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인 스카우트 대작전 -->
치엘로가 앞으로 걸어 나가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러자 빗자루가 불쑥 나타나 그녀의 손 안으로 들어왔다. 흔히 생각했던 고전적인 마법 빗자루 느낌이 아닌, 고급스러운 금색 손잡이에 곧게 뻗은 검정색 빗솔이 달린 깔끔한 외형이었다.
그녀가 빗자루를 빙그르르 돌리다가 앞으로 척! 뻗었다. 그리곤 눈을 감고 알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웅!
그녀의 중얼거림에 반응하듯 주위의 마력이 요동쳤다.
‘큭!’
거센 풍압이 몰아치자 로드가 팔로 머리를 감쌌다.
이내 그녀의 빗자루에서 보라색 마력이 허공으로 뻗어나가더니 서서히 문의 형상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게 켈타인의 워프게이트구나.’
보랏빛 마력의 문 너머로 어렴풋이 목적지의 모습이 보였다. 로드가 스파이의 눈으로 본 광경과 똑같았다. 저곳이 바로 알브헤임의 거점 영지 중 한 곳인 ‘루트’. 그가 찾는 인재가 있는 곳이었다.
"다 됐어요."
주문을 완성한 치엘로가 빗자루를 다시 작게 만들어 품속에 집어넣었다.
로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워프 게이트로 걸어갔다.
"그런데 로드 오빠."
"응?"
"정말로 들어가시려고요?"
로드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생글생글 웃는 그녀의 얼굴은 그대로, 그러나 목소리는 평소처럼 꿀이 뚝뚝 떨어지는 애교 섞인 음성이 아닌, 무미건조한 날것의 목소리였다. 웃는 얼굴로 이렇게 차가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로드는 잠시 놀랐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저를 믿어요? 제가 다른 곳으로 끌어 들여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면 어쩌려고?"
로드가 입꼬리를 올리며 맞수를 놓았다.
"그러는 너야말로 내가 좌표를 불렀을 때, 뭘 믿고 그리 순순히 어비스로 넘어온 건데? 바로 붙잡힐 수도 있었었고 내가 부른 좌표가 호수 밑바닥이었을 지도 모르는데 말야."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친밀한 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인 건 사실이고 서로의 성향 또한 훤히 꿰차고 있었다.
"추락할게 무서워서 비행기를 안 타진 않잖아요?"
"뭐, 그렇지."
잠시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듯 했다가, 두 사람이 동시에 풋 하고 웃었다. 그녀가 말했다.
"80점 드릴게요."
"오호."
"가죠!"
치엘로가 망설임 없이 게이트 안으로 휙 뛰어들었다.
‘뭐, 괜찮겠지.’
여기까지 와서 무엇을 고민하겠는가. 그때 치엘로 팔이 불쑥 튀어나왔다.
"빨리 안 오고 뭐해요!"
"자, 잠깐!"
로드의 몸이 종이인형처럼 흔들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
쿵!
반데가스의 눈을 사용했을 때처럼, 추상화와 미로가 뒤섞인 같은 공간을 통과한 끝에 로드는 허공 위에서 뚝 떨어졌다. 그의 머리 위로 보랏빛 마력진이 보였다.
‘공간 능력은 다 이따위인 건가. 쳇.’
속이 울렁거렸다. 엉덩이도 아팠다. 썩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로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중세 분위기의 나무집들이 밀집되어있는 뒤뜰 공간이었다. 일부로 들키지 않게 뒷골목 쪽으로 워프 게이트 좌표를 잡아둔 것이다.
‘제대로 왔네.’
"자, 가요! 가."
치엘로가 로드의 팔을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왜 이렇게 들떴어?"
로드가 일으켜지며 물었다.
"치엘로는 언제나 텐션 업 상태랍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놀러 온 게 아니라 일하러 온 거야. 인재를 찾으러 온 거라고."
"5점 감점이에요."
"…아까부터 자꾸 무슨 점수를 매기고 있는 건데?!"
치엘로는 로드의 불만을 일축하며 그의 소맷자락을 붙들고 골목 밖으로 이끌었다.
루트는 지극히 평범한 중세 마을처럼 보였다. 나무집이 양쪽으로 쭉 늘어서 있는 잘 닦인 길 사이로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노점 행위를 하고 있었다. 시장 부근인 모양이었다. 엘프의 영토임에도 대부분이 인간들이었고, 엘프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와아!"
치엘로가 눈을 빛내며 뛰쳐나가자 로드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어느 세계든지 여자들의 저 빌어먹을 쇼핑 본능은 자제할 수 없는 것인가. 로드는 그녀가 쪼그려 앉아 액세서리를 고르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며 머릿속의 정보들을 정리했다.
알브헤임의 수도는 ‘위그드라실’이라는 거대한 세계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영토가 아닌, 세계수 전체가 하나의 수도인 셈이다. 그리고 세계수 주변에는 다시 방대한 숲이 펼쳐져 있는데, 간단히 ‘엘프의 숲’이라고 부른다. 이 숲 안에 거점 영지가 하나 더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곳 ‘루트’는 엘프의 숲에서 벗어난 영토로서, 엘프들이 점거한 유일한 인간의 땅이다. 토착세력인 인간과, 땅의 주인인 엘프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간이 된 것이다.
…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상식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 했다. 스파이의 정보에 따르면 현재 엘프들은 지독한 순혈주의, 순종주의에 빠져 있다고 한다. 엘프 외의 모든 종족들을 배척하고 천대했으며 급기야 엘프를 제외한 모든 종족들을 위그드라실에서 쫓아냈다.
그렇게 루트는 위그드라실에서 쫓겨났거나, 죄를 지은 엘프들이 사는 일종의 귀향지 역할을 했다. 루트에 살고 있는 엘프들은 최소한의 치안 유지들 위한 병사들이나 영지의 관리자들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알브헤임 소속의 인간들은 엘프들이 천하다고 생각하는 작업들인 농업, 수공업, 광업 등을 통해 필요한 자원들을 위그드라실에 공급하며 지내고 있었다.
‘힘들겠구만, 알브헤임의 플레이어.’
아마 이것이 알브헤임이 겪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일 것이다. 대륙 통일을 위해서는 타 종족과의 융합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국민성이 폐쇄적이며, 순종주의라는 지극히 수준 낮은 가치관에 얽매여있다. 고치려면 꽤나 고생 좀 해야 할 것이라고 로드는 생각했다.
"로드 오빠. 어때요?"
치엘로가 물방울 모양의 귀걸이를 착용하고는 물었다. 로드가 냉정하게 말했다.
"10점."
"뭐요?"
그녀의 목소리가 단번에 차가운 중저음으로 변하자 로드가 재빨리 덧붙였다.
"……곱하기 팔."
"80점요? 흐응, 별로네."
그녀가 귀걸이를 내려놓고 일어났다.
"다른 곳도 둘러봐요."
"놀러 온 거 아니랬지 이 아가씨야!"
결국 치엘로는 관광객 모드로 들어갔고, 조사와 탐문은 순전히 로드의 몫이었다. 로드는 그녀가 노점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 사이 상인들에게 은근슬쩍 질문을 던졌다.
"티아가 누군지 아십니까?"
고고한 현자, ‘티아 그란디네’. 알브헤임 사회에서 귀족 신분인 엘프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루트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자. 정보에 따르면 그녀는 인간에게 호의적이며 기꺼이 그들을 돕는다고 한다. 따로 직위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민초에 섞여 은둔 생활을 하며 조언자로서 활동했다.
"티아님? 아아, 아름답지."
"눈이 부셔서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네."
"그건 정말이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는 외모야!"
"이보게! 인간이 아니시지 않는가!"
"아, 참. 엘프였지. 아무튼 아름답다네."
상인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티아가 누군지 물어보면 ‘아름다워.’ ‘아름답네.’ ‘아름답지.’같은 반응으로 시작하여 그녀의 외모에 대한 미사여구를 줄줄 덧붙여나가다가, 끝내 결론은 ‘아름답다.’로 귀결되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여간 주책바가지 남정네들은 도움이 안 된다. 그래도 자잘한 정보들이 머릿속에 쌓이기는 했기에 로드는 잠자코 조사를 계속하였다.
"티아님? 아아아?주 아름다우신 분이지!"
가게 오픈을 준비하는 주점 주인이 물걸레로 주점 바닥을 닦으며 말했다.
‘아, 알겠다.’
루트에 도착한 지 어언 한 시간. 로드는 마침내 중요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이 마을의 인간들의 어휘력은 최악이었다! 정녕 아름답다는 말 밖에 모르는 것인가? 아침에 일어나도 아름답다! 밥 먹을 때도 아름답다! 모든 인사말을 아름답다로 통일해서 쓰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티아님은 엘프라면서요?"
평정을 되찾은 로드가 뭐라도 건지기 위해 다시 질문했다.
"어째서 위그드라실이 아니라 루트에서 지내는 거죠?"
"이유는 우리도 몰라! 티아님께서도 말씀을 해주시지 않으셨거든. 그냥 수백 년이나 살아온 엘프니까 그 세월 동안 뭔가 하나 잘못한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야."
결국 추론에 의거한 의견뿐인가. 로드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던지며 레몬 맥주를 마시고 싶다고 칭얼거리는 치엘로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길거리 탐문을 계속했다.
"티아님? 이곳 루트의 정신적 지주 같은 분이시라네."
오, ‘아름답다’가 아니다. 이번 과일 장수는 뭔가 다른 모양이었다.
"이번에 티아님이 없었으면 루트는 큰 일이 났을 걸세. 암."
"무슨 일이 있었죠?"
"아, 흠. 잠시만 기다려 보게나. 요즘 머리가 오락가락해서 기억이……."
로드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쪼그려 앉아 군것질할 과일을 고르고 있던 치엘로가 동전 하나를 튕겼다. 날아오는 동전을 잡아 챈 과일 장수가 ‘아, 기억났네!’ 하고 운을 땠다. 치엘로가 로드를 향해 싱긋 웃어주며 다시 자기 일에 열중했다.
"대규모 오크 무리가 루트를 침공한 적이 있었다네."
과일 장수가 설명을 시작했다.
"엘프 병사들마저도 오크들의 규모를 보고 방비를 포기하고 숲으로 도망쳐버렸지. 남은 건 우리 인간들뿐이었네. 우리가 어떻게 일구고 가꾼 땅과 터전인데, 오크 놈들에게 짓밟히게 둘 수는 없었어. 결국 우리는 무기를 들고 저항하기로 했네. 본래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때 나선 게 바로 티아님이셨어."
과일 장수는 말을 멈추고 그때 일을 회상하는 듯 아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분의 지휘로 우리는 승리했네. 현명한한 분이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전쟁까지 승리로 이끄실 줄은……."
‘호오.’
스파이가 위그드라실에서 캐낸 정보와 동일했다. 제대로 찾아온 듯 했다.
"그런데 자네들은 외부인인가?"
"아, 하하! 네. 모험가입니다."
"…정말 모험가인가?"
과일 장수가 치엘로를 바라보았다. 로드야 모험가 차림이었지만 밀짚모자에 짧은 치마, 샌들을 신고 있는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험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두 남자의 시선이 꽂히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뜨며 고개를 들었다.
"응? 왜요? 이렇게 입고 다니는 모험가 처음 봐요?"
"……."
"원래 여자는 불편한 건 참을 수 있지만 예쁘지 않은 건 한 순간도 참을 수 없는 생물이랍니다."
‘뭐 이리 당당해!’
과일 장수가 수긍하듯 ‘흠.’ 하는 소리를 냈다.
"하긴 한참 꾸밀 나이일 터이니 그럴 수도 있겠군."
로드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궤변이 먹히는 건가.
"어머, 아저씨. 말이 통하시네요. 5점 드릴게요."
‘아저씨 점수를 매겨서 뭐하게!'
로드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럼 티아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영지의 가장 높은 뿌리에 계신다네. 평소엔 아이들을 가르치시지."
"가장 높은 뿌리라…"
로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영지는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뿌리 몇 개가 땅 속에서 불쑥 솟아올라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가는 부근에 위치한 곳이었다. 뿌리의 크기도 어마어마해서 사람들은 아치 형태의 뿌리 위에 건축물을 짓기도 했다.
"티아님께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가?"
과일 장수의 물음에 로드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등을 돌렸다.
"아, 그냥 어떤 분이신지 궁금해서요. 단순한 호기심입니다. 가자."
"네에."
과일 장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두 사람이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의 눈이 일순간 예리하게 번뜩였다.
========== 작품 후기 ==========
전에 약속드렸던 연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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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mon0002 / 이렇게 또 한명 추가...?;
Xedrions / 꾸준 추천 정말 감사해요!
@MoriyaSuwako / 로드의 명복을 빕니다 (먼산)
냉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베아랑 비밀친구 하러 오셨군요...!
무꾸914 / 쿨뷰티...!
아프게했어 / 잠깐만요..? 경찰처 번호가 여기 어디있었는데...
푸른물결2 / 히익! 그냥 묘사에요!
火炎無 / 저도 고민했습니다만, 치엘로가 자무카와 동급이라는 점이 좀 고려되어서요 ㅎㅎ 그래도 능력치는 계속 성장하니 치엘로도 B급이 될 수도 있는거지요.
SW스윈 / 곧..ㅈ...
@빛과하늘 / 그정도면 대마법사 수준을 넘어서 현자가 아닐까요! 우리 로드는 그정도는 아닙니다아! (맞나?) 그저 아직 자신의 로리 욕망에 솔직하지 못한 것일뿐!
@inferno12 / 음, 로드가 다소 방심했던건 사실이네요. 그래도 말씀드리자면 워프게이트는 발현하자마자 바로 적이 튀어나오는게 아니라 워프가 생성되는데 시간, 건너오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어비스쪽도 대처할 시간이 있어서 막장 테러전개는 나오지 않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