게! 사장! 돈은 얼마든지 지불하겠다고!"

"흐으음-"

로드가 턱을 매만지며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어쩔 수 없군요. 행사는 여기까지만 하고, 그쪽 고객님은 바로 침실로 모실 테니 준비하세요."

'치, 침실!'

피닉스의 두 눈에 하트표가 떠올랐다. 그 순간 베아트리체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냅다 피닉스의 가랑이 사이를 올려 찼다.

"기허허허헉!"

피닉스가 입에서 거품을 물며 몇 번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혼절해버렸다.

"혀, 형님!"

"이럴 수가, 여기서 쓰러지시면 안됩니다! 이제 팬티만 남았다구요!"

"일어나!"

바닥에 주저앉은 조직원들이 나라 잃은 우국지사 마냥 오열했다.

그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로드는 베아트리체에게 다가가 걸치고 있던 로브로 그녀의 몸을 덮어주었다.

"수고했어."

로브를 받아 든 그녀가 눈물 젖은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끄덕해 보였다.

'크헉!'

로드는 그 강렬한 귀여움에 심장이 멎어버릴 뻔 했다. 아아, 역시 구해주길 잘했어. 로드가 고개를 돌려 병사들에게 명했다.

"체포해."

*

피닉스 다크파이어는 천천히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니 온 몸의 지끈거리는 통증이 제일 먼저 그를 반겨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격렬하게 그를 반기는 것은 가랑이 사이의 통증이었으니, 잠시 남자로 태어난 사실을 후회했을 정도로 심히 고통스러웠다.

피닉의 몸은 양 팔이 밧줄에 묶인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으며 그의 부하들도 마찬가지 신세로 구석에 적당히 박혀 있었다.

"아, 일어났어?"

의자에 앉아 병사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던 로드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너, 너는 대체 누구냐?"

피닉스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로드 폴렌티아다."

"크윽! 정말로 왕이란 말이었던 말인가? 날 속이다니!"

아무도 속인적 없다. 라고 로드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으으, 꼭두각시 왕 주제에! 마틴 형님이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꼭두각시라……"

로드가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대꾸했다.

"그 꼭두각시만도 못한 졸개들한테 그런 소릴 들으니 기분이 좋지는 않네."

"뭐, 뭣?"

"그리고 너희 조폭들 말야."

로드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귀를 후비며 말했다.

"힘을 합치기만 하면 능히 어비스의 제4세력이 될만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거잖아? 그런데도 끊임없이 분열하기만 하고, 툭하면 의미 없는 영역 싸움이나 하지. 한심해. 너희들이 무슨 동네 개들이냐?"

"뭐, 뭐라고?"

개라니! 피닉스는 충격과 통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조폭생활을 하면서 이런 참담한 폭언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아무리 천하의 마틴일지라도, 1위 세력인 황동파를 이끌고 있는 그에게 이런 식의 막말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로드는 계속해서 폭언을 이어갔다.

"그런 소인배 근성이니까 마이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야. 듣자 하니 너희, 벌어들인 상납금의 일부를 다시 마틴의 마피아들에게 꼬박꼬박 가져다 바쳐야 한다며? 어휴, 명색이 조폭이라는 놈들이 쪽팔리지도 않나."

"이, 이, 이 새끼가!"

벌떡 일어난 피닉스가 로드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뒤에서 나타난 베아트리체가 그를 제압하여 다시 바닥에 깔아뭉갰다.

"크윽!"

"……폐하께, 예를 지켜."

피닉스는 화들짝 놀랐다. 그렇다면 아까 상대했던 저 여자가 정말로 그 유명한 귀검 베아트리체였단 말인가!

몸 위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의 무게에 피닉스는 거대한 바위에 깔린 마냥 꼼짝달싹 할 수 없었다.

'……흠흠.'

물론 등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살갗의 감촉이 좋은 건 별개의 이야기였다. 피닉스는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여 다시 분노를 끌어올렸다.

"……네 놈, 그런 소리를 잘도 지껄이는구나!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마틴 형님의 무서움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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