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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과 선광이 병력을 이끌고 후방으로 되돌아왔을 때엔 이미 야영지는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난데없이 켈타인의 공습이라니…….”
좀처럼 말이 없었던 선광도 이번에는 충격을 감출 수 없는 듯 놀란 음성을 토해냈다. 콜린은 무릎을 굽혀 재만 남은 천막 쪼가리를 들어 보았다.
“아무래도 켈타인이 어비스 동맹에 붙은 것 같군요.”
콜린이 천 쪼가리를 꽉 쥐었다. 매복 포인트에 적이 없다는 것은 확실히 확인했지만, 워프게이트를 쓸 수 있는 켈타인이라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게다가 상황 보고에 따르면, 켈타인에서는 후방에 보병들만 남아있는 것을 예측하고 비행 마법병종인 켈타인 위치들만 보냈다고 한다. 달려드는 병사들의 반격을 농락하며 몰살시키는 연출까지 완벽했다. 이건 치엘로의 솜씨가 틀림없었다.
“하아, 여기서 뜬금없이 왜 켈타인이 튀어나온 건지…….”
세워뒀던 전략의 틀이 켈타인의 개입으로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화가 났다. 물론 모든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 책략가의 본분이겠지만, 이건 너무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지 않는가!
“도저히 이해 못하겠습니다!”
결국 화를 이기지 못한 콜린이 목소리를 높였다. 선광의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그는 계속 말했다.
“워프게이트를 쓸 수 있는 켈타인이라면 어떤 나라든, 어느 동맹이든 환영받으며 들어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최약체인 어비스, 알란드 연합을 선택했단 말입니까? 게노세르크를 적으로 돌리게 될 것을 뻔히 알면서……. 하, 정신이 나갔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화를 쏟아내고 있는 콜린과는 달리 선광은 차분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두 사람 간에 무언가 접점이 있었을 지도 모르지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몇 번 보긴 했지만.”
콜린이 시큰둥하게 답했다.
“지구에서의 인맥이었던 걸까요?”
“그 여자는 고작 인간관계 때문에 위험을 자초할 인물이 아닙니다! 본인에게 이득이 되니까 내린 판단이겠죠.”
콜린이 숨을 크게 내쉬며 화를 가라앉았다. 그렇다. 이 점이 가장 신경 쓰였다. 왕들의 연회 때, 콜린은 그녀를 끌어들이기 위해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미루어본다면 그녀는 절대 손해 볼 장사를 할 인물은 아니었다. 대체 치엘로는 로드의 무엇을 높게 평가했기에 그를 선택한 것일까? 콜린은 고개를 젖혀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비스가 까다로운 동맹을 구했군요. 일이 복잡해졌습니다.”
콜린은 모든 공성을 중지하고, 새로운 지점에 야영지를 건설하도록 명했다. 켈타인 위치의 등장은 공성을 멈추게 했을 뿐만 아니라 후방에 궁수들을 배치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하는 효과까지 낳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공성을 준비하라!”
밤사이 새로운 야영지를 완성시킨 콜린은 다시금 병력을 이끌고 플랫랜치로 올라갔다. 마녀들의 공포 때문에 병사들의 사기가 줄어들어 있었다. 오늘 공성에서 뭔가 성과를 내지 않으면 축 처진 분위기가 장기화 될 것이다. 그런 건 곤란했다.
“폐하!”
콜린이 지휘관 천막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장군들과 의논하고 있는데 전령이 허겁지겁 천막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전략방위성의 성벽에 켈타인의 마녀들이 다수 나타났다고 합니다! 말렉 님은 마녀들을 견제해야한다며 우리 측 마법사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뭐라고? 마녀들이?”
콜린이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정말 번거로운 짓만 골라서 하는군, 치엘로.’
이쪽의 주공이 전략방위성이라는 걸 눈치 채고 마녀들을 집중 배치한 듯 했다. 콜린은 고민 끝에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마법사단 1,2,3 소대를 보내라.”
콜린의 지시에 다른 장군들이 눈을 크게 떴다.
“폐하! 그렇게나 많이 보냅니까? 4소대만으로는 이쪽 공성에 차질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말렉을 여기로 불러들여 플랫랜치 공성에 집중하는 편이…….”
“전략의 틀은 그렇게 마음 내키는 대로 바꾸는 게 아니다, 장군.”
콜린이 당치도 않다는 듯 말했다.
“만약 전략방위성을 내버려 둔 채 플랫랜치만 공략한다면, 저쪽은 전략방위성을 거점으로 우리 군의 등을 마음껏 공격해올 것이다. 워프게이트를 열 수 있는 마녀들까지 있으니, 뒤를 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겠지.”
“……소수의 병력으로 방위성을 봉쇄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한심한 소리 말거라. 적에게 각개격파 시켜달라고 조르는 것 밖에 더 되겠느냐?”
좌중이 조용해졌다. 콜린이 말을 이었다.
“여기서는 말렉의 전력에 기대보는 수밖에 없다. 말렉이라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콜린은 게노세르크 쪽에 마법사단을 보내기로 했으며, 자신은 병력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자, 우리는 공성을 계속한다!”
콜린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목표는 어제와 동일하게 플랫랜치의 동문과 남문이었다.
*
어비스군 측, 플랫랜치의 성벽.
“우측 궁병들은 물러나고 검보병들은 5보 앞 전진! 좋다, 거기서 대기하라. 놈들이 성벽으로 올라오게 두지마라!”
아란은 성벽 위의 최전방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중이었다.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병사들 또한 기존의 어비스군에 더하여 아로게쓰 출신의 영지 예비병들이라 손발이 잘 맞았다. 모두들 한 마음으로 상대 연합군과 싸우고 있었다.
“장군, 저들이 제대로 싸울 생각이 있는지조차 모르겠수다.”
그때 아란의 부관이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공성을 하는데 저쪽 애들은 왜 이렇게 힘아리가 없는지…! 그리고 우리 상대는 마법의나라라고 하지 않았소? 마법은 제대로 본 적도 없는 것 같구만.”
“……아직까지 간을 보고 있는 듯하군. 하지만 상관없다. 적이 어떻게 나오든 우리는 전력을 다해 이곳을 지킬 뿐이다.”
아란이 그렇게 말하며 성벽 뒤의 영내를 바라보았다. 로드가 허락해준, 아로게쓰의 전통이 남아있는 최후의 보루인 플랫랜치. 이곳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사수할 생각이었다.
“남문 쪽은 어떤가?”
“별 이상 없소. 거긴 액스워리어들이 많으니 문제없을 거요.”
아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적진을 바라보았다.
“햐, 가만 보고 있으려니 참 재미있지 않소?”
부관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무엇이 말인가?”
“이 상황 말이오. 우리를 무너뜨린 백제는 지금 동물 놈들의 속국이 돼서 빌빌 거리고 있고, 우리는 이미 한 번 멸망했음에도 또 다시 그 놈들과 싸우고 있고.”
“난세라 어쩔 수 없다. 단 하나의 왕실이 남을 때 까지, 이 전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 그건 그렇고 그 소문 들었소?”
부관이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게노세르크 놈들, 사람을 먹는다고 하오.”
“…….”
“믿을만한 정보통에게서 들었는데, 풋힐랜치에서는…….”
“그만.”
아란이 굳은 얼굴로 대화를 중단했다.
“수다나 떨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자리로 돌아가도록.”
“알았소, 알았소.”
부관이 떠나가고 아란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사실은 알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영지를 지켜내야만 했다.
“멈춰!”
“어이, 여기까지 올라오면 안 돼!”
“…음?”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아란이 고개를 돌려보니 한 소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챙이 넓은 마녀 모자를 눌러썼으며 리본으로 포인트를 준 두 갈래의 보랏빛 머리카락이 가슴까지 내려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녀가 모자 챙 끝을 올려 얼굴을 드러내며, 싱긋 웃어보였다.
“……그대는 누구인가?”
“로드 오빠의 친구, 치엘로라고 해요!”
그녀가 윙크하며 말했다. 아란은 잠시 생각했다. 치엘로, 치엘로.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는데…….
‘……치, 치엘로 블랙노트!’
아란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무례를 용서하시오. 플랫랜치의 총사령관 아란이라고 하오.”
“어머, 어머. 예의도 바르셔라.”
치엘로는 요조숙녀 같은 걸음걸이로 아란의 앞에 섰다.
그런데 치엘로의 뒤에서 경호역으로 따라온 마녀 영웅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그녀는 식겁한 표정으로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치엘로 님에게 이런 면이 있었다니!’
켈타인의 폭군이라고 불리우며 개차반 성격으로 유명한 그녀가 지금 애교를 부린건가? 저 꿀 떨어지는 목소리는 또 뭐란 말인가? 그녀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 뭐.”
치엘로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내가 이러는 거에 뭐 불만 있어요? 민트?”
“…네, 네?”
“아따 폐하께옵서는 시방 뭐 여자도 아니니께, 닥치고 왕좌에 앉아 분위기나 딱 잡고 대기타고 있으쇼. 뭐 이런 건가요?”
“……그, 그런 게 아니라!”
치엘로가 한숨을 쉬며 손부채질을 했다.
“민트도 머리가 있다면 생각해봐요. 왕궁안에는 죄다 지긋지긋한 년들 밖에 없는데, 간만에 밖에 나와 눈호강 좀 하니 얼마나 설레겠어요. 응?”
“아, 아니 저는 그저 조금 의외라서!”
“야.”
그녀가 싸늘하게 민트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괜히 돌아가서 애들 앞에서 나불거리지 마라?”
“무, 물론이죠! 폐하!”
그녀는 명백히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아란도 당황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데 치엘로가 고개를 홱 돌려 순수한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방금 건 잊어주시겠어요? 아란 님.”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아란이 재빨리 대답했다. 살짝 살기 비슷한 것을 느꼈다.
“그런데 켈타인의 여왕께서 어쩐 일로 이런 위험한 곳까지…….”
그녀가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로드 오빠의 전언이에요.”
*
“와아아아!”
“올라가! 계속 올라가라!”
“물러서지 마라!”
공성은 계속되고 있었다. 콜린은 밖에 나와 상황을 지켜보며 전장을 조율하고 있었지만,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멜로디.”
“네, 폐하.”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다가왔다.
“파티스펠은?”
“준비 됐습니다.”
“좋아, 저들은 지금 방심하고 있다. 이때라면 큰 걸 꽂아 넣을 수 있겠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멜로디가 마법사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콜린은 긴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켈타인이 개입함으로서 상황이 꼬여버렸으니, 콜린은 살짝 계획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플랫랜치를 완전히 흔들어 놓을 생각이었다.
콜린이 팔을 들어올려 지시를 내리려는 그때였다.
그의 시야 너머로,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한 무리의 군대가 보였다.
“뭐야? 적군인가?”
“이쪽으로 온다!”
병사들도 그 모습을 보고 수군거렸다. 앞으로 뛰어나온 콜린이 눈을 크게 뜨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게노세르크!’
그 정체는 전략방위성을 치고 있던 게노세르크의 수인 군대였다. 게다가 저 정도 규모라면 9천명 ‘전군’이었다.
‘자, 잠깐만! 공략하던 성은 어쩌고 왜 벌써 여기로……!’
콜린은 즉시 지휘관 창을 열어 말렉에게 연락했다. 곧이어 대화 신청을 수락했다는 알림이 떠오르며 말렉의 얼굴이 나타났다.
“말렉 님! 이게 도대체 무슨 짓입니까? 전략방위성부터 점령하기로 했잖습니까!”
“문제가 생겼다.”
말렉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방금 본토에서 서신이 왔다.”
“……무, 무슨 내용이기에?”
말렉의 안면 근육이 꿈틀거렸다.
“내 수도가 어비스군에게 공격받고 있다더군.”
========== 작품 후기 ==========
로리콤MK / 12분! 빠르시군요!
Xedrions / 삐빅, 이미 조짐당한 연합군입니다.
벌레 / 후후후후! 역시 잘 아시는군요!
프리워커 / 콩가루...?
솔온 / 음, 확실히 그렇군요. 컨셉을 하렘으로 잡아버려서 괜찮은 남자장수가... 피닉... 아, 아닙니다. 추가를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알테니아 / ...이런, 독자분께서 그렇게까지 나오신다면야 제 의도와는 달리 어쩔수 없이 괴물화는 포기해야겠군요? (씩)
니알라토텝 / 말렉혐�광빱빱�
수호천사빈 / 일단 괴물은 아닙니다. 하하..
SW스윈 / 저도 동감합니다! 여자 하나를 위해 나라를 내던진...
아프게했어 / 사실 켈타인의 컨셉 자체가 그렇습니다 ㅋㅋㅋ 여성인 마녀들이 기득권을 쥐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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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해리포터에서도 빗자루는 스포츠용으로만... 훌쩍
@火炎無 / 후후, 투표결과가 몇몇 사람에 의해 조작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투표를 하지않아도 결과는 정해져있죠.
@빛과하늘 / ㅠㅠ... 인공아..
@Speedwagon / 그렇군요. 밸런스 맞추기를 위한 로리 영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