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멸전 -->
"치잇!"
유니벨은 주거지가 밀집해있는 좁은 거리를 내달리고 있었다. 뒤쫓는 엘프 자매들이 화살을 날려대고 있었지만 유니벨은 주위의 건물벽과 장애물들을 이용하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아오! 저 꼬마! 왜 이렇게 안 맞아?"
린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우릴 유인할 속셈인 것 같구나, 린. 앞서갈 수 있겠니?"
"물론이지, 언니!"
린이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뛰어 올라 마력 화살을 뒤로 발사했다. 화살은 활을 벗어나자마자 분해되며 마력진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린이 두 발을 거기에 가져다 댔다.
- 출력의 화살.
투쾅! 미사일처럼 날아간 그녀의 몸이 유니벨의 진행방향을 훌쩍 넘어서 날아갔다. 공중에서 기관총처럼 퍼부어지는 화살 세례에 유니벨은 급격히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그리고 그녀가 멈칫한 사이, 옆 골목에서 나타난 르네가 화살을 쐈다.
"꺄앗!"
유니벨이 냉큼 고개를 숙여 피해냈다. 방금 그녀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 '텅!' 소리가 나며 화살이 박혔다.
"아오, 진짜아! 이제 궁수들이랑 싸우는 건 지긋지긋해!"
유니벨이 역정을 냈다.
"우리도 니가 짜증나는 건 마찬가지거든!"
린이 그렇게 말하며 화살을 사방 곳곳으로 날려 보냈다. 화살의 방향을 바꾸는 '굴절의 화살'이었다. 거울 형상이 유니벨의 주위를 빈틈없이 둘러쌌다.
"흥."
그러나 유니벨은 콧방귀를 뀌며 근처 주거지의 창문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어, 어라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린이 멍한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창 안에서 붉은 탄환이 유도탄처럼 날아왔다. 린은 공처럼 때굴때굴 굴러 폭발을 피해냈다.
"아야야, 쓰려어! 무릎 다 까졌잖아! 이 꼬맹아!"
"헹, 꼴좋다! 멍청이 엘프!"
"뭐어? 미천한 인간 주제에!"
두 소녀가 빽빽 소리를 지르며 싸워댔다.
르네가 그만하라는 듯 동생을 쏘아보며 손짓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 제스쳐를 알아본 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거지 위로 화살을 연달아 날려 보냈다. 혁명군들을 상대할 때 선보였던 '증폭의 화살' 마력진을 3층으로 겹쳐 놓은 형태였다. 유니벨은 실내에 있어서 이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슈콰악!
하늘에서 일직선으로 떨어지는 르네의 화살이 마력진을 통과해 주거지로 내려왔다.
쿠콰콰콰콰쾅!
거대한 주홍빛 폭발과 함께 집 한 채가 통째로 터져나갔다. 자욱한 연기를 뚫고 유니벨이 밖으로 뛰쳐나오는 모습이 드러났다.
"잡았다!"
빠악! 퇴로를 예측해 기다리고 있던 린이 매서운 날아차기를 가했다. 유니벨의 몸이 쾅! 소리를 내며 강하게 벽에 부딪쳤다.
“쿨럭!”
그녀의 입에서 한 줄기 선혈이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데미지가 상당했는지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예전 같았으면 피했을 텐데 반응이 느려졌네. 그치? 르네 언니?"
린이 꺄르르 웃으며 말했다.
"부상에 피로가 겹친 듯하구나. 운이 좋았어."
르네가 중얼거리며 활을 겨누자 린이 팔을 바둥바둥 내저었다.
"잠깐! 잠깐! 저 꼬맹이는 린이 직접 죽일 거야! 그동안 얼마나 린을 괴롭혔는데!"
"하아… 빨리 하렴. 시간 없으니까."
언니의 허락이 떨어지자 린은 콧노래를 부르며 사뿐 사뿐 다가와 쓰러진 유니벨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잘 가! 멍청한 인간. 저급한 것 주제에 내 화살에 죽는 걸 영광으로 생각하라구."
"……."
유니벨이 숙였던 고개를 슥 들어올렸다. 그리곤 웃는 얼굴로 중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린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드는 것과 동시에, 옆 건물의 벽을 뚫고 나온 은빛 소녀의 검이 린의 목덜미를 향해 휘둘러졌다.
"꺄앗!"
카앙! 린이 아슬아슬하게 활로 막아냈지만 서로 부딪친 두 사람이 옆으로 밀려나 거주지에 처박혔다. 쿠쿠쿵! 뿌연 흙먼지가 그 주위를 자욱하게 매웠다.
"린!"
"……늦어, 리체."
유니벨이 옷의 먼지를 탁탁 털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서늘한 눈으로 르네를 바라보았다.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이제 느긋하게 1:1로 붙을 수 있겠다. 그치?"
"……�!"
르네가 재빨리 롱보우를 겨누는 전투 자세를 취했다. 유니벨은 원통형 탄환을 소환하며 입을열었다.
"일주일동안 너희 자매에게 실컷 두들겨 맞으면서 생각했어. 나는 탄을 꺼내서 적에게 던질 줄만 알았지. 정작 내 몸을 지킬만한 방어 수단은 없더라고."
르네의 화살 공격에 대한 유니벨의 대처는, 기동 회피 아니면 분필 크기의 조그마한 탄환을 들어 올려 막는 것. 조금이라도 탄환을 들어 올리는 각도가 틀리면 곧바로 화살이 몸에 박힐 수 있는, 위험천만한 가드였다.
유니벨이 소환한 탄환을 자신의 눈앞으로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계속 고민했어.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수단이 뭐가 있을까? 답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더라고."
- 붉은 마녀의 마창.
우우우웅! 손 안에 들어간 분필 크기의 탄환이 길쭉하게 늘어나더니 끝이 뾰족한 창의 형상으로 변모했다.
그녀는 능숙한 동작으로 창을 빙빙 돌려 보았다. 창이 움직일 때마다 화려한 색감의 붉은 빛이 대기를 장악하며 후웅! 후웅! 하는 바람소리가 났다. 그녀가 다시 창을 고쳐 잡고는 말했다.
"아직 완전한 기술은 아니지만, 문제없겠지?"
"……얕보지 마라, 인간!"
르네가 마력을 실어 화살을 쏘아 보냈다.
태앵!
유니벨이 창대를 움직여 가뿐히 튕겨내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태앵!
다음 화살도 마찬가지로 튕겨냈다. 두 번째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유니벨의 움직임이 걸음에서 뜀박질로 바뀌었다.
'큭!'
르네가 세 번째 화살을 꺼내 활시위에 메기려는 순간, 유니벨이 창을 일직선으로 내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아직 두 사람간의 거리는 멀어서 창날이 닿지 않을 터였다.
‘……!’
화아아아아아악!
그러나 그 순간, 창끝에서부터 소름끼치는 붉은 마력의 기둥이 정면으로 내질러졌다. 그것은 정면의 주거지 벽을 모조리 원의 형태로 구멍을 내버리며 전진했다. 르네는 아슬아슬하게 옆으로 몸을 날려 회피했다.
"흐으응."
찌르기 자세의 유니벨이 창을 거두어들였다. 창끝이 닳아 없어졌지만 그녀가 마력을 보태자 다시 원래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르네가 분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계속 할 셈이야? 이제 네 화살도 눈에 익었고, 동생의 보조가 없으니까 그렇게 위협적이지는 않은데."
"…날 멋대로 평가하지 마라! 인간!"
르네가 신속한 동작으로 화살을 활시위에 메기며 발사했다. 유니벨은 여지없이 창대를 휘둘러 막아내고는 비어있는 한 손으로 탄환을 소환해 흩뿌리듯 던졌다.
철컥!
롱보우 끝에 칼날이 튀어나오더니 마치 검술을 펼치듯, 르네가 현란하게 활을 휘둘렀다. 탄환 네 발이 쩌저적! 소리를 내며 반으로 갈라졌다. 동시에 비어있는 왼손은 등 뒤의 화살통에서 화살 세 개를 가져오고 있었다.
처억!
휘두른 활이 앞으로 향함과 동시에 세발의 화살 장전 작업이 모두 끝나 있었다. 이 모든 게 한 호흡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흐, 흥. 잘하잖아!'
유니벨의 표정이 도로 진지하게 바뀌었다. 세 발의 화살이 날아오는 순간에 맞춰, 유니벨이 앞으로 뛰어들며 창대를 휘둘렀다. 파바밧! 붉은 창격이 정교하게 허공을 수놓으며 화살들을 조각냈다.
‘근접전이야!’
‘근접전으로 온다!’
유니벨은 속도를 더 올렸고, 르네는 등 뒤의 화살통으로 손을 뻗으며 재장전을 시작했다.
르네가 화살을 뽑아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 유니벨이 이번에도 창을 내지르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보였다.
'어리석기는!'
르네가 여유롭게 웃으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일직선상으로 방사되는 폭발 기술. 같은 기술을 두 번 연속 사용해봤자 맞을 리가 없었다.
화아아아아악!
측면에서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르네가 착지와 동시에 반격을 준비하려는 순간,
그녀의 등 뒤로 투척형의 원통형 탄환이 닿아 있었다. 유니벨이 창을 내지름과 동시에 비어있는 한 손으로 탄환을 소환해 던진 것이다.
"커헉!"
콰콰콰콰쾅! 폭발에 휘말린 르네가 피를 토하며 바닥에 볼품없이 엎어졌다. 머리가 먼저 바닥에 떨어지고 하체는 위로 치켜든 자세였다.
"포즈 좋네."
유니벨은 숨 쉴 틈도 없이 달려들어 복구한 창을 내질렀다. 벌떡 일어난 르네가 활에 달린 칼날로 창을 흘려냈고, 유니벨은 창을 손에서 놓으며 몸을 빙글 회전했다. 발차기 자세였다.
터업! 르네가 활에서 한 손을 때며 휘둘러지는 발차기를 막았다. 동시에 유니벨에게 바짝 달라붙어 남은 한손으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유니벨 또한 신속하게 다리를 내리며 르네의 두 팔을 붙들었다. 파학! 맨 손의 그녀들이 서로를 붙잡은 채로 대치했다.
"흥, 어떻게든 힘으로 누르면 될 거라 생각됐어?"
"…�!"
두 사람의 팔이 파르르 떨렸다. 마력으로 강화된 서로의 신체 능력은 백중세였다. 그때 유니벨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내 승리야."
유니벨의 눈동자가 위를 향하자 르네의 시선 또한 뒤늦게 위쪽으로 향했다. 여러 발의 붉은 탄환들이 이제 막 머리 위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시간차 공격!'
르네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만둬라! 그런 짓을 하면 너도 무사하지 못…!"
"응, 엿먹어."
유니벨이 눈웃음쳤다.
꽈아아아아아앙!
탄환이 바닥에 떨어지며 새빨간 폭발이 그녀들의 몸을 집어삼켰다.
자욱한 연기가 걷히자,
여전히 제자리에 굳게 서있는 유니벨과 바닥에 주저앉아 피를 흘리고 있는 르네의 모습이 드러났다.
"나는 내가 일으킨 폭발에는 피해 면역이거든."
"……크윽! 이런 미천한 방법을!"
빠악!
르네의 턱이 돌아갔다. 그림 같은 발차기 자세를 취한 유니벨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자꾸 미천하다, 미천하다, 하지 마. 듣는 미천한 년 기분 나쁘니까!"
털썩. 르네는 완전히 정신을 잃은 듯 대자로 뻗어 버렸다. 드디어 이 까다로운 저격수를 쓰러트렸다. 그녀는 속이 다 시원한 듯 숨을 크게 내쉬었다.
휘청.
갑자기 시야가 흔들렸다. 유니벨이 버거운 얼굴로 벽에 몸을 기댔다.
"……물론 완전 면역은 아니지만. 으으."
유니벨은 자신의 차림을 내려다보았다. 넝마가 된 전투복에 듬성듬성 구멍이 생겨 민망한 살색이 비치고 있었다. 이대로는 돌아가면 병사들의 눈요깃거리가 될 게 뻔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리체는 어떻게 됐으려나?'
"……유니, 끝났어?"
마침 베아트리체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니벨이 고개를 돌려보니, 무표정한 얼굴의 베아트리체가 린의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붙든 채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리, 리체. 무서워."
유니벨이 어깨를 떨며 말했다. 베아트리체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해 보이며 쓰러진 언니 위에 린을 툭 던져 놓았다.
"죽인 거야?"
"……주인님이 기왕이면 생포하라고 하셔서. 숨은 붙어있어."
"좋아. 대충 꽁꽁 묶어서 부관들에게 넘겨버리고, 전장으로 복귀하자!"
"응."
유니벨이 무너진 잔해를 뒤지며 묶을 거리를 찾고 있을 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폭발적인 마력이 대기를 휘감기 시작했다. 유니벨과 베아트리체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쓰러져있던 르네의 몸이 일으켜지고 있었다. 본인의 육체로 일어난 것이 아닌, 마치 중력이 스스로 몸을 일으킨 것처럼.
"……유니."
베아트리체가 슬쩍 눈을 흘기자 유니벨이 얼굴을 붉혔다.
"내, 내 잘못 아니거든! 분명 제대로 쓰러트렸거든!"
르네의 하얀 피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문신 같은 것들이 들어찼으며, 온 몸에선 먹물과도 같은 검은 마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린은."
어마어마한 마력의 흐름에 두 사람이 잔뜩 경계하며 르네를 바라보았다.
"…린은 안 돼!"
르네가 팔을 뻗자 떠오른 린의 몸이 검은 마력으로 감싸지며 풍선 같은 형상으로 변했다. 르네는 그것을 그대로 하늘로 날려 보냈다.
"대체 무슨!"
린이 날아갔음에도 두 소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전면에서 흐르는 거대한 르네의 마력을 두고 한 눈을 팔수가 없었던 것이다.
"리체, 일단 이 녀석부터 해치우자."
"응."
두 소녀가 동시에 서로의 무기를 치켜들며 달려들었다.
========== 작품 후기 ==========
sj8077 / 오타 지적 감사해요~!
로아리아 / 지금쯤?!
아프게했어 / 응?? 턴제게임?
EXYE / 넵?
Xedrions / 나태해서 죄송합니다! (벽에 머리를 찧는다)
알테니아 / 하하...... (삐질) 그녀는 좋은 영웅이었습니다.
sbs97121 / 넵, 맞습니다.
빛과하늘 / 늦어서 죄송해요 ㅎㅎ; 그리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닷!
Speedwagon /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네요! 대체 이 동네의 개성이란!
니알라토텝 / 알테니아님에게 말씀하시면서 @를 붙인 이유가 대체 무엇이죠! 빼액!
@로리콤MK / 로리 독자님도 컴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