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각성 -->
말렉이 본토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이로 인해 대륙에는 다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말렉이 돌아올 때, 전쟁은 시작될 것이다.
“게노세르크는 지금까지와의 나라들과는 격이 다르다.”
타악. 티아가 지도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말했다.
“동맹 전쟁이 시작될 당시, 백제의 군사력은 우리 동맹국 중에서 단연 최강이었다. 그런데도 게노세르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사실상 일방적인 패배였느니라.”
“거, 군사 양반. 말은 똑바로 합시다. 백제보다는 우리가 더 셌지. 벌써부터 우는 소리 하는 거요?”
피닉스가 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전력을 따졌을 때 그렇다는 말이니라. 생각해 보아라. 백제에는 싸울아비라는 걸출한 정예부대가 있었고, 광범위 화력장비도 보유했었느니라. 그들이 수성을 진행한 ‘풋힐랜치’ 또한 언더하임보다 몇 배는 우수한 철옹성의 요새이다. 장수진을 제외한다면, 우리군은 백제군에 비해 어느 하나 비교우위인 점이 없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그 백제마저도 허망하게 무너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좌중이 조용해졌다.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정면 승부로는 이기기 어려운 적이란 말이니라. 어떻게 해서든 적군을 괴롭히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질질 늘어지며, 전력을 약화시킨 후에 승부해야 할 것이니라.”
가신들이 모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가 입을 열었다.
“이브. 언더하임 성채의 보수 상황은 어때?”
그녀가 고개를 내저었다.
“좋지 않아요. 간단히 때우는 식의 공사를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건축공들 중에서는 차라리 성벽을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한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어요.”
턱을 괸 유니벨이 ‘흐응.’하며 감흥 없는 소리를 냈다.
“그럼 또 언더하임에서 버티는 건 무리겠네.”
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장군. 사실 풋힐랜치가 뚫린 이상, 게노세르크를 상대로 수성전으로는 승산이 없음이 밝혀졌다. 완전히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어렵네요.”
애니록스가 모처럼 입을 열었다.
“군사력에서는 밀리니 정면승부를 해선 안 될 거고, 그렇다고 요새의 우위를 살릴 수 있는 수성전을 해서도 안 되니, 대체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요?”
“아, 정말! 정면승부도 안 돼! 수성전도 안 돼! 다 안 되면 대체 어떻게 하란 건데?”
“유니벨 님! 그거 방금 제가 한 말……!”
“그러니까 완전히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장군.”
“제 말 좀 들어 주세요! 흐흑!”
시끄럽게 떠드는 다른 가신들 사이로, 애니록스는 완벽한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주 한복판에서 홀로 미아가 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톡톡.
자신의 등을 두드리는 감촉에 애니록스가 돌아보았다. 베아트리체가 그를 바라봐주고 있었다.
“다, 단장!”
“……나도 암살자야. 네 기척을 느낄 수 있어.”
그녀가 자신의 바구니에서 꺼낸 과자를 내밀었다.
“……먹을래?”
애니록스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천사다. 천사가 나타났다! 이 완벽한 소외감에서 홀로 손길을 내밀어 준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애니록스가 과자를 받아들려고 손을 뻗는 순간…….
“얍.”
옆에 앉은 로드가 베아트리체의 겨드랑이 사이로 두 팔을 넣고는 그대로 몸을 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주, 주인님?”
“베아야. 회의 중엔 집중하라고 했지?”
로드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녀의 이마를 톡 때렸다.
“그, 그게 아니라…….”
“딴 짓하면 못써.”
베아트리체가 맞은 부위를 두 손으로 감싸며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 모습마저 귀여워서 로드는 무심코 와락 껴안았다.
“야! 야! 너야 말로 회의 중에 변태 짓 하지 말지?”
유니벨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변태 짓이라니, 너무한데.”
“시도 때도 없이 그렇게 애를 껴안는 걸 변태가 아니라면 뭐라고 부르는데?”
두 사람이 투닥거리며 싸우기 시작했다. 애니록스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 뭐지? 이 감정은…!’
애니록스는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불꽃을 느꼈다. 차라리 이게 의도된 따돌림 같은 것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고, 의도한 행동이 아닌 것쯤은 애니록스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이들 뿐만 아니라 만나는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그저 자신의 존재감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옅을 뿐이었다.
불현듯 애니록스의 머릿속에 일상속의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정보부 사무실에서 부장자리에 떡하니 앉아있는 그를 인지하지 못해, 보고도 없이 서류만 책상에 놓고 가는 부원들. 그냥 왕궁을 걸어가고 있을 뿐인데 깜짝 깜짝 놀라며 자신을 이상한 변태 보듯 응시하는 여성 가신들과 메이드들. 툭하면 암살자 해볼 생각이 없느냐며 권유하는 암살단원들 까지.
서러웠다.
이대로는 공기 중에 흩어져 사라지는 최후를 맞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공기화 되어사라진다면 과연 자신이 여기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 채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안 된다. 이대로는 안 된다! 애니록스는 결심을 굳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대뜸 큰 소리를 내질렀다. 모두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이걸로는 부족해!’
그가 대뜸 회의 테이블 위로 뛰어 올라가 자신의 상의를 북북 찢기 시작했다. 이제야 이 회의실에 있는 모두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바로 이거야!’
애니록스는 희열을 느꼈다.
보아라!
이 나를 보아라!
나는 이 세상에 확실히 ‘실재’한다!
애니록스는 마침내 모든 상의를 찢어 복근을 드러내며 부르짖었다.
“내가 바로 어비스의 임시 정보부장! 애니록스다아아아아아!”
“…….”
“…….”
누구도 수습할 수 없는 묵직한 정적이 회의실에 내려앉았다. 애니록스는 시선을 움직여 모두의 반응을 살폈다. 각양각생의 반응이었다. 경악한 표정의 로드, 그의 품에 안겨 겁먹은 듯한 베아트리체, 표정을 숨기려는 듯 했지만 놀라움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이브, 너무 놀라서 마시고 있던 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티아, 팔을 괸 채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유니벨, 왠지 모르겠지만 존경의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피닉스.
이 모두의 관심이 오롯이 자신의 것이었다.
감격이 밀려들었다. 관심이라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이었던가! 지금 이 순간, 애니록스는 비로소 우주의 진리를 깨달았다. 남이 자신을 주목해줌으로서 자신은 존재할 수 는 것이었다.
“아아아아아!”
애니록스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포효했다.
“…….”
어색한 정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모두 애니록스를 올려다 본채로 좀처럼 반응하지 못하는 사이, 이브가 종종걸음으로 문밖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경비병을 불렀다. 경비병 두 명이 다가와 양쪽에서 애니록스의 팔을 붙들어 테이블에서 끌어내렸다.
“헉! 이, 이거 놓으십시오!”
“……잠시 방에서 머리를 식히세요. 정보부장.”
애니록스는 경비에게 끌려가면서도 함박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두 사람도 분명히 자신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체포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던 것이다.
애니록스가 끌려간 후에도 회의는 거대한 충격으로 좀처럼 진행되지 못했다.
“이, 이게 모두 유니벨 장군 때문이다!”
티아가 선언했다.
“내, 내가 뭐!”
“어제 정보부 예산 문제 때문에 정보부장을 사무실로 불러다가 갈군 것을 본녀는 알고 있노라!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랬겠는가!”
모두의 자책어린 시선이 유니벨에게로 향했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그녀가 팔을 휘저으며 온 몸으로 부정을 표했다.
“그, 그, 그런 것 가지고 사람이 갑자기 저렇게 될 리가 없잖아! 나, 나는 그냥…… 잘하자는 의미에서…….”
“유니.”
베아트리체가 입을 열었다.
“…그런 변명은 좋지 않아.”
“그래. 그래. 네 오빠뻘 되는 사람인데 돈 문제 가지고 그렇게 혼내면 쓰나.”
로드와 베아트리체 마저 티아의 편을 들어주자 유니벨이 욱해서 소리쳤다.
“어, 어제 좀 뭐라 한 것 때문에 저렇게 맛이 갔다고? 오랜 스트레스가 쌓였으니까 폭발한 거겠지! 그러는 팬더야 말로 명색이 왕이면서 부하의 고민 같은 거 제대로 몰랐으니 잘못한 거 아냐?”
“크, 크윽!”
이번엔 모두의 시선이 로드에게로 향했다. 로드가 잠시 움찔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바로 반격했다.
“넌 평소에 왕 대접도 안 해주면서 꼭 이런 책임 소재 나올 때만 왕이냐!”
“나도 상단주의 말에 동의하오, 큰형님.”
피닉스가 팔짱을 끼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요즘은 큰형님이 메이드 주점도 같이 잘 가주지 않아서 누구랑 같이 갈까 고민이란 말이오.”
“그게 무슨 빌어먹을 고민이냐!”
“몰라! 몰라! 아무튼 나는 잘못한 거 없어!”
유니벨이 꽥 소리 질렀다.
“본녀도 마찬가지 이니라. 애초에 본녀는 정보부장과 대화를 나눠본 적도 별로 없느니라.”
“거짓말 하고 있네! 저번 전쟁 때만 해도 맨날 같이 붙어 다녔으면서!”
“미안하군. 본녀는 섬세함이 부족하여 타인의 자격지심까지는 고려하지 못하노라.”
“야! 거기서 그 대사가 왜 나와?”
“자, 자, 그만. 그만.”
이브가 손뼉을 치며 과열된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누구 하나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어요. 애니록스 님을 분노케 한 업무 환경을 만든 우리 모두의 잘못이겠죠. 다들 반성하고, 다음에 볼 때는 따뜻한 한마디 씩 건네주도록 해요.”
“……으, 응.”
“그, 그러자고.”
간신히 분위기가 수습되었다. 그러다 이브를 제외한 로드와 가신들은 새로운 의문을 느꼈다.
‘…그런데 애니록스가 누구더라?’
-외전 end-
========== 작품 후기 ==========
이번에도 보너스로 올려보는 그냥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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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YE / ㅋㅋㅋㅋㅋ 이번화 한 줄 요약.
긴츠 / 멸망보너스는 못먹어도 영웅이라도...!
Speedwagon / 응? 키메라인데 여기서 왜 서큐버스가...!
니알라토텝 / 다크엘프는 이미 어비스에 살고 있는데요. 히익;
sj8077 / 끌끌끌!
아프게했어 / 유니츤 ㅋㅋㅋㅋㅋㅋㅋㅋ
칼레이어드 / 너무 취향이 강하게 반영된 의견이 아닙니까!
Mr윤 / 알고보니 이마에 눈 달리고 본인 변 섭취가 가능한 괴물이었... 아, 아닙니다.
llSongOfBladell / 이분...! 정말 훌륭한 취향을 가지고 계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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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키메라의 정체는 나-아중 편에 직접 확인해주시길!
@로리콤MK / 기대되는군용
@알테니아 / ㅠㅠㅠㅠ
@火炎無 / 내 이미지가 어찌 이렇게 ;ㅅ;
@벌레 / 라미아라면 만인반뱀의 그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