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맹 전쟁 -->
백제군은 게노세르크군을 상대로 스미스타운에서 1패를 기록하며, 전 아로게쓰의 수도인 풋힐랜치로 퇴각했다.
한편 알란드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한 채 거의 일방적으로 스톰홀과 강철협곡 요새를 연달아 빼앗겼고, 이제 수도인 실버시타델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실버시타델은 산맥의 동굴 안에 지어진 고대 문명 도시를 기반으로 발전한 곳이었다. 알란드의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앞선 기술도 바로 이 고대 문명으로부터 시작됐다.
실버시타델은 동굴 안에서부터 점점 동굴 밖으로 뻗어 나가며 여러 주거지와 기반 시설이 들어선 타원형의 도시가 되었다. 확충하고 또 확충하여 여러 성들이 겹쳐진 형태라 1차, 2차, 3차, 4차까지 성벽이 있었다. 이 외에도 확장의 흔적으로 곳곳에 성채들이 어지럽게 겹쳐져 있었지만 주는 이 4개의 성벽이었다.
실버시타델은 번화한 도시인 만큼 도시 예비병이 많은 수준이었으나, 이 나라 특유의 형편없는 군사력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예비병들은 훈련은커녕 무기도 지급받지 못해 나무로 창을 깎아 만들고, 돌을 주워 슬링으로 던져야 했으니 과학의 나라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였다. 물론 그런 사소한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기에, 다들 군말 없이 목책과 돌들을 주워 날랐다.
실버시타델에 도착한 오펙투스군은 연전연승의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서인지 큰 휴식 없이 전쟁을 서둘렀다. 그렇게 두 세력의 명운이 걸린 '수도 공성'이 시작되었다.
첫 1차 성벽 공략에서, 콜린은 보병 병력을 세 부대로 나누어 세 개의 성문을 한꺼번에 공격하는 전술을 썼다.
세 방향에서 오는 적을 완전히 균등한 수비력으로 막아낼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느 한쪽은 상대적으로 방어가 집중되고, 어느 한쪽은 취약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콜린은 가만히 전황을 지켜보다가 가장 취약 지점을 포착하여 마법사들과 하워드를 그곳으로 한꺼번에 보내 화력을 집중시켰다.
그렇게 파티 스펠과 공성 무기로 동쪽 성문과 성벽의 내구성을 크게 훼손시킨 상태에서 다음날 아침 2차 공성을 시작. 이번엔 전군이 동문 한 방향으로만 몰려가 공격했다. 분산해 성을 지키던 알란드의 수비병들이 뒤늦게 막으러 몰려갔으나 이미 성문은 뚫린 뒤였다.
다음 2차 성벽 공성전에서는 콜린은 별다른 전략없이 순수하게 집중력 있는 공성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인지 이 전투는 두 세력의 화력전 양상을 보였다. 오펙투스 측의 특화 병종인 '오펙투스 메지션'과 '오펙투스 위저드', 그리고 알란드의 특화 병종인 '캐논슈터' 간의 대결이었다.
캐논슈터들 중에서 힘이 좋은 드워프 출신들은 어깨에 포신을 짊어지고 직접 쐈으며, 인간들은 수레로 끌고 다녔다. 분명 성벽 위에서 아래로 쏘아대는 캐논슈터들의 포격은 우수한 화력을 뽐냈지만, 먼 곳에서 곡사로, 그것도 일방적으로 퍼부어지는 마법사들의 화염 마법 폭격에 의해 상대적으로 빛을 바랬다.
사기가 점점 떨어지고, 마법 폭격으로 인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다가, 끝끝내 2차 성벽까지 뚫리고 말았다. 알란드의 병사들은 과학은 결코 마법을 이길 수 밖에 없는 것이냐며 다시금 한탄했다.
그리고 이제 3차 내성을 남겨두었다.
고대 도시로 향하는 동굴을 감싼 4차 성벽은 사실상 목책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 3차 내성이 알란드에게 남겨진, 실질적인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이네."
뺑뺑이 안경을 쓴 알란드의 플레이어, 올리버가 쓸쓸하게 중얼거리며 하늘을 바라 보았다.
하늘에는 석양이 세상 만물을 황홀한 오렌지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평소라면 잠시 감상에 빠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시선을 조금만 움직여 보니 한때 터전이었던 무너진 성곽들과 거주지 파편들이 보였다. 오렌지 빛깔의 옷을 입은 폐허는 무척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네, 마지막이네요. 폐하."
그의 옆에는 과학자들이 입는 하얀 가운을 걸친, 아름다운 레몬 빛 머리카락의 여자가 서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비앙카, 알란드의 신관이면서 과학자이자 군사 역할까지 수행했다. 연구 분야와 군무를 동시에 책임지는, 사실상 알란드의 대들보 같은 존재였다. 장신의 키에 늘씬한 몸매는 펄럭거리는 가운을 걸쳐도 모텔 같은 옷태가 선명히 드러났다. 작은 키의 올리버와 같이 다니다보면 늘 주위 사람들의 비교가 되곤 했다.
"자신 있죠?"
비앙카가 물었다.
"…어, 음. 연습 많이 못했는데……"
"그 정도면 충분해요."
비앙카에게 등을 떠밀린 올리버가 주춤거리며 강단에 섰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동안의 전투로 지치고 진이 빠진 수많은 알란드의 병사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그들의 썩 곱지 않은 시선이 꽂히자 마른 침이 목을 타고 꿀꺽 넘어갔다.
비앙카가 두 손으로 공손히 확성 구슬을 내밀었다.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잡았다.
"……어, 음. 제, 제군들! …이, 이제 마지막 전투를 남겨두고 있다."
확성 구슬을 쥔 그의 손이 긴장으로 부르르 떨렸다.
"그, 그대들의 노고는 자, 잘 안다. 으음… 좌절했고, 포, 포기하고 싶은 것도 안다. 하, 하지만……"
목소리가 떨림이 너무 심했다. 듣는 사람이 괜히 낯부끄러워 지는 음성이었다. 올리버 본인도 정신이 아늑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조차 모를 지경이었다.
"이, 이곳마저 뚫리면…… 더 이상 나, 나라의 미래는 없다. 우리는 결코……"
올리버의 시선이 아래로 움직였다. 한숨을 쉬는 자들, 킥킥 비웃음을 흘리는 자들, 그리고 체념한 자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들의 말소리가 조금씩 올리버의 목소리를 갉아먹어갔다. '저런 게 왕이라니.', '역시 왕은 드워프에서 나왔어야 했어!' '아니, 그래도 처음엔 몸집도 작은 게 야무지게 잘했잖아?', '갑자기 왜 이렇게 쫄보가 된 거야?'
그들의 작은 중얼거림은 오늘따라 유난히 잘 들렸다. 허공에 맴돌아 흩어지는 게 아닌 귀로 들어와 팍팍 꽂히는 기분이었다. 그럴수록 올리버의 목소리는 점점 더 떨리고, 가늘어졌다. 말은 하고 있었지만 올리버의 시선은 불안한 듯 사방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옆에 있는 비앙카의 눈치도 힐끔 보았다.
"이것 하나만큼은 며, 명심해라. 우리의 패배는……"
그때였다. 비앙카가 성큼성큼 올리버에게로 다가왔다. 귀찮아 하던 병사들도 왜 저래? 하는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겨, 결코 우리들만의 패배가 아닌…… 응?"
올리버 또한 말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웁?"
일순간 모두의 입이 떡 벌어지는 상황이 일어났다. 비앙카가 대뜸 허리를 숙여 올리버의 입술을 훔친 것이다.
"저, 저게 무슨?"
"군사님이?"
웅성거림이 터져나왔다. 올리버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비, 비앙카! 이, 이런 곳에서……"
그녀가 천천히 입술을 때며 올리버의 얼굴을 진지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어차피…"
"응?
"어차피 마지막인데 못할게 뭐가 있겠어요?"
"크크!"
"오오오!"
워낙 분위기를 잘 타는 드워프들이 팔을 흔들며 요란한 환호성을 질러댔다. 다 죽어가는 분위기속에서 이런 안줏거리가 될만한 해프닝은 대 환영이었다. 인간들도 머쓱하게 웃으며 환호에 맞춰주었다.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모르는데 체면치레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녀를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때요?"
비앙카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떨림이 멎었죠?"
"……어, 음. 가슴은 더 떨리는데."
"자! 어서 마무리 해요."
그녀가 공손히 가슴에 손을 얹으며 예법을 다해 고개를 숙였다.
"나의 왕이시여."
올리버가 고개를 크게 한번 끄덕했다. 그리고 다시 강단 아래를 바라보았다.
방금 이 해프닝으로 방금 전만해도 죽을상이었던 병사들의 분위기가 한결 좋아져 있었다.
"…으음, 군사의 말이 맞다. 어차피 마지막인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말하다보니 정말로 목소리에 떨림이 멎어 있었다. 주위에서 환호성과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올리버는 더욱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대들도 두려웠을 것이다.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과학은 정녕 마법을 이길 수 없는 것인가? 나는 결단코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빈말이 아니다. …그저, 우리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뿐이다."
과학자들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전쟁 때문에 지금 중단하고 나온 연구가 얼마나 많았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당장 돌아가서 연구를 속행하고싶었다.
하지만 마법만능주의 사상을 가진 오펙투스가 이곳을 점령한다면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답은 뻔했다. 과학자들은 철저히 배척당할 것이다.
"다시 말하겠다. 이것 하나만큼은 명심하라. 우리의 패배는 단순히 우리들만의 패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에덴 대륙의 과학 몰락을 의미한다."
힘이 들어간 목소리가 확성 구슬을 타고 울려 퍼졌다.
"과학이 몰락하면, 에덴의 대륙민들은 앞으로도 마법과 종교의 울타리 안에 갇혀, 영원히 눈을 뜨지 못한채 살아갈것이다. 그대들도 알다시피, 에덴에서는 한 세기에 몇 번씩이나 끔찍한 전염병이 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굶주려 죽어간다. 마법과 종교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기에 그들을 구원하지 못한다."
목소리가 다시 떨려오는 게 느껴지자 올리버가 다시 쉼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과학은 아니다. 신분과 능력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그 혜택을 부여한다. 우리는 문명의 변혁을 이룩하고, 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 실버시타델이 무너지면 과학은 더 이상 회생이 불가능해진다. 저 산속에서 고대 문명을 쌓아 올린 선조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화딱지를 낼 일이 아닌가?"
그가 주먹을 꾸욱 쥐었다.
"마지막이다. 더 이상 뒤는 없다. 가족들을 생각하고, 그대들의 어깨에 짊어진 사명을 생각하라. 온 힘을 다해 이를 악물고 버텨라! 그리하면……"
후욱. 올리버가 숨을 토해내며 다시 확성 구슬을 가져다 댔다.
"길이 보일 것이다."
열화와 같은 환호가 폭발처럼 터져 나왔다.
올리버는 말을 멈추고 잠시 멍하니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이름이 '만세!'로 오르내리는 말들이 귓가에 윙윙 울렸다.
"그것 보세요."
비앙카가 다가와 말했다.
"할 때는 하잖아요."
"……응. 고마워."
그녀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후후. 남들이 뭐라해도, 역시 전 지금의 폐하가 더 좋다니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올리버에게 입을 맞추었다.
*
다음날, 3차 내성에서의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올리버의 연설로 사기가 크게 오른 알란드군과, 연신 승승장구 하는 오펙투스군. 모두 지쳐있었지만 사기는 드높은 상태였다.
전쟁은 그 어느 때 보다 치열했으며, 밤낮으로 쉴 틈 없이 진행되었다.
서로가 가지고 있었던 카드는 모두 들여내 보였으니, 이제는 지구력 싸움이었다.
그동안 당하기만 했던 알란드는 조금 더 능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마법사들의 파이어볼을 막기 위해 벙커를 짓거나, 화염을 중간에 와해시키는 무기를 만드는 등 그들의 공격에 나름대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역시 근본적인 문제는 기본적인 군사력의 부족이었다. 능동적으로 대응한다고 해도 결국 힘에서 밀리면 말짱 도루묵이다. 요새를 끼고는 있었지만, 오펙투스의 병력 수가 더 많고 장비나 훈련 강도도 더 높았다.
그렇게 공성 4일째, 두 진형 모두 한계를 느끼고 있을 때였다.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
"쏴라! 쏴!"
"탄이 없으면 돌이라도 던져!"
수염이 덥수룩하다 못해 바닥에 닿을 정도로 자란 드워프들이 정신 없이 오고 가며 자재와 돌들을 날랐다. 탄이 다 떨어진 캐논슈터들을 위해 과학자들이 아예 기기의 화약기관을 빼고 돌맹이를 발사하는 것으로 개조해 주기도 했다. 그만큼 모두가 필사적으로 버텼다.
"허허허허! 끈질기구먼!"
그러나 다시 그들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마력 충전을 마친 대 마법사 하워드가 진형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놈이 왔다!"
이제는 그의 등장만으로 모든 알란드 병사들이 바짝 긴장하며 소리쳤다.
"대마법사다!"
"이번 공격만 막자!"
"이것만 막으면 놈도 당분간 마법을 쓰지 못해!"
적진의 소란스러운 이야기들을 들으며 하워드가 껄껄 웃었다.
"물론 그건 맞는 말이네만, 자네들이 이걸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로구만! 흘흘."
하워드의 뒤에는 마법사들이 파이어볼 폭격을 중지하고 새로운 '파티 스펠'을 준비해둔 상태였다. 하워드가 지팡이를 휘둘러 초대형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 파티 스펠, 그라비티 필드.
========== 작품 후기 ==========
빛과하늘 / 감사합니다 ^^
푸른물결2 / 플레이어도 같은 수인이니까 가능은 합니다만 완벽히 통제가 가능하죠.
로리콤MK / A+ 등장 까지는 확실하고 S는 좀 더 생각중입니다. 좀 잘나가서 오래 연재하면 나오겠죠 ㅠㅠ
Xedrions / 내 수줍은 담편을 받아줘!
Liviera / 우선 A+ 등장 까지는 확정되어 있고, S급은 고민중입니다. 아마 오래 연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올듯 싶어요.
쿠죠죠타로 / 확실히 언더하임의 수인들과는 달리 저쪽 수인은 너무 난폭하죠. 확실이 섞이기엔 고생할듯
ppk12 / 한 글자가 잘못 되었습니다만...
Speedwagon / 로도 정도면 상당히 준수한 스탯인데 ;ㅅ; 저 친구가 무력 몰빵 굇수인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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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mon0002 / 히그마 당신은 대체.....!
SW스윈 / 게노세르크가 와 최강대국인지 보여주는 대목이죠. A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