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아 그란디네 -->
차가운 감옥 안에서 티아는 두 팔이 구속당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입술은 터져서 피가 흘렀고 몸 곳곳이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런 그녀의 앞에는 고급스러운 귀족 복장의 엘프 남자가 서 있었다.
"…그래, 순순히 불 생각은 없다는 거지?"
남자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들어올려 자신의 시선에 맞추게 했다.
"…오해라고 하지 않았느냐. 본녀 또한 숲의 일족이다."
"질긴 년이군."
남자는 그대로 티아의 뺨을 짝 소리가 나게 때린 후 몸을 일으켰다.
"제사장! 마법사들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이리 데려오너라."
곧 치렁치렁한 로브를 걸친 두 엘프 마법사가 나타나 제사장이라 불린 남자의 옆에 섰다. 그가 말했다.
"시작해라."
우우우웅! 두 마법사가 캐스팅을 시작하자 지팡이가 광채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곳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 줄기가 그대로 티아의 몸으로 직격했다.
"…크윽!"
그녀가 괴로운 신음을 흘리며 발버둥쳤다.
"크하하하! 정체를 드러내라! 페어리 퀸!"
그녀의 몸이 눈부신 빛을 발하는 광원체로 바뀌더니 조금씩 신체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황금빛의 요정 날개가 등 뒤에 달린, 작디작은 금발의 페어리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하하하! 맞군! 맞아!"
제사장이 광기에 찬 웃음을 내질렀다. 그 저주스러운 페어리 퀸이 확실했다.
'천만 다행이로군.'
처음 어떤 인간으로부터 '페어리 퀸은 내가 붙잡아두고 있으니 몸값을 지불하고 데려가라.' 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얼마나 아찔했던가. 제사장은 그 연락을 받고 황급히 위그드라실의 모든 정보를 차단한 다음, 인간과 은밀하게 접촉하여 그녀를 사들였다. 설마 그 난리 통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엘프의 모습으로 루트에 살아가고 있었을 줄이야.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해방 전쟁 때, 말단이었던 그는 '페어리 퀸은 내 손으로 죽였다.' 라는 거짓 보고를 상부에 올렸었다. 그는 엘프들의 영웅이 되었고, 그 공을 인정받아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렇기에 페어리 퀸은 이 세상에 살아있으면 곤란했다.
"페어리 퀸이여,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나?"
제사장의 물음에 페어리가 된 티아가 고개를 들었다.
"……알겠구나. 본녀를 붙잡으러 끈질기게 쫓아온 그 엘프 군인이로군."
페어리가 된 티아의 목소리는 아이처럼 가늘고 높게 바뀌었지만, 특유의 근엄한 느낌은 여전히 목소리에 실려 있었다.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그대가 본녀가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린 장본인이구나. 본녀가 죽은 사람이 된 덕분에 그동안 편안히 지냈느니라.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를 표하마."
"크하하하! 당돌한 년!"
제사장이 번쩍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곤 바닥의 그녀를 짓밟을 기세로 다리에 힘을 주어 내렸다. 거대한 그림자가 머리 위로 내려오자 그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제사장의 발이 그녀의 코앞에서 멈췄다.
"당장이라도 네 년을 밟아 죽이고 싶지만… 귀찮게도 이 사실을 알게 된 장로들이 몇몇 있다. 그들은 너의 죽음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어 하거든. 그러니 네 년은 처형장에서 엘프의 몸으로 죽어줘야겠다."
제사장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관중 앞에서는 '티아 그란디네의 반역죄' 정도로 해서 처형한 다음, 장로들에게는 페어리가 된 시체를 보여서 페어리 퀸의 죽음을 증명할 생각이었다.
"……본녀가 어째서 그 말에 따라야 하지?"
"따를 수 밖에 없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사는 인간들."
제사장이 히죽 웃었다.
"단 한 놈도 남김없이 전부 죽이겠다. 기억나지?"
그가 기억나냐고 묻는 것은 '해방 전쟁' 이후의 대학살을 뜻했다. 그녀가 지시를 거절하면, 다시 한번 루트의 죄 없는 인간들을 대상으로 그때의 학살을 재현하겠다는 뜻이었다.
"……이 더러운!"
그녀의 눈이 충혈된 듯 빨갛게 변했다.
"그래,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너희 페어리들은 인간 같은 미천한 종족을 몹시 아끼잖아? 그때 순순히 우리 엘프의 편에 붙었더라면, 너희들도 천민으로서 우리에게 봉사하며 위그드라실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을. 한심하구나."
제사장이 등을 돌렸다.
"처형식 때 보자, 페어리 퀸."
"……."
제사장과 마법사들도 감옥 밖으로 나가고 문이 닫혔다.
주위에 아무도 없이 혼자 남겨지자, 그제서야 티아는 바닥에 엎드려 닭똥같은 눈물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그녀의 목소리가 차디찬 지하 바닥을 쓸었다.
*
티아의 처형식 당일, 많은 사람들이 루트의 광장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루트에 사는 인간들은 물론, 위그드라실에서 온 엘프들도 몇몇 있었다. 그들은 처형장의 1등석에서 페어리 퀸의 마지막을 지켜볼 것이다.
이번 처형식의 책임자인 제사장은 멀찍이서 관중들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웃었다.
"재미있는 게 돌아다니더군, 페어리 퀸."
제사장의 옆에는 엘프의 모습으로 두 팔이 뒤로 묶인 채 꿇어앉아있는 티아가 있었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차분했다.
제사장이 부시럭거리며 종이를 들어올렸다. 티아 그란디네의 반역은 모함이며, 처형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자네를 좋아하는 인간들이 많은가 보군."
"……."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제사장은 종이를 꾸깃꾸깃 구겨서 바닥에 내던졌다.
"하지만 이따위 전단을 천한 인간 놈들이 뿌리고 다닌다고 한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애초에 대륙어는 읽을 줄 아는 놈들이던가? 하하하!"
그녀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자 제사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다가와 티아의 머리를 거칠게 발로 밟았다.
쿵!
그녀는 신음조차 흘리지 않고 머리를 밟힌 그대로 있었다. 제사장이 침을 퉤 뱉었다.
'하, 반응이 없으니 영 재미가 없군.'
실 끓어진 인형도 아니고, 그녀는 줄곧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처형하기 전에 귀찮게 한 대가로 진득하게 가지고 놀 생각이었지만 금세 흥미가 떨어져 버렸다. 그녀는 수치심도, 모멸감도 느끼지 않았다. 한 때 반란군을 능수능란하게 지휘하며 엘프군을 전멸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작지만 강한 전장의 여신으로서의 면모는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마치 그녀의 껍데기를 쓴 다른 사람 같았다.
"제사장, 시간 됐습니다."
"그래."
어차피 곧 죽을 목숨이었다. 제사장은 그녀에게 관심을 거두며 처형식이 진행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럼, 죄인이 입장하겠습니다."
엘프 병사들이 다가와 그녀의 팔을 붙잡고 처형장으로 끌고 갔다.
“현자님이다!”
“현자님!”
그녀가 처형장에 입장하자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급격히 커졌다. 티아는 고개를 들었다. 빼곡히 들어찬 루트의 관중들이 보였다. 그 위에는 좋은 자리에서 관람하는 고위급 엘프들도 있었다. 해방 전쟁 때 얼굴을 본 것 같은 자들도 몇몇 눈에 띄었으나 별로 신경이 가지는 않았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걸었다.
병사들은 처형장 중앙에 위치한 의자에 티아를 앉혔다. 그녀의 눈앞에는 둥근 매듭의 밧줄이 지지대에 걸려 있었다. 의자 아래의 바닥은 밑에서 잡아당기면 열려서 그녀의 몸이 아래로 떨어지는 구조였다. 처형의 원리는 퍽 알기 쉬웠다.
"제사장께서 입장하시겠습니다."
제사장이 성큼 성큼 무대로 걸어왔다.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
그는 고위 엘프들이 앉은 좌석을 향해 고개를 한번 숙여 보인 다음, 다른 관중들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도 않은 채 병사가 내민 문서를 들어올렸다.
"선고한다."
그가 말했다.
"죄인, 티아 그란디네는 알브헤임 왕실에 대한 심각한 반역 행위로 수배되었다. 그녀 또한 스스로 죄를 시인하였으므로, 본관은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바이다. 이상."
제사장은 그 말만 던져 놓고는 등을 돌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재판이나 죄인의 발언 기회는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그녀의 죽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의문을 품은 관중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그러건 말건 병사들은 그녀의 목에 밧줄을 걸었다. 티아도 체념한 듯 눈을 꼭 감고 있을 뿐이었다.
"이래도 되는 거야?"
"정말로 현자님이……."
"말 한마디라도 들어봐야 되지 않나?"
"좀 이상하긴 한데."
그러던 그때.
"티아 그란디네는 무죄다!"
의미 없는 웅성거림 속에서 하나의 의지가 담긴 말이 관중석에서 툭 튀어 나왔다. 웅성거림이 일순간 멎어졌다. 제사장 또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관중들 중에서 허름한 차림의 중년 남자가 외치고 있었다.
"반역이라고? 고고한 현자가? 그녀는 루트의 외진 곳에서 오랜 시간 검소하고 소박한 무욕의 삶을 살아왔다! 여기 있는 모든 영지민들이 그 증인일 터. 그런데 이제 와서 그녀가 반역을 일으켰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녀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확성 구슬을 쓰지 않았음에도 그의 목소리는 크고 또렷하여, 모든 관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관중들이 재차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제사장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허튼 소리하는군. 죄인 또한 본인의 죄를 시인했다고 했다. 이제 와서 너희 천한 인간 놈들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그래 너, 말 잘했다!"
이번엔 다른 쪽에서 외침이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 그 외침의 주인공을 쫓았다.
"천한 인간이라고? 그러면 퍽도 고귀한 너희 엘프놈들은 세금이나 꼬박 꼬박 받아 처먹을 줄 알지! 대체 영지에 기여한 일이 뭐가 있냐? 네놈들이 먹는 음식! 입는 옷! 전부 우리의 돈이고, 우리가 만들어 바친 것이다! 그런데 네놈들은 어쨌지? 오크가 쳐들어 왔을 때 제일 먼저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지 않느냐!"
그의 호소력 넘치는 목소리가 강당을 장악해가기 시작했다. 공기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알아듣냐? 영지를 수호해야 할 너희들이 도망친 뒤에, 끝까지 남아서 우릴 도와준 사람은 저 현자님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녀가 반역을 저질렀으니 처형하겠다고? 지랄도 그 정도면 병이다! 새끼들아!"
"오, 옳소!"
"현자님은 무죄다! 모함이다!"
"상식적으로 그녀가 반역을 저지를 이유가 없잖아?"
하나 둘씩 흘러나오던 동조의 외침이 이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외침은 이내 하나의 아우성으로 변하여 처형장을 뒤덮기 시작했다. 엘프 병사들이 무기를 흔들며 조용히 하라고 악을 써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모두들 기억나시오? 우리가 오크를 물리진 후에야 슬그머니 다시 돌아와서 주인 행세를 하던 엘프 놈들의 그 낯짝을!"
"개만도 못한 새끼들!"
"뭐가 숲의 일족이냐!"
"현자님을 놓고 당장 이 영지에서 꺼져라!"
이어서 이 외침들은 '꺼져라' 라는 하나의 단어로 뭉쳐 연달아 울려 퍼졌다. 엘프들의 표정은 굳어지다 못해 겁에 질려 있었다.
'가, 갑자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인간들이 들고 일어나다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제사장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라! 손님들을 지켜라! 어차피 놈들은 무기도 없어. 날뛰면 죽여도 좋다!"
그리곤 팔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처형을 속행하라!"
"저 빌어먹을 놈이!"
"이대로 지켜볼 수는 없다! 현자님을 구하라!"
퍼엉!
현자님을 구하라! 라는 외침이 신호라도 되는 듯, 처형장 위로 둥근 공 같은 것이 일제히 날아오더니 폭발을 일으켰다. 곧 자욱한 연기가 주위를 완전히 뒤덮었다.
"오오!"
"이런 건 언제 또 준비한 거야?"
"지금이다! 밀고 나가자!"
"현자님을 지켜라!"
엘프들이 가스에 콜록거리며 괴로워하는 사이, 관중들이 처형장으로 우르르 밀고 들어왔다.
"젠장, 이 미친놈들이! 뭣들하고 있나? 빨리 죽여! 어서 처형하란 말이다!"
제사장이 고함을 질렀지만 밑의 마루가 꺼지는 일은 없었다. 그제서야 그는 깨달았다.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크아아악!"
"으악!"
피가 튀며 엘프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처형장의 측면을 지키던 병사들이 뚫리며 검은 로브에 후드를 눌러 쓴 자들이 처형장 위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하나같이 움직임이 뛰어났다. 연기 속의 전장을 활보하며 엘프 병사들을 거꾸러트리는 모습은 훈련이 상당히 잘 되어있다는 느낌이었다.
반면 처형장을 지키는 엘프 병사들은 갑작스런 상황과 자욱한 연기에 움직임이 굳어져 있었다.
"제기라아아알!"
연기 속에서 제사장이 검을 들고 티아를 향해 달려왔다.
'네 년만큼은 반드시 이 자리에서 죽인다!'
"……큭!"
팔이 속박되어 있는 티아는 저항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촤아아악! 핏방울이 튀어 오르며 그녀의 뺨에 뜨끈한 선혈의 온도가 느껴졌다. 그러나 고통은 없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괜찮아요?"
연기 속에서 나타난 남자가 그녀의 입과 코에 마스크를 씌어주었다. 납치 하려는 건가?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입을 틀어막거나 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연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보호하려는 용도의 마스크였다.
"자, 가죠."
그가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속박하고 있던 밧줄을 풀었다.
"…그, 그대는 누군가?"
"접니다. 로드 폴렌티아."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
========== 작품 후기 ==========
으아아앙! 여러분 ;ㅅ; 뭔가 크나큰 오해를 하시는것 같은데 저는 결코 로리콤이 아닙니다!
저는 몹시 건전한 성적취향을 가지고 있는 슈퍼 건전남이에요! 믿어주세요! ㅠㅠ
로리 캐릭터가 많은것은 그저 캐릭터의 여러 설정이 우연히 겹친것 뿐!
로리콤은 아니지만 로리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Top100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 감사 감사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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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네우스 / 응원코맨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벌레 / 주인공 패시브 스킬 발동..!
무꾸914 / 로리는 사랑입니다.
Xedrions / 부와아아��!
쿠죠죠타로 / 이제는 히그마 생존설까지... 히그마 당신은 도대체..!
상대성 / 외쳐 로리!
바바상 / 저는 로드따위같은(?) 잠재적 범죄가 아닙니다! ㅠㅠ
@Speedwagon / 오햅니다! 결단코 오해에요! 흑흑
블러디레이븐 / 무, 무엇이 확정이란 거�!
홍윈 / 짧고 굵은 이번편 정리.
@빛과하늘 / 거유섹시누님ㅋㅋㅋㅋㅋㅋㅋㅋ 재고해 보도록 하죠! 일단은 티아도 거유에 속하니 잠시 참아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