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100화 (100/296)

<-- 언더하임 공성전 -->

유니벨이었다. 그녀가 씩씩거리며 티아에게 다가왔다. 부상당한 어깨는 붕대로 둘둘 감싼 채였다.

"왔는가? 재정관. 아니, 여기서는 장군이라 불러야겠군."

"호칭은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그녀가 버럭 소리질렀다.

"너 말이야, 영지가 곤죽이 되고 있는데 어떻게 지원군 한 명 안 보내 줄 수 있어? 정말 다 죽을 뻔 했다고!"

티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유니벨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야! 내 말 안들리……"

"장군은 전략에 대해 잘 모르는 모양이군."

티아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전력 차가 심한 상황에서는 지원군을 보내는 게 의미가 없다. 아까운 병사들만 잃을 뿐, 어차피 드러그팜은 시간을 끄는 용도였을 뿐이니라."

"…뭐?"

유니벨이 발끈한 표정을 지었다.

"야, 시발 너 지금 은근슬쩍 말 바꾸냐? 언제는 날 보내면서 드러그팜은 중요 거점이니까 반드시 지키라며!"

"어느 지휘관이 성을 지키러 가는 장군에게 곧 버릴 거점이니 대충 지키라고 말하겠는가? 그때의 말은 장군에게 사명감을 가지게 하여 영지에서 좀 더 버텨내도록 하기 위함이었느니라. 그대의 분전 덕분에 소중한 하루를 더 벌었으니, 오히려 잘 된 일이 아닌가? 본녀는 드러그팜이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너어…!"

눈이 뻘개진 유니벨이 달려들어 티아의 멱살을 붙잡았다. 애니록스가 기겁하며 두 사람을 말렸다.

"놓거라. 장군."

티아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하."

"두 번 경고는 하지 않겠다. 패장(敗將)."

움찔. 그 말에 유니벨의 손이 떨렸다.

"패장의 죄에다가, 상관 모욕죄까지 덧붙일 생각이더냐? 지금 그대를 붙잡아 처형해도 주공께서도 본녀를 탓하시지 못할 것이다."

"…큭."

유니벨이 거칠게 멱살을 놓았다. 티아는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쳤다. 유니벨이 그녀를 쏘아보았다.

"……정말이지, 넌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음? 처음부터 장군에게 미운털이 박힐만한 짓은 하지 않았거늘. 으음, 혹시 특정 신체 부위의 격차 때문에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던 거라면……"

"다, 닥쳐! 그런 거 아니거든!"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씩씩거렸다. 당장이라도 쏘아 붙이려 입을 우물거리던 그녀는 결국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 등을 돌려 가버렸다. 주위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그녀가 지나갈 길을 만들었다.

"……결정타를 날리셨군요."

애니록스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티아가 두 귀를 쫑긋하며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앗, 으음. 미안하다. 깜짝 깜짝 놀라는 건 어쩔 수 없구나."

"군사니임! 무슨 치매라도 걸리신 겁니까?"

"…그대는 꽤나 실례되는 말을 하는군!"

유니벨을 상대할 때 보였던 철면피는 어디 갔는지 서운한 감정을 팍팍 드러내며 말했다.

"본녀 또한 인간의 나이로 치면 아직 파릇파릇한 나이이니라."

"어련하시겠어요."

"그건 그렇고, 본녀가 그렇게 못할 말을 한 것인가?"

애니록스가 쓴 웃음을 지었다.

"화가 나서 얼굴 뻘개진 거 봤잖아요. 유니벨 씨 앞에서 그런 말을 대놓고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이 나라에 군사님 밖에 없을 겁니다."

"……음, 확실히 마지막 말은 어른스럽지 못한 것 같았으니 반성하마. 이미 패배가 확정된 전장을 다녀온 장군에게 패장이란 말을 들먹인 것도 옳지 못했지."

"…잘 아시면서 왜 굳이 그런 말들을?"

"군율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티아가 옷을 탁탁 털며 말을 이었다.

"본녀는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지만, 일단은 주공이 임명한 총사령관이다. 그러니 전시 상황에서 본녀에 대한 도전은 용납되지 않는다. 정보부장. 어비스군이 예전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대륙전체로 뻗어나갈 강군이 되야할 터, 허술한 군대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주공부터가 워낙 유들하니 본녀라도 군율을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애니록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군율'. 어비스군에서는 거리가 먼 말이었지만 그녀가 틀린 말을 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적어도 군대에서는 필요한 시스템이었다.

"평시에는 드높은 재정관일지 몰라도, 전시에는 내 병사들 중 한 사람일 뿐이다. 사과는 전쟁이 끝내면 하도록 하지."

그녀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등을 돌렸다.

"자, 다음으로 가지. 아직 할 일이 태산 같구나."

"그러죠."

*

마침내 알브헤임군이 언더하임에 도착했다.

종합 5천명의 군대였고, 수비하는 언더하임군은 딱 그 절반인 2천5백명이었다.

사실 주력을 이끌고 알란드로 먼저 올라간 것은 로드에게도 큰 도박이었다. 그의 병력이 자리를 비우면 알브헤임군이 언더하임까지 밀고 올라올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했으니까.

하지만 로드는 무난히 싸우면 패배하게 되는 불리한 전력상에서,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도박은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렇게 계획이 맞아 떨어져 오펙투스의 주력 병력을 몰살하고 에이스 영웅까지 쓰러트릴 수 있었다.

물론 이제 로드의 주력군이 돌아올 때까지 티아가 언더하임을 지켜내야지만 진짜 승리였다.

'……음.'

티아는 성벽 위에서 적군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방금 정보부에서 날아온 승전보에 의하면, 로드의 병력이 이틀 전 오펙투스군을 전멸시켰다고 했다.

그녀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렇다면 당일 쉬고 바로 다음날 출발했다고 생각했을 때 거리를 계산해 본다면 걸리는 시간은 오늘로부터 7일. 그리고 이중으로 행군해야 하는 어비스군의 컨디션을 고려하여 로드가 체력을 안배하며 움직인다고 했을 때, 최소한 8일에서 9일 정도는 버텨야 한다는 뜻이었다.

'쉽지는 않겠군.'

티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병력 배치를 시작했다.

언더하임은 산을 끼고 있는 요새로 북쪽과 동쪽에 성문이 하나씩 있었다. 북문은 언더하임의 '정문'으로 불리며 성문도 크고 성벽도 높았지만 역시 문제는 동문이었다. 에고 도어로 성문을 교체하긴 했어도 여전히 북문에 비해 취약점이 많은 건 사실이었다.

티아는 총사령관인 자신이 동문을 맡기로 하고, 또 한 명의 지휘관인 아란에게 북문을 맡겼다. 아란과 여러 차례 전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결과, 신뢰할 수 있는 지휘관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로드가 피닉스가 아닌 아란을 이쪽에 두고 가줘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부 정돈을 끝낸 티아가 알브헤임군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그들 또한 병력을 나누어 두 개의 성문을 동시에 공략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주력은 역시나 동문 쪽이었다. 플로라 본인과 그녀가 아끼는 쌍둥이 자매 모두 동쪽에 있었으니 거의 확실했다. 티아는 이에 대응하여 현재 어비스군의 최고 전력인 유니벨을 자신이 지휘하는 동문에 배치했다.

한편, 알브헤임의 진형에서는 주둔 시설과 야영을 준비하는 데 한창이었다. 플로라는 의자에 앉아 성벽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저 자가 바로 어비스의 군사라는 티아 그란디네군요."

"그렇습니다. 폐하."

대답은 알브헤임의 쌍둥이 엘프 자매 중 언니 쪽인 르네에게서 돌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엘프인 그녀가 우리의 가장 큰 적이 되었네요.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지……"

플로라가 잠시 말을 멈추고 밧줄에 묶인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정말 궁금하군요. 제사장."

"소, 송구합니다! 폐하!"

플로라가 서류를 팔랑거리며 들어올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녀는 루트에서 '고고한 현자'라고 불렸으며, 대규모 오크 무리의 침공 때 인간들을 지휘하여 루트를 구해낸 적이 있는 영웅이다. 그런데 제사장 독단으로 그녀를 반역죄로 몰아 처형시키려 했으나, 관중들의 난입으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라고 적혀 있네요. 어떻게 반역자가 있다는 사실을 왕인 제가 모를 수가 있었던 거죠? 제사장."

"주, 주, 죽을 죄를 졌습니다!"

그가 고개를 연신 조아리며 말했다.

"하, 하지만 그녀는 반역자가 맞습니다! 사실 그녀는 엘프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정체는 해방 전쟁을 일으킨 바로 그 악몽 같은 페어리퀸입니다!"

플로라가 계속 말하라는 듯 고개를 까닥했다.

"명백한 반역자이지만 처형 사실을 왕실에 알리지 않은 건…… 그저 제 그릇이 작아서 화가 미칠까 봐 두려웠었습니다. 정말 죽을 죄를 졌습니다! 부, 부디 목숨만은……"

"일어서세요, 제사장."

플로라가 너그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살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을 본 것일까, 제사장이 퍼뜩 자리에서 일어났다.

댕강!

그리고 그의 목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목을 잃은 몸은 그대로 중심을 견디지 못하고 선채로 뒤로 넘어갔다.

"흥. 구더기 같은 남자."

어느새 제사장의 뒤에서 나타난 트윈테일 머리의 자매 동생 린이 나이프에 뭍은 피를 털어내고 있었다.

"그 말대로네요, 린. 일개 구더기 때문에 큰 인재를 잃었어요."

플로라는 다시 고개를 들어 티아를 바라보았다.

거리가 멀어서 스테이터스를 바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로드가 자신과의 불화를 무릅쓰고 영지에서 빼돌려 군사 자리에 앉힌걸 보면 최소한 C급, 혹은 B급까지 될 지도 몰랐다. 뼈아픈 손실이었다.

'……로드, 그 남자도 생각할수록 괘씸하군요.'

정보에 좀 능통하다고 남의 영지까지 와서 인재를 빼돌리다니… 이 동맹전쟁이 아니더라도 그런 짓을 한 이상, 어차피 한번은 싸워야 할 운명이었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플로라 언니."

"왜 그러죠? 린."

"큰 인재라고 말할 것 까진 없잖아. 페어리 퀸이라며! 미천한 종족인데다가 반역자니까 어차피 죽여야 할 여자야."

린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호호, 뭐가 어쨌든 그녀의 처분은 우리가 결정했어야 했어요. 제사장 때문에 적의 전력만 올려준 셈이 되었으니."

"괜찮아! 린이 제일 먼저 저 미천한 년의 목을 따서 플로라 언니에게 가져다 바칠게!"

"어머, 믿음직스러운걸요? 자, 이리와 앉아요."

플로라가 자신의 무릎을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린이 달려와 플로라의 품에 쏙 들어왔다. 플로라가 그녀의 머리를 정돈해주자 린이 기분 좋은 듯 헤헤 웃었다.

"얍."

그때 플로라가 린의 몸을 쓰러트려 자신의 무릎 위로 뉘이게 했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엉덩이를 짝 하고 때렸다.

"아야! 아파아!"

"린. 타종족을 이야기할 때 그 '미천한' 같은 말 쓰지 말라고 계속 말했죠?"

"으아앙! 플로라 언니! 아파!"

린이 다리를 버둥거리며 온몸으로 고통을 표현했지만 플로라는 놓아주지 않았다.

"르네."

그녀가 옆에 서있는 언니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 폐하."

"출진 준비하세요. 이제 알란드에서 어비스군이 내려올 겁니다.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언더하임을 함락해야 해요."

"명을 받듭니다."

그녀가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잠깐만 르네 언니! 린도 데려가! 아얏!"

"호호호! 자꾸 버둥거리면 개수가 늘어날 지도 몰라요?"

"으아앙!"

르네는 잠시 플로라의 표정을 살폈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걸 보니 즐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

"응? 르네. 제게 무슨 할 말이라도?"

"……아, 아닙니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여신대리의전략게임이 100화까지 왔습니다! 와아아! 짝짝짝!

처음 77에 글을 올렸을때도 의아한 마음뿐이었는데 어떻게 어떻게 쓰다보니 100화까지 달성해보네요. 전부 독자님들의 응원과 성원덕분입니다! 기분좋은 코맨을 읽으면 하루종일 컨디션이 좋더라구요!

100화 기념... 으로는 뭐 제가 대단한 뭔가를 할 능력은 없고 오늘이나 내일중에 연참이나 할 생각입니다. ㅎㅎ;

조아라와 출판 계약을 맺고 곧 카카오나 네이버 등 타 플랫폼에도 동시 연재를 진행할 듯 합니다. 표지 제작중이라고 하는데 무척 기대되네요! 표지가 나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소설 제목도 바꿀 예정이에요. 요즘 정체기인데 표지랑 제목이 바뀌면 선작이 조금이나마 오르려나요? ;ㅅ;

아무튼 100화 달성 감사합니다. 초심 잃지않고 쓰겠습니다. 부족한 글 여기까지 읽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Xedrions / ㅠㅠㅠ 좋습니다. 오늘 내일 안으로 추천 2를 받고 말겠엇!

해리엇트 / 그 여자분 엄청나게 많이 팔려다닙니다 ㅠㅠㅠ 흑흑 사실상 공용캐릭터라..

빛과하늘 / 돌 따위 100화 기념으로 맞아 주겠다아아아

무꾸914 / 최근 네이버 카카오 플랫폼 제작에 들어가서요. 제한이 많이 빡시더군요. 물론 노블에는 수위를 높이거나 외전을 쓰거나 할수도 있습니다. 후후

PunchRice / 이런 아쉽게도 불화(?)씬이다! 꽁냥씬을 써야겠군요

로리콤MK / 쉿, 그 분이 암살자가 되시면 벨런스가 붕괴되어버렷..

SW스윈 / ...히익; 그건 제 능력 밖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