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의 권능 -->
참격의 여파로, 마틴의 위압감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전장에 뿌리내렸다. 이제 병사들은 그와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압도적인 존재감, 압도적인 공포의 화신이 눈앞에 있었다.
그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스노노를 향해 걸어갔다.
"우선 한 놈."
클랜장의 목숨이 위험했지만 병사들은 감히 마틴에게 다가설 수 없었다. 주위 동료들의 숫자는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았다. 생물로서의 생존 본능만이 눈을 뜨고 일어나 끊임없이 경고했다. 앞으로 한 걸음이라도 나가면, 반드시 죽는다.
"한심한 것들."
마틴이 천천히 발을 들어올렸다.
"멈?춰!"
붉은 탄환들이 대기를 가르며 마틴의 등 뒤로 날아왔다. 마틴은 쯧 하고 혀를 차며 옆으로 몸을 피했다. 그가 달리는 지점마다 탄환들이 박히며 폭발이 터졌다.
마틴이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드디어 왔는가."
로드와 유니벨이 도착했다. 유니벨은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마력 폭탄을 장전했고, 로드는 잔존 친위대 병력을 움직여 후방의 경비대 방어진을 더욱 강화했다.
"물러 날 때 물러나더라도, 너희들의 목은 가지고 가고 싶군."
마틴이 지독한 살기를 흩날리며 말했다. 유니벨이 힐끔 로드를 바라보았다.
"뒤로 빠져 있어. 저 아저씬 기회가 되면 널 1순위로 노릴 거야."
"…어, 부탁한다."
로드가 그렇게 대답하며 유니벨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평소답지 않게 상당히 굳어 있었다.
걱정이 된 로드가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괜찮아?"
"꺅!"
그녀가 소리를 지르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는 뒤늦게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로드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개새끼야! 놀랐잖아!"
"하, 하하하! 긴장 좀 풀어주려고."
로드가 정강이를 어루만지며 병사들의 틈으로 들어갔다. 그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유니벨마저 마틴의 고유 능력 효과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가.'
유니벨이 앞으로 걸어 나와 마틴과 대치했다. 그녀는 굳은 표정을 풀고, 씩 웃어 보였다.
"결국 이렇게 됐네."
"그대나, 귀검이나 이해를 못하겠군."
마틴이 어깨를 우두둑 풀며 말했다.
"그대들 모두 로드를 혐오해야 하는 게 마땅할 터, 이제 와서 어떤 연유로 그에게 붙었나?"
"글쎄."
유니벨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뭐랄까, 변태인 건 여전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녀석은 뭔가 기대되는 게 있거든. 아저씨완 달리."
"고작 기대치에 거는 건가… 상인답지 않은 판단이군."
"투자도 상인의 미덕이야. 그러고 보니 우리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싸워본 적 없지?"
유니벨이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한 판 붙어보자고, 아저씨!"
슈슈슈슈슉!
유니벨이 탄환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마력을 품은 붉은 막대들이 저마다 서로 다른 각도로 마틴을 향해 날아왔다. 마틴은 단검으로 탄환을 베어내거나 회피하면서 능숙하게 대응했다.
로드는 병력들을 통제하면서도 두 사람의 전투에서 눈을 때지 않았다.
'역시 바얀과 싸울 때처럼 날카롭고 경쾌한 느낌이 아니야.'
어비스에서 살아왔던 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피아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 때문에 마틴의 고유 능력은 본래의 효과 그 이상을 발휘하고 있었다.
일반 병사들은 덤빌 엄두조차 내지 못했으며, D급 무력등급 이상의 클랜장들 마저 온전한 컨디션으로 싸우지 못했다. 마틴이 이렇게 떡하니 적 진형 한가운데에 들어와서 헤집고 다닐 수 있는 것도 자신의 고유 능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능에 대한 이해도가 탁월한 듯 보였다.
'아군에 한해서는 거의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사기적인 공포의 권능. 타국 출신이나 같은 B+급의 영웅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이대로는 정말 까다롭다. 공략법을 떠올려야 해.'
그때 수비 일변도로 싸우던 마틴이 유니벨의 투사체에 적응을 끝내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지그재그로 뛰는 움직임으로 탄환을 가뿐하게 따돌린 그가 단번에 다리에 마력을 싣고 일직선으로 도약했다.
그 모습을 본 유니벨은 재빨리 자신의 앞에 폭발을 일으켜 시야를 가렸다. 이어서 도착한 마틴이 그 폭발을 뚫고 단검을 휘둘렀다.
"……!"
폭발의 연기로 시야가 방해된 그 짧은 찰나, 유니벨은 마틴의 옆으로 슬라이딩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유니벨이 있던 자리에는 그녀 대신 새빨간 폭탄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화려한 붉은 폭발이 마틴의 몸을 집어삼켰다. 반대편으로 슬라이딩한 유니벨이 뒤를 돌아보며 몸을 일으켰다.
- 충전총 오덴발트 '포격'
타?아앙!
마틴의 충전 무기는 하나 더 남아 있었다. 폭발의 연기를 뚫고, 마력으로 이루어진 탄환이 쏜살같이 날아왔다.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은 공격에 이제 막 땅을 짚고 일어서고 있던 유니벨은 피할 수 없었다. 그녀의 커진 눈동자가 거울처럼 탄환을 비추었다.
덥석!
그녀는 자신의 옷깃을 붙잡는 누군가의 손길을 느꼈다. 이내 그녀의 몸이 부웅 떠오르며 그대로 병사들 쪽으로 던져졌다.
'어?'
풍경이 뒤집어졌다. 하늘을 날아가며 유니벨이 본 광경은, 그녀를 대신하여 자신의 몸을 던진 한스의 모습과, 그의 뒤로 다가오는 거대한 푸른빛의 마력 탄환이었다. 한스의 입가에 마지막 미소가 걸렸다.
콰아아아아앙!
푸른 폭발이 주위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울부짖었다.
"하, 한스 할아버지!"
병사들에게 안겨진 유니벨이 멍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런."
마틴의 머스킷의 총구를 내리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한때는 죽이 잘 맞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목숨을 던지는 건가. 실망이로군."
폭발이 걷히고, 전기를 연상케 하는 푸른 총흔들의 사이로 처참한 한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폭발로 헤집어진 그의 신체로 볼 때, 생사 여부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너어!"
그녀가 병사들을 밀치며 몸을 일으켰다. 진홍빛 눈동자가 분노로 번들거렸다.
*
쾅! 쾅! 콰앙!
유니벨과 마틴의 접전이 계속됐다. 유니벨은 분노에 가득 차 있었으나 아까보다는 훨씬 움직임이 좋아졌다. 충전 무기를 모두 사용한 마틴을 상대로 거의 대등에 가까운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로드는 충원되는 병사들을 계속해서 후방으로 보내며 두 사람의 전투 양상을 살폈다.
'역시 문제는 마틴의 저 고유 능력을 어떻게 하느냐군.'
하지만 유니벨의 입에서 거친 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력과 체력이 슬슬 떨어지고 있는 듯 했다. 아직까지는 마틴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지만 단 한번이라도 맞으면 치명적이었다. 반면 마틴의 움직임은 여유가 있어보였다.
'유니벨을 잠시 불러들여야겠는데…….'
하지만 그녀를 대신할 다른 영웅이 로드의 수중에는 없었다. 병사들로 막고 싶지만 마틴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터였다.
그렇게 로드가 어떻게 할지 계속 고심하고 있는 사이,
"나왔소! 큰형님!"
드디어 히든 카드가 도착했다. 로드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돌리자 피닉스와 그의 조직원들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왔구나! 준비는 다 된 거야?"
"물론이오!"
"그런데……."
로드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건 뭐냐?"
피닉스는 양손에 양동이를 들고 있었다. 한 쪽은 알록달록한 물감들이 가득 섞여있는 통이었고, 다른 한쪽은 냄새가 나는 오물이 든 통이었다. 그의 조직원들 모두가 하나같이 뭔가가 담긴 양동이를 들고 있었다.
"마틴을 쓰러트릴 비장의 무기올시다!"
로드가 황당하다 못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정말로 그런 걸로 마틴을 쓰러트릴 수 있는 거야?"
로드의 물음에 피닉스가 가슴을 탕탕쳤다.
"이 아우를 못 믿는 거요?"
'……정말 믿음이 안 가긴 하지만.'
피닉스의 고유 능력 '집념의 도전자'는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싸울 시 본능적으로 약점을 간파해낸다. 저번에 피닉스가 베아트리체를 상대할 때 꽤나 인상적인(?) 전투를 보여주었기에 로드는 그 의외성을 믿고 기용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피닉스는 로드의 예상 이상으로 의외적이라는 것이었다.
"하하하! 내가 왔다!"
피닉스가 큰 소리를 내지르며 병사들을 뚫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조직원들은 허겁지겁 주위 곳곳에 양동이를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
대치하고 있는 마틴과 유니벨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이제부터는 내가 상대해 드리겠소, 마틴 형님."
피닉스가 말했다. 동시에 로드가 재빨리 유니벨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유니벨! 잠시만 이쪽으로!"
"……?"
로드가 지친 그녀를 불러들였고, 피닉스와 그의 조직원들이 마틴의 앞에 섰다.
"이번엔 자네인가. 키워준 은혜를 모르고 감히 주인의 발을 물려고 드느냐?"
"가축에게 키워준 은혜를 바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오?"
피닉스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제 우리 황동파가 당신까지 꺾고, 어비스의 제1 조직이 될 거요! 자, 나를 따르라!"
피닉스가 한 손에만 양동이를 쥔 채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양동이에 든 물감을 마틴을 향해 뿌렸다.
"……이건 뭐 하는 짓이냐."
마틴이 뒤로 빠지며 물감을 피했다.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가져온 줄 알았는데 그냥 평범한 물감이었다. 마틴이 우회하여 달려들어 발차기를 가했다.
후웅!
허리를 젖혀 그 공격을 피한 피닉스가 다시 팔을 뻗어 근처에 놓여있는 양동이를 쥐고 마틴에게 뿌렸다. 마틴이 두 팔을 들어 올리는 가드 자세를 취했다.
푸확!
가드 자세가 무색하게도,
그냥 물감이었다.
마틴의 두 팔과 바지가 알록달록한 색깔로 물들었다.
"감히 본인을 능멸하느냐!"
마틴의 돌진 속도가 확 빨라졌다. 빠악! 피닉스가 그의 주먹에 맞아 나가떨어지는 와중에도, 품속에서 페인트 볼을 꺼내 던졌다. 펑! 펑! 마틴의 몸이 이번엔 핑크빛으로 변했다.
바닥을 대굴대굴 구르던 피닉스가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양동이를 손에 쥐었다.
"찢어 죽이리라!"
"핑크색 옷 입고 그렇게 말해도 하나도 안 무섭소!"
마틴의 강공이 계속 되었다. 그러나 피닉스는 마틴이 붙잡으려는 걸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며 틈틈이 물감과 오물을 끼얹었다. 베아트리체 때와 같은 패턴이었다. 가끔 무기를 휘둘러 위협하거나 다른 병사들의 등 뒤로 숨기도 했지만 그는 철저하게 회피 일편도였다.
"……."
지켜보던 모두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대체 이 싸움을 어떻게 정의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피닉스의 얼굴은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진지했다.
"크윽!"
그러나 B+급과 C급의 전력 간에는 메울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결정타는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었지만 어느새 피닉스는 온몸이 터져나가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지켜보는 사람이 다 애처로울 정도였다.
그나마 소득이 있다면 마틴의 온몸이 알록달록한 무지갯빛이 되었으며 지독한 오물 냄새를 풍기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허억!"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피닉스가 마틴의 손에 붙잡혔다. 그가 피닉스의 목을 한 손에 쥐고 들어올렸다.
"어떻게 죽여주길 원하나?"
"커, 커허어어억!"
얼굴이 새빨개진 피닉스가 다리를 버둥거리며 고통스러워했다. 마틴이 사악한 미소를 흘리며 점점 더 팔에 힘을 주었다.
"……!"
그때 마틴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팔의 힘이 풀리며 피닉스가 바닥에 떨어져 켁켁거렸다.
촤아아악!
마틴의 등에 피 분수가 솟구쳐 올랐다. 그런 마틴의 모습 뒤로 베아트리체가 단검을 역수로 쥔 채 서 있었다.
"쯧. 분노에 눈이 멀어 기습을 허용하다니, 나도 늙은 모양이군."
베아트리체가 몸을 일으켜 전투 자세를 취했고, 그 사이 피닉스는 엉금엉금 기어 도망쳤다.
'……아슬아슬했다.'
로드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의 눈에서 흘러나오던 보랏빛 마력이 미약해지며 사라졌다.
황당한 방법이긴 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피닉스는 마틴의 약점을 제대로 파고든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 위압감이 넘치는 거구의 괴물을 볼품없고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언제나 냉정한 마틴을 상대로 진심 어린 분노를 일으키게 해 로드에게 고유 능력의 타이밍을 제공해 주기도 했다.
"마, 마틴이!"
"처음으로……!"
병사들의 기세가 변하고 있었다.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고 있는 저 마틴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었다. 마틴도 상처를 입는다. 마틴도 절대적이지 않다. 마틴도 죽는다. 눈을 가리고 있던 공포라는 이름의 최면이 걷히며 시야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봐라! 마틴도 이제 끝났다!"
이때다 싶은 로드가 확성 구슬을 켜고 소리쳤다.
"마틴의 목을 벤 자에겐 왕실에서 천금을 내릴 것이다! 모두 한꺼번에 달려들어 쳐라!"
그를 둘러싼 병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
아무리 대단한 무장이라도, 병사들의 진형 한 가운데에 홀로 들어오는 것은 터무니없이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틴은 그것이 가능했다. 병사들을 무력화 시키는 강력한 정신계 고유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절대적인 공포에 지배당해 삐걱거리던 병사들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틴 본연의 무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지만, 그도 그간의 싸움으로 지쳐있는 데다가 베아트리체의 검격에 맞아 오른팔이 불편해졌다. 병사들의 공격에 의해 그의 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마틴의 '무적'을 허물어트린 것은, 마틴이 그렇게 폄하하던 피닉스의 잡기술이 만들어낸 변수였다.
마피아 군대의 상황도 그리 좋지 않았다. 마틴이 중앙에서 진형을 헤집어 주면, 그의 군대가 빠르게 진형을 돌파해주는 계산이었으나 그들은 좀처럼 경비대의 방어선을 뚫지 못했다. 한 사람을 쓰러트려도 또 다른 한 사람이 와서 그 빈자리를 채웠다. 언더하임 전체에서 끊임없이 병사들이 충원되고 있었다.
특히 후방에서의 클랜 연합 병사들의 공격이 주요했다. 샌드위치처럼 둘러싸인 마피아들은 계속해서 수가 줄어들어 갔다. 한 때는 이 나라를 쥐고 흔드는 지배자였던 그들이, 이제는 언더하임 전체를 상대로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콰앙!
마틴의 발차기에 맞은 병사들이 우수수 나가떨어졌지만 금방 그 빈자리를 다른 병사들이 채우며 몰려들었다.
"놈도 이제 지쳤다!"
"빠져나가게 두지 마라!"
마틴은 끝없는 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뭔가를 찾는 듯 계속 사방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병사 하나를 발차기로 날리며 진형을 경직시킨 다음, 품에서 충전검 아인하르트를 꺼내 발검 자세를 취했다.
"헉!"
그 모습에 병사들이 움찔했다. 저 무기의 위력은 다들 눈앞에서 생생히 목격한 뒤였다.
"겁먹지 마라! 이미 한번 사용했기에 충전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부관들이 소리를 질러 슬금슬금 물러나는 병사들을 독려했다.
"글쎄, 과연 그럴까?"
키이이이잉! 마틴의 지팡이에서 검이 살짝 뽑히는 순간 눈부신 푸른 광채가 솟구쳤다.
"추, 충전검을 쓴다!"
"도망쳐!"
아인하르트는 주인의 마력을 저장해 뒀다가 참격을 발사하는 마력 무구. 마틴의 정면에 위치한 병사들이 우르르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병사들의 사이로 길이 만들어 졌다.
파앗!
그 순간, 마틴이 다시 검을 닫고 병사들이 열어버린 길 사이를 엄청난 속도로 주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길의 전방에는 갑작스럽게 병사들에 끼여 움직이지 못하게 된 로드가 있었다.
'큭, 설마 날 노리고 오는 거야?'
로드가 단검을 세워 들었다. 긴장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는 믿는 구석은 있었다.
파밧! 마틴이 바로 근처까지 다가오자 로드의 몸이 흐릿해졌다. 베아트리체의 고유 능력이 발동한 것이다. 그때 마틴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걸렸군.'
로드와 베아트리체가 서로 바뀌기도 전에, 달려오던 마틴이 급 브레이크을 밟으며 다리에 모든 마력을 집중시켜 도약했다. 그의 몸이 향한 곳은 2층에서 숨어 기습 타이밍을 재고 있던 베아트리체 쪽이었다. 로드와 베아트리체의 표정이 동시에 얼어붙었다.
'……당했다!'
이미 한번 눈앞에서 베아트리체의 고유 능력을 경험한 마틴은, 계속해서 로드와 베아트리체의 거리를 재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 졌을 때, 로드에게 돌격하여 베아트리체에게 고유 능력의 사용을 강요한다. 로드의 목숨을 무엇보다 아끼는 베아트리체가 지체 없이 고유 능력을 발동한 순간, 마틴은 기다렸다는 듯 베아트리체가 있는 곳으로 뛰어든 것이다.
마틴 또한 어비스 출신. 임기응변과 변수를 만들어내는 전투에는 도가 터 있었다.
이미 사용한 능력을 멈출 수는 없었다. 게다가 다시 능력을 재사용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마틴과의 거리가 불과 3미터인 상황에서, 로드의 몸이 건물 2층에 나타났다.
'제길!'
거대한 중압감이 정면에서 덮쳐져 오고 있었다. 이제 그를 지켜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로드는 이를 악물며 단검을 쳐들었다.
마틴과의 거리는 이제 2미터.
'내 반응 속도로 마틴의 공격을 쳐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거리가 1미터가 되며 마틴의 단검이 쇄도하려는 순간, 로드는 과감하게 단검을 손에서 놓고 두 팔을 앞세워 머리와 가슴을 보호했다.
푸욱!
팔 깊숙한 곳까지 단검이 쑤욱 들어오며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통증이 일었다. 마틴은 그대로 로드를 건물 벽까지 밀어붙였다. 이제 피할 곳은 없었다. 마틴이 그의 팔에서 단검을 뽑았다. 그리고…….
촤아아악!
선혈이 튀어 올랐다.
로드의 시선이 붉게 물들었다. 한 순간, 허공에 떠오르는 핏방울들이 아주 느리게 비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
로드의 사고가 잠시 정지했다가 돌아왔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시선을 들자, 마틴의 목에 붉은 선이 가로로 그어져 있었으며 그곳에서 피 분수가 솟구치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광분한 베아트리체가 건물로 뛰어올라와 그대로 마틴의 목을 향해 검격을 날린 것이다.
마틴은 로드와 베아트리체의 거리가 가깝다는 걸 노렸지만, 거리가 가깝다면 베아트리체의 커버 또한 빠르다. 로드가 찰나의 시간을 끈 덕분이었다.
"……빠르군."
마틴이 씩 웃었다. 로드가 경악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베아트리체의 검격이 살짝 얕았는지 마틴은 아직도 움직이고 있었다.
'큭, 위험……!'
"그대의 대처도 좋았다. 본인의 완패다."
마틴이 손에서 단검을 놓았다. 절그럭 소리가 나며 쇳덩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로드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생각이 바뀌었다. 동반 자살 같은 찜찜한 결말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승자와 패자는 확실히 구분하는 게 좋겠지."
그는 목에서 솟구치는 출혈을 막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엇나가긴 했으나, 본인은 언제나 이 나라를 위해 살아왔다.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
마틴의 검은 눈동자가 로드의 앞으로 확 다가왔다. 로드는 숨이 턱 막혔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한 그의 깊은 눈동자와 대면하는 순간, 은은한 전율이 몸을 타고 흐르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대가 정녕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마틴이 손이 천천히 로드의 어깨로 올라갔다.
"이 나라를 부탁한다, 애송이."
그 말과 함께,
거인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허억."
로드는 거친 숨을 헐떡이며, 벽에 기댄 채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왔다. 아직도 긴장으로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로드의 시선이 천천히 바닥에 쓰러진 거구로 향했다. 한 박자 느리게, 그의 입이 열었다.
"…잘 가요, 숙부."
========== 작품 후기 ==========
제일 큰 산을 하나 넘었네요. 흐아아, 저도 속이 시원합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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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del / 죽었다고 합니다
MikuHatsune / 집정관님 ㅋㅋㅋ
별빛베기 / 마틴이 강한것도 있지만 역시 D급으로는...
Lgb / 힘들게 잡았네요..
ppk12 / 마린이 되었습니다.
바마카타 /...??? 저한테 무슨 억하심정있으세요?
섹시파워 / 1등만이 알아주는 세상. 흑
판타지광광광 / 감사합니다--!
SW스윈 / 사기긴 합니다만... 유니벨+베아면 두 사람이 이깁니다. 그리고 고유 능력 효과가 이 나라에선 크게 작용한것도 있죠
와인을즐기는사신 / 헉, 이 분 왕겜 �� 자주 본것 같은데!!
seagull3132 / 넵, 설정상 두 사람이 이겨요.
고구마무침 / 죽었습니다!
dsklfjkjfkls / 감사합니다. 저도 개연성과 필력을 갖추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ㅠㅠ
cws / S급이 나오면 행성파괴수준...
사람인생 / 저도 사람인생님의 츤코맨을 보면 기분이 좋...!
카노이드 / B+의 차이도 있고 어비스 쪽 상대로는 보정이 있다는 설정입니다. 작중에선 너무 강해 보이는 연출이긴 했네요
wowow45 / 국가간 밸런스요?
리마쥬 / 아마 슬슬 다른 국가도 나와서 밸런스 맞춰갈듯 합니다.
오오나츠 / 제가 봐도 강하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