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인 스카우트 대작전 -->
로드는 정보를 얻기 위해 시장 외에도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티아 그란디네'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는 못했다. 뿌리 위에 사는 그녀는 마을에 내려오는 일 자체가 드문 듯 했고, 내려온다 한들 딱 필요한 인간들에게만 접촉해 용건만 보고 올라간다고 했다.
결국 로드가 내린 선택은 정면 승부였다.
가장 높은 뿌리.
로드와 치엘로는 아치형으로 솟아있는 뿌리를 천천히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처음 지상에서 봤을 땐 뿌리의 경사가 가팔라서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계속 올라가다 보니 생각보다 뿌리가 크고 널찍해서 걸어갈만 했다. 뿌리에는 풀과 꽃, 심지어 다른 나무들까지 자라나고 있었다. 위그드라실을 생명의 나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렇게 다리가 슬슬 아파올 즈음, 두 사람의 시야로 작고 아담한 초가집이 한 채가 나타났다. 볏짚을 쌓아 올린 삼각형 모양의 지붕이었고 곳곳에 알록달록한 꽃들과 넝쿨이 가득했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주위 경관과 어우러져 하나의 자연 그 자체처럼 보였다. 초가집 마당에는 인간 아이들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으며, 그 아이들 앞으로 선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보였다.
'……저 사람이….'
그녀를 보는 순간, 로드는 그동안 만난 사람들이 왜 '아름답다'라는 말 밖에 하지 못했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등까지 내려오는 풍성한 황금빛 머리카락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고, 선녀가 막 천상에서 내려온 것 같은 곱고 청초한 얼굴은 한번 시선을 던지면 눈을 때기 힘들었다. 엘프임을 나타내는 뾰족한 귀와, 신비스러움마저 느껴지는 영롱한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보였다. 소복같이 하얀 옷을 곱게 차려 입은 모습은 그녀의 별명처럼 고고한 현자를 연상케 했다.
정말이지 아름답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눈 돌아가겠어요. 로드 오빠."
옆에서 치엘로가 픽 웃으며 말했다. 로드는 무안한 표정으로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저 여자죠? 오빠가 영입하려는 그 인재가……."
"그런 모양이야."
로드가 지휘관 창을 움직여 그녀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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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티아 그란디네
소속 : 알브헤임 루트
직위 : 없음
종족 : 엘프
무력등급 : (E)
통솔등급 : (C+)
지략등급 : (B)*
정치등급 : (D)
B급 지략형 클래스 입니다.
고유능력 : 의지의 영역
그녀는 일정 범위의 영역을 설정하고 그곳에 의지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그 영역은 정해진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모든 역량을 퍼붓습니다. 빈 땅에 초목이 자라나라고 명령하면, 땅의 지력이 올라오고 씨앗이 퍼트려지며 짧은 시간 내에 식물들이 빠르게 성장합니다.
일단 능력이 발현되면 그 공간 자체가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지만, 조건이 부족하여 시전자의 의도대로 가동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티아는 한 번에 하나의 영역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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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찾았다. B급 지략형!'
솔직히 C급만 되어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는데, B급이라니! 그토록 꿈꿔왔던 B급이 눈앞에 있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던가! 로드는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흐르는 침을 소매로 슥 닦았다.
'갖고 싶군!'
그렇지 않아도 아름다운 자태에, 능력까지 곁들여지니 그녀의 몸에서 후광이라도 나는 듯 했다.
"우와아, 엄청 좋네요."
치엘로도 스테이터스를 확인해 보았는지 허공에 올린 손가락을 내리고 있었다.
"부럽다. 천 골드 더 올려도 돼요?"
"……좀 봐줘라. 그 이상 돈을 쓰면 재정관이 날 살려두지 않을 거야."
"그건 그렇고 쉽지 않아 보이네요. 속세에 완전히 손을 놓은 느낌이 들지 않아요?"
"음, 부딪쳐 봐야지."
티아가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는지 시선을 움직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곧바로 시선을 거두며 수업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기다려야겠네."
"그래요."
두 사람은 집에서 적당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는 이제 노래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녀가 한 소절을 부르면 아이들이 그 소절을 따라 불렀다. 아이들의 각기 다른 높낮이의 목소리를 그녀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감싸 안았다. 그 음색이 너무나 청아하고 황홀해서 듣고 있는 귀가 녹아내릴 것만 것 같았다. 그저 노래를 듣는 것뿐인데도 주위의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풍부하게 채색되는 듯 했다.
이런 색다른 경험은 처음이었다.
마침내 수업이 끝났는지,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웃으며 뿌리를 내려갔다. 로드와 치엘로도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네에."
로드가 아이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몇몇 아이들은 외부인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곧 신경을 끄고 다른 또래들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티아의 앞으로 다가온 로드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렇게 기별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잠시 이야기를 청해도 되겠습니까?"
티아의 은은한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로드를 가만히 응시했다.
"……인간의 아이구나. 들어오거라."
그녀의 맑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로드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가까이서 들으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옆에서 치엘로가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렸다. 로드는 그녀를 한번 째려본 다음, 티아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치엘로,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치이."
외부는 동화 마을 느낌이 나는 서양식 집이었지만, 내부는 정갈하고 소박한 외형의 동양식 구조였다. 신발을 벗고 들어와야 했다. 티아가 바닥에 깔린 카펫 위의 방석에 앉으며 로드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로드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방석 위에 앉는데 치엘로도 얼른 따라 들어와 옆자리에 다리를 깔고 앉았다. 로드가 그녀를 노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따라와? 기다리고 있으랬잖아.'
'에이? 뭐 어때요. 나도 궁금하단 말이에요.'
그녀가 강아지 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여간…….'
로드가 한숨을 쉬더니 자신이 깔고 앉은 얇은 방석을 빼서 치엘로의 무릎 위에 올려주었다. 그녀가 의외라는 눈빛으로 로드를 보았다.
'오오, 쪼끔 설��어요. 30점 드릴게요.'
'아직도 그 점수 놀이 하는 거냐…….'
로드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티아를 바라보았다. 수백 년의 세월에 담긴 연륜이 이 젊은 엘프 여자에게서 잠시 엿보였다.
결국 그녀에 대한 중요한 정보는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어째서 위그드라실로 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있는지, 어째서 이런 곳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째서 이런 생활을 자처하면서 오크들이 쳐들어 왔을 때 인간을 도왔는지. 모두 의문이었다. 그래서 로드는 직접 부딪쳐보기로 했다. 얼굴을 대면하면 무언가 나올지도 몰랐으니까.
"본녀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였느냐?"
"거두절미하고 말씀 드리지요."
로드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어비스의 왕인 로드 폴렌티아라고 합니다."
"아아, 인간계의 왕 인가. 실례했군."
티아가 고개를 숙이며 인간의 왕에게 예를 취했다.
"그대 정도 되는 자가 이런 초라한 곳엔 어쩐 일인가?"
"당신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초면에 실례되는 건 알지만, 우리는 당신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로드가 고개를 깊게 숙였다. 본인이 왕인 것을 밝히고 고개를 숙였으니 상당히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부디 우리에게 힘을 빌려주십시오."
"……힘이라."
그녀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이제 속세에는 미련이 없도다."
"정말입니까?"
로드가 눈에 힘을 주었다.
"정녕 속세에 미련이 없는 분이라면, 오크 무리가 쳐들어왔을 때 나서서 인간들을 돕지도 않았겠죠."
"……."
"심지어 티아 당신이 직접 인간들을 지휘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본녀의 필요에 의해서 한 일일 뿐이다. 은거생활을하며 어렵게 구한 보금자리를 잃고 싶지는 않았노라."
"……여기서 은거 생활을 계속 하겠다는 말입니까?"
"그렇다."
로드는 눈을 감았다. 한번 맞부딪쳐보긴 했지만 역시 그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니 파고들 부분이 없었다. 감정에 호소하여 마음을 흔들어 놓을 생각이었지만, 그녀가 속세에는 미련이 없다는 식으로 나온다면 더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로드가 눈을 떴다. 이건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감이었지만, 그녀는 이 생활에 온전히 만족하는 것 같지 않았다. 목소리에서 힘이나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초연한 것과는 또 달랐다.
그것은 '체념'에 가까웠다.
로드는 공략 방향을 대강이나마 정했다. 무심을 연기하는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생각이었다.
"정말로 괜찮으신지요? 이대로 죽은 듯 산 듯 지내며,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도, 당신은 한 점 후회도 남기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그렇다."
라고 대답하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이나마 흔들렸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표정을 읽는데 온 신경을 쏟고 있어서 캐치할 수 있었다. 로드는 망설임 없이 감정 증폭의 고유능력을 발동 시켰다.
"본녀는 만……."
티아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목소리 끝이 가늘게 떨렸다.
"…만족 한다."
그리고 무겁게 뒷마디를 뱉어냈다. 갑자기 깊은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오르기라도 한 듯,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그만 가다오. 혼자 있고 싶구나."
"당신이 방금 느꼈던 그 감정, 뭔지 알겠군요."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로드가 안쓰러운 얼굴로 말했다.
"당신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그녀의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번뜩였다.
"나가라."
"…네?"
"나가라고 하지 않았느냐!"
축객령이 내려졌다. 두 사람은 결국 쫓겨나듯 집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치엘로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오빠, 무슨 짓 했죠?"
"……한번 떠 본거야."
로드가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공략할만할 빈틈을 찾은 것 같네. 죄책감이라……."
"여자의 약점을 잡아서 협박하려 하다니, 최악이네요."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하고 있네!"
그녀는 싱긋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오빠도 들으셨죠?"
"그래. 더 깊이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집안에서 인기척 같은 게 느껴지던데… 집에 우리말고 누가 있었나?"
"잘 모르겠어요."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갔다. 당장 뾰족한 수가 없으니 일단은 다시 마을로 돌아가서 새롭게 작전을 짜기로 했다.
"……또 인기척?"
그때 멀리서 사람들의 서두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의 것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두 사람은 재빨리 커다란 나무 뒤로 돌아가 엎드렸다. 치엘로가 작은 목소리로 말았다.
"어머, 무기잖아요?"
각종 무기로 무장한 사내들이 티아의 집 쪽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로드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 작품 후기 ==========
늦을뻔 했네요. 나가기전에 한 편 아슬아슬하게 올리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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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하늘 / 흑, 그건 인정할수 밖에 없군요... 둔감속성.
Digimon0002 / A급책사는 대륙을 붕괴시킬 위력을 가지고 있어서 조금 자제해 보았습니다..
SW스윈 / 자고 일어난 사이에 고자가 되어있는 저를 보았습니다.
무꾸914 / 왜냐면 제가 둔감하기 때문이... 죄송합니다!
Xedrions / 추천 감사감사!
아침과저녁 /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