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79화 (79/296)

<-- 신인 스카우트 대작전 -->

로드와 치엘로는 숨을 죽이고 멀리서 벌어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초가집에서 남자들의 격한 고함 소리가 몇 번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티아가 그들에게 붙들린 채 밖으로 끌려 나오고 있었다.

"이햐! 이게 웬 횡재야!"

집 안에는 티아 혼자 있던 것이 아니었다. 몸에서 빛을 내는 조그마한 요정들이 남자들의 우악스러운 손에 붙잡혀 나오고 있었다.

'페어리……!'

로드의 눈이 커졌다. 페어리들은 한 때 엘프들과 함께 위그드라실에서 살았던 요정 종족으로, 카오스월드의 세계에서는 멸종했다고 알려진 존재들이었다.

"안 돼! 안 된다!"

티아가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본녀는 어떻게 해도 상관없으니 제발! 제발 그 아이들만큼은!"

빠악! 거센 발길질에 티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그녀의 새하얀 소복이 흙으로 더럽혀졌다. 남자들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허공에 맴돌았다.

"그 대단하신 현자께서도 폭력 앞에선 어쩔 수 없구만?"

"전부 끌고 나와!"

페어리들이 남자들의 손에 붙들린 채 차례차례 초가집에서 나왔다. 남자들은 커다란 포대 자루를 벌려 그 안으로 페어리들을 마구 욱여넣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엉엉 우는 서러운 울음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아, 더럽게 시끄럽네! 본보기로 한 놈 허리를 꺾어놔 볼까?"

남자의 서슬 퍼런 협박에 페어리들은 훌쩍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들어간 자루가 점점 빵빵해져갔고, 티아는 그 모습을 망연자실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 뭐하셔! 현자 양반께서도 들어가셔야지!"

남자들이 다가와 티아의 팔과 다리를 꽁꽁 묶고, 소리가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입을 헝겊으로 강하게 틀어막았다. 그리곤 그녀의 몸을 번쩍 들어 또 다른 포대 안으로 밀어 넣었다. 티아와 페어리들이 담긴 두 개의 포대가 남자들의 발밑에 놓였다.

"자, 싸게 싸게 움직여!"

"볼일 다 봤으니 얼른 빠져나가자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로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남자들의 정체는 아마 인신매매를 주업으로 하는 노예상. 타깃이 엘프인 티아였고, 페어리들을 보고 '이게 왠 횡재야!' 라는 말을 했으니 거의 틀림없었다. 노예시장에서 엘프는 두 말할 것도 없는 특상급 상품이었다. 거기에 몸에서 신비한 빛을 내뿜으며 날아다니는 페어리들은 그 희귀함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이었다.

"치엘로, 싸울 수 있어?"

로드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치엘로는 연약해요…. 무력등급이 C+급 정도요. 오빠는 몇이었더라……?"

"D급이야."

"헐, 내가 이기겠다."

그녀가 헤헤 웃으며 로드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쳇. 이건 좀 귀엽네.'

로드는 까불지 말라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은 후, 단검을 꺼내 잡으며 생각했다. 감히 점 찍어둔 인재를 납치해가다니,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하지만…….'

로드가 단검을 꾹 쥐었다. 지금은 싸우기엔 상황이 좋지 못했다. 적의 숫자가 너무 많은 것도 그렇고, 소란을 피우면 곧바로 엘프 경비대가 몰려올 것이다. 알브헤임 왕실에서 사실을 알게 되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진다.

로드가 어떻게 할지 고심하고 있는데…….

"오, 아까 봤던 모험가 커플이 아닌가? 여기서 뭐 하나?"

두 사람이 움찔하며 소리가 난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전에 거리에서 보았던 과일 장수가 나무 위에서 씩 웃고 있었다.

"치엘로! 피해!"

로드가 외쳤다. 과일 장수가 나무 위에서 뛰어 내리며 단검을 휘둘렀고 로드는 재빨리 달려 나오며 단검을 머리 위로 치켜세웠다.

까아아앙! 두 단검이 허공에서 격돌하며 요란한 쇳소리를 내뿜었다. 과일 장수가 소리쳤다.

"여기 수상한 놈들이 있다!"

"뭐?"

"잡아라!"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단검을 쥔 로드의 팔이 파르르 떨렸다.

'……젠장, 이 녀석!'

로드가 과일 장수의 단검을 쳐내며 몇 발짝 뒤로 물러났다. 단 한 번의 충돌이었는데도 팔이 떨어질 만큼 아팠다. 결코 평범한 노예상의 수준은 아니었다.

"자칭 모험가 청년. 살길을 찾고 있나?"

그가 단검을 고쳐 쥐며 비릿하게 웃었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죽어줘야겠네. 이 바닥 일이 다 그런 거 아니겠나? 너무 원망 말라구."

"크윽!"

로드가 단검을 세워 드는데 뒤에서 치엘로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로드 오빠! 비켜요!"

로드는 목소리가 들린 즉시 옆으로 빠졌다. 화르르륵! 그가 비켜나가며 시커먼 불꽃이 과일 장수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어이쿠!"

그는 바닥에 엎어지듯 점프해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치엘로의 빗자루가 다시 휘둘러지자 이번엔 검은 불꽃이 곡선으로 날아가 달려오던 남자들 앞으로 떨어졌다. 콰쾅! 쾅! 검은 불꽃이 뿌리 바닥에 붙어 타올랐다. 그녀가 빗자루를 겨누며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요! 저주에 걸려 평생 불구로 살고 싶지 않으면!"

"흐, 흑마법이다!"

"흑마법사가 어떻게 여길……?"

남자들이 검은 불꽃을 건너오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아직 이 세계에서 흑마법은 미지의 힘이었고, 일반 평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치엘로는 그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리라.

그들이 당황하는 틈을 타 치엘로가 슬금슬금 로드의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해요? 싸울 거예요?"

"아니, 일단 여기선 물러나자."

로드는 결국 여기서 계속 싸우는 것은 위험하다는 결론을 냈다. 적의 숫자도 많고, 영웅급 실력자도 있다. 무엇보다 경비대가 들이닥치면 일이 귀찮아진다. 어차피 저들도 장사를 위해서는 노예시장으로 향해야 할 것이니 그들이 영지 밖으로 나왔을 때 결착을 보는 게 더 나았다.

"알겠어요."

치엘로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향이 결정 됐으니 이제 꾸물거리고 있을 이유는 없다. 로드가 주머니에서 둥근 폭탄을 모조리 꺼내 하늘로 던졌다. 폭음과 함께 최루가스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쿨럭! 쿨럭!"

"이, 이건 또 뭐야?"

남자들이 콜록거리며 연기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연기가 걷힌 뒤엔 두 사람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괴이한 수를 쓰는군."

과일 장수가 침을 탁 뱉으며 단검을 집어넣었다. 무리들 중 한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저들이 자네가 말한 놈들인가?"

"그래. 현자에 대해 캐묻고 다녔어. 심지어 내겐 위치까지 물어봤지. 놈들이 그년에게 관심 가질 이유야 하나밖에 없지 않겠나?"

"잘했네. 경쟁자가 온 이상 빠르게 움직여야지. 이미 경비들에게 뇌물은 뿌려놨으이."

과일 장수가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이고는 등을 돌렸다.

"놈들은 놓쳤어도 물건들은 이상 없으니 상관없다. 경비병들이 오기 전에 벗어나자!"

"예!"

*

로드와 치엘로는 마을로 되돌아왔다.

그들이 거리를 걸어가는 도중 키 큰 엘프 경비병들이 뿌리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어느 곳이든지 항상 한 발짝 늦게 출동하는 경찰 조직에게 박수를.'

그래도 그들이 무능한 덕분에 신원이 노출되는 일은 면했기에, 로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로드 오빠."

"응?"

"팔 괜찮아요?"

로드가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아직 충돌의 데미지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듯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로드가 손을 주머니 안으로 슥 꽂으며 말했다.

급해서 스테이터스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 과일 장수, 아마 로드 본인보다 무력 등급이 높을 것 같았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어느새 날이 저물며 밤이 되어가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적당한 여관으로 들어가 방을 잡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번엔 정말 조용히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또 일이 커지다니… 난 정녕 말썽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인 건가……."

로드가 한숨을 푹푹 쉬며 카드를 한 장 바닥에 내려놓았다.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방에 모여 여관 주인에게 빌린 카드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실 건데요? 놈들이 빠져나가려면 어쩌려구요."

"그 부분은 걱정 마."

로드가 다시 냉정을 되찾으며 말했다.

"놈들이 인신매매로 먹고 사는 놈들인 건 확실하고, 숫자를 봤을 때 제법 규모가 큰 노예상이야. 그리고 티아와 페어리들을 팔아치우려면 영지성 밖에 있는 노예시장으로 가야 해."

로드는 그렇게 말하며 패의 로비스트 카드를 바닥에 내고는 치엘로의 상인 카드를 가져왔다.

"그러네요. 지금 막 영지 내에서 납치 사건이 벌어졌으니 성문의 경비가 튼튼해질 시점이니까, 그들도 바로 움직이진 못할 거란 말이죠?"

치엘로가 '야만인 카드'를 내서 방금 빼앗긴 상인 카드를 제거했다. 로드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맞아. 그 놈들이 밖으로 나가기 전까진 그녀들은 안전할 거야. 요즘 귀족들은 자신의 것이 될 '귀한 물건'이 근본도 없는 놈들에게 더럽혀 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추세거든. 상품성을 위해서라도 함부로 다루진 못할 거야."

"어머, 노예상에 대해 잘 아시나 봐요?"

그 물음에 로드가 씁쓰레한 미소를 지었다.

"한때 내 적수 중에서 노예 시장을 운영하던 놈이 있었거든. 녀석을 약점을 파낸답시고 철저하게 조사했었지."

처음부터 그 노예상들은 티아를 비롯한 엘프들을 납치해 팔아넘길 생각으로 루트에 왔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몸값의 엘프들을 대륙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간과 엘프가 공존하는 이 영지였을 테니까.

치엘로가 가지런히 모은 다리 위로 얼굴을 폭 놓았다.

"그치마안? 놈들이 밖으로 나가면 우리는 붙잡을 방법이 없어지잖아요오."

"그러니까 군대를 동원할 거야. 마침 여기가 어비스랑 가까운 곳이라서 다행이네."

치엘로가 고개를 갸웃했다.

"진심?"

"응, 진심인데."

"알브헤임의 영토에 군대를 끌고 오는 건, '선전포고'라구요?"

"어비스엔 다양한 종류의 군대가 있어. 그 중에서도……."

로드가 야만인 카드를 바닥에 탁 소리 나게 냈다.

"타국 영토에 마음대로 침범해도 내겐 아무 책임이 없는 군대도 있지."

"에엥? 그런 군대가 존재하긴 해요?"

"물론."

로드가 잠시 카드 뒷면이 보이도록 패를 내려놓고는 통신 수정구를 꺼냈다. 수정구가 지직거리면서 푸른 빛을 내뿜더니 이내 제복을 입은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다행이다. 바로 이웃 나라라서 무리 없이 전파가 닿는군.'

"폐, 폐하!"

로드를 알아본 수정구의 남자가 허겁지겁 경례를 취했다.

"마력을 아껴야 하니 빠르게 말할게. 애니록스에게 전해줘."

로드가 지시를 내리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곧 결과를 보고하겠다고 했다. 로드는 수정구 마력이 다하기 전에 전원을 껐다. 이걸로 지금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해두었다. 나머진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어머, 그걸로 된 거예요?"

치엘로가 그렇게 물으며 바닥에 로비스트 카드를 스윽 내밀었다. 그리곤 로드의 상인 카드를 가져오려는 순간, 로드가 재빨리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잠깐, 동작 그만!"

"뭐, 뭐예요!"

"룰에 어긋나잖아. 여기, 주인장이 써준 설명서를 봐. 스파이 카드는 로비스트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되어 있어."

로드가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자, 대놓고 룰을 틀렸으니 아까 이야기한 대로 핸디캡을……."

치엘로가 로드에게 붙잡힌 손을 슬며시 빼내어 어루만졌다. 그리고 몸을 움츠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를 냈다.

"너무해. 치엘로는 그런 어려운 거 잘 모른단 말이에요."

"……."

로드는 그녀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다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젠장. 연기인걸 알고도 귀엽게 느껴지는 내 자신이 싫다.'

결국 로드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알았어. 첫판이니깐… 다음부턴 실수하지 마라."

"야호!"

로드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치엘로가 얼른 카드를 고쳐 냈다. 로드도 한 장을 내려놓고는 말했다.

"8라운드 다 끝났지? 20점이니까 내 승리……."

"치엘로는 22점이에요. 예에! 이겼다!"

"뭐, 뭐? 그럴 리가!"

로드가 당황한 얼굴로 그녀의 카드를 바라보았다. 치엘로가 설명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주인장이 준 설명서를 봐요. 선주 카드는 점수 1점이 더 추가된다구요."

"……크, 크윽."

로드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시인할 수밖에 없는 완패였다.

"룰 제대로 다 알고 있었구만! 뭐가 몰랐다는 거야?"

로드가 지긋이 노려보았다. 아까 로비스트 카드를 낸 것도 잘 모르고 한 게 아니라 의도된 플레이였을 것이다. 역시 핸디캡을 부여했어야 했다.

치엘로가 윙크하며 말했다.

"여자애가 너무 착해빠지기만 하면 별로 매력 없잖아요?"

"……넌 그게 반칙 행위의 변호가 된다고 생각하냐?"

그녀가 웃는 얼굴로 손뼉을 짝 쳤다.

"자, 자, 그럼 패자는 카운터로! 가서 맥주 좀 더 들고 와요!"

'그냥 처음부터 놀러 올 생각밖에 없었구만, 이 녀석.'

로드가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작품 후기 ==========

Mr윤 / ?! 1등 축하드려요!

그만쳐다봐 / 오홋 2등이시군요!

Leessa / 감사합니다. 즐겁게 봐주세요~

빛과하늘 / 못해드려서 죄송합니다 ;ㅅ; 흑

아침과저녁 / 납치 사건이요..!

Auon / 노동자는 그저 웁니다

섹시파워 / 공강때는 숨마저 맛있...!

ads123 / 시나리오 Miss! 아쉽지만 인신매매단인걸로..

알테니아 / 햐, 8시간! 감사합니다!!

SW스윈 / 앞으로의 편도 기대해주시길~!

@Speedwagon / 주인공은 숨 쉬는 것 만으로도 플래그를 꽂는 존재...!

@ㅇㅈㅂㅇㅂ / 그래도 티아는 누님상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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