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99화 (99/296)

<-- 동맹 전쟁 -->

마도사 하워드가 전사하고, 구심점을 잃은 오펙투스군은 더더욱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이제는 알란드군까지 밖으로 나와 어비스군을 도왔다.

그렇게 꼬박 하루가 걸리는 혈투 끝에, 로드와 올리버는 종전을 선언했다.

이번 알란드 침공에 나선 오펙투스의 병력 7천중에서 5천명이 전사, 1천명이 항복했다. 살아남아 본토의 땅을 밟은 건 천명도 채 되지 않았다. 동맹전쟁의 전황을 뒤바꿀만한 대승이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1:1 대화창으로 올리버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바로 성벽 하나를 앞두고 있었지만 그쪽 가신들이 안위상의 문제를 제기했는지 직접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모두 알란드가 잘 버틴 덕이죠. 여기까지 정말 잘해주셨습니다."

이대로 알란드를 끝내 버리는 건 어떨까? 로드는 그런 상상을 하며 잠시 혹하긴 했다.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약해진 동맹국의 뒤통수를 치는 행위를 했다간 로드의 신뢰도는 그야말로 바닥을 치게 될 것이고, 어비스와 동맹을 하는 나라는 앞으로 없을 것이다. 잠깐의 이득에 혹해서 미래를 망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 그런데 알브헤임은 어쩌고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올리버가 물었다.

"알브헤임이야 지금쯤 우리쪽 영지를 공격하고 있겠죠. 오늘 밤만 여기서 쉬고, 다시 본토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아, 정말 로드님께 큰 빚을 졌습니다."

그가 다시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하하… 같은 동맹이니까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일 언더하임으로 향할 생각인데, 혹시 가능하다면 병력을 지원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아, 네! 무, 물론이죠! 뭐든 도, 도와드려야죠, 네!"

그렇게 말하면서 올리버는 아까부터 누군가의 눈치를 힐끔 힐끔 살피고 있었다. 그때 올리버가 옆으로 밀려나며 레몬빛 머리카락의 여성이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천한 신의 종이 어비스의 왕이자 신의 계약자를 뵙습니다. 알란드의 신관인 비앙카라 하옵니다."

그녀가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보였다. 로드는 놀라서 눈을 깜박거렸다. 신관도 지휘관 창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플레이어가 아닌 타국의 신관과 대화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소인이 군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똑 부러진 인상에 야무진 언변이었다. 아마 알란드를 떠받들고 있는 건 올리버가 아닌, 바로 이 여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관없습니다."

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우리 알란드를 구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올리겠습니다.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알려드리고 싶은 것은, 밤낮없는 전쟁으로 우리 병사들의 피로가 극에 달했다는 사실입니다. 병력은 얼마든지 내어 드릴 수가 있으나 이들 모두 힘이 없어 언더하임으로 가는 행군에 방해만 될 것이옵니다. 아마 대부분이 중간에 낙오하겠죠."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로드가 계속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군량곡이나 화살, 무기 자원은 얼마든지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다만 병사들을 내어주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차출을 원하신다면 그나마 몸 상태가 좋은 자들을 꼽아 1천명까지는 맞추어 보겠습니다."

"호오, 천명이라… 그 수가 가능하겠어요?"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현재 알란드의 살아남은 정규군은 3천도 안될 것 같아 보였다. 1천이면 나름대로 넉넉한 숫자였다.

'올리버가 괜찮은 군사를 얻었군.'

납득이 가도록 자신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그 상황에서도 지원해 줄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지원해 주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주고 있었다. 나름대로 기본은 되어있는 사람 같았다.

"그렇게 합시다."

"사정을 알아주시니 황송하옵니다. 그럼, 우리들은 그동안 병력을 추스르고 있겠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로드를 바라보았다.

"아직 넘어야 할 벽은 많으니까요."

"물론이죠."

오펙투스를 쓰러트린 건 시작에 불과했다. 알브헤임, 그리고 최강의 난적인 게노세르크가 기다리고 있었다.

*

로드가 루트 영지에서 떠난 후 엿새 만에 플로라의 알브헤임 병력이 움직였다.

어비스의 갖은 도발에도 엘프의 숲에서 숨죽이면서 웅크리고 있던 알브헤임은 결국 플로라의 결단으로 숲 밖으로 나와 루트를 공격했다. 그들은 별다른 전투도 없이 루트를 되찾는데 성공했지만, 그 안에 어비스군은 어디에도 없었다. 플로라는 이때 어비스군이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콜린에게 알려주었다.

루트의 수비 병력이 여전히 많아 보였던 이유가 사실은 루트의 자경단이나 시민들의 협력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엘프들은 극도로 분노했다. 촌장은 어비스군이 식량과 영지민들의 목숨으로 자신들을 협박했으며, 그에 따랐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엘프들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저번 처형식 사건도 있으니 루트의 모든 인간들을 불살라 죽이자고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플로라는 반대했다.

대륙에서의 평판은 둘째 치더라도 영지의 인간들을 모두 죽이면 영지를 운영할 사람이 없다. 전쟁 중이라도 영지의 생산 활동이 계속 되어야 전쟁의 유지력도 늘어나는 법이었다. 결국 플로라는 촌장과 자경단 책임자 몇 명을 처형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고, 엘프 병사들에게 이곳의 인간들을 통제하도록 했다.

영지 상황이 정리되자마자 플로라는 병력을 이끌고 루트를 빠져 나와 국경을 넘었다.

국경을 넘은 그들이 처음으로 맞닥뜨린 곳은 어비스의 첫 번째 거점 영지 '드러그팜'이었다. 수비 병력은 천명 정도였으며, 영주인 붉은 망치단 클랜장 바톨과 파견 사령관인 유니벨이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공성이 시작되었다.

알브헤임군의 화력은 막강했다. 그들은 인간들의 영토에서 병력을 더 보충하여 4천병력에서 5천명으로 덩치를 불렸다. 인구가 적은 엘프들의 특성상, 군의 규모는 6개국 중에서 가장 작았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가장 우수했다.

알브헤임의 가장 강력한 군사적 특징이라고 한다면 역시 '활'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선천적으로 활을 잘 쏠 수 밖에 없는 신체 조건을 타고난 엘프들로 이루어진 궁병들은 가히 대륙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플레이어인 플로라는 전체 병력의 삼분의 일 이상을 궁병만으로 구성했다.

공성이 시작되고 얼마 안 가, 특화 병종인 '알브헤임 헌터'들은 놀라운 활 솜씨를 보이며 성벽 위에 배치된 어비스 측 궁병들의 씨를 말려버렸다.

지상을 견제할 궁병이 줄어들어 버리니 알브헤임군의 보병들이 활개를 쳤다. 큰 방해 없이 성벽 위를 올라왔으며, 일방적으로 공성무기로 성벽을 두들겼다.

그나마 어비스 측에서 화살 공격에 자유로웠던 자들은 무거운 중갑과 방패로 무장한 붉은 망치단들 뿐이었다. 그들이 성벽 위에서 고군분투 했지만, 그들의 힘만으로 전력의 차이를 전부 매울 수는 없었다.

결국 이틀 여 만에 성문이 뚫리고, 알브헤임군이 영지성 안으로 들어왔다. 바톨은 성을 버리고 퇴각을 명했다.

유니벨이 이를 악물고 전장 곳곳을 동분서주하며 활약했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녀에게도 엘프들의 화살 공격에는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어깻죽지에 화살을 맞는 부상을 입고 물러났다. 그렇게 이틀만에 드러그팜이 함락되었으며, 유니벨은 쓸쓸히 패잔병들을 이끌고 언더하임으로 복귀해야 했다.

*

언더하임에서는 수성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 부근은 성벽이 많이 낡았군. 공병들을 불러 좀 더 보수를 하도록."

"예!"

티아는 성벽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방어 상황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로드가 수도 수성의 모든 것을 티아에게 위임해 두어 현재 그녀가 어비스군의 총사령관이었다.

그녀는 목공들과 대장장이들을 동원하여 성벽에 접이식 나무벽을 만들도록 하였다. 평소에는 접혀서 성벽 아래에 붙어있는 형태지만 전부 펼치면 성벽 위 궁수들의 전면과 머리 위를 살짝 덮는 형태가 되었다.

"움직여 보거라, 문짝아."

"넵! 군사님!"

나무벽에 문짝이의 이목구비가 나타났다. 그가 끙! 소리를 내며 힘을 쓰는듯한 표정으로 바뀌자 나무벽이 자동으로 펼쳐져 올라갔다. 티아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훌륭하다. 여기에 대장장이들을 시켜 강철을 덧댈 것인데, 들어 올리는 데 문제는 없겠느냐?"

"물론이죠! 헤헤."

"수고했다. 내려도 좋다."

문짝이가 다시 나무벽을 접힌 형태로 돌려두었다. 티아가 일부로 서쪽 성문과 같은 재료로 나무 벽을 만들어 문짝이가 컨트롤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잘 된 것 같군요."

애니록스가 말했다. 그러자 티아의 엘프 귀가 쫑긋 올라가며 몸을 움츠렸다.

"…앗, 깜짝 놀랐다. 언제부터 있었느냐? 부디 기척을 좀 내다오."

"아까부터 계속 옆에 따라다니면서 에스코트 해드리고 있었거든요! 지금껏 계속 말 주고 받은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애니록스가 울컥해서 말했다.

"음, 그랬던 것 같군. 사과하마, 정보부장."

"…하아, 여러분들의 작은 무관심이 누구에겐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로 다가 온다구요."

그 말에 티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 정보부장이 상처를 받는다는 건가?"

"…네?"

"정보부의 일원으로서 남들의 눈에 띄지 않고 은밀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큰 메리트이니라.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티아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뭔가 기운 차리라는 격려의 행동인 듯 했지만 애니록스에겐 역효과였다.

"……그런 순진한 얼굴로 가슴에 비수를 꽂지 말아주십시오."

"아, 그러고 보니 정보부장의 재능을 탐내던 암살단에서 그대를 스카우트하려고 주공에게 안건을 제출하겠다는 소문도 있……"

"으아아! 그만! 그만하세요!"

애니록스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며 소리쳤다.

"음, 솔직히 본녀는 그대가 부럽도다. 본녀는 지나가는 길 마다 사람들이 아름답다며 수군거리고 남자들의 시선이 자꾸만 꽂히는 게 여러모로 부담이었느니라."

"……지금 본인 자랑하는 거 아니죠?"

"야! 엘프 거유!"

그때 성벽 멀리서 누군가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성벽을 정찰하는 병사들이 샥샥 비켜나고 있었다.

"음. 누구지?"

"아하, 그녀가 돌아왔네요."

========== 작품 후기 ==========

무꾸914 / 이번편에 나옵니다 ㅎㅎ

Xedrions / 추천이 2라니 솔깃! 근데 요즘은 출판 작업중이라 연참시간을 내기가 힘드네요 ㅠㅠ

x8w / 오오, 감사합니다! 수정함!

아프게했어 / 아마 그 연세라면 큰일 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Speedwagon / 어디서 콩의 냄새가? 어디서 콩의 냄새가?

ppk12 / 히익..;

火炎無 / 기승전로리이!

로리콤MK / 로리와 팬티의 조합이라니 신성함 마저 느껴진다.

빛과하늘 / 대단하군요 저도 제 글은 한치 앞도 예상 못하.. (퍽)

ads123 / (돌직구)

SW스윈 / 당연히 계속 전투를 거치면서 성장합니다!

로아리아 / 피닉스가 성장하면 확실히 효율이 좋겠군요

해리엇트 / 네? 저는 그냥 쥬얼에서 가져온 표지인데... 작품소개에 출처 있어요

레거노프 / 십꾸금으로 시작하려 했으나 네이버 카카오 출판계약으로 인해 자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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