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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76화 (76/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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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는 확신했다. 아무래도 그녀는 정말로 한가해서 놀러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유라야."

"치엘로예요."

"아, 그래. 아무튼 너. 그 워프게이트 말이야, 마녀들 말고 외부인인 나도 쓸 수 있는 거야?"

그녀가 텅 빈 과자 바구니를 흔들어 보였다.

"알고 싶으면 먹을 거 좀 더 리필해줘요. 그리고 커피랑."

"……여기는 카페가 아니라 제 집무실 입니다만!"

결국 로드는 메이드를 불러 커피와 쿠키를 더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치엘로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외부인이라고 불가능할 건 없죠. 워프게이트를 열고 적대국 수도 위에 대형 몬스터를 떨어뜨리는 게 켈타인의 궁극기니까요. 몬스터도 되는데 사람이라고 안 될까 봐요?"

"그거 뭐야, 무서워. 우리 친하게 지내자."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본 거예요?"

로드는 앓는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이마를 툭툭 두들겼다. 이걸 이야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실 내 스파이의 정보망에 인재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어."

결국 로드가 입을 열었다.

"난 지금까지 계속 지략형 영웅을 찾고 있었어. 군사 자리가 계속 공석이었거든."

"헐, 이제 게임이 중반에 접어들었는데 아직도 군사가 없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그때 메이드가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과자와 커피를 서빙했다. 치엘로가 커피를 받아 들며 '감사합니다아?.' 하고 명랑하게 인사했다. 메이드가 치엘로를 힐끔 살피더니 별 말 없이 서빙 카트를 몰고 나갔다.

"익숙하다는 반응이네요? 복장이 이래서 놀랄 줄 알았는데."

그녀가 챙 넓은 마녀 모자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내가 암시장에서 불러온 코스프레걸인 줄 알았겠지. 우리 어비스는 다양한 취향을 충족하고 있거든."

"……으휴."

그녀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경멸하는 눈으로 로드를 보았다.

"주신과 조율자를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에 꼭 자기 욕정을 풀기 바쁜 플레이어들이 꼭 있다니까요. 성교 파티? 하렘 구축? 하아, 지구에선 찐따였던 것들이 왕이 됐답시고 나대는 꼴이란."

"……그거 왠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은데?"

"왜, 찔려요?"

"찌, 찔리기는! 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

"와아? 역시 유전적 로리콤은 양심 또한 조그만 거로군요."

하늘같은 두 살 오빠가 말씀하시는데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저 버릇없는 작태를 보라! 로드는 다시 화제를 되돌렸다.

"아무튼 난 지금 지략형 영웅이 절실해. 저번 전쟁에서도 여러모로 군사의 필요성을 느꼈지."

"아, 나 그거 알아요! 아크 씨랑 한판 붙었다면서요?"

"그럼! 전혀 꿀리지 않았……."

"탈탈 털렸다고 하던데."

"누가!"

로드가 발끈해서 외쳤다.

"아크 씨가요. 채팅창에서."

"……그 자식!"

로드가 억울한 듯 책상을 내리쳤다. 잠시 채팅창에 소홀해있는 사이 이런 식으로 엿을 먹이다니! 아크가 약 올리는 표정으로 혀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절로 상상이 되었다. 로드는 분노를 식히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하여튼 간에, 스파이에 따르면 그 인재가 알브헤임의 영토에 있다는 소문이야. 아직 왕실과 관련된 인물은 아닌 모양이더군. 늦기 전에 내가 얼른 채가고 싶은데……."

"그래서 워프게이트를 타고 가서 그 인재와 몰래 접촉해보시겠다?"

"바로 그거지."

치엘로가 '흐응.' 하는 콧소리를 내며 다리를 반대로 꼬았다. 소녀의 몸이지만 묘하게 색기가 있었다.

"좀 위험하지 않아요? 그냥 오빠 쪽 스파이 몇 명 보내서 꼬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전에 그렇게 해봤는데, 그것만으론 쉽지 않더라고."

로드가 노호준걸 때를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노호준걸은 스파이를 잡으러 무기까지 들고 날뛰었었다.

"솔직히 왕인 내가 생각해도 말이지. 영입 제안을 받는 당사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어비스행은 부담스러울 것 같거든."

"아무래도 그렇죠? 어비스하면 나쁜 사람들을 모아놓은 범죄 국가 같은 느낌이니까요."

"그러니까 군주인 내가 직접 가겠다는 거야. 진정성도 있고, 간절함도 있고, 당사자의 마음을 더 흔들 수 있지 않을까?"

로드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스스로에 대해 감동했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왕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베아야! 아빠가 널 먹여 살리러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있단다.

"일리가 아주 없는 말은 아닌데, 그렇게까지 해야 할 가치가 있을까요?"

"이정도야 뭘. 난 인재를 얻기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수 있어."

로드가 단호하게 말했다. 치엘로는 뺨에 손가락을 얹고 '음?.' 하며 무언가 생각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좋아요. 워프 게이트를 빌려 주는 건 문제없지만, 몇 가지 제한이 있어요."

"제한? 말해봐."

"저희도 개척 시대에 진입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라 당장은 워프게이트의 활용이 떨어져요. 일단 한 번에 워프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두 명 정도예요."

"두 명이면 충분해. 남의 나라에서 큰 소란 피울 것도 아니고, 잠깐 갔다가 인재에게 접족하고 다시 돌아올 테니까."

문제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아트리체를 호위로 데려가면 안전에도 문제가 없으리라.

"그리고 한 가지 더!"

"뭔데?"

"치엘로가 로드 오빠랑 동행할 거예요!"

그녀가 V자를 옆으로 세워 들며 깜찍하게 눈을 찡긋했다.

"……."

로드가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나이 먹고 그러고 싶니?"

"아직 스물 둘 밖에 안됐거든요! 한참 귀여울 나이거든요! 노땅 복학생 주제에 나이로 시비 걸지 말아 주시죠!"

"아니,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 뜬금없이 왜 네가 따라오겠다는 거야?"

"타국에서는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요. 돌아갈 워프게이트를 열 수 있는 제가 직접 따라가는 게 더 안전하죠."

"…그런 이유라면 다른 마녀 영웅을 붙여줘도 되잖아."

그 말에 치엘로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비 맞은 고양이처럼 처연하게 몸을 움츠리더니, 슬쩍 시선을 올리며 글썽이는 눈망울을 깜박거렸다.

"저는 안 되나요? 치엘로는 안 되는 건가요?"

귀엽다. 라는 감정을 부정하기 위해 로드는 애써 냉정한 척 대꾸했다.

"그 혀 짧은 소리 좀 그만해."

"피이."

자무카나 선광같이 적당히 이용해먹기 쉬운 녀석들만 상대하다가, 갑자기 아크나 치엘로 같은 여우들을 상대하려니 골치가 아팠다. 특히 가장 무서운 점은, 그래도 수컷이라는 종족 특성 때문에 저런 속보이는 그녀의 행동이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알겠어."

로드가 고심 끝에 말했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이 밝게 펴졌다.

"그럼 손님. 게이트 비용으로 3천 골드 되시겠습니다."

"뭐, 뭐라고?"

로드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그렇게 원하던 군사를 얻으실 수 있는 기회잖아요?"

그녀는 웃는 얼굴로 덤덤히 말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켈타인 최고 몸값인 왕인 제가 직접 모시는 건데, 이 정도는 되어야죠!"

"……이봐, 워프게이트 하나 열어주는 것 치곤 너무 비싼 거 아냐?"

"워프게이트는 마력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거든요! 엄연히 자원이 소모되는 기술이에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로드를 척 가리켰다.

"그리고 로드 오빠도 정보 값으로 이 정도의 돈을 요구하는 거, 다 알고 있거든요!"

"윽."

로드가 잠시 말문이 막힌 사이, 그녀가 팔을 거두며 산들바람처럼 나긋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의심스럽게 공짜로 데려가 주겠다는 사람보다아, 저처럼 순수하게 거금을 요구하는 쪽이 더 믿음직스럽지 않아요오?"

"……이미 네가 네 입으로 그 말을 내뱉은 순간 전혀 믿음직스럽지 못하게 됐거든!"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해요."

그녀가 선심 썼다는 듯 손가락을 가로 그었다.

"선불금 절반에 계획한 대로 군사를 구하면 다시 절반. 어때요? 특별 서비스!"

"……조삼모사냐."

로드는 잠시 고민했다. 3천골드와 지략형 영웅. 사실 고민할 가치도 없었다. 천금을 들여서라도, 필요하다면 지옥에서라도 데려오는 게 영웅이었으니까. 로드가 한숨을 쉬며 답했다.

"선금은 일정 잡히면 보내줄게."

"헤헤, 걸렸다아!"

'……정말 이런 녀석을 믿어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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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치엘로 블랙노트

소속 : 켈타인 왕실

직위 : 왕

종족 : 인간

무력등급 : (C+)

통솔등급 : (B)

지략등급 : (B)*

정치등급 : (C)

B급 지략형 클래스 입니다.

고유능력 : 트리거 - 세 번째 응시자.

마나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치엘로는 어린 나이부터 '멀린의 아이들'의 칭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마력 체계는 다른 마법사나 마녀들과는 달리 새로운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마법을 세 번 연속해서 사용할 경우, 세 번째 마법의 위력과 효과를 세배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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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로드는 행동에 나섰다.

다른 가신들에게는 잠시 휴가 차원에서 어비스 영토 내 다른 마을에 다녀온다고 둘러댔고, 신관인 이브에게만 진짜 용무를 알려두었다. 그녀는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치엘로와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고, 알브헤임에서도 사고 칠 일 없이 조용히 다녀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였다. 결국 이브의 허락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로드가 약속 장소인 외곽 공터로 나갔다.

"여기예요! 로드 오빠!"

치엘로가 로드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렇군, 알겠다.'

이 순간 로드는 대단한 진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떨어지는 사과에서 만류 인력을 깨달은 뉴턴도, 목욕탕에서 넘친 물을 보고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도 지금 이 순간 로드의 깨달음에는 미치지 못하리라.

'그냥 쟤는 아무 생각이 없는 거였어.'

로드는 너 놀러 가니? 라고 무심코 툭 던질 뻔 했다. 평소의 챙 넓은 마녀 모자 대신 꽃과 리본을 얹은 밀짚모자에, 어깨와 가슴골이 드러나는 흰 셔츠, 여전히 짧디 짧은 치마와 샌들을 신었다. 그리고 노출이 있는 복장과 대비되도록, 곳곳에 귀여움을 어필하는 리본 장식과 팔찌가 눈에 띈다.

그녀가 뒷짐을 지고 다가와서는 로드의 옷차림을 발밑에서 머리까지 슥 훑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5점 드릴게요."

"……뭐?"

절로 얼떨떨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녀가 불만스러운 듯 눈썹을 모으며 로드의 옷차림을 지적했다.

"그래도 간만에 같이 외출하는 건데, 너무 패션에 신경 안 쓴 거 아닌가요? 에엑, 갈색 바지 촌스러! 주머니 여섯 개 달린 조끼 구려!"

"……이게 이 세계의 정상적인 모험가 복장이거든."

로드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복장을 지적하고 싶은 건 이쪽이었다.

"그리고 5점이라니… 몇 점 만점인데?"

"백 점 만점이요."

"젠장."

또 말리는 느낌이다. 그녀와 대화를 하면 자꾸 함께 산으로 올라가는 느낌이다.

"됐고, 빨리 워프게이트나 열어. 지금쯤 유니벨이 날 죽이러 왕궁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을 테니까."

"네에, 그러지요.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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