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한 왕국의 월례회의 -->
"우선 이 오갈 데 없는 늙은이를 받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올려야겠군요."
노호준걸의 말에 로드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감사는 이쪽에서 하고 싶은걸요. 저희야말로 대륙 전역에 명성이 자자한 장인을 모실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허허허허! 이 늙은이를 치켜세워도 나올 건 없습니다!"
스파이의 활약으로 노호준걸과 제자들을 스미스타운에서 탈출시킨 후에, 스파이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어비스로 와달라는 로드의 뜻을 밝혔다. 노호준걸은 자신은 아직 아로게쓰의 백성이라며 조국을 쉽게 배신할 수는 없다고 했지만, 아로게쓰는 멸망해 버렸고 그가 버틸 이유 또한 사라졌다.
로드는 혹여나 노호준걸이 스미스타운을 점거한 백제로 가겠다고 할까 봐 걱정했지만, 괜한 기우였다. 노호준걸은 다행히 어비스로 와주었다. 로드가 아로게쓰에서 가장 탐을 내던 인재였고, 앞으로 세울 그의 계획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었다.
"소인 또한 언더하임에서 지내게 되어 기쁩니다. 이곳이야 말로 우리 대장장이들의 낙원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시선이 잠시 테라 광산 쪽에 머물렀다.
"게다가 저희 대장간에도 기꺼이 테라를 제공해 준다고 하시니! 오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허허허허!"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질 좋은 강철의 원산지이자, 희귀 광물 테라까지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이점이 제대로 어필이 된 모양이었다. 스미스타운의 대장간 시설도 이쪽에서 충분히 비슷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다. 돈은 많았다.
"아, 그러고 보니 옆에 있는 여아는?"
노호준걸의 시선이 베아트리체에게로 향했다.
"암살단장을 맡고 있는 베아트리체라고 합니다. 인사해야지?"
로드의 말에 그녀가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노호준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그래, 반갑구나! 내게도 자식이 있었더라면 이제 딱 너만한 손녀가 있었을 것을!"
노호준걸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육중한 손바닥을 내밀자, 베아트리체는 화들짝 놀라며 로드의 뒤로 숨었다. 노호준걸의 손이 움츠러들었다.
"아, 죄송합니다. 애가 낯을 좀 가려서……."
로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허허허! 이 늙은이가 험악하게 생겨서 그런가 봅니다, 그려."
노호준걸이 씁쓸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로드도 잠시 예전 생각이 났다. 그도 베아트리체와 처음 만났을 때는 여간 고생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로드가 코트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간식용 빵을 꺼냈다.
"그럼 서로 친해지면 되죠."
그리고는 노호준걸의 손에 빵을 쥐어주었다. 노호준걸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자세를 낮추며 그녀에게 빵을 내밀었다.
터업!
베아트리체가 수면 위로 뛰어오른 물고기마냥 불쑥 튀어나와 빵을 입에 물었다. 거의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지금입니다!'
로드가 속삭이듯 말했다. 노호준걸이 빵을 오물거리고 있는 베아트리체의 머리 위로 손을 얹혔다. 그녀는 잠시 움찔했지만 빵을 먹느라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노호준걸이 안심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어이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허허허허! 고것 참 복스럽게 잘 먹는구나!"
뭔가 애완견을 다루는 느낌이긴 하지만… 뭐 어떤가! 서로 사이가 좋아지면 좋은 게 아니겠는가!
"그래, 암살자라고 했느냐? 혹 가지고 싶은 무기가 있다면 말하거라! 이 할아비가 뭐든 만들어 주마!"
"……괜찮아요."
그녀가 뺨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저는 단검이면 충분해요."
확실히, 베아트리체가 사용하는 단검은 투척 등으로 전투에서 소모되는 경우가 많았다. 좋은 단검을 만들어 주어도 전투 한 번에 잃어버릴 것이다.
"허허허! 그거 아쉽구나! 이 할아비가 손수 무기를 만들어 주는 기회는 드물거늘!"
그 말을 들은 로드가 문득 생각이 나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왕실에 유니벨이라는 녀석이 있는데, 나중에 시간이 되시면 그 녀석 무기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항상 맨손으로만 싸워서 무기가 하나쯤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허허! 맨손으로 싸운다면 격투가 입니까?"
"이능력 사용자 입니다. 격투도 능하긴 하지만요."
노호준걸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 이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전용 무기로 만들어야겠군요. 나중에 한번 대장간에 들려 달라고 말해주시지요. 직접 그 힘을 봐야 감이 올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소인이야 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곳에서의 새로운 생활이 기대되는군요! 허허허!"
- '노호준걸'(B)가 소속 가신이 되었습니다.
- '노호준걸'(B)의 휘하 인재들이 소속 가신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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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노호준걸
소속 : 어비스 대장간
직위 : 치프 블랙스미스
종족 : 인간
무력등급 : (E)
통솔등급 : (E)
지략등급 : (F)
정치등급 : (B)*
B급 정치형 클래스 입니다.
고유능력 : 장인 정신
아로게쓰 최고의 대장장이인 노호준걸은 최고의 명작만을 만들어 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성에 차지 않는 작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포기합니다. 하나의 장비를 만드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러한 인고의 노력 끝에 세상에 등장한 그의 작품은 모두 놀라운 성능을 발휘합니다.
장비의 제작 속도가 느리지만 명품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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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는 오늘도 뭉텅이 같은 서류들을 양손에 가득 든 채 왕궁으로 출근했다.
메이드들의 인사를 받으며 로드의 집무실 앞에 도착하니, 문 너머에서 로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일찍 출근하셨네?'
늦잠쟁이 로드가 이브보다 먼저 출근한 것은 정말 드문 경우였다. 그녀가 집무실 문을 열고 인사했다.
"폐하, 좋은 아침이에…… 아."
이브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로드는 지휘관 창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마 다른 나라의 왕과 외교 문제에 관해서 논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녀는 방해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발소리를 죽이며 자기 자리에 앉았다. 로드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이브 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 물론 해드려야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바로 확인해보겠습니다."
로드는 대화를 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아침은 먹었어?"
그가 한마디 툭 던졌다.
"아, 네! 그런데 대화하시다 말고 어디 가세요?"
"잠깐 확인할게 있어서."
로드는 그렇게 말하며 창가에 손을 짚고 창 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스파이의 눈, 발동.'
우우우우웅! 그의 오른쪽 눈이 푸른 마력으로 물들었다. 조금 시간이 흘러 로드는 오른쪽 눈을 잠시 감았다가 떴다.
그러자 새로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왼쪽 눈은 로드 본래의 시선인 창 밖 배경이 보였고, 오른쪽 눈은 로드가 파견해둔 '스파이'가 보고 있는 광경을 비추고 있었다.
로드는 왼쪽 눈을 감으며 스파이의 시선에 집중했다. 스파이는 야전에 있었다. 그가 위치한 곳은 두 검이 교차된 푸른 깃발이 나부끼는 진형, 바로 카사르의 진형이었다. 무수히 많은 기사들이 그를 지나쳐가는 게 보였다. 기사들이 그를 보고도 아무 짓도 안 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카사르의 병사로 위장잠입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카사르의 진형 너머로는 요새가 보였다. 바로 글레이시온이 지키고 있는 거점 영지였다.
카사르에서 공성을 걸었고, 글레이시온은 수성을 하고 있다. 두 나라는 요새를 앞두고 전황이 고착화되어 있었다.
'당장 승부가 나지는 않을 것 같군.'
로드는 스파이의 눈을 종료하고, 다시 자리로 되돌아왔다.
"여전히 두 나라는 전쟁 중입니다. 전황이 고착화되긴 했지만, 어느 쪽도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이네요. 안심하시고 계속 시대 발전에 집중하세요."
로드의 말에 뺑뺑이 안경을 쓴 알란드의 플레이어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헤헤, 감사합니다. 뭔가를 하려고 해도 이렇게 옆 나라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니, 여러모로 불편하네요. 특히 이번에 멸망한 드라큘레안을 보니까 더더욱 걱정만 늘었어요."
로드가 영업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분간은 괜찮을 테니 안심하세요. 전면전 중인 카사르가 따로 병력을 빼서 공격할 여유는 없을 테니까요."
"헤헤, 다행이네요. 아, 그리고 이번에 아로게쓰를 잡은 거 정말 축하 드려요! 세상에, 다른 나라도 아닌 어비스가 아로게쓰를 잡다니! 로드님은 우리 삼대장의 희망입니다!"
그 말에 로드가 쓴 웃음을 지었다.
'이건 칭찬이냐 욕이냐.'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삼대장은 카오스월드의 게이머들이 우스갯소리로 지어낸 '속국 삼대장'을 뜻한다. 그 멤버로는 과학의나라 알란드, 음악의나라 베틀린, 그리고 무법자의나라 어비스가 있다. 실제로 이 세 국가는 신들의 연회에서도 '최종 3픽'까지 나란히 살아남을 만큼 인기가 없었다.
"아로게쓰를 잡은 건 순전히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겸손하시긴! 그래도 로드님은 멸망 보너스를 드셨으니 한숨 돌리셨겠네요. 부럽습니다."
사실 지금 아로게쓰의 액스워리어가 가장 절실히 필요한 국가는 바로 저 알란드가 아닐까? 하고 로드는 생각했다.
"저도 지금은 이렇게 도움만 받는 신세지만, 이 빚은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아무튼, 정말 감사 드려요!"
그 말에 로드가 손사래를 쳤다.
"별 말씀을, 약소국들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죠. 그 대신 나중에 알란드의 전성기가 오면 그때 저 모른 척 하기 없기입니다?"
"헤헤, 그야 물론이죠! 제가 크기만 한다면야 로드님은 Top3까지 책임지고 데려가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말씀만 들어도 든든하네요."
두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종료했다.
"후아아… 알란드가 좀처럼 커주질 않네."
대화가 종료되자 로드의 웃는 얼굴이 굳은 얼굴로 변했다. 이브가 서류를 정리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플레이어의 운영 스타일이 너무 소심해. 물론 조심스러운 것도 좋지만 명색이 알란드라면 배짱 있는 플레이도 필요한데 말이지."
"폐하. 알란드는 어떤 나라인가요? 과학의 나라라는 것 밖에는..."
"대기만성형. 그러니까 전형적인 후반 강세형 국가라고 생각하면 편해."
로드가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후반에는 얼마나 강한데요?"
"으음, 내가 본 알란드는 거의 다 초반을 못 넘기고 몰락했지만, 딱 한번. 문화 시대까지 간 적이 있었어. 그때 알란드는……."
로드가 그 장면을 떠올리는 듯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말을 이었다.
"무려 3:1을 이겼어. 3개국 연합을 홀로 박살냈지."
"……!"
아직도 기억이 생생했다. 검과 활이 판치는 카오스 월드의 전장에서 알란드의 총사대와 기갑부대가 처음 등장한 순간을.
"저, 정말인가요? 그럼 그 세계에서는 알란드가 마지막까지……."
"아쉽게도 4위로 끝났어. 그 전쟁 이후, 겁먹은 다른 국가들의 타깃이 됐거든."
"아……."
이브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알란드를 돕는 이유는 그쪽이 멸망하면 다음은 우리가 위험해지니까 그런 것도 있고, 또 일종의 보험이라고나 할까? 초반에 그렇게 도움을 줬으니까 만약 알란드가 후반까지 살아남는다면 우릴 마냥 모른 척 하지는 않겠지."
"…보험, 이로군요."
"하지만 내 예상으로 알란드는 개척 시대에서 끝날 거라고 봐. 플레이어가 너무 소심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로드가 가볍게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씩 웃었다.
"이번 카사르는 정말로 잘하거든."
그때 마침 시종장이 집무실로 들어와 회의실이 준비되었다고 알렸다. 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다른 나라들의 사정은 당장 우리 알 바 아니니깐.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자고."
"네, 폐하."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 작품 후기 ==========
왜 소설 작명소는 없나요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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