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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거의 다 지어졌는데?"
로드와 베아트리체는 잠시 건설 상황을 살펴보러 주거 지구로 시찰을 왔다.
거주 지구의 공터 부지에 3층 높이의 커다란 건물 세 채가 지어지고 있었으며, 그 사이로 인간들과 수인족들이 오고 가며 건설 자재들을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건축 작업의 총 관리관은 이번에 왕실로 들어오며 나라의 재정관이 된 유니벨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뜬금 없이 학교를 지으란 거야?"
유니벨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평소처럼 편한 일상복 차림이 아닌, 왕실의 검은 정복을 입고 있었다. 말괄량이 여동생 같은 느낌 대신 나름대로 정숙한 매력이 묻어 나왔다.
"잘 어울리네."
로드가 말했다. 유니벨이 흠칫하며 옷깃을 여미는 자세를 취했다.
"뭐, 뭐, 뭐야! 갑자기!"
"…아니, 그냥. 유니벨의 이런 차림은 처음 보는 것 같아서."
그녀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우, 우, 웃기지마! 저번에 시장에 같이 갔었을 땐 개무시했으면서!"
"그때는 네 복장이……."
로드는 그때 유니벨이 입었던 3천원짜리 할머니 옷의 중세 시대 버전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로드의 반응을 본 그녀가 입을 삐죽거렸다.
"뭐, 학교를 세우는 이유는 간단해."
로드가 본론으로 돌아와 말했다.
"우수한 국민이 우수한 나라를 만드는 법! 어떤 인재를 육성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흥망성쇠가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즉, 교육과 국가의 발전은 불가분의 유기적 관계라고도 볼 수 있어. 또 문화를 전달하고 발전시키는 수단으로서 교육은……."
"입 닥쳐."
"네."
유니벨과 베아트리체 앞에선 대충 어른의 어려운 이야기로 둘러댔지만, 물론 로드는 또 다른 계산이 있었다.
'최대한 빨리 다음 시대인 개척시대로 넘어가야 한다.'
카오스월드의 '시대 시스템'은 지휘관 창의 기능을 업그레이드 하여 나라의 '전체적인 수준'을 다음 단계의 레벨로 끌어올리는 시스템이다.
기원시대 -〉 개척시대 -〉 문화시대 -〉 '국가별 고유 시대'의 순서로 발전하며 모든 나라들은 예외 없이 기원시대 단계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 시대로 발전하게 되면, 현재의 단계에서는 쓸 수 없었던 더 좋은 특화 병종, 더 좋은 연구, 더 좋은 능력 등을 습득 할 수 있게 된다. 그 격차가 꽤 큰 편이라 시대 발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게 정론이다.
하지만 다음 시대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문화력과 기술력에 투자를 하여 '시대 게이지'를 일정 수준 올려야 하는데, 이것을 위해서는 당연히 막대한 자원과 시간이 소모된다.
그래서 이 '시대 시스템'은 플레이어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국가 운영 계획을 요구한다.
조금 위험하지만 군사력에 소홀히 하고 빠른 발전에 집중하는 '성장 우선'의 전략을 펼칠 것인가. 시대 발전은 조금 천천히 하면서 초반에 군사력을 늘려 안전하게, 그리고 초반에 이득도 조금 보는 '안전 우선'의 전략을 취할 것인가. 스물 두 명의 플레이어들은 결정해야 한다. 한정된 자원으로 기회비용을 따져가며 가장 이상적인 밸런스를 맞춰야 하는 것이다.
과학의나라 알란드처럼 후반에 강성해지는 국가들은 시대 발전에 우선시 하는 게 당연히 효율이 좋다.
반면에 야만국가 아로게쓰 같이 초반에 강력한 나라들은 시대 발전을 해도 엄청나게 강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초반에 강력한 군사력으로 시대 발전에 투자하는 나라들을 압박하고 영토를 빼앗는 등의 재미를 보는 쪽이 유리했다. 초반에 유리한 고지를 점해 놓아야 나중에 타국들이 강해져도 균형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것은 이론적인 이야기일 뿐, 각양각색의 고수들이 참여하는 카오스월드의 실제 플레이에서는 수많은 변수들이 있었다.
특히 초반 약소국들은 빠른 '성장 우선' 전략이 가장 효과적임에도 불구하고, 주위 국가들의 군사력을 두려워했기에 방어 병력을 어느 정도 늘린 다음 안전하게 다음 시대로 발전하는 전략들을 선호했다.
초반 약소국이라도 시대가 높아지면 그 위상이 확연히 달라진다. 기원시대의 알란드와 문화시대의 알란드는 그 이름값의 격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국가들에서는 끊임없이 무력 시위를 하여 타국에 군사력 강화를 강요하기도 하는 것이다.
'목숨을 건 눈치 싸움 같은 느낌이지.'
하지만 지금의 로드 같은 경우는 조금 예외였다. 마틴의 유산으로 한 순간에 부자가 되어 버려서 군사력과 문화력을 동시에 발전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처럼 학교를 세우는 것도 문화력 발전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문화력은 가장 빠르게 '시대 게이지'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말야. 학교 같은걸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세 채나 지을 필요가 있을까?"
유니벨은 여전히 로드의 결정이 의아한 듯 했다. 로드는 훗 하고 웃었다.
"그래? 난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뭐어? 부족? 한 아이당 교실 하나를 쓰게 할 셈이야?"
"아니,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학교에서 의무 교육을 받게 할 거야."
유니벨이 '에엑?' 하는 소리를 냈다.
"아니, 다 큰 어른들이 배울게 뭐가 있다고!"
"뭐, 글자라던가 역사라던가 상식이라던가 배울 건 많지. 특히 어비스는 문맹인 비율이 심각할 정도로 높아. 나이 지긋해질 동안 살면서 자기 이름 철자도 제대로 모른다니…… 왕으로서 용납할 수 없어."
유니벨이 눈을 가늘게 뜨며 로드를 노려보았다. '너 뭐 숨기는 거 있지?' 하는 눈빛이었다. 로드가 애써 태연하게 넘어가자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좋아. 그럴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어른들을 학교에 어떻게 데려 올 건데? 특히 남자는 다들 광산에서 일해야 하잖아."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로드가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광부들의 일정에서 하루에 2시간씩 때서 수업을 듣게 하는 거지. 물론 그 2시간은 노동을 한 것처럼 일급에 포함시켜주고."
"……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물론!"
로드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본래 교육은 나라 차원에서 힘써야 했을 영역! 그동안 사람들을 광산으로 밀어 넣기만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소홀히 할 수는 없어! 아는 것이 곧 국력이야!"
유니벨과 베아트리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로드가 이렇게 정책을 강하게 주장했던 적이 있었던가. 상인 출신이자 재정관인 유니벨로서는 당장 눈에 띄는 이익이 없으니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기왕 건물도 지어 버렸으니 로드의 뜻대로 해보기로 했다.
"…주인님."
그때 옆에 서있던 베아트리체가 손을 들며 말했다.
"응, 베아야. 왜?"
"…그럼 선생님은 누가 해요?"
"……."
로드와 유니벨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졌다.
"…선생님?"
그러고 보니 학교를 세워서 문화력을 올릴 생각에만 정신이 팔려있었지. 교사 선임 문제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평범한 나라라면 교사는 물론이오, 학자들이나 명망 높은 연구자들 등등 후보는 많았겠지만 어비스는 아니었다.
"어비스에 지식인이라 불리는 놈들이 하는 짓거리들을 생각해 보면……."
로드의 중얼거림에 베아트리체가 대신 말했다.
"망자 연구, 검은 연금술, 흑마술, 인체 개조……."
"인체 개조라……."
잠시 매드 사이언티스트 하버트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상상해본 로드는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이런 어른들에게 뭘 배우라는 거야!"
유니벨이 손에 든 서류철을 바닥에 퍽 내리치며 소리쳤다.
"……어비스에 학교가 있는 것부터가 뭔가 이상해요."
베아트리체도 거들었다. 로드가 좌절감을 느끼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젠장, 이대로 포기할 순 없어! 저 건물이 양로원으로 쓰이기 전에 어떻게든 해결책을 모색해보자."
그렇게 세 사람이 머리를 쥐어짜내고 있는 중에, 로드가 갑자기 움찔한 표정을 지으며 행동을 멈췄다.
"애들아."
두 소녀가 동시에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 갑자기 급한 볼일이 생각나서 그런데 잠시만 다녀올게."
"아- 화장실이야? 빨리 싸고 와."
유니벨이 팔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로드가 등을 돌리자 베아트리체가 옆으로 따라붙으며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주인님, 저도……."
"아, 괜찮아. 괜찮아. 유니벨이랑 여기 있어. 금방 다녀올게. 이제 마틴도 없으니까 위험한 상황도 없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저도……."
그녀가 뺨을 붉히며 개미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쉬 마려……요"
"뭐, 뭐라고?"
로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변태 새끼."
유니벨이 찌릿 노려보았다.
"아니, 잠깐! 왜 여기서 내가 변태가 되는 건데!"
"흥, 네 평소 행실이 이상해서 그렇지! 또 리체한테 이상한 거 시킨 거 아냐?"
'윽!'
로드는 바로 반박하지 못하고 억울함을 삼켰다.
'……진짜 이 몸 원래 주인 명치 한대만 세게 때려봤으면 좋겠다.'
어쨌든 두 소녀는 볼일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자리를 떴고, 로드 또한 뛰는 걸음으로 주위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적당히 인기척이 없는 곳을 발견하고, 눈에 띄지 않게 바닥에 걸터앉았다. 그의 시야 아래에는 새로운 알림창이 나타나 있었다.
- '선광'님이 '로드 폴렌티아'님께 1:1대화를 신청하셨습니다.
"드디어 왔다!"
로드가 허공에 지휘관 창을 띄어놓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 '로드 폴렌티아'님께서 1:1대화를 승낙하셨습니다.
우웅!
지휘관 창 옆으로 새로운 화면이 떠오르며 한 남자의 모습이 비춰졌다. 흑단 같은 새까만 머리카락에 왼쪽 눈이 덮여 있었으며, 검정색과 황금색이 뒤섞인 화려한 동양풍의 의상을 입고 있었다. 멋들어진 귀공자 같은 느낌이 나는 이 남자가 바로 '동방의나라 백제'의 왕, 선광이었다.
"오랜만이네요, 로드님."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왕궁 밖이신가 보군요? 제가 괜한 방해를 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하하, 방해라뇨! 언제 연락을 주실까 계속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선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말 나온 김에 바로 본론을 말씀 드리죠. 우리 백제는 로드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
바얀이 이끄는 아로게쓰 병력이 언더하임으로 쳐들어오기 전의 일이었다. 로드는 1:1 대화로 백제의 왕, 선광에게 연락했었다.
"제게 제안하실 게 있다구요?"
선광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로드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무슨 제안인지는 모르겠지만 편하게 말씀해보시죠."
"저희와 동맹을 맺어주셨으면 합니다."
의외의 이야기였는지 선광의 눈동자가 커졌다. 로드가 이어서 말했다.
"물론, 초반부터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으면 주위 국가들의 이목을 끌 염려가 있으니 '비밀 동맹' 정도로 해야겠네요"
"…흐으음,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좀 당황스러운 걸요."
선광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한쪽 눈을 찡그렸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지금 당장은 썩 내키지 않는 제안이라고 말해두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동맹은 서로 영토가 붙어 있는 나라간의 동맹입니다. 국경에 병력을 배치하는 부분에서도 여유가 생기고, 서로 위험할 때 도우러 가기도 편하죠. 어비스와 백제는 영토가 서로 떨어져 있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물론 지금은 그렇죠. 하지만 그 문제야……."
로드의 눈이 반짝였다.
"…영토를 서로 맞닿게 만들면 그만 아닐까요?"
"……!"
백제는 어비스의 동쪽에 위치해 있는 나라다. 그리고 어비스와 백제의 사이에는 아로게쓰의 영토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형국이었다. 즉, 로드의 그 말은.
"아로게쓰를 무너뜨리자는 겁니까? 우리 둘이서?"
"네."
로드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작품 후기 ==========
하, 저도 마음같아선 연참을 팍팍 하고 싶은데 ㅠㅠㅠ 이놈의 느린 손이 원망스럽네요. 주인공의 동맹으로 새롭게 등장할 동방의나라 백제에 대해서는 다음편에 소개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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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b / 일반적으로 3명입니다. 그중에서 에이스라 불리는 무력형 B급은 1명인게 일반적이죠. 마틴을 보유하는건 원래 불가능 하지만, 원래 어비스는 영웅진이 괴랄하게 좋은 편입니다. (B+, B, B, 세명 모두가 무력형 영웅...)
시아루테아 / 플레이어를 암살하면 암살한 국가에서 '멸망보너스'를 받게되며, 그 국가는 나라로서의 강점을 잃고 흔히 말하는 NPC가 지배하는 평범한 토착세력으로 전락합니다. 무너뜨리기도 간단해지죠.
MikuHatsune / 통수 파티!!
Mr윤 / ㅋㅋㅋ 한편 보시고 주무시죠!
힘든듯 / 새로운 무력형 캐릭터는 아직 구상중입니다. 아마 외부에서 영입하지 않을까 싶네요.
고구마무침 / 크르르르왈왈왈?
해리엇트 / 그럴 수도 있겠네요 ㅋㅋㅋ
아프게했어 / 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보니 두 사람 모두 곰이네요. 곰과 팬더
판타지광광광 / 사실상 호칭을 정보의 나라라고 바꿔야 할듯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변수는 엄청나게 많지요 ㅋㅋ
섹시파워 /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초반만 잘 버티면 편해지는건 사실이죠!
@ㅇㅈㅂㅇㅂ / NPC라는 표현은 이번 작에선 안쓸생각입니다. 겜판이 아니라 현실이니까요. 주민이 맞는듯 합니다! 아, 그리고 동맹국은 백제. 현 최애캐는 귀여운 베아!
@seagull3132 / 물론입니다. A급 영웅도 나중에 등장할 예정이지만 말도 안되는 강함입니다. 최종테크트리도 있습니다. 아르곤 같은 경우는 용을 불러온다는 것 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