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93화 (93/296)

<-- 동맹 전쟁 -->

로드는 루트의 촌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이해관계는 명확했다.

촌장은 식량을, 로드는 계획의 협조를.

로드는 식량을 나누어 주는 것을 대가로 루트의 영지민들을 성벽 위로 올려 보내 경비를 서게끔 했다. 성 위에 보란 듯이 어비스군의 깃발을 잔뜩 내걸어 놓은 다음, 영지민들에게는 어비스군의 갑옷을 입히고 투구로 얼굴을 가려 성벽에 배치해 두었다.

그리고는 밤마다 후문으로 계속 병력들을 뒤로 빼돌렸다.

순식간에 대부분의 어비스군이 빠져나갔지만 성벽 위의 병력들은 처음과 변함없이 건재해 보였다. 알브헤임에서도 그 모습을 봤는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 외에도 별동대를 운용하여 엘프의 숲 근처를 돌아다니게 하여 긴장감을 유지시켰으며 숲에 불을 지르거나 화살을 쏘는 등 엘프들을 끌어내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당분간은 이것만으로 충분해. 물론 얼마 안 가 낌새를 눈치채겠지만 그런다고 해도……'

로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너흰 움직이지 않을 거야. 그렇지?'

*

엘프의 숲.

알브헤임군 진형.

풀벌레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이 평화롭게 울려 퍼지는 울창한 숲의 한복판. 빽빽하게 들어선 키 높은 나무들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신의 축복처럼 지상을 내리쬐고 있었다.

알브헤임의 플레이어, 플로라는 나무 그늘 아래에 등을 기대어 신을 벗고 앉아 싱그러운 풀 냄새를 만끽하고 있었다. 물결처럼 흘러내리는 백금발 머리카락과 그 사이로 엘프 특유의 뾰족한 귀가 드러났다. 머리에는 여왕을 상징하는 왕관과 하얀 꽃으로 이루어진 화관이 보였다.

나무들 사이로 풀잎이 밟히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주홍빛 머리카락의 두 여성 엘프들이 모습을 드러내 휴식을 취하고 있던 플로라에게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폐하."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에 플로라가 천천히 눈을 떴다.

"어서와요. 보고할 일이 있나요?"

오른쪽의 주홍빛 뒷머리를 꽃 장식으로 묶은 포니테일 머리의 여성이 입을 열었다.

"인간들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보고 드릴 내용은 없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성 안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이번엔 왼편의 엘프, 같은 머리색에 양쪽으로 머리를 묶은 여성이 눈을 치켜 떴다.

"플로라 언니. 언제까지 이런 모욕을 참아야 하는 거야? 그 인간들 별로 강해 보이지도 않던데, 당장 나가서 뿌리 뽑자! 응?"

플로라는 차분한 미소를 보였다.

"우리가 밖으로 나가서 싸울 이유는 없답니다. 린."

"하지만 저것들이 계속 짜증나게 하는걸! 미천한 인간 주제에!"

"린. 인간을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죠?"

"…히잉, 하지만 미천한 건 사실인 걸!"

플로라의 미소에 기운이 빠졌다. 나름대로 노력은 해보았으나 엘프들의 타종족 혐오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이제는 플로라도 반쯤 포기했다. 타종족과의 통합보다는 엘프를 귀족으로 한 정책에 인간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

'……음, 그건 그렇고 어비스군은 아직도 루트에 있는 건가요.'

어비스는 뛰어난 정보력을 자랑하는 국가, 처음부터 이쪽이 엘프의 숲에서 버틸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천의 병력을 이끌고 남하했다. 전쟁을 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만약 다른 동맹국에 지원을 갈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병력을 나누어 동맹에게 보낸 후, 남은 병력으로 자신들의 성에서 수성 준비를 하는 게 상식적일 것이다. 전 병력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와 루트를 점령하고 그 뒤에 병력을 후퇴시켜 아군을 지원하는 방법은 식량, 체력, 시간 낭비였다. 더욱이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불리해 진다.

하지만 어비스가 싸우러 왔다고 보기에도 이상했다. 그들은 전군을 끌고 온 기세가 무색하게, 루트를 점령하고 그곳에 틀어박혀 지낼 뿐이었다.

"리네."

플로라가 자매들 중 언니 쪽인 포니테일 엘프를 보았다.

"네, 폐하."

"저들의 수비 병력은 변함없던가요?"

"네, 숫자는 여전합니다."

"……음."

겉보기엔 아무 이상 없다. 저들은 소수 병력을 운용하여 이쪽을 끌어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성을 지키는 수비 병력도 그대로다.

하지만 계속 구린 냄새가 났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이쪽이 유리해진다는 사실을 어비스에서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싸우러 온 6천명의 병력들을 성에 넣어둔 채 잠잠히 있었다. 무엇이라도 움직임을 보여야 했다.

'아니면 이것도 우리를 끌어들이려는 속셈일까요?'

골치 아팠다. 아군 정찰병들은 어비스의 정보망에 걸려 정찰을 나가는 족족 암살 당했다. 첩보전에서 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수비병의 동향만 확인할 수 있을 뿐, 루트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까지는 알 수 없었다.

"폐하, 지시를."

리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플로라는 고민 끝에 말했다.

"조금만 더 상황을 지켜보도록 해요."

결국 플로라는 현상 유지를 택했다.

급한 건 저들 동맹 쪽이고, 알브헤임이 이 포지션을 유지해서 손해 보는 것은 없었다. 이대로 초조함에 빠져 병력을 이끌고 숲을 빠져 나오도록 하는 게 저들의 노림수일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약에 지금 어비스에서 몰래 병력을 빼돌려 다른 동맹들 쪽으로 보낸다고 해도.

'…우리가 받는 피해는 없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 각개전투 전략은 알브헤임만 손해를 보게 되는 구조였다.

알브헤임은 변수를 일으킬 위험이 있는 어비스를 붙들고 있는 역할을 맡았다. 그 사이 자신의 두 동맹은 여유롭게 상대국의 영토와 멸망 보너스를 독식하고, 정리가 끝나면 그제서야 알브헤임을 도와 어비스를 함께 무찌른다는 계획이었다. 두 명이 이 작전에 찬성했으니, 그녀가 하지 않겠다고 버틸 수는 없었다. 달리 좋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그들이 정말로 순수한 동맹 의식으로 도와줄지는 의문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멸망보너스를 꿀꺽할 수도 있고, 이윤의 지분을 나누자고 요구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스스로의 몫은 스스로가 챙겨야겠죠.'

어비스의 병력 일부가 다른 쪽으로 빠져준다면 그만큼 자신에게는 여유가 생긴다. 그 틈을 타 공세로 전환하여 어비스를 집어삼키면 된다.

'마냥 이용당하지는 않아요. 최후에 웃는 사람은 제가 될 겁니다.'

*

가장 먼저 개전(開戰)한 쪽은 알란드와 오펙투스였다.

알란드의 첫번째 거점 영지 스톰홀은 목재와 천연 암벽으로만 지어진 목책 요새였다. 마법사들의 화염 마법 폭격에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어서 오펙투스는 조금 떨어져 있는 두 번째 거점 영지는 내버려 둔 채 곧바로 수도인 '실버시타델'로 직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수도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강철협곡'.

좌우가 좁고 가파른 협곡, 그리고 그 길목에 지어진 천혜의 요새. 그곳에서 오펙투스와 알란드가 본격적으로 격돌했다.

"발사!"

화아아아악! 매캐한 검은 꼬리를 남기며 하늘을 가로 지르던 화염구들이 일제히 요새에 격돌했다. 콰앙! 쿠쿵! 화염구가 부딪칠 때마다 요새가 들썩거리며 파편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 안에 있는 병사들이 앓는 소리를 냈다.

"큭, 물러서지 마라! 요새를 수리해! "

"역사상 뚫린 적 없는 요새다! 우리 대에서 오점을 남길 수는 없다!"

요새 안에는 드워프들과 인간들이 정신 없이 탄약과 자재를 실어 나르고, 요새를 수리했으며, 벽에 달라붙는 적들을 처치해나가고 있었다.

"허억! 헉!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빨간머리 드워프가 거친 숨을 헐떡이며 요새 벽 밖으로 총구를 겨누었다. 오펙투스의 적들이 새까맣게 몰려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점화선에 불을 붙이려는데 총신이 너무 길어서 제대로 자세가 나오지 않았다.

"에라이, 이거 인간용이잖아!"

그가 총을 내팽개치며 말했다.

"내 꺼 어디다 둔거야?"

"어이! 형씨! 조심해!"

그 말을 듣고 드워프가 뒤를 돌아 보았다. 무너진 요새의 잔해 너머로 화염구들이 날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온다아아아!"

그가 뒤로 몸을 던지며 외쳤다.

"다들 쑤구리!"

콰아아아앙! 화염구들이 다시 한번 성벽을 두들겼다. 사방에서 폭발이 터져 나왔다. 드워프는 파편에 얻어 맞고 몸을 나뒹굴었다.

쿠쿠쿵! 이번엔 위층 바닥이 무너지며 사람들 몇 명이 우당탕 떨어져 내렸다. 한번 요란한 난리가 난 후에야 폭음이 멎어 들었다.

"우리 층에 온걸 환영하오, 친구들."

빨간머리 드워프가 말했다.

"끄으으으, 아이고, 허리야! 둘째 봐야 허는데 울 마눌을 무슨 염치로 본다냐?"

"거 형씨들! 떠들 시간에 총 한발 더 쏘고 망치질 한번 더 하쇼!"

"아따, 아재요! 나무로 덧대 막으면 뭐한다냐! 저 마법 한방에 마 무너져 삐는디!"

"그럼 가만히 손 놓고 있을겨? 뭐라도 해야 할거 아니여?"

드워프들과 인간들이 서로 찰진 욕을 주고 받으며 요새를 쿵쿵 뛰어다녔다. 요새 안에서는 수리파와 방어파, 둘로 나누어 분업하고 있었다.

특히 수리파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자재를 가지고 와 무너진 벽을 틀어 막고, 적의 공격으로 작동 되지 않는 요새 장비들을 수리하고 있었다.

강철협곡의 요새는 고대문명이 쌓아 올렸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곳으로, 현대 과학력으로는 만들 수 없는 다양한 장비들이 내장되어 있었다. 물론 세월이 지나 장비가 너무 낡아 작동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미 몇 번이고 요새의 수리를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실패했다. 그나마 작동되는 것도 수리를 완료한 잠깐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 요새가 알란드의 최후의 보루였다. 이곳이 뚫리면 바로 실버스타델이다. 알란드의 과학자들이 달라붙어 억지로 요새의 동력을 일으키고, 방어 장비의 부품을 끼워 맞춰 탄환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적의 마법에 의해 파괴되면, 다시 안으로 들고 와 수리하는 것을 반복했다.

"오펙투스 놈들이다!"

요새 벽에 줄을 걸고 오펙투스 병사들이 성벽으로 넘어왔다. 그들이 있는 4층에도 어느새 병사 몇몇이 올라왔다.

"정신 없구만!"

"나한테 맡기시라!"

전쟁터 한복판에 하얀 가운을 입은 과학자 인간이 나타났다. 그는 등뒤에 축전기 장치를 매고, 그것과 연결된 금속봉의 손잡이를 손에 쥐고 있었다. 밑의 계단에서 올라오던 오펙투스의 병사가 그를 보고 달려들었다.

"맛 좀 봐라!"

남자가 봉 끝으로 병사의 몸을 툭 건들었다. 치지지지직! 감전된 병사가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하하하하! 보았느냐!"

"어이, 형씨! 앞에 한 놈 더 있어"

남자는 단걸음에 달려나가 벽을 기어올라오려던 병사의 몸에 봉을 찔렀다. 그가 '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남자는 성벽 밖의 적들을 내려다보며 요란하게 웃었다.

"보았느냐! 이 무식한 놈들아! 이게 바로 '전기'란 거다! 하하하하하하!"

- 콜 라이트닝.

쿠릉!

한 줄기 푸른 전격이 쇄도하여 주위 반경을 모조리 초토화 시켜버렸다. 콰콰쾅! 그 공격으로 전기봉을 들고 있는 남자의 몸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드워프들은 입술을 깨물며 침묵했다.

그리고 오펙투스 진형.

"흐으으음."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마법사가 손을 내리며, 자신의 마법으로 뭉개진 곳을 응시했다. 그는 '대마법사'라는 이미지에 가장 잘 들어맞는 모습이었다. 하얀 눈썹에 하얀 수염, 각종 마법 무구들로 치장된 치렁치렁한 로브차림이었다.

"후우, 하워드."

오펙투스의 플레이어인 콜린 롤링이 그에게 다가왔다.

"이상한 곳에 마력낭비 하지 말고 지금 만들고 있는 파티 스펠이나 좀 도와주시죠."

"어허허허! 미안하네, 탑주(塔主)! 어떤 시건방진 녀석이 눈에 띄어서, 엿 좀 먹여 준다고 말일세."

그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등을 돌렸다.

========== 작품 후기 ==========

지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들이 가끔 들려서, 에덴 지도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아마 결과물은 내일쯤 나올듯 하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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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edrions / 오옷, 감사합니다! 땡큐 포 유얼 쿠폰!

빛과하늘 / 감사해용!

ads123 / 네 그게 혁명단의 가장 사기적인 부분이죠. 완전히 박멸하는게 몹시 힘듭니다.

육식곰 / 오타 지적 감사해요

Speedwagon / 중간에 L 이 들어갔는데 왜이렇게 세련�瑩�? 물론 명예로운 L은 아니지만서도..

ppk12 / 혁명 브라더까지는 좋은데 뒤에 이상한게 붙었어요!

아프게했어 / 엘리시X 이뇬이... 루디야 ㅠㅠ

로리콤MK / 어멋?!

火炎無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전인이라니까요옷! 빼액!

로아리아 / 그렇게 쓰라고 있는 혁명단이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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