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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렉이 본토의 반란을 진압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동맹 전쟁은 급물살을 탔다.
파견된 스파이들은 오펙투스, 백제의 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병력들의 예상 집결지는 하나같이 ‘플랫랜치’였다. 로드는 생각에 잠겼다.
‘……흐음, 전반전이 각개전투였다면, 후반전은 단체전 느낌인가?’
게노세르크, 오펙투스, 알브헤임 연합일 때는 각자 온전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성과 분배가 깔끔한 각개전투 스타일로 움직였다.
하지만 후반전에 들어와서 상황은 달라졌다. 게노세르크, 오펙투스, 백제 연합은 게노세르크를 중심으로 뭉치게 되었다. 백제의 경우는 의사결정권이 없는 속국이었고, 오펙투스 또한 전력이 크게 떨어졌고 다른 나라와는 손을 잡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따라서 이 둘이 게노세르크에 숙이고 들어가는 형태가 됐다.
‘하지만 오히려 이쪽이 더 힘들 수도 있겠군.’
서로 다른 명령체계를 갖춘 세 개의 강대국 조합, 그리고 통일된 명령체계를 갖춘 하나의 강대국과 서포트하는 두 개의 소국 조합. 중상모략이 특기인 로드의 입장에서는 후자 쪽이 오히려 더 까다롭게 느껴졌다.
전반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이유는 플로라의 이기심을 교묘하게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게노세르크가 중심이 된 이번 조합은 팀워크를 흔들어 놓는 게 꽤나 어려워 보였다. 오펙투스와 백제는 이제 게노세르크 말고는 달리 답이 없는 상황,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말렉을 도와 다른 나라를 평정하며 기회를 엿보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들이 먼저 게노세르크를 배신할 이유가 없다.
로드는 고민을 계속하면서도 전쟁 준비는 빠르게 실행했다. 우선 동맹인 올리버에게 연락하여 알란드의 병력을 플랫랜치까지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자신도 병력을 일으켜 출군할 준비를 마쳤다.
전반전에서는 간단히 첫 영지를 알브헤임에게 내주었지만, 이번엔 언더하임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플랫랜치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그래서 아끼는 영웅인 아란까지 파견해 둔 것이다.
‘…으음, 하지만 게노세르크를 상대로 수성전으로는 이길 수 없어. 플랫랜치를 베이스캠프로 삼고 완전히 파격적인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데…….’
로드가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데 집무실 문이 열리며 이브가 들어왔다.
“폐하. 출정 준비가 모두 끝났어요.”
“응. 갈게.”
로드가 옷걸이에 걸린 망토를 두르며 집무실을 나섰다.
*
시간이 흘러,
게노세르크를 비롯한 서부 동맹의 군대들이 플랫랜치 영지 앞에 일제히 집결하였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야영지를 구축하고 공성 준비를 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한편, 각 군의 수장들은 작전 수립을 위해 게노세르크의 중앙 막사로 모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오펙투스의 플레이어, 콜린이 천막을 걷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말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 했고 선광이 테이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콜린이 반갑게 웃으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선광님. 에덴에서 뵙는 건 처음이죠?”
“……그러네요.”
어딘가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콜린은 선광이 이런 인물이었나 싶었다. 푹 파인 뺨, 부스스한 머리카락, 동태눈깔같이 흐리멍덩한 눈, 마치 죽지 못해 사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앉아있는 선광의 뒤에는 검을 차고 싸울아비 제복을 입은 무장이 한 명 서 있었다.
‘호오, 벌써 비월의 대타를 마련했나?’
나라의 대표끼리 만나는 자리에서는 호위를 한 명 대동할 수 있었다. 물론 그 호위로는 나라를 대표하는 에이스급 영웅이 오는 것이 관례였고, 자신 또한 멜로디를 데리고 왔다.
콜린은 멍해있는 선광 몰래 그 영웅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해보았다.
‘……이런.’
콜린의 입가에 씁쓰레한 미소가 걸렸다. 평범한 C급 무력형 영웅이었다. 한 나라의 최강이랍시고 데려온 자가 이 정도라니… 현 백제의 암울한 실태를 대변하는 듯 했다.
조금은 동정심도 느꼈다. 그래도 한 때는 대륙에서 가장 많은 영토를 보유한 나라였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몰락했단 말인가. 세상사 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펄럭.
“다들 모였나?”
천막이 크게 젖혀지며 드디어 거구의 말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으로 천막이 꽉 차 보이는 느낌이었다.
‘역시나 호위는 데려오지 않았군.’
콜린은 납득했다. 왕인 본인부터가 대륙 최강급으로 손꼽히는 A급 무력형 클래스였다. 본인이 영웅을 지켰으면 지켰지 호위 같은 건 전혀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의자에 털썩 걸터앉은 말렉이 주위 사람들을 슥 훑어보았다.
“흐흐, 대단한 짓을 저질렀더군? 콜린.”
그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기왕 이렇게 만났으니, 까놓고 물어나 보지. 어째서 그녀를 죽였나? 처음부터 그녀와 비밀 동맹을 유지할 만큼 친밀한 사이라고 들었는데.”
“대가를 치르게 했을 뿐입니다.”
콜린이 짤막하게 답했다.
말렉이 썩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이라 콜린은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먼저 뒤통수를 친 쪽은 플로라입니다. 그녀의 욕심 때문에 정말 많은 것들을 잃었죠. 그래서 그대로 되돌려 줬습니다.”
“흠, 뒤통수라… 어비스의 움직임을 놓친 걸 뒤통수라고 말할 수 있나?”
“일부러 놓친 겁니다.”
콜린이 단호하게 말했다.
“플로라는 영리한 플레이어입니다. 만약 그녀가 아무런 흑심이 없었다면, 어비스군이 성에 틀어박혀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리고 의견을 구했겠죠. 하지만 그 사실조차 숨겼습니다.”
그녀를 친 것에 대해 일말의 후회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제서야 말렉이 이빨을 드러내며 유쾌하게 웃었다.
“크하하하! 좋아, 좋아. 그런 마음가짐은 아주 마음에 들어!”
그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배신은 죽음 그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지. 안 그런가?”
지독한 살기가 천막 안에 뿌리내렸다. 콜린과 선광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 태연하게 있고 싶어도 표정 변화를 통제할 수가 없었다. 말렉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표정을 풀었다.
“오오, 뉴 페이스로군.”
말렉의 시선이 이번엔 콜린의 뒤에서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는 멜로디에게로 향했다.
“그 치매 걸린 늙다리 마법사의 후계자구만. 아직 어려 보이는데 전력이 될 것 같나?”
“충분합니다. 자질은 스승 그 이상이니까요.”
그때, 멜로디가 눈을 치켜떴다.
키이이이잉!
그녀의 주위로 마력으로 이루어진 고리 같은 것들이 허공에 흐물거리며 나타났다. 말렉은 ‘호.’ 하고 감탄성을 흘렸다. 대기 중의 마력 전체가 적으로 돌아선 기분이었다.
“…타국의 왕이라고는 하나, 스승님을 욕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멜로디가 적의가 드러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크흐흐, 성깔도 제법이잖아? 계속 해봐.”
말렉은 눈 한번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오른 다리를 무릎위에 올렸다.
“멜로디.”
콜린이 눈빛으로 핀잔을 주자 그녀가 마력을 거두어들였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죠. 말렉 님.”
“크하하하하! 괜찮아. 앞으로가 기대되는 녀석이군. 오늘밤만 내게 빌려주면 안 되겠나? 콜린.”
“안 됩니다.”
“군신은 서로 닮는다더니, 둘 다 짠돌이로구만! 하하하하!”
말렉이 호탕하게 웃어대고 있었지만, 전혀 웃지 못하는 얼굴도 있었다. 선광이었다. 말렉이 마침 선광쪽을 바라보았다.
“뭐, 네놈도 잘해보라고.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다면 혹시 알아? 돌려보내줄지도 모르지.”
그 말에 흐리멍덩한 선광의 눈에 힘이 급격히 들어갔다.
“……비월은 어디 있습니까?”
“네놈 따위가 내게 질문을 할 처지냐?”
말렉이 차갑게 대꾸했다.
“나는 약속은 지킨다. 그년의 안위를 걱정할 시간에, 이번 전쟁에서 네 몫이나 제대로 해낼 생각이나 해.”
말렉은 이제 선광을 아랫사람 대하듯 하고 있었고, 선광 또한 반항하지 못했다. 말렉의 시선이 다시 콜린에게로 되돌아 왔다.
“전략 회의를 한다고 했지? 얼른 시작해 보라고. 공성전을 할 건데 굳이 이런 자리까지 만들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만.”
“…있습니다.”
콜린이 말했다.
“더 이상 저들에게 끌려 다닐 수만은 없습니다. 이번 전쟁으로 확실히 승기를 굳혀야 합니다.”
콜린이 준비해온 지형 지도를 테이블에 펼쳤다.
오펙투스에는 군사가 없었다. 군주인 콜린 본인이 B급 지력형 클래스로 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전략가였다.
“앞으로 우리가 공략해야 할 ‘플랫랜치’는 방호능력이 대단히 뛰어나다곤 할 수 없는 요새입니다. 평지에 떡하니 지어진 터라 지형의 이점도 받지 못하고, 성문은 동서남북의 네 군대에 있어 어느 방향이든 공략이 가능합니다. 2차 내성도 있긴 하지만 성책이 그리 높지 않아 1차 외성만 뚫어낸다면 나머지는 수월하게 풀릴 겁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공략이 쉽기만 하다면 이런 자리를 마련하지도 않았겠죠. 플랫랜치에서는 그들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성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전략방위성’을 세웠습니다.”
그가 지도에서 플랫랜치의 옆에 위치한 작은 성채 표시물을 가리켰다. 말렉이 인상을 찌푸렸다.
“전략방위성? 그건 또 뭐냐?”
“말 그대로, 일반 영지민들이 살지도 않고 영리 활동도 이루어지지 않는, 오로지 전쟁을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작은 요새입니다. 규모는 작아도 많은 병사들을 주둔시킬 수 있습니다. 또 언덕이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성벽도 높아 공략이 까다롭죠. 첩보를 보내본 결과 이 성채에 어비스 병사들이 다수 주둔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흠.”
말렉이 팔짱을 꼈다.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그냥 플랫랜치만 무너뜨리면 되는 거 아닌가?”
“이 요새에 병력이 주둔해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콜린이 즉각 대답했다.
“우리가 플랫랜치 공성전을 시작하면 요새의 주둔 병력들이 우리 병력의 등을 마음대로 치겠죠.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그럼 그냥 저 요새부터 함락시키면 되겠군!”
“그러면 반대로 플랫랜치에서 구원군이 오지 않을까요?”
콜린은 마치 모자란 아이를 가르치듯 인내심을 가지고 말했다.
“나 참! 그럼 어떻게 하란 거냐?”
“적의 출성을 유도하는 전략도 있을 수 있고, 연계 전략으로 매복을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전략은 저들도 염두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심플하게 가겠습니다.”
그가 군대를 나타내는 표시물들을 움직여 플랫랜치와 전략방위성 두 곳 모두에 가져다 두었다.
“전력의 우위를 앞세워 동시 공략을 하는 겁니다.”
“음?”
“물론 주력은 전략방위성을 공격할 겁니다. 말렉님께서 병력을 이끌고 이쪽을 맡아 주십시오. 저와 선광님은 그동안 플랫랜치를 공략하고 있겠습니다. 물론 본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힘을 빼고 시간만 끌 겁니다.”
“아, 그래. 이제야 좀 알아듣겠군. 내가 저 작은 요새를 끝장내면, 그 다음에 모든 전력을 총동원해서 본성을 마무리 한다는 거냐?”
“네, 요점은 그렇습니다. 세부 전략은 지금부터 설명을…….”
말렉이 몸을 일으켰다.
“잡다한 건 필요 없다. 그 정도의 지침만 있으면 충분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시 한 번 3미터가 넘는 거구의 웅장함이 느껴졌다.
“……하, 하지만!”
“나는 싸우는 군인이지, 책상머리에서 잔머리나 굴리는 책사가 아니야. 더 잔머리를 굴리고 싶다면 우리 쪽 군사와 이야기하도록.”
쿵! 쿵! 등을 돌려 천막을 나가던 그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아마 네놈들이 나설 차례도 없을 거다.”
그 미소를 목격한 콜린의 어깨가 떨렸다.
========== 작품 후기 ==========
火炎無 / 네, 있습니다. 무척 건전한 성적 취향과 취미를 가진 파워 건전남 이미지?
retty / 애니 분노의 포효....
쿠죠죠타로 / 애니록스 천직 어쌔신설이 계속 대두되고 있군요 ㅋㅋㅋ
SW스윈 / 직업을 잘못 찾은듯 합니다. 아니면 로드의 인사능력이 문제가...!
간G마하트마 / !! 감사합니닷!
니알라토텝 / 아하, 공식은 이해가 잘 되는군요! 그런데 색욕관련 악마라��ㅋㅋㅋ
빛과하늘 / 그것참 꿈의부대로군요.
Speedwagon / 누군진 모르겠지만 대단한 존재감을 가지신분이겠군요. 허허...
...(-1)... / 공기들의 총집합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애니록스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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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콤MK / 애니록스도 극도로 평범한 얼굴이긴 하네요; 히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