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사들의 나라 -->
자무카는 아크의 주신전 참전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그를 동맹으로 점찍어 두고 있었다.
가상현실 게이머로서의 아크는 눈이 부셨다. 자무카 본인이 정상의 자리에서 도전자를 상대하는 입장이었다면, 아크는 철저히 도전자의 입장에서 시작해 정점을 찍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한 번 정점을 찍으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또 다른 승부의 세계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기꺼이 다시 도전자가 되었다.
그의 행보는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전설처럼 되었다. 특정 부분에 능력과 적성이 치우쳐진 게 아닌, 모든 장르와 종목에 능통하여 종합적인 의미에서는 명실상부 세계 1위의 스타 게이머.
자무카는 자신보다 나이는 한참 어렸지만 아크를 존경할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번에 주신을 결정짓는 신들의 게임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자무카는 연회에서 그를 만난 때부터 지금까지, 아크의 동맹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어비스를 침공한 것도 아크의 정보가 솔깃한 점도 있었지만,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한 행동이기도 했다.
아크의 줄을 타면 살아남을 수 있다. 아무리 못해도 3위 안에는 들 수 있다. 그러한 '절대적인 확신'이 있었다.
결국, 그의 공들인 외교적 수환이 빛을 발했다. 카사르의 원군을 약속 받은 것이다. 마냥 손 놓고 죽음을 기다리는 게 아닌, 이 상황을 완전히 뒤집을만할 변수를 만들어냈다고 자무카는 자부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지원 병력이 온다.'
그러나 그가 예측하지 못한 게 있다면, 상황은 그리 낙관적으로 흘러가고만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백제의 공격이 점점 더 집요해졌다. 이제 요새를 지키는 병사들이 힘이 빠진 걸 알게 된 백제는 공격하는 척에서 끝나는 게 아닌, 진심으로 요새를 함락시킬 기세로 덤벼들었다. 1차 격전과 같은 성벽 위에서의 전투가 빈번히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성벽은 핏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올라오기만 해도 역한 피 냄새, 시체 썩은내가 사방에서 진동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상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모든 원망은 일기토를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자무카에게로 향했다.
"대추장! 결정을 재고해 주십시오!"
"아니, 그냥 계집년 하나 때려잡으면 그만이지 않소! 도전을 받아들인다고 우리가 손해 볼 것은 전혀 없소!"
"상대가 외국인이기는 하나 이것 또한 '전사의 결투' 아니겠습니까?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대추장!"
다시금 족장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들은 족장 회의에서 끊임없이 자무카에게 일기토를 종용했다. 그들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안 가겠다고 버티는 자무카를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족장들뿐만 아니라 병사들, 일반 시민들의 원망 또한 자무카에게로 향했다.
'대추장이 한낱 계집에게 겁을 먹어 방에 틀어박혀 있다.'
'진작에 끝났을 전쟁, 대추장이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백제 또한 자무카를 흔드는데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종종 비월을 보내 다시 한 번 일기토와 퇴각 약속, 선조의 영혼을 아로게쓰 병사들의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무카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악화되어갔다. 아로게쓰의 국민들에게 있어, 더 이상 일기토의 결과로 백제군이 병력을 물릴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동료들이 죽어가고 있고, 가족들이 죽어가고 있다. 어째서 모두가 원하는데, 위대한 전사이자 이 나라를 지켜야 할 사명을 가진 대족장이 고집을 꺾지 않고 버틴단 말인가?
그러나,
이것이 바로 로드가 노린 부분이었다.
분명 가해자는 백제였다.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몬 것도, 병사들을 죽이는 것도 전부 백제의 짓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원망은 같은 편인 자무카에게 쏠리고 있었다.
'이런 게 모략이라는 건가.'
자무카는 한숨을 쉬었다. 일기토를 받아들이면 목숨이 위험해지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른 가신들과 국민들의 원망이 쏠린다.
그야말로 완벽한 외통수.
모략은 승부의 세계에서만 살아온 자무카는 가지지 못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적의 계략에 감탄할 때가 아니었다. 여론이 악화되자 자무카도 위기감을 느꼈다. 이대로 힘으로 일갈하며 버티는 것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여 족장 회의를 소집했다. 족장들은 드디어 자무카가 결심을 바꾸었다고 생각하며 기대를 품고 참석했다.
그러나 자무카의 입에서 그들이 기대한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일기토를 하자는 백제 놈들의 말은 믿을 수가 없다. 따라서 본인의 결정에도 변함이 없다. 나의 요청으로 곧 카사르에서 지원 병력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만 풋힐랜치를 지키면, 우리가 이긴다!"
백제의 귀에 들어갈 염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무카는 거센 반대 여론의 타개법으로 '지원군'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족장들의 반응은 밋밋했다. 아니, 냉랭했다.
"카사르? 갑자기 여기서 왠 뜬금없는 카사르입니까? 그들과 우리는 아무런 접점도 없지 않습니까?"
"카사르는 믿으면서 왜 백제는 못 믿겠다고 하는 것이오! 둘 다 똑같은 외세가 아니오?"
"그 놈들도 신뢰할 수 없지! 보낸다고 해놓고 안 보내면 말짱 도루묵 아녀? 외세에 명운을 걸지 말고 우리 힘으로 어떻게든 해야제!"
지원군을 기다린다. 라는 것은 결국 불안전한 가능성에 기대어 싸우는 수동적인 선택에 불과했다. 그들은 결국 다시 피비린내 나는 성벽으로 올라가야 할 것이며 그 악몽 같은 징과 꽹과리 소리를 들으며 귀를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하루에 수십 번 이상 느껴야 할 것이다.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변화였다.
"반론은 불허한다. 우리는 카사르의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틴다! 더 이상 이 같은 화제를 입에 올릴 시, 본인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알겠다!"
자무카는 뜻을 굽히지 않고 강경하게 나왔다.
"대추장! 우리는 그저 납득이 가는 설명을 원할 뿐이옵니다!"
그때였다. 저번 회의 때 나서서 활약했던 뾰족 머리 족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일기토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손해 볼 건 아무것도 없다고 거듭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그저 계집 하나 상대하면……."
"반론은 불허한다고 했을 터."
"아니면 혹여나……."
족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계집년에게 겁을 먹으신 것이옵니까?"
푸확!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의자에 기대어져 있던 자무카의 창이 날아와 족장의 두개골을 꿰뚫었다.
"커……!"
이마를 꿰뚫은 창날에서 핏물이 오줌발처럼 튀어 올랐다. 족장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테이블에 쓰러졌다.
쿵!
시뻘건 액체가 테이블을 흥건히 적셨다.
"두 번 경고는 없다."
싸늘한 공기 사이로, 자무카가 창을 빙빙 돌려 바닥에 찍으며 말했다.
"그리고 본인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발언 또한 앞으로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주위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래, 진작 이렇게 피로 본보기를 보였어야 했다. 자무카는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어느 때처럼 회의실을 박차고 나가려고 했다.
"대추장!"
그때 눈이 시뻘개진 아미르가 벌떡 일어섰다.
"……또 뭐냐?"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소."
아미르가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도끼를 들어 올려 자무카를 겨누었다.
"대추장인 당신에게 전사의 결투를 신청하오!"
"……!"
"아, 아미르 추장!"
자무카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의 얼굴에 핏줄이 툭 툭 튀어 올랐다.
'……감히 내게 도전하는가.'
그는 지구에서도, 이 세계에서도 언제나 최정상이었다.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던 까닭은 도전자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었다. 그가 입 끝을 올렸다.
"좋다. 덤벼라"
상황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
갑작스럽게 시작하게 된 전사의 결투는 회의장 앞마당에서 간소하게 치러졌다.
그러나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아미르는 C+급 무력형 영웅이었고, 아직은 자무카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결국 치열한 싸움 끝에 아미르는 패했다.
아미르의 결투를 보고 자극 받은 몇몇 족장들이 다시 자무카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자무카는 연달아 세 번 결투를 치르게 되었다. 그 결과.
"……후우우."
모두 완승을 거두었다.
바닥에 세 명의 이름 높은 족장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다른 족장들은 모두 입을 쩍 벌리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자무카는 웃었다. 봐라, 이것들아! 나는 아직 건재하다!
"……어째서."
바닥에 누워있던 아미르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째서! 그 계집과 싸우지 않겠다는 겁니까!"
자무카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철저하게 응징했음에도, 아직도 기어오르는 건가.'
도전자는 철저하게 짓밟아야 한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들이댄 송곳니를 꺾어 놓아야 한다.
그것이 자무카의 철칙이었다.
적을 앞두고 전력을 보전한답시고 손속을 두니 이 꼴이다. 자무카는 아미르의 팔 한 짝을 거둘 생각을 하며, 그에게 걸어왔다.
"그 말이 맞소!"
족장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자무카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대추장이 건재하다는 것도 알겠소! 그 계집에게 겁먹지 않았다는 것도 알겠소! 그런데 어째서! 백성들을 구해주지 않는 것이오! 납득이 가는 설명을 해달란 말이오!"
"……이 놈들이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느끼며, 자무카가 성큼성큼 걸어와 그의 목에 창을 내질렀다. 족장은 막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고, 창이 자신의 목을 뚫고 들어오는 것을 방관했다.
푸화악!
피를 흩뿌리며, 족장은 목에 구멍이 난 채로 바닥에 엎어졌다.
"내 지시에 의구심을 가지지 마라! 항명하는 자는 죽음으로 다스릴 것이다!"
자무카가 소리를 지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세 차례의 결투를 모두 승리로 거둔 데다가 반론을 한 놈은 즉시 목숨을 거두었다. 완벽하게 분위기를 장악했을 터였다.
그랬다고 생각했다.
"……."
족장들은 고개를 숙이지도, 두려움에 떨지도 않았다.
'어째서.'
그들의 눈에서 '적의'가 보였다.
어째서 평상시처럼 나의 힘을 칭송하지 않는 것이냐.
어째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것이냐.
자무카는 혼란스러웠다. 대체 무엇이 어긋났는가? 아로게쓰는 힘이 전부인 사회이거늘.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 않는가!
머리가 폭발할 것처럼 아팠다. 혼란스러웠다. 자무카는 결국 창을 거두며 바람같이 그 자리를 떴다.
*
족장들은 시신을 수습하고 다시 회의실에 모였다.
"우리의 형제나 다름없던 족장 두 명이 죽고 한 명은 불구가 됐소."
족장들은 모두 결연한 표정이었다.
"아무리 대추장이라고는 하나, 한 부족의 족장들을 이렇게 쉽게 참할 수는 없는 것이오. 쉬이 넘어가야 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하오."
"…제 생각에는 지금 대추장의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젊은 족장이 손을 들며 말했다.
"정상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생각해보십시오. 정녕 아무런 징조가 없었습니까? "
그의 눈에 이채가 발했다.
"대추장은 본래 힘뿐만 아니라 강직한 인품으로도 널리 알려진 분이셨습니다. 지금의 아로게쓰란 나라가 탄생한 것 또한, 사람을 끌어안는 그 분의 인품이 기여한 바가 컸지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십시오. 어느 순간 갑자기 대추장의 성격이 확 바뀐 것 같지 않습니까? 전보다 더 난폭해지고, 또 포악해졌죠."
"……!"
그가 운을 때자 주위 족장들의 제보가 속출했다.
"보, 본인도 그런 생각을 했소! 다른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성격이 변했었지. 평소엔 여색을 멀리하고 경계하시던 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시종들로도 모자라 마을 처녀들까지 잡아들여 밤새도록 음란한 짓들을 즐겼소!"
"기억을 잃은 것 마냥 주위 사람들도 기억 못했었지요. 젊은 나이에 치매가 왔다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최근에 대추장이 활을 쓰던 거 본 사람 없소? 신궁이라고 칭송 받으며 활을 자신의 몸처럼 하시던 아끼시던 분이 활은 버려두고 평소에 잘 다루지도 않았던 장창만을 쓰시니……."
"허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어째서 지금까지 신경 쓰지 못했지?"
웅성 웅성
"……본인이 아란 그 놈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수다."
아미르파의 족장 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본인도 그대들과 같은 생각이오. 지금 대추장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오. 본래 가장 강한 전사의 명령은 절대적이나…… 지금은 나라의 명운이 걸린 상황.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오."
"아미르 추장을 대추장으로 내세웁시다."
아미르 파의 또 다른 족장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이대로는 정말 다 죽습니다. 전사들의 몸 상태도 그렇고 사기, 식량까지 바닥이니 시간을 끌어봐야 불리할 뿐입니다."
그가 호소하듯 얼굴을 찡그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다고 정상이 아닌 대추장의 말을 무조건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카사르의 지원군도 대추장이 만들어낸 망상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다시 한 번 좌중이 수군거렸다.
"자무카를 없애고, 새로운 대추장으로 아미르 추장을 추대합시다! 그렇게 되면 백제놈들도 나라 최고 전사가 된 아미르 추장이 일기토에 나가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 없겠죠! 만약 백제놈들이 선조의 영혼을 팔아먹는 쓰레기 위선자들이었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놈들이 요새를 공격해 들어오면, 성문을 열고 나가 맞서 싸우는 겁니다! 이대로는 모두 굶어 죽어요. 죽더라도 한번 제대로 붙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오오오!"
"그 말이 맞소!"
족장들이 모두 반색을 하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모 아니면 도. 간만에 가슴이 뻥 뚫리는 안건이 나왔다고 생각했다.
"아미르 추장. 아니, 대추장! 결단을 내려 주시지요!"
"아미르 대추장!"
"……."
잠자코 듣고 있던 아미르가 눈을 감고 고민했다. 모두의 진지한 시선이 그에게로 모아졌다.
"…알겠소."
그리고 끝내, 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지금은 비상시국. 모두가 원한다면 기꺼이 대추장의 자리에 오르리다."
아미르가 승낙함으로써 나머지 계획은 척척 짜여졌다. 자무카는 무예가 출중하니 그가 완전히 잠들어 있는 새벽에 거사를 실행하기로 했다. 족장들마다 병사들을 집결시켜놓았다가 일제히 왕의 침소로 향하기로 했다.
그러나 회의에 참석하여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남자. 모두가 환호할 때 반응에 맞춰주며 눈치를 살피던 남자, 신관 루그릭은 늦은 밤 거사가 치러지기 전에 다른 족장들의 감시 몰래 왕실의 침소로 향했다.
"대추장! 일어나십시오! 대추장!"
"……뭐냐."
자무카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반란, 반란이옵니다!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뭐?"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자무카의 눈에 핏줄이 섰다.
"이 놈들이 감히……!"
그가 침소에 가져다 놓은 창을 손에 쥐었다.
"고정하십시오! 아무리 대추장이라도 저들 모두를 상대하실 수는 없습니다!"
"빌어먹을!"
자무카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어쩔 수 없사옵니다. 이미 풋힐랜치는 틀렸습니다. 이곳을 빠져나가셔서 후일을 도모하셔야 합니다."
"빠져나가라고 하였느냐?"
자무카가 픽 웃었다.
"성 밖은 백제군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고, 도시 안에는 날 죽이려는 아미르의 졸개 놈들이 득실거리며, 풋힐랜치의 삼면은 까마득한 낭떠러지이니. 대체 어디로 빠져나가란 말이더냐!"
"……제게 생각이 있사옵니다."
루그릭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