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재 게이머 -->
마침내 퍼들스퀘어의 영지성이 보였다.
영지성으로 가는 길목에 풀과 나무들이 드문드문 자라고 있었다. 어비스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라는 이브의 말이 사실인 듯 했다.
'확실히, 바깥도 이 정도인데 오아시스가 있는 성 안이라면 작물을 기를 수 있을 것 같네.'
식량에 목마른 로드로서는 무척 탐이 나는 땅이었다.
어비스군은 영지성 앞까지 와서 진군을 멈추었다. 성벽 위로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곳곳에 흑사회를 상징하는 뱀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베아. 항복을 권유하는 서신은 보냈지?"
로드가 물었다.
"…네, 주인님. 화살에 서신을 매달아 쏘아 보냈고, 저들이 서신을 풀어 가져가는 모습까지 확인했습니다."
"답신은?"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어 보였다.
"쯧. 귀찮게 하네. 한판 해보자는 거지?"
스파이의 보고에 따르면 퍼들스퀘어의 수비 병력은 고작 500명이었다.
반면 어비스군은 그의 5배에 해당하는 병력을 가졌고 B급 영웅 또한 둘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리 성을 끼고 있다고는 하지만 상대가 되지 않는 화력차였다. 로드는 그들의 항복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로 보란 듯이 많은 병력을 동원한 것도 있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을 듯 했다.
"아깝겠지."
유니벨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영지 안에서 주민을 노예처럼 부리며 호의호식하는 삶을 살아온 놈들이잖아? 이미 권력의 맛을 본 녀석들이 우리한테 쉽게 땅을 내놓겠어?"
"……그런 건가?"
"그 말이 맞소! 저들은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릴거요! 이 아우에게 맡겨주시오, 큰형님!"
피닉스가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베아 선배나 재정관 나리가 나설 것도 없수다! 내게 병력을 맡겨주시면 아주 박살을 내버리겠소!"
"가만히 흘려 들을 수 없군. 형제여."
아란이 다가와 로드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폐하. 이제 이 외부인 딱지도 지긋지긋합니다. 소신과 아로게쓰의 전사들이 폐하께 충성을 증명해 보일 기회를 주십시오."
"형제여! 그건 아니 될 말이네! 마피아처럼 흑사회 또한 우리 어비스가 해결해야 할 잔존 문제! 어비스의 일은 어비스의 일원이 정리해야 하는 법이야!"
"이제는 나도 어비스의 일원일세! 형제여!"
두 남자가 선봉장 자리를 놓고 투닥거렸다. 요즘 들어 덤앤더머처럼 붙어 다니는 두 사람이었다.
'……음, 누굴 보낼까.'
요새를 공략해야 하는 공성전의 특성상, 초장부터 영웅들이 난입해 힘을 발휘하는 건 어렵다. 병사들을 다루는 게 더 중요한 전투. 그렇다면 이 중에서 가장 통솔 능력치가 높은 아란이 맡는 게 이상적일 것이다.
"선봉장은 아란이다."
"황송하옵니다, 폐하!"
아란이 깊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피닉스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모두들 공성 준비 해. 시간 끌 필요 없이 오늘 하루 만에 점령해 보자고."
"어? 저기 흑사회의 보스가 나온다."
유니벨이 성벽 쪽을 가리켰다.
"어디?"
로드가 그녀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과연, 한 눈에 봐도 보스라고 일컬어 질만한 남자가 있었다. 마틴 못지않은 거대한 덩치에, 크고 작은 상처들로 뒤덮인 험상궂은 얼굴이 보였다.
'…뭔가 엄청 강해 보이는데?'
"저놈이 흑사회의 두목인 '건마'요."
피닉스가 설명했다.
"소문에 따르면 마틴과 삼일 밤낮을 싸운 끝에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고 했소."
"…뭐어어? 마틴과 동등할 정도야?"
로드는 이마를 감쌌다. 그 정도의 영웅이 또 있었을 줄이야. 그저 토착 세력이라고만 여겼는데 안일하게 생각한 듯 했다.
'좀 더 신중하게 공략해야겠군.'
*
그 시각, 퍼들스퀘어.
건마가 성벽으로 올라오자 병사들이 동시에 허리를 구십도로 팍 숙였다. 다른 누군가가 보았더라면 그들의 머리 위로 칼날이라도 날아오는 줄 알았을 것이다.
"너희들은 물러가라."
건마가 한마디 내뱉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중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예, 옛! 두목!"
병사들이 벌벌 떨며 도망갔다. 병사들이 모두 물러가고 남은 건 건마와 함께 올라온 군사인 흑운뿐이었다.
"이보게, 흑운."
"네, 두목."
그가 흑운을 돌아보며 몸을 움츠렸다.
"……우리 이제 어떡해?"
그것은 명백히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두 다리를 오므리고 양 손은 가지런히 모은 채 입술을 달달 떠는 모습은 그의 흉악한 외모와 완전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묘하다 못해 괴이할 지경이었다.
"엿 됐네요."
흑운이 말했다.
"…뭐?"
"그것이 제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우린 엿 됐습니다."
"에라이, 진지한 표정으로 무슨 소릴 하나 했더니! 그런 것쯤은 나도 알고 있으니 책략이나 말하라고! 널 우리 조직으로 영입한답시고 얼마나 돈을 썼는데!"
흑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뭔가 상대가 돼야 싸워보던가 하죠. 전력 차이가 너무 심하잖아요."
"그, 그럼 어떻게 하지? 그냥 항복할까? 나가서 발가락이라도 핥을까?"
"절대 안 됩니다!"
흑운이 버럭 소리 질렀다.
"그럼 뭔가 다른 방법이?"
"아니 일단 안 된다구요."
"……."
"항복을 해도 포악하기로 소문난 로드 폴렌티아가 두목을 살려줄 것 같습니까? 마틴이 어떻게 됐는지 벌써 잊으셨습니까?"
"끄응."
건마가 비틀거리며 성벽을 짚었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일단은 악착같이 버텨 보는 수밖에요. 그러다 보면 뭐 적당히 하늘이 도와주겠죠."
"내가 군사를 데려온 건지 동네 바보를 데려온 건지 모르겠군."
그때 멀리서 뿌옇게 일어나는 흙먼지를 바라보던 흑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오우."
"왜 그러는가?"
"정말로 하늘이 우릴 돕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어비스군은 공성 준비에 한창이었다. 천막을 치거나 울타리를 두르는 등의 야영 준비는 서두르지 않았다. 로드는 정말로 하루 만에 퍼들스퀘어를 함락시킬 생각이었다.
"폐, 폐하!"
아란이 헐레벌떡 로드에게 달려왔다.
"왜?"
"큰일 났습니다! 어서 나와 보십시오!"
로드가 그를 따라가자 지평선 멀리서 한 무리의 군대가 보였다. 병사들도 그 모습을 발견하고는 웅성거리고 있었다.
"저, 저 놈들은 갑자기 뭐야?"
"어디 군대인 거야?"
그 순간 로드의 눈에 들어온 것은 두 검이 교차된 푸른 깃발이었다. 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카사르."
그것은 다름아닌 카사르의 군대였다.
*
"어라?라?"
병력의 선두에 선 아크가 씨익 웃어 보였다.
"릴리양. 저거 어비스군 맞지?"
"그런 것 같네요."
아크의 옆에서 나란히 말을 탄 초록 머리의 소녀가 말을 받았다. 검은 배경에 하얀 눈동자가 새겨진 깃발. 어비스군이 확실했다.
"히야? 타이밍 딱 좋게 왔네?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 했어."
"어머, 좋은 타이밍은 아니지 않아요? 몰래 퍼들스퀘어를 꿀꺽하려고 왔는데, 주인과 딱 마주쳐버린 격이니까요."
아크가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그리며 웃었다.
"문제없음! 어비스가 더 커버리기 전에 주력군을 깎아먹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아크가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통신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옆으로 숨긴 반대쪽 손은 지휘관 창을 조작하고 있었다.
- '아크 더 라운드'님이 '로드 폴렌티아'님께 1:1대화를 신청하셨습니다.
"……이 자식."
로드가 비틀어진 미소를 지으며 지휘관 창을 움직였다.
- '로드 폴렌티아'님께서 1:1대화를 승낙하셨습니다.
우웅!
새로운 창이 떠오르며 방향성 없게 자유로이 웨이브 진 갈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나타났다. 높은 콧날과 이상적으로 자리 잡은 이목구비를 보고 있으려니 고대 그리스 조각상이 눈앞에서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짜?안! 잘 들리죠? 로드 씨?"
아크는 꺼져있는 통신 수정구를 들어 올린 채 말을 하고 있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로드의 물음에 아크가 소리를 죽여 말했다.
"그냥 주위 사람들이 허공이랑 말 하고 있으면 이상하게 볼 테니까, 이렇게 장난치는 거죠."
로드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도 따라 통신 수정구를 들었다. 옆에 따라붙은 베아트리체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주인님?"
"아, 통화 중이니까 신경쓰지 마."
로드는 그렇게 말하며 수정구를 들어 올린 채 지휘관 창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군대를 이끌고 남의 영토로 쳐들어 온 주제에 헤실헤실 웃는 얼굴이었다. 그냥 동네 산책이라도 나온 듯 긴장감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로드가 입을 열려고 하는 찰나,
"몇 살이에요?"
라고 아크가 먼저 물었다. 순도 100%의 뜬금없는 질문에 로드가 눈을 깜박거렸다.
"……어. 스물넷입니다만."
"오, 친구네요! 저도 스물넷이에요! 로드 씨는 이미 알고 계셨겠지만."
'…뻐기기는.'
자신이 유명인이라는 사실을 즐기는 스타일인가? 로드도 그의 프로필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 딱히 반박하지는 않았다.
"동갑끼린데 말 편하게 하죠. 오케이?"
"…네?"
"시원시원한 성격이네! 마음에 들어, 로드 군!"
"……."
나는 대체 누구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가. 로드가 그런 의문을 품고 있는 사이 아크는 계속 떠들었다.
"이제 마지막 영토를 접수하려는 거지? 되게 오래 걸렸네. 빈 영토는 내버려두고 타국 영토부터 뺏다니! 너무 욕심 많은 거 아냐?"
"……하아. 뭐, 좋아."
로드가 체념하듯 한숨을 쉬고는 그를 노려보았다.
"여긴 어떻게 왔지?"
화면의 아크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왜 가 아니라 '어떻게' 라고 묻네?"
"쳐들어 온 명분 따윈 궁금하지도 않아. 내가 알고 싶은 건……."
"어떻게 로드 군의 감시망을 빠져 나왔느냐지?"
아크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어비스에 대해 알고 있다면 간단히 추론할 수 있는 부분이야, 로드 군. 권능의 효과를 받는 '어비스 스파이'는 훈련할 수 있는 숫자가 한정되어 있어. 무한이 아니란 거지. 그럼 어떻게 스파이를 뿌려두는 게 최선의 배치일까? 영토를 맞댄 주위 국가들에 한 명씩 보내놓고, 나머지는 몇몇은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게 하면서 국제 정세를 살피거나 정보를 파는 게 베스트! 그렇다면 아직 기원시대인 로드 군이 내게 스파이를 두 명 이상 붙여두는 건 힘들겠지? 그럼 그 하나 남은 스파이는 어디에 있을까?"
아크가 손가락으로 빙빙 원을 그리며 이어 말했다.
"평시라면 왕궁 근처에 잠복하고 있겠지만, 전시라면 그 나라의 주력이 있는 곳. 바로 글레이시온과의 전쟁터 근처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겠지. 내 말 맞지?"
"……."
"헤헷, 표정을 보니 정답인가 보네! 하긴 당연한 선택이야. 어비스가 이웃국에 스파이를 보내는 이유는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군대의 움직임을 체크하기 위해서니까. 나는 그 빈틈을 노린 거야. 여기 온 병력은 전장과는 별개로 왕궁과 다른 거점 영지에서 끌어 모았지."
그가 검지를 척 뻗으며 위풍당당하게 말했다.
"아로게쓰 건은 꽤 인상 깊었어. 하지만 각 국가의 정보를 활용하는 건 너뿐만이 아니야, 로드 군."
로드가 묘한 웃음을 흘리며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하지만 그 플레이는 무리수라고 보는데."
"헉, 어째서?"
"내 눈을 피하기 위해서 에이스를 비롯한 주력 영웅들도 글레이시온 쪽에 그대로 두고 왔단 소리잖아. 지금 네가 이끌고 있는 건 주력이 아닌 2군 병력이란 거겠지. 퍼들스퀘어 빈집털이는 2군으로도 충분하다. 라는 계산 아닌가?"
"……헤에, 바로 들켜버렸다."
아크가 혀를 빼물며 자신의 머리를 콩 하고 쳤다.
"……."
로드는 순간 살의가 폭발했다. 와, 저런 모션을 현실에서 취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니! 이건 재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중증의 정신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핸디캡은 서비스로 해줘도 괜찮아. 그리고 이 편이 더……."
아크의 눈이 감기듯 가늘어졌다.
"짜릿하잖아?"
선한 미소가 비틀어져 일그러진 미소가 되었다. 로드는 순간 팔에서 소름이 돋는 듯 했다. 가면 속 그의 끔찍한 맨 얼굴을 들여다 본 기분이었다.
아크는 다시 선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되돌아 와서 말했다.
"로드 군의 말이 맞아. 병력도 열세, 영웅들도 두고 와서 여기 있는 녀석들은 전원이 C급에서 D급이야. 하지만 이 녀석들로 충분해. 실력의 차이를 보여줘야 앞으로 까불지 못하겠지?"
로드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이것 참. 너무 얕보인 모양인데."
"에이? 설마! 이곳의 플레이어들 중에서 로드 군을 가장 높게 평가하고 있는 건 나라구. 아무튼! 이렇게 됐으니 제대로 한판 붙어보자구. 실력 좀 보게."
아크가 그렇게 말하며 지휘관 창 앞으로 손을 들어 방아쇠를 당기는 포즈를 취했다.
"빵야! 각오하라구. 자칭 게임 폐인님."
========== 작품 후기 ==========
자무카에서 아크라니. 갑자기 난이도가 팍 뛰어버렸군요!
아, 그리고 여러분 ㅠㅠ 새로운 제목 작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의견이 있으시면 좀 도와주세요. 현재 생각해 둔건
에덴전 - 신들의 게임
에덴묵시록 - 왕들의게임
주신전 - 왕들의게임
더킹 - 왕국게임
킹스리그 킹스로드 게이머즈 왕국전쟁 킹스로드 에덴의왕국 에덴의왕 문명의시대
이외 등등 많습니다. 그런데 딱 삘이 오는게 없네요. 혹시 이 중에 괜찮아보인다거나 달리 추천할 제목 있으시면 도와주세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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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emL / 변태가 늘고있다��ㅋㅋㅋㅋ
Noist / 변태성에 눈을 뜨고 말았습니다.
아프게했어 / 제사 고생하셨어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kyicicle / MaJo!!
PersonalReallity / 그렇습니다 사실.... M
와인을즐기는사신 / 헉, 저를 당황하게 하려는 목적이셨...!
데리쿠라 / ㅋㅋㅋㅋㅋㅋ
무꾸914 / ...네? 변태 커플을 원하십니까!
보라색맛 / 앗, 오타 지적 감사해요!
라크레 / 마읍읍..
섹시파워 / 저는 매우 건전한 성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