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맹 전쟁 -->
- 파티 스펠, 그라비티 필드.
쿠구구구구구!
마법이 발동되자 주위의 지면이 쩍쩍 갈라졌다. 그리곤 기반 암석들이 통째로 일어나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몸이 움츠러들게 만드는 장관이었다.
"…무, 무슨 마법을 부리든 소용 없어!"
"성문을 반마력 광물들로 떡칠을 해 놨는데 뚫을 수 있겠냐!"
하지만 알란드 병사들은 애써 괜찮은 척 큰 소리를 떵떵 쳤다. 이미 반마력 세팅으로 하워드의 대마법을 두 차례나 막아냈었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쿠쿠쿵!
하늘로 올라간 암석들이 하나로 뭉쳐 거대한 흙공의 형태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하워드는 '그라비티 필드'를 유지하면서, 다시 지팡이를 움직였다. 이번엔 파티 스펠이 아닌 온전히 그가 시전하는 마법이었다.
- 서먼, 블래스트 골렘.
덜거덕! 덜거덕! 하워드의 앞에서 골렘이 조립되기 시작했다. 주위의 흙과 바위, 그리고 새로운 마력진이 공구상자처럼 재료를 뱉어내며 골렘을 빚어갔다.
이번 골렘은 팔이나 몸통은 생략한 채 거대한 머리 하나만 불쑥 나타나 있는 형상이었다. 머리의 제작 공정만으로 하워드와 마력 교류 계약을 맺고 있는 제자 일곱 명 중 다섯 명이 픽픽 쓰러졌다.
"…저건 또 뭐야?"
"머리만 만들어서 어쩌려는 거지?"
한쪽에서는 기대감을, 다른 한쪽에서는 불안감을, 전장의 모든 이들이 서로 상반된 감정을 가지고 하워드의 마법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마무리 작업이었다. 그라비티의 필드의 효과로 직경 수 미터의 흙공이 골렘의 머리 앞으로 내려왔다. 바닥에 닿지 않고 공중에 살짝 뜬 채였다. 동시에 골렘의 입이 하마처럼 쩍 벌어졌다.
"흘흘! 상대방에 맞추어 발전해가는 건 자네들뿐만이 아니라네!"
하워드가 중얼거리며 지팡이를 허공에 휘둘렀다.
골렘의 입에서 펑! 하는 포성이 울려 퍼졌다. 그러자 정면의 흙공이 미사일 같은 기세로 성문을 향해 날아갔다.
꽈아아아아앙!
"크아악!"
"으헉!"
성벽 위의 병사들이 중심을 잃고 넘어질 정도로 엄청난 충격이 성문을 타고 요새 전역으로 흘렀다. 그 단단해 보이던 흙공이 박살이 나서 바닥에 널브러졌다.
"토, 통하는 건가?"
대기하던 오펙투스의 병사들이 재빨리 성문을 바라보았다. 어떤 마법이나 공성병기로도 꿈쩍도 하지 않던 3차 내성의 성문에 금이 쩍쩍 가 있었다.
"우와아아! 통한다!"
"역시 마도사야!"
"가라!"
오펙투스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반면, 알란드 측의 병사들은 거의 죽을상이었다.
"아, 거 참말로 아재들! 뭣들하고 있소? 저, 저거 어떻게 좀 해보쇼!"
"저렇게 멀리 있는 걸 뭐 어떻게 해?"
"저것도 마법아니여? 반마력 장비들이 안 통하는 것 같은디?"
"나참! 저건 마법을 이용해 그냥 물리력으로 때려 부수는 거잖소!"
"왜 구박이여? 내가 마법 같은 걸 어째 알어!"
그들이 서로 투닥거리는 사이 두 번째 흙공이 날아왔다.
다시 한번 요란한 충돌음이 대기를 뒤흔들었다. 성문이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듯 들썩거렸다. 지켜보는 알란드 병사들의 마음이 타들어갔다.
군사인 비앙카가 입을 앙 다물었다. 당장 성문을 열고 나가서 저 마법을 방해할 전력이 이쪽에는 없었다. 그녀가 외쳤다.
"전원 성문 뒤로! 시가전을 준비합니다!"
"시가전이다! 움직여라!"
"입성을 대비하라!"
결국 성문이 무너지는 걸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성벽을 내려가는 드워프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리고 세 번째 흙공이 날아왔다.
꽈아아아아앙!
성문이 완전히 박살나며 몸체에 덧댄 반마력 광물들과 쇠붙이들이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녔다. 흙공은 성문을 뚫고 들어와 알란드 병사들의 앞에 대구르르 굴러 멈췄다.
"아아…"
"성문이…!"
여기저기서 절망 어린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이제 끝인가.'
비앙카 마저 고개를 떨구었다. 그때 그녀의 옆에 서있던 올리버가 확성 구슬을 들고 외쳤다.
"다들 고개를 들어라!"
"…폐하?"
그녀가 토끼눈으로 올리버를 보았다.
"문 하나 뚫렸다고 전투가 끝나는 게 아니다! 아직 우리의 목숨이 붙어있지 않느냐! 과인은 오늘 여기서 싸우다 죽을 것이다! 그대들도 따르라!"
올리버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후회했다. 사기가 떨어지는 게 눈에 보여서 급한 나머지 어디서 들은 말을 막 내뱉긴 했는데, 나랑 같이 죽어 달라니! 세상에 이런 격려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눈치빠른 부관들이 바로 올리버의 말을 알아듣고 외쳤다.
"폐하의 말씀이 맞다! 아직 지지 않았다!"
"여기서 다같이 죽자!"
"알란드를 위하여!"
"과학을 위하여!"
병사들이 다시 마음을 다잡고 결연한 표정으로 무기를 들었다.
"어머, 이번 전쟁에서 새로운 면들을 많이 보여주시네요. 폐하."
비앙카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마지막이니까."
올리버도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요새라는 거대한 벽을 앞두고 대치한 두 진형에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펙투스의 보병 부대는 이제 입성 준비를 마쳤다. 콜린은 승리를 예감하며 검을 뽑았다.
'이제 벼랑 끝으로 몰아 붙였다.'
수천명이 있는 공간이었지만 주위는 더없이 조용했다. 모두가 그의 마지막 공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콜린이 하늘을 향해 검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
'응?'
갑자기 들린 커다란 말소리 때문에 콜린은 명령을 내릴 타이밍을 놓쳤다. 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중요한 순간에 왜 이리 주위가 산만한가? 부관들은 병사들을 통제하지 않고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웅성 웅성 웅성 웅성
그러나 그 웅성거림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마치 전염병처럼, 걷잡을 수 없이 주위로 퍼져나갔다. 오펙투스군 뿐만이 아니라 알란드군까지. 이제는 수 천명의 목소리로 주위가 가득 매워졌다. 여기서 콜린이 돌격 명령을 내린다 해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마탑주! 큰일! 큰일입니다!"
쿵.
전령의 '큰일' 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콜린은 심장이 내려 앉는 듯한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애써 침을 꿀꺽 삼키며 태연함을 연기했다. 다 이기고 있는데 큰일은 또 무슨 큰일이란 말인가? 물론 짐작가는 게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설마, 그럴 리가 없……
"마탑주! 후방에서 정체 불명의 군대가 접근하고 있다고 합니다!"
콜린의 손에서 검이 툭 떨어졌다.
그가 정신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젖히며 '아.' 하는 단발마의 탄성을 냈다.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이제야 콜린의 귀에도 다른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벼, 병력이 온다!"
"어디 군대야?"
멀리서 한 무리의 군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접근해오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이제 성에서도 잘 보일 정도였다.
갑작스러운 난입 세력의 등장으로 두 진형이 발칵 뒤집어졌다. 적인가? 아군인가? 특히 알란드 병사들의 얼굴에는 희망이 엿보였다. 무슨 상황이 펼쳐지든,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두두두두두!
새로운 난입 세력을 이끄는 선두의 남자는 드레이크를 타고 있었다.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도착했다. 실버시타델."
"……아슬아슬 했네요."
우측에 말을 몰고 있는 은발의 소녀가 말했다.
"흐흐흐! 불타오르는구만!"
좌측에 쇠파이프를 한 손에 든 남자도 한마디 했다.
이들은 다름아닌 로드가 이끄는 어비스의 4천 병력이었다. 로드의 좌우에는 베아트리체와 피닉스가 나란히 말을 달리고 있었다. 6천의 병력 중 4천의 병력이 알란드로 넘어온 것이다.
"자, 가자!"
로드가 고삐를 잡아당기자 그의 애룡이 포효를 내질렀다.
4천명의 어비스군이 일제히 오펙투스 진형의 텅 빈 뒤를 향해 다가갔다.
*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어떻게 이렇게 빨리……!'
콜린이 손가락을 깨물며 달달 떨었다.
그는 눈이 시뻘개진 채로 며칠 전 과거를 회상했다. 그가 막 강철의 협곡 요새를 무너뜨리고 실버시타델에 도착했을 때였다. 플로라가 1:1 대화 신청을 요청했었다.
"네? 어비스군이 사라졌다구요?"
자초지종을 들은 콜린이 놀라서 반문했다. 플로라 또한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이었다.
"죄송해요, 콜린 씨. 분명 어비스군이 루트 안에서 잠복해 있는 줄 알았는데… 너무 잠잠해서 공성을 걸어보니 병력들이 사라져 있었어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 되는 소립니까?"
"죄송해요. 하지만 상황이……"
그녀는 줄줄이 자신의 사정을 설명했다. 전군을 끌고 영지를 점령했는데 설마 그냥 되돌아갈지는 꿈에도 몰랐다. 수비 병력은 계속 그대로였다. 또 그동안 소규모 전투도 몇 차례나 있었다. 등등.
콜린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밀려오는 짜증을 참았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잘못은 나중에 묻죠. 놈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아시겠습니까?"
"밤중에 빠져나가서 아직 정확하게는 파악을 못하고 있어요. 루트라면 백제나 게노세르크 어느 쪽도 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놈들이 언제쯤 사라진 것 같습니까?"
"제가 오늘 수상함을 느끼고 공성을 걸었는데 성은 텅 비어있었으니까… 아마 하루나 이틀 전쯤에 출발했겠죠."
콜린이 끙 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다시 말했다.
"넉넉잡고 이틀 전에 출발했다고 생각해도, 여기서 그곳까지 걸리는 시간은 8일 정도겠네요."
'흠, 그렇다면 대충 남은 기한은 6일인가.'
이제 바로 수도인 실버시타델 하나 남긴 상황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리고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어비스군 때문에 공성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상대와의 전력차는 압도적인 우위였다. 콜린은 6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6일내로 성을 함락하고 이 요새를 차지한다. 어비스군이 도착한다 해도, 그때쯤이면 이미 동맹인 알란드는 무너져있을 테고, 알브헤임군이 언더하임을 공격하고 있을 것이다. 로드가 같이 망하자는 심산으로 달려드는 게 아닌 이상은 되돌아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콜린은 공성을 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군의 사기를 염려하여 어비스군이 올 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알리지 않았다. 그저 가슴 졸이며 공성을 서둘렀다.
그러나 콜린과 플로라가 예상한 것 보다 어비스군은 이틀이나 더 일찍 도착한 것이다. 콜린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게 어떻게 된 속도란 말인가? 그 며칠간 밤낮없이 쉬지도 않고 달려오기라도 한 것인가!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게 있었으니, 로드는 루트를 점령한 그 '당일 밤'부터 지체 없이 병력을 뒤로 빼돌렸었다. 그렇게 시간을 더 벌어 알란드로 향한 것이다. 플로라는 상식적인 선에서, 단순히 자신의 예상만으로 이틀 전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정보를 덥석 믿고 자신의 공성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던 것이 콜린의 패착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겠나? 탑주."
하워드가 다가와 물었다.
"성문은 부셨네만…"
"크윽."
분했다. 눈물이 찔끔할 만큼 분했다. 앞으로 딱 몇 시간만 더 있었으면 이 도시와 알란드의 멸망 보너스는 자신의 것이 됐을 터였다. 마법과 과학 모두를 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전멸을 앞두게 된 상황이었다.
부관들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마탑주!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어떤 명이든 따르겠습니다!"
콜린은 잠시 머리를 식혔다. 성문을 뚫렸으니 그대로 알란드를 몰아붙이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역시… 현실성이 없었다. 아무리 아쉬워도 판단은 제대로 해야 했다.
"저들도 휴식 없이 이곳까지 달려왔을 테니 힘에 부칠 터 입니다. 명을 내리겠습니다. 3차 성벽은 포기하고 내려갑시다. 우리는……"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전력을 다해 실버시타델에서 빠져나갑니다."
========== 작품 후기 ==========
주말간 가족 행사를 다녀왔습니다. 봄은 봄이더군요. 재충전 제대로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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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게했어 / 후후후후후. 주인공은 철.. (퍽)
빛과하늘 / 정답입니다. 헉. 소름
푸른물결2 / 중력은 거둘뿐!
Speedwagon / 그건 로드가 아니라 하버트의 대사가 아닐런지요?
엘스터 / 얍
sj8077 / 살았다(?)
ads123 / ㅋㅋㅋㅋㅋ 아드스 닉네임 심플하고 좋네요
Digimon0002 / 예엡! 감사합니다!
Xedrions / 바로 일 시켜드렸습니다.
lineata / 헉. 소름(2)
llSongOfBladell / 물론 있습니다. 근데 B급 무력형은 없다는 설정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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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콤MK / 응? S급 아니에요 하워드 ㅠㅠ
@ㅇㅈㅂㅇㅂ / ㅋㅋㅋㅋㅋㅋㅋㅋ 팩트폭행..
@火炎無 / 하늘에서 로리가 빗발친다!
@나야나hu / 멸망 보너스도 제한이 있긴 하지만 어비스가 후반에 유리한건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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