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36화 (36/296)

<-- 그녀들과의 외출 -->

모험가가 유쾌하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네요. 그 깐깐한 시장 상인들이 맥주를 헐값에 팔아 주다니! 덕분에 저 같은 주당은 요즘 살맛 납니다."

"뭐, 축제니까요."

"하하, 그렇죠!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승리에 목말라 있었습니까? 살면서 이렇게 가슴이 뜨거워진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직접 국민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로드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모험가 연합이시면, 테라 광산의 던전에도 가보셨겠군요."

"아, 물론이죠!"

로드가 그 질문을 해준 게 기쁘다는 듯, 그가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조금 위험하긴 해도 우리 같은 모험가들에겐 일확천금의 꿈과, 생계를 유지하는 자금까지 조달할 수 있는 소중한 곳입니다. 어비스는 모험가들에게 관대한 편이에요. 이 근방에서 가장 큰 던전인데 출입비도 저렴하고, 거기서 얻은 품목은 우리의 재량에 따라 팔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다른 곳의 던전은 이미 발굴이 끝났거나, 쥐꼬리만한 보물들을 미끼로 폭리를 취하거나, 둘 중 하나거든요."

모험가는 묻지도 않은 던전 이야기를 술술 꺼내며 열을 올렸다.

"그래서 야만인들이 쳐들어온다고 했을 때, 얼마나 좌절했는지 모릅니다. 그 꽉 막힌 놈들이 던전을 온전히 개방할 리 없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도 들고 일어났습니다! 모험가 연합은 타국 출신이 많지만, 모두들 목숨을 걸고 싸웠죠. 우릴 키워준 곳은 고향이 아니라 이 나라 어비스니까요."

로드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모험가 연합의 도움이 컸다고 들었습니다."

"에이, 뭘요. 무기 좀 만들고, 매복해 있다가 조금 거들어 준 게 전붑니다. 전투는 조폭 클랜 분들이나 왕실 쪽에서 다 했죠. 사실상 로드 폴렌티아의 역할이 가장 컸지만요."

로드는 자기 이야기가 나오자 움찔했다. 남 앞에서 자신의 무용담을 듣고 있으려니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심지어 로드의 이야기를 하던 그가 돌연 '로드 폴렌티아를 위하여!' 라는 건배사를 하며 맥주잔을 들어 올리자 주위 사람들이 '위하여!'라고 후창했다. 로드도 잔을 들어 올리는 시늉만 하고는 낯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로드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에게서 던전에서의 모험담을 듣고 있는데 마침 볼일을 끝낸 유니벨과 베아트리체가 돌아왔다.

"……주인님, 저 왔어요."

베아트리체가 그렇게 말하자 모험가가 흠칫하며 로드와 그녀를 휙휙 번갈아 보았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아, 저기! 이건 그러니까…!"

모험가는 로드의 해명은 듣지도 않은 채 음흉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이야, 놀랐습니다. 보기보다 대담한 놀이를 즐기시는군요."

로드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모험가가 다 이해한다는 듯 매우 인자한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저도 한때 그런 로망이 있었죠. 아무튼, 같은 남자로서 존경스럽습니다."

"글세 그런게 아니라까요!"

"그럼, 방해꾼은 이만! 다음에 인연이 닿으면 또 봅시다! 하하하!"

휘척 휘척 멀어져 가던 모험가가 돌연 맥주잔을 높이며 '주인님을 위하여!'라고 외쳤다. 분위기가 워낙 좋아서 그런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또 '위하여!'라고 친절하게 후창해 주었다. 로드는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 이들은 창피함으로 그를 죽이기 위한 마틴의 암살자가 아닐까?

"자, 빨리 빨리 다른데도 가보자!"

유니벨이 재촉했다.

'……음.'

바로 그때, 로드는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누군가가 계속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로드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야간 공연이 있다며? 그쪽 먼저 가보자."

로드가 두 소녀의 등을 떠밀었다.

"어? 벌써 가게? 아직 시간 많이 남았잖아. 조금만 더 둘러보고 가자!"

"빨리 안 가면 좋은 자리 없을 걸."

로드가 계속 보채자 유니벨은 하는 수 없이 앞장섰다.

*

야시장 길목의 중간에 광장으로 빠지는 길이 나있었다. 그곳으로 쭉 들어가면 바로 광장으로 갈 수 있었지만 로드 일행은 유니벨의 안내에 따라 그 반대편에 있는 언덕을 올랐다.

언덕을 모두 올라가니 널찍한 공간이 나왔는데 광장 전체가 한눈에 다 들여다보이는 명당이었다. 그곳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고 거하게 술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세 사람은 절벽에 걸터앉아서 다리를 쭉 뻗었다.

"나는 왜 안 된다는 건데!"

유니벨이 칭얼거렸다. 로드만 맥주를 마시는 게 불만인 듯 했다.

"너희 둘 다 미성년자잖아."

사실 로드는 이런 부분에선 꽤나 보수적이었다. 유니벨이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아니 무슨, 어비스에 애가 따로 있고 성인이 따로 있니?"

사실 유니벨의 말처럼 별 문제는 없었다. 다섯 살 코흘리개가 술을 마셔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라였으니까.

맥주를 파는 잡상인이 언덕에 올라오자 결국 로드는 적당히 마시는 선에서 술을 허락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빈 맥주잔을 채우기 위해 일어났다. 로드 일행 중에선 베아트리체가 줄을 서기로 했고, 잠시 둘이서 절벽에 남게 되었다.

"다들 아주 살판났네. 살판났어."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는 아저씨를 바라보며 유니벨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곳에서도 승리의 열기가 물씬 묻어 나오고 있었다.

"하루에 16시간 동안 아무런 낙도 없이 광산에만 박혀 살았던 사람들이니까. 가끔씩 이런 식의 해방구가 있는 것도 좋지."

로드가 맥주를 들이키며 말했다. 알코올이 들어가서 그런지 찜찜한 거부감도 거의 사라져가고 있었다.

"야, 팬더."

"……왜?"

"앞으로도 이 대륙에서 수많은 전쟁들이 벌어질 거라고 했잖아."

"뭐, 그렇지."

"넌 그때가 오면 싸움을 피할 거야? 아니면 저번처럼 기꺼이 목숨을 걸고 싸울 거야?"

갑자기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질문이란 말인가? 하지만 로드는 오늘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되도록이면 전쟁은 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만, 싸워야 할 땐 싸워야겠지. 결국 내가 바라는 건 하나."

로드가 팔을 들어 휘황찬란하게 뜬 둥근 달에 손을 뻗었다.

"대륙 정벌!"

유니벨이 훗 하고 웃었다.

"정말로 그런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확실히 그건 모든 대륙민의 염원이긴 하지만, 꿈은 꿈일 때나 아름다운 거지. 이 나라를 기반으로 대륙의 패자가 되는 건 불가능 하다고 보는데……."

"뭐, 다들 그렇게 말했었지."

어비스가 선택되었을 때 비웃던 신들을 떠올리며 로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악착같이 버티고 살아남다 보면, 언젠가 우리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까고 있네. 이번 싸움도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잖아."

"운도 좋았고, 또 모두가 열심히 싸워준 덕이지."

그녀가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들은 듯 쿡쿡 웃었다.

"이야아? 이제 제법 정치인 같은 이야기도 하네?"

"정치인 맞지. 왕이니까."

"아 참, 왕이셨구나. 위엄이나 카리스마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왕이라 소신이 깜박했네요. 폐하."

그녀의 넉살에 로드가 소리 내어 웃었다.

확실히 자기가 생각해도 웃겼다. 이렇게 왕에 안 어울리는 왕이 또 어디 있을까? 그렇다고 체질에 맞지도 않은 근엄한 왕 노릇 따위는 하기 싫었다.

"뭐 어때. 세상에 이런 왕이 한 명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응, 그게 하필 우리 왕이라 유감."

"유감? 쪼끄만 게 오늘따라 왜 이렇게 틱틱거려?"

"뭐? 쪼끄매? 쪼끄맣지 않거든! 네 가랑이 사이에 달린 그게 더 쪼끄맣거든! 그거 제대로 쏴지긴 하냐?"

"쪼끄만 게 못하는 말이 없어! 감히 남자의 자존심을…!"

이브가 이 말싸움을 보았다면 제발 직위에 걸맞은 말을 쓰라며 잔소리를 해댔을 것이다. 으르렁거리던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홱 돌렸다.

'음.'

로드의 몸이 움찔했다. 언덕 뒤에서 아까 시장에서 느꼈던 그 수상한 인기척이 또 느껴진 것이었다.

'슬슬 온 것 같군.'

"주인님!"

베아트리체가 맥주 두 잔을 들고 다가왔다.

"어때? 있었어?"

"있었습니다. 숫자는 스무 명 정도."

"……둘이서 무슨 이야길 하는 거야?"

유니벨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때 언덕 아래에서 무장한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모두 둥근 중절모를 썼으며 검정색 슈트를 입고 있었다.

주위에 술판을 벌이던 사람들이 기겁하며 물러났다. 자칫 엮이기라도 하면 여러모로 골치 아픈 자들이었다.

"…마피아?"

유니벨이 눈동자가 커졌다.

"거기 당신들."

마피아들 중 한 사람이 로드 일행을 가리켰다. 잔뜩 긴장해있던 사람들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지목 당했다는 사실에 속으로 안도했다.

"잠시 우리 좀 보고 갈…… 어어어?"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베아트리체가 절벽 밑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로드가 유니벨의 손을 붙잡고는 함께 뛰어내렸다. 마피아들이 허겁지겁 절벽으로 달려왔으나 한 발 늦었다.

"꺄아악! 뭐, 뭔 짓이야! 갑자기!"

유니벨이 소리 질렀다. 세찬 맞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정신없이 펄럭거렸다. 로드가 씩 웃으며 말했다.

"도망치자!"

"뭐어?

그들의 몸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베아트리체가 두 사람의 몸을 동시에 붙잡고 절벽에 발을 대더니 힘껏 도약했다. 떨어지던 그들의 몸이 정면으로 부웅 날아갔다.

"다리 조심해요!"

베아트리체가 소리쳤다. 그녀가 제일 먼저 마력을 일으킨 채로 바닥에 발을 놓았다. 촤좌좌좌좌작! 그녀의 부츠가 지나는 곳 마다 흙과 자갈이 거칠게 튀어 올랐다. 로드와 베아트리체도 발을 내려놓으며 중심을 잡았다. 이내 그들의 몸이 멈춰 섰다.

"자, 뭐해? 뛰어!"

로드가 그렇게 말하며 암시장 거리 방향으로 내달렸다. 두 사람도 뒤를 따랐다. 광장으로 가던 사람들이 멀뚱히 그들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마피아들이 왜?"

유니벨이 헐떡이며 물었다.

"뻔하지 않겠냐? 날 잡으러 온 거겠지!"

로드가 간단히 답했다. 다시 암시장으로 돌아오니 거리는 전보다 더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근처에 놈들이 있습니다."

주위를 살피던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이미 거리 쪽에 인원을 배치해 둔 듯, 로드의 눈에도 발 빠르게 움직이는 추격자 몇몇이 보였다.

"계속 가!"

로드가 외쳤다. 상가 지붕을 뛰어다니는 마피아들이 로드를 향해 단검을 던졌다.

"큭!"

로드가 다급히 고개를 숙여 피했다. 단검이 날아와 진열해 둔 잡화점의 항아리를 깨 부쉈다. 쨍그랑! 질척이는 액체가 콸콸 쏟아지며 주인의 간드러진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 무슨 일이야?"

"갑자기 웬 소란?"

정신없이 인파를 가르며 뛰쳐나가던 로드가 두건을 벗었다. 그러자 로드를 알아본 듯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더더욱 커졌다.

"저 사람 왕 아니야?"

"로드 폴렌티아? 여긴 왜?"

"마피아들이 그를 쫓고 있어!"

마피아들이 다시 지붕 위에서 투척 무기를 던져댔지만 로드의 옆에 딱 붙은 베아트리체가 가볍게 쳐냈다. 무기가 날아드니 사람들도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했는지 자세를 낮추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것들이 진짜!"

유니벨이 고유 능력의 투사체를 소환해 던졌다. 지붕 위에서 뛰어오던 마피들이 연달아 맞아 떨어졌다.

"야, 폭발은 안 돼!"

"그 정돈 나도 알아! 바보야!"

정신없이 인파를 해치며 나아가고 있는 와중에 로브를 뒤집어 쓴 남자가 그들의 앞을 가로 막았다. 채앵! 검이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헉!"

"……주인님! 멈춰요!"

베아트리체의 외침에 로드가 다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로드의 바로 앞으로 그녀의 신형이 휙 하고 지나갔다.

빠악! 측면에서 단검을 들고 달려들던 남자가 그녀의 날아 차기에 맞아 가시거리 밖으로 밀려났다.

"잠깐, 앞에도……!"

투콰악! 로드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정면의 남자가 유니벨의 탄환을 맞고 나가떨어졌다.

"아, 고맙다."

유니벨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달렸다. 로드도 뒤따라 속도를 높였다.

========== 작품 후기 ==========

MikuHatsune / 빵 대신 짐을 드는게 차이라고나 할까요...

lineata / 감사합니다 ㅎㅎㅎ 4연참은 할게 못되긴 하네요 ㅠㅠ

시이크으리잇 / 경찰아저씨 여기예요

낙지팡 / 감사합니다!

Lgb / ㅋㅋㅋㅋ 처음 만났을때 보단 낫지 않을까요? 처음만났을때 베아 : 흠짓무섭공포 / 유니벨 : 계약서 확찢

ppk12 / 경찰아저씨 여기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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