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맹 전쟁 -->
오펙투스의 진형은 둘로 나누어져 있었다. 전방에서 요새 침입을 시도하는 보병 진형과, 후방에서 폭격을 퍼붓고 있는 마법사 진형.
그리고 마법사 진형의 머리 위로는 초대형 마력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린 채 주문을 읊조리며 공중에 떠있는 마력진을 향해 마력을 전달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켈타인의 '워프게이트'와 비견되는 오펙투스만의 특별한 기술, '파티 스펠'이었다.
놀지 말고 도우라는 콜린의 구박을 받은 하워드 또한 한 팔을 마법진 방향으로 뻗었다.
퍼어엉! 대뜸 그의 손바닥에서 화염구가 날아갔다. 화염구가 마력진에 부딪치자 파편이 떨어졌다. '누구야?' '이게 무슨 짓이야!' 마법사들의 짜증스러운 외침이 쏟아졌다.
"……하워드."
콜린이 그를 노려보았다.
"어허허허허! 미안하오, 미안해! 나무도 원숭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 콜록! 콜록!"
"거꾸롭니다! 이 멍청한 영감!"
콜린이 화를 삼키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하워드 스펠위버'. 현재 오펙투스 최고의 마법사였다. 젊고 유능한 금발 여마법사에 대한 로망을 품고 오펙투스를 선택했건만, 하필이면 이런 다 죽어가는 영감이 에이스라니…… 그의 나이 107세. 전쟁에서 전사하는 것 보다 그냥 자연사할 가능성이 더 많은 연세였다.
'뭐, 그래도…'
우우우우우웅!
하워드가 마력을 보내기 시작하자 파티 스펠의 마력진이 전보다 눈에 띌 정도로 빠르게 커지기 시작했다.
'실력은 확실하니까.'
점점 크기를 불려나가던 마력진이 이내 '파창!' 소리를 내며 멈췄다. 그리곤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 모습은 마력진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그럼, 하워드. 마무리를 부탁합니다."
"알겠소. 탑주."
하워드가 손바닥을 펼치자 그의 등 뒤에서 둥둥 떠다니던 낡은 지팡이가 손 안으로 쏙 들어왔다. 그가 가볍게 지팡이를 휘둘렀다.
- 파티 스펠, 라바캐논(Lava Cannon).
하워드의 주문과 동시에 마력진이 공명하듯 붉게 물들더니 이내 지글거리는 거대한 용암 덩어리를 뱉어냈다.
"으아아아!"
"피해!"
그것은 그야말로 자연의 징벌.
일천 도에 이르는 마그마가 협곡의 요새에 뿌려졌다. 요새 위에 있던 병사들은 그대로 즉사, 위층에 있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헐레벌떡 아래 층으로 뛰어내려가야 했다. 요새가 무서운 기세로 녹아 내려가며 순식간에 구조의 삼분의 일 가까이가 사라졌다. 이 때문에 요새의 기능과 방어도가 대폭 떨어졌다.
"환장하겠구만!"
"어떻게 막으라는 거야? 저 빌어먹을 대형 마법은!"
투덜거리던 그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뒤를 바라보았다.
"동력 시설은? 동력 시설은 아직 살아있어?"
"아, 걱정들 말어! 멀쩡혀!"
"조금만 더 고치면 될 것 같은데…"
과학자 가운 차림의 인간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요새의 동력 시설에 손을 댔다.
기이이이이잉!
마냥 당하고만 있으라는 법은 없는지, 알란드에도 기회가 왔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동력 시설에서 요란한 엔진음이 울려 퍼졌다.
"됐다! 요새 동력이 가동한다!"
"오오오오!"
과학자들이 계속 들러붙어있던 보람이 있었다. 동력이 가동되며 요새의 방어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쿠구구구구!
요새의 끄트머리에서 철근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거대한 기계팔이 튀어 나왔다. 한쪽 팔은 용암에 당했지만 나머지 한 쪽은 아직 움직일 수 있었다.
"자, 가라!"
"과학의 힘을 보여줘라!"
끼이이잉! 기계팔이 움직여 요새 주위에 들러붙은 오펙투스의 보병진을 휩쓸었다. 콰콰콰콰쾅! 병사들은 빗자루에 쓸려나가는 먼지처럼 가뿐히 나가떨어졌다.
"저, 저건 또 뭐야?"
"팔이…!"
병사들은 정신 나간 것처럼 요새에 달린 팔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도망쳤다. 기계팔이 하찮은 벌레 잡듯 병사들을 찍어 누르고, 휩쓸었다. 요새 곳곳에서 알란드 병사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허허허! 저 과학쟁이들이 재미있는 수를 쓰는구먼?"
지켜보고 있던 하워드의 눈이 푸른 빛으로 물들었다. 그가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 찍었다.
- 서먼 클레이골렘
주위의 바닥이 물처럼 출렁거리더니 이내 진흙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팔이 불쑥 솟아 올라 움직이는 기계팔을 붙들었다.
쿠쿠쿠쿵!
두 팔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힘을 가했다. 끼익! 끼익! 기계팔에서 철조각들이 떨어지고 진흙팔에서는 점토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러나 힘의 차이는 강철팔이 더 우세한 듯, 진흙팔의 점토가 점점 빠르게 떨어지며 그 크기가 가늘어졌다.
"좋아! 우리가 이긴다!"
"와아아아아!"
쿠쿵! 그때 반대편에서 새로운 진흙팔이 솟아올랐다. 그리고는 붙들린 기계팔의 관절을 일자로 내리쳤다. 카카카캉! 충격을 이기지 못한 기계팔이 두 조각나며 바닥에 떨어졌다. 드워프들이 애써 이어 붙인 강철 파편들이 허무하게 하늘을 날아다녔다. 사방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허허허허! 아직 안 끝났다네!"
하워드가 다시 지팡이를 휘둘렀다. 두 팔뿐만이 아니었다. 이번엔 진흙 속에서 골렘의 얼굴과 팔에 연결된 몸통까지 솟아났다. 그 거대한 크기에 적군 아군 할 것 없이 눈이 휘둥그래졌다.
"자, 잠깐! 하워드!"
콜린이 다급한 어조로 외쳤다.
"그만! 그만! 당신 제자들 거의 다 쓰러졌다구요!"
"으잉?"
하워드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와 마력 교류를 하고 있던 일곱 명의 제자들 중에서 여섯 명이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고 이제 남은 건 한 명 뿐이었다. 그 마지막 한 명도 상태가 좋지 못한 듯 얼굴이 파랬다.
"어이쿠, 내 정신 좀 보게! 나이가 드니 기억이 가물가물하구만."
"이제 벌써 몇 번쨉니까? 허구한 날 죽어나가는 당신 제자들 좀 생각하세요!"
"그렇게 구박하지 말게, 탑주. 실수는 어머니의 성공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성공의 어머니겠죠!"
하워드가 지팡이를 빙글 돌렸다.
"그럼 살짝만 쓰겠네."
몸통까지 만들어진 거대한 골렘에 갑자기 전체 몸의 1/10도 되지 않을듯한 앙증맞은 다리가 톡 튀어 나왔다. 골렘은 그 작은 다리와 팔을 이용해 네발 동물처럼 엉금엉금 요새를 향해 기어갔다. 알란드의 입장에서는 꽤나 공포스러운 장면이었다. 그 덩치가 움직일 때마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쿵쿵 소리가 났다.
"접근하게 두지 마라!"
"쏴! 쏴!"
요새의 알란드 병사들이 화승총을 쏘고 대포도 발사해 보았지만 골렘의 전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골렘이 요새의 지척까지 도착한 때에, 하워드의 마지막 제자까지 마력 결핍으로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하워드 본인 뿐이었다.
"아이고오! 나 죽는다!"
쿠쿵! 끝내 골램의 몸이 요새에 부딪쳤고, 하워드는 마법을 해제했다. 동시에 골램의 형태 또한 해제됐지만 막대한 양의 토사가 요새의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쿠쿠쿠쿠쿠쿠쿠쿠쿠!
"미, 미친!"
"피해!"
알란드 병사들이 허겁지겁 요새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용암으로 약해진 요새의 기반이 토사의 무게에 짓눌려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반듯한 토산이 만들어졌다.
"이때다! 총공격하라!"
콜린의 총공격 명령이 떨어지자 보병부대가 함성을 지르며 토산으로 뛰어들어갔다. 요새의 수비병들이 오지 못하게 막으려 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계들이 흙이 들어가 고장이 나버렸다.
적의 원거리 화력이 줄어들자 마법사 부대도 앞으로 걸어 나오며, 아직도 요새에서 저항하는 자들을 향해 파이어볼을 날려댔다.
"하하하! 보세요, 하워드! 드디어 우리가 난공불략의 요새를 무너뜨렸습니다! 이제 남은 건 실버시타델 뿐이에요!"
콜린이 그렇게 말하며 옆을 돌아보았으나 하워드는 이미 바닥에 쓰러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하, 하워드? 하워드!"
콜린이 기겁하며 그에게 달려왔다. 죽은 건가? 기어코 늙어 죽은 건가? 콜린이 무릎을 꿇고 하워드의 얼굴을 들어올리는데 그의 입에서 이상한 신음 소리가 튀어나왔다.
"…으음? 거, 거긴? 거긴 안 돼! 난 스승이고, 넌 제자…! 음냐……"
그리고는 요란하게 코를 골았다.
"……멀쩡하군."
잠꼬대를 하는 하워드를 바라보며 그가 한숨을 쉬었다.
상태가 영 안 좋은 영웅이긴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건 이 영감뿐이었다.
콜린이 병사들을 불렀다.
"뭣들 하고 있느냐? 어서 마도사와 제자들을 안으로 모셔라!"
"예! 마탑주!"
*
백제 진형
스미스 타운.
쿠웅! 쿠웅! 쿠웅!
굳게 닫힌 스미스타운의 성문이 요란하게 들썩거리고 있었다.
이미 내구성의 한계를 넘어선 듯 몸체의 절반 이상이 뜯겨나가 있었고 금이 가있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결국 백제 병사들마저도 성문을 포기한 채, 뒤로 몇 발짝 비켜서 적의 돌진에 대비했다.
콰아앙!
마침내 성문이 완전히 박살 나 바닥에 나뒹굴었다. 뒤이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코끼리, 코뿔소, 하마 등 우람한 덩치의 수인들이었다. 그들 모두 커다란 공성추를 팔에 끼고 있었다. 덩치에서 풍기는 위압감에 백제 병사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손에 쥔 무기를 꽉 쥐었다.
"돌격하라!"
쿵! 쿵! 쿵! 쿵!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성난 코뿔소 수인 두 명이었다. 백제 병사들이 앞세운 방패와 창이 무색할 정도로 그들의 돌진은 간단히 백제군 진형의 전면을 박살내버렸다. 그 둘이 창에 당해 바닥에 쓰러질 때엔 이미 진형이 엉망으로 엉켜버린 뒤였다.
"다음! 다음이 온다!"
"재정비!"
두두두두두두!
대지를 진동시키는 말발굽 소리가 전장을 가득 매웠다. 성문 쪽에 있던 거대 수인들이 뒤로 빠지고 게노세르크의 개척시대 특화 병종, '마인(馬人)병'들이 출진했다. 그들 모두 반인반마의 모습에 손에는 창을 쥐고 있었다.
"인간들을 도륙하라!"
"짓밟아라!"
코뿔소 수인들이 목숨 바쳐 붕괴시킨 보병 진형을 이번엔 마인병들이 들이닥쳐 헤집어 놓았다. 반인반마의 몸이었지만, 기마 특유의 '차지'공격은 군마 못지 않았다. 선두 보병들이 엉망으로 나가떨어지며 말발굽에 짓밟혔다.
"이때다!"
"가자!"
뒤이어 성문에서 등장한 것은 게노세르크의 보병 부대였다. 검과 방패를 든 우인(牛人)병, 창을 든 견인(犬人)병, 활을 든 원인(猿人)병까지, 이들이 바로 게노세르크의 가장 기본적인 특화 병종들이었다. 게노세르크는 수인의 종류만큼 다양한 특화 병종을 보유하고 있었다. 카오스월드에서 가장 많은 특화 병종을 가진 나라이기도 했다.
성문도 뚫어냈다. 백제군의 보병 진형도 무너뜨렸다. 전황은 명백히 게노세르크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 같았으나,
"화차(火車) 준비."
백제도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뱍제군은 게노세르크의 수인들이 성문을 부수고 들어올 것을 대비, 각 포인트마다 일곱 대의 화차를 준비시켜 놓았다. 개척 시대에 사용할 수 있는 백제의 새로운 화력 무기였다.
"발사!"
콰콰콰콰콰콰콰콰!
수레 위에 탑재된 로켓형 화기인 신기전(神機箭)이 불을 뿜으며 날아갔다. 그 타겟은 이제 막 성문을 빠져 나와 밀집되어있는 수인 보병들이었다. 낯선 발사음에 수인들은 고개를 들어 보았다. 하늘이 빈틈없이 새하얀 탄환들로 가득 매워져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이 바라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콰콰콰콰콰쾅! 폭죽과 같은 현란한 이팩트가 지상에 수놓아지며 지옥을 꽃피웠다.
살점들이 비산하며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거리도 짧고 재장전이 힘들다는 단점이 있지만, 한번에 넓은 범위를 폭격하는 한방의 화력은 실로 대단했다. 폭격에 노출되어 당한 수인 보병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에덴의 지도가 완성되었습니다!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퀄리티가 좋은것 같아 만족스럽네요. 우측 상단에서 지도를 확인하실 수 있으십니다! 소설의 이해를 도울수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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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루스 / 잠시 동안은 타국 전쟁씬이라 ㅎㅎ;
sj8077 / 과학 엉엉 ㅠㅠ 발전 시간이 부족해
Xedrions / 잘머겄다!!
류파 / 통구이를 몸소 실현하시고 돌아가신 과학자님께 묵념을..
Speedwagon / 아니 로리 좀 안나올수도 있죠! 제가 무슨 로리 마스터도 아니고!
ppk12 / 경찰 아저씨 여기에요
벌레 / 알란드도 좋습니다아
lineata / ㅠㅠ 그러네요 발전시간이 문제죠
윌리엄스 / 같은 필명으로 조아라에서 썼습니다만, 출판 관계로 지금은 연중해둔 상태구요. 카카오페이지나 네이버북스 등에서 전자책으로 계속 보실수 있어요! 종이책도 있을텐데 아마 구하긴 힘드실듯 ㅠㅠ
@火炎無 / 건전인과 로리콘이 조화를 이루는 이름이라니...
@빛과하늘 / 타국의 인재를 보면 원래 그런 생각이 듭니다 흐규
Mr윤 / 100화까지 달려야�!
@로리콤MK / ㅋㅋㅋㅋㅋㅋㅋ 마틴이 죽은 이유도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