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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112화 (112/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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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하임에서 대패한 플로라의 알브헤임군은 본토로 되돌아가는 여정을 남겨두고 있었다. 물론 편안한 과정은 아니었다. 패잔병들을 이끌고 이제는 적의 영토가 된 드러그팜과 루트, 두 거점 영지를 거쳐서 엘프의 숲으로 들어가는 혹독한 여정이었다.

두 영지에 소속된 혁명군들은 지리가 익숙한 점을 활용하여 매복을 걸었고, 플로라는 그때마다 적지 않은 피해를 입으며 빠져 나와야 했다. 거기에 군량도 다 떨어지는 바람에 이중고를 겪었다. 매복 스트레스에 굶주림까지 겹치자 알브헤임에 대한 큰 충성심이 없던 인간 병사들은 속속 탈영했다. 이제 남은 것은 엘프 병사들뿐이었다.

품위가 가득했던 플로라의 차림은 연이은 전투와 고생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제대로 씻어 본 것이 얼마 만이던가, 자신의 몸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를 스스로가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입술이 바싹 말랐고 제대로 먹질 못해 몸이 수척해졌다. 여정 중에 그녀는 에덴에 넘어온 처음으로 몬스터 고기에 입을 댔다. 특유의 역한 냄새에 위장이 격한 거부반응을 일으켰지만, 정말로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존 본능 때문에 꾸역꾸역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이 수모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로드, 그리고 티아 그란디네.’

그녀는 낙담하지 않았다. 지옥 같은 행군 도중 그녀의 유일한 낙은 로드와 티아에게 어떻게, 그리고 어떤 복수를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난관이었던 루트 혁명군과의 전투를 끝으로, 알브헤임 군대는 마침내 안전지대인 엘프의 숲에 들어올 수 있었다. 패잔병의 수는 1500에서 700으로 반토막 나있었고, 병사들 모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였다. 이제 숲에 들어왔으니 도착지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만이 천근만근 무거운 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조금만 더 걸으면 위그드라실이군요.’

그런데 플로라는 숲에 들어오자마자 본인의 상태가 조금 이상해졌다는 것을 자각했다. 귓가에서는 윙윙거리는 듯한 말소리가 들렸고, 눈앞이 뿌옇게 흐릿해지며 숲의 풍경이 뒤틀려 보였다.

‘크윽.’

그녀가 이마를 짚으며 뒤를 돌아보니 여전히 병사들이 뒤따르는 모습이 보였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동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헛것이 보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 …하!’

그러나 걸으면 걸을수록, 윙윙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증상이 심해지자 그녀는 잠시 눈을 감으며 자꾸 귓가에 울리는 소리에 집중해보았다. 고장 난 라디오처럼 남자의 목소리가 끊겨서 들렸다. 불안한 직감이 든 그녀가 더욱 집중력을 발휘해 보았다.

"폐하! 어디 가십니까? 폐하!"

"…응?"

그 목소리를 인지하는 순간,

풍경이 뒤바뀌었다. 바로 등 뒤에서 뒤따르던 병사들은 전부 저 멀리 떨어져 있었고 제장 두 명만이 헐레벌떡 달려오는 중이었다.

“폐하!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말도 없이 대열을 이탈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대열을 이탈했다구요? 그게 무슨?”

쿠르르르릉!

땅이 흔들리며 주위의 나무들이 급격히 기울어졌다. 그들이 밟고 있는 땅이 움푹 들어갔다. 마치 사막의 개미지옥처럼 한 지점을 중심으로 지면이 점점 아래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크윽!"

플로라는 발이 지면에 붙잡힌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제장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래 기다렸어."

낯선 목소리에 플로라가 고개를 들자,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여 마법사가 보였다. 그녀의 주위에는 책, 지팡이, 장신구 등 수십 가지에 이르는 각종 마력 장비들이 서로 다른 빛을 발하며 떠 있었다. 플로라가 아차 싶은 얼굴로 지면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포기해. 내 모든 역량과 재산을 쏟아 부어서 이 숲에 몇 중이나 되는 함정을 설치해 뒀어."

마법사는 덤덤한 어조로 절망을 고했다.

"다, 당신은 누구죠?"

"내 이름은 멜로디."

그녀가 지팡이를 움직였다.

"…오펙투스의 마도사야."

쿠쿠쿠쿠! 유속이 빨라지며 플로라의 몸이 개미지옥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뛰어오고 있었으나 그들보다 개미지옥의 속도가 더 빨랐다.

‘습격인가요! 하필이면 린과 르네 자매도 없는 이럴 때!’

르네는 어비스에 사로잡혔고, 기절해있던 린은 행군 중에 난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자, 잠시만요! 오펙투스의 마도사가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거죠?”

플로라가 다급히 외쳤다. 다행히 대화의 여지는 있는 듯 멜로디가 눈썹을 모으며 내려다보았다.

“우리는 동맹입니다! 이런 짓을 콜린이 용납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물론.”

그녀가 삐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콜린님이 시킨 일이기도 하니까."

"……뭐, 뭐라구요!"

"당신은 원인 제공자. 사실상 스승님을 죽게 한 인물이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플로라의 안백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 그건 오해입니다! 저도 피해자예요! 저도 어비스에 속은 것뿐이라고요!"

"다 알고 왔어. 발뺌할 생각이라면……."

그때 허공에 떠있는 멜로디에게로 화살이 날아왔다. 주위에 있던 마력 무구가 빛을 발하며 그녀의 옆에 마력 방패를 만들어냈다.

“폐하!”

“폐하를 구하라!”

뒤늦게 달려오던 병사들이 급한 대로 화살을 마구 날리고 있었다. 멜로디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더 이상 대화 따위로 시간을 버릴 수 없었다.

"서둘러야겠네."

화악!

멜로디의 몸에서 거대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그 상태에서 지팡이를 휘두르자, 개미지옥에서 골렘의 두 팔이 불쑥 튀어나와 플로라의 몸을 움켜쥐었다.

"크윽!"

뿌득! 뿌드득! 몸의 뼈를 부수는 어마어마한 압력에 플로라가 경련하듯 몸을 떨었다.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눈동자가 뒤집어졌다. 비명도 내지를 수 없었다.

"제, 제, 제발! 커, 커허허헉! 사, 살려주세……!"

궁병들이 이를 악물며 화살을 날려댔지만 멜로디의 쉴드를 뚫지 못했다. 뒤따라온 제장들은 이미 다른 골렘의 손에 제압당한 뒤였다. 멜로디가 차갑게 웃었다.

"잘 가."

골램의 팔이 플로라의 몸을 붙잡은 채로 모래 속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멜로디가 쉴드를 해제하며 두 팔을 척 뻗었다.

퍼어어어어엉! 개미지옥이 뒤집어지며 거대한 모래의 해일이 솟구쳐 올라 숲을 뿌옇게 뒤덮었다.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멜로디는 단거리 텔레포트로 현장에서 빠져 나왔다.

"하아."

그녀는 무릎을 꿇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엘프의 숲에 들어와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를 했는데도 아슬아슬했다. 환상마법으로 플로라만 따로 꾀어내는 것이 주요했다. 적이 패잔병이라고 얕보고 자신의 전력만으로 승부했다면 당하는 건 틀림없이 이쪽이었으리라.

"이걸로……."

멜로디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두 명 남았습니다. 스승님."

- 오펙투스의 ‘멜로디 스펠위버’가 알브헤임의 ‘플로라’를 처치했습니다.

- 오펙투스의 플레이어가 멸망 보너스를 획득합니다.

- 나라의 형태가 남아있으므로, 알브헤임에서는 왕이 교체되어 계속 나라가 유지될 것입니다. 대신 알브헤임은 국가 고유능력과 연구 및 지휘관 창으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효과의 혜택에서 제외됩니다.

*

동맹 전쟁은 실로 혼란과 격변의 연속이었다.

무려 3:3 국가 대전의 무대, 전력의 밸런스가 맞지는 않아 누구나 게노세르크가 포함된 서부 동맹의 무난한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시작부터 격변의 연속이었다. 알란드의 수도를 공략하던 오펙투스의 후방을 어비스가 몰아치며, 오펙투스 주력군의 궤멸 및 주요 영웅들의 대거 사망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어비스 동맹 쪽으로 분위기가 흐르는 듯싶더니 난데없는 동맹국 백제의 이탈, 그들의 군대가 알브헤임에 붙으며, 언더하임이 함락됐다.

그러나 로드의 주력군이 돌아와 알브헤임의 주력군을 궤멸시키며 수도를 탈환하는 데 성공.

마지막으로 콜린이 보낸 새로운 에이스 영웅이 수도로 퇴각하는 플로라를 암살하는 데 성공함으로서 동맹플레이어인 콜린이 플로라의 멸망 보너스를 취하게 된 것이다.

'하아,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냐…….'

집무실의 로드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물론 게노세르크와의 전투를 앞두고 강력한 적 한 명이 줄어든 건 나쁘지 않긴 하지만. 기분이 찜찜했다.

현재는 동맹 전쟁 이후 처음으로 휴전기에 돌입해있었다. 당장이라도 게노세르크의 군대가 언더하임으로 들이닥칠 줄 알았으나, 내정 문제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강제 야생화 때문에 컨트롤이 불가능해진 병력들은 풋힐랜치에 묶여 있었고, 거기에 말렉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본토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말렉은 반란을 진압하기위해 잠시 본토로 내려갔으며 어비스와 알란드는 잠시나마 여유를 되찾게 되었다.

동맹인 알란드는 빠르게 오펙투스에게 빼앗긴 영토를 수복했고 다시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오펙투스는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었지만 이번 멸망 보너스 획득으로 인해 숨통이 트이긴 했다. 물론 동맹 플레이어의 암살 시도는 사실상 백제처럼 미래를 던져버리는 플레이였고, 채팅방에서 많은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말렉은 여전히 오펙투스를 동맹으로 데리고 다닐 생각인 듯 보였다.

이렇게 어비스, 알란드 연합과 게노세르크, 오펙투스, 백제 연합의 2:3 전투가 이어질 차례였다. 말렉은 복귀하자마자 병력을 이끌고 언더하임으로 진격해올 것이다. 사실상 현 대륙 상황에서 최강국에 가까운 전력. 대비하지 않으면 어느 때 보다 힘든 싸움이 될 것은 자명했다.

로드가 그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주공!”

‘……으으음.’

“주고오오옹!”

어린아이 같은 낭랑한 목소리에 로드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목소리의 주인은 티아였다. 그녀는 오래간만에 황금빛 요정 날개를 단 작디작은 페어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것 좀 도와다오!”

그녀는 작은 몸으로 낑낑거리며 두꺼운 서적을 책장에서 꺼내려고 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로드가 책을 뽑아다 그녀의 몸에 툭 올렸다.

“으, 으앙!”

그녀가 책의 무게에 못 이겨 공중에서 떨어지려고 하자 로드가 다시 책을 집어서 책상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

로드는 잠시 그녀가 뭘 하는지 바라보았다. 페어리의 몸으로 낑낑거리며 힘겹게 책커버를 펼치고는, 자신이 원하는 페이지를 찾기 위해 종이를 붙들고 옆으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왔다가를 반복했다.

끝내 원하는 페이지를 찾았는지, 만족스럽게 ‘흠흠’하며 고개를 끄덕거린 그녀는 자신의 키만 한 펜대를 들어 빈 종이에 글자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저기요, 티아.”

“왜 그러는가? 주공.”

“그냥 폴리모프해서 엘프의 모습으로 일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몹시 비효율적으로 보입니다만.”

“엘프의 모습은 불편하다!”

티아가 칭얼거렸다.

“지금의 모습이야말로 본녀의 가장 편한 모습이니라.”

“…그 페어리 모습, 부끄러워하지 않았어요?”

“주공에게 보이는 것은 이제 괜찮다. 주공은 볼 거 다 보지 않았는가?”

“오해할 소리 하지마세요!”

로드는 힘들게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왠지 지구에 있을 때 땅바닥에 누워 발가락으로 힘겹게 채널을 돌리던 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쿵!

갑자기 집무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벌컥 열렸다. 이런 버릇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다.

“안녕! 팬더!”

로드는 놀란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렸다.

“……갑자기 왜 그런 눈으로 날 봐? 사람 무안하게.”

“아, 아무것도 아냐.”

로드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유니벨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티아가 빛의 속도로 옷장으로 날아간 것이다.

“근데 여기 누구 있지 않았어? 여자 목소리가 들리기에 이브가 있는 줄 알았는데?”

“어, 응?”

쾅!

옷장 문이 벌컥 열리며 옷과 뒤엉킨 채 꽉 끼여있는 티아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는 잔뜩 쪼그려 앉아있는 자세였는데, 페어리 상태에서 엘프의 몸으로 돌아오려다 보니 저렇게 된 듯 했다.

“왔는가? 장군.”

그러나 그녀는 마치 원래부터 여기 있었다는 듯 태연히 편한 자세로 고쳐 앉았다. 유니벨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쟨 또 왜 저기서 튀어나와? 옷장의 요정이냐?”

“요정? 외모에 대한 칭찬은 이제 조금 지겹구나.”

“아, 뭐래! 이 중증 공주병!”

자연스럽게 유니벨의 관심을 돌리는데 성공한 티아가 로드를 향해 미소를 던졌다.

‘……아니, 무슨. 그렇게까지 열심히 정체를 숨겨야 하는 겁니까?’

로드가 당혹스런 미소를 지었다. 본인이 변신 소녀임을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여고생도 아니고.

========== 작품 후기 ==========

니알라토텝 / 1ㅃ ㄱㅇㄷ ㅇㅈㅇㅈ

ads123 / 아, 지적 감사합니다ㅠㅠ 코멘보자마자 바로 수정했어요!

쿠죠죠타로 / 어비스 장수진은 최상급이죠! 하지만 만약 마틴이 왕이 됐다면 로드를 따르는 베아트리체와는 결별하지 않았을까요? B+, B급 조합이 됐을듯 합니다.

...(-1)... / 병약...미소녀를 좋아하시는군요... 취향은 존중합니다! 아, 그리고 불량으로 병원신세를 지게 하여 병약 미소녀를 만든다니...... 히익;

Mr윤 / 저도 하루에 제 몸이 두개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ㅅ;

지카오 / 감사합니다! ^^

알테니아 / ㅠㅠㅠ 하지만 현실적으로 고려했을때 C+와 B급의 매물 차이가......

sj8077 / ㅇ_ㅇ?!

빛과하늘 / 이런 ㅠㅠ 10위 안에 못드시면 @붙이면 달아드려용

@Speedwagon / (흠짓!!!!)

@솔온 / 맞습니다. 사실 나라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ㅎㅎ; 나르비크가 어비스에요.

@로아리아 / 넹?? 무슨 말씀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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