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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122화 (122/296)

<-- 문화의 나라 -->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워프게이트로 넘어왔다. 로드는 발트호른 하나로 멈출 생각이 없었다. 티아가 지도를 가지고와 테이블에 올려두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한 팀은 루미너스의 전 수도인 ‘오벨리스크’로 갈 거야. 가는 길목에 있는 거점 영지는 그냥 뛰어넘어.”

로드의 손가락이 그 옆으로 움직였다.

“나머지 한 팀은 베틀린의 전 수도, ‘베틀린 시티’로 간다.”

로드가 설명을 마치고 손뼉을 짝 쳤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수도인 발트호른도 방비가 형편없었으니, 나머지 두 도시의 수비 병력도 거의 없을 거야. 도시 예비병들이 집결하기 전에 속전속결로 끝낼 것.”

“흐응, 게노세르크의 영토를 완전히 헤집어 놓는 거네.”

유니벨은 가장 적극적인 태도로 듣고 있었다.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 엉덩이는 뒤로 쭉 뺀 자세였다.

“그럼 팀은 어떻게 정할 건데?”

“베틀린 시티는 나랑 베아가 갈게.”

로드의 말에 베아트리체가 눈을 쫑긋 떴다. 반면 유니벨은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삐쭉 내밀고 있었다.

“왜 맨날 둘이서만 붙어 다녀? 너네 몰래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니지?”

“이능의 상성이 좋으니까. 그리고 오벨리스크는…… 유니벨이랑 티아가 같이 가면 되겠네.”

“시, 싫어!”

유니벨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또 저 거유엘프랑 같이 다니라고? 싫어어! 바꿔줘!”

그리고는 때를 쓰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영락없는 말광량이였다.

“나랑 같이 가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로드가 장난스럽게 묻자 그녀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그, 그럴 리가 없잖아! 누가 너 따위랑……! 나는 그, 그저…… 리체! 리체랑 같이 가고 싶을 뿐이야!”

“그건 불가하다, 장군.”

티아가 불쑥 튀어나와 지적했다.

“공략 지점은 두 곳인데 최고 전력인 두 사람이 붙어 다니면 어쩌자는 것이냐? 비효율적인 전력 운용이니라.”

“…�.”

유니벨은 말문이 막힌 듯 더 대꾸하지 못했다.

“그런데 주공.”

“왜 그러죠? 티아.”

“본녀는 아무래도 좋다만, 아까는 주공이 본녀에게 여기 남아 혁명군을 도우라고 하지 않았는가?”

‘…아, 참.’

그녀의 고유능력은 혁명군의 준비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괜히 다른 영지를 공략하려다가 가장 중요한 발트호른의 혁명군 준비에 실패해버리면 곤란하니, 그녀는 이브와 함께 이곳에 남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네. 그럼 유니벨에겐 피닉스를 붙여줄게. 괜찮지?”

“……하아, 그래도 거유 엘프보단 낫네.”

그녀가 조금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동의했다.

“그럼 소신도 제안을 하나 드려도 되겠는지요?”

가만히 이야기를 들고만 있던 벤이 입을 열었다.

“뭔데?”

“소신도 베틀린 시티에 가고자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로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단장이 자릴 비우면 일에 차질 생기는 거 아냐?”

“안심하시길, 이미 이 도시의 밑 작업은 마쳐둔 뒤라 제가 없어도 잘 돌아 갈 것이라 사료됩니다.”

“그럼 네가 베틀린 시티에 가고자하는 이유는?”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혁명단으로서 여러모로 흥미가 생기는 곳이어서요. 가능하다면 그곳에도 혁명의 씨앗을 뿌려두고 싶습니다.”

“오호.”

시간이 촉박하긴 하겠지만 베틀린에도 혁명군을 일으킬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다. 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라고 했다.

“좋아, 그럼 세부 계획을 설명할게. 티아?”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왔다.

“지금부터는 본녀가 이어서 설명하겠노라.”

*

바로 다음날, 어비스군이 움직였다.

로드와 베아트리체는 1천 5백명의 병력을 이끌고 스파이들이 미리 조사한 최단 루트를 통해 베틀린 시티로 향했다. 최단 루트라 그런지 며칠 지나지 않아 베틀린 시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으음.”

로드가 성채를 한번 눈으로 슥 훑어보았다. 그리고 느낀 점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몹시 허술했다.

아무리 적침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최후방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성벽이나 성문 같은 시설물은 관리를 거의 하지 않았는지 곳곳이 무너졌거나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음악과 예술의 나라였다는 듯, 성벽은 알록달록 염료로 칠해졌고, 넝쿨 식물과 각종 장식이 걸려있어 그 외형은 무척 화려했다. 물론 본래의 기능인 방위력은 최악이었다.

성벽위로는 군기라고는 없어 보이는 어리바리한 얼굴의 병사들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이제 막 영지민들에게 장비를 주고 올려 보낸 티가 났다. 전혀 수성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뭔가 싸우기가 미안해지는 영지인걸.”

저런 모습을 보니 왜 베틀린이 멸망했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폐하! 보고 드립니다!”

한발 앞서 정찰을 마친 정찰병들이 로드의 뒤로 모여들었다.

“그래. 공략 포인트가 될 법한 곳은 있었어?”

“될 법한 곳이 아니라, 영지 서쪽은 아예 성벽이 무너진 지점이 있었습니다. 그리로 가시지요.”

“……엥? 정말?”

“네.”

이건 해도 해도 너무 쉽지 않은가! 자고로 쉽게 풀리는 일은 의심부터 하라고 하였다. 로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흠, 흠, 함정일지도 몰라. 거기 방비는 어때?”

“걔네들도 이제 발견했는지 병사들 두어 명 정도가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던데요.”

“…….”

대체 뭐냐고, 이 가녀린 적은!

“하아, 베아야.”

툭. 로드가 그녀의 머리위에 손을 올렸다.

“네 상대로는 성이 안차겠지만, 준비운동이라고 생각해.”

“네, 주인님.”

“쓸어버리고 와.”

그녀가 고개를 끄덕하며, 병력들을 이끌고 나아갔다.

*

공성 결과,

반나절이 걸리지 않아 베틀린 시티가 로드의 수중에 들어왔다.

전쟁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싸움이었다. 병력을 이끌고 가는 길마다 베틀린 병사들은 ‘항복! 항복!’을 연신 외치며 백기를 휘두르기 바빴다. 그들은 무기를 떨어뜨리고 손을 드는 걸로도 모자라서 밧줄을 가져와 자기들끼리 몸을 묶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됐나요?’라며 검사를 맡는 자들도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레벨의 항복이었다.

‘대체…….’

서로 손발을 묶어주며 하하 호호 웃고 있는 청년들을 보고 있으려니 로드는 황당함을 넘어서 기분이 묘해졌다. 저러는 것도 보통 마인드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어떤 의미로는 대단했다.

그나마 로드를 귀찮게 했던 자들은 이 영지의 지배자 쯤 되는 수인들이었다. 그들은 도시 안에서 게릴라를 펼치며 어비스군을 괴롭혔으나, 대세를 뒤집기에는 화력이 부족했다. 결국 B급 영웅 베아트리체가 직접 나서니 얼마 버티지 못하고 진압됐다.

반나절 만에 베틀린 시티의 새로운 주인이 된 로드가 영지성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영지를 장악하고 나서 처음 한 일은 이것이었다.

“수인병들을 효수하라.”

피바람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처형은 마을 광장의 공개 처형으로 이루어졌으며 근처에 병사들을 깔아두어 영지민 모두가 두 눈으로 직접 보도록 했다.

“숙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처형장에서 로드가 언급한 말이었다. 영지에는 하루아침에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수인들 다음으로 숙청의 대상은 누가 될 것인가? 역시 감옥에 갇힌 병사들인가? 아니면 영지의 우두머리들? 부자들? 혹은 영지민 전체? 소문만 무성했다.

거기에 로드는 밤사이 영지민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성문에 병사들을 잔뜩 배치해두었다. 이러니 제 아무리 천진난만한 베틀린 사람들이라도 공포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지독한 공포 분위기가 지속된 채로,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영지의 대표들을 전부 불러와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어비스군의 재장들은 로드의 말을 전하며 대표의 자격을 가진 자들 중에서 한 명이라도 나오지 않을시 영지민 전체가 해를 입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로드는 잠시 그들을 기다리면서 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벤, 영지를 둘러보니 어때?”

영지 대표들 앞에 나서기전 로드가 물었다.

“솔직히, 기대 이상입니다.”

벤이 안경을 고쳐 쓰며 답했다.

“게노세르크 왕실에 대한 불만이 영지 곳곳에 가득했습니다.”

“자기들 나라를 멸망시킨 원망인가?”

“그런 것도 있겠지만, 소신이 보기에 가장 주요한 이유는 문화 통제 정책이라 사료됩니다.”

역시나 그건가, 로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음악의나라 베틀린. 음악외에도 온갖 예술들이 꽃피는 나라로 카오스월드에서 가장 ‘문화력’증가치가 높은 국가이다. 그러나 군사력이 최악이고, 놀고먹는 유희가 일상화 되어있는 게으른 국민성 때문에 내정에도 어려움이 많다.

물론 이러한 나라들이 그렇듯 베틀린 또한 후반 지향적 국가였고, 나중에는 강력한 전투능력까지 갖추게 되지만, 후반까지 가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 베틀린도 말렉을 상대로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말렉이 문화 통제 정책, 즉 음악과 예술을 통제한 것은 어떻게 본다면 당연했다. 베틀린의 영지는 ‘생산성’이 없었다. 국민들 모두 밖에 나가서 노래 부르고 즐기기만 하면 농사는 누가 짓고 세금은 누가 내겠는가. 병사로 차출된 영지민들 또한 노동으로 단련된 육체가 아니라 비실비실했다. 결국 말렉은 영지의 생산성을 위해 예술 활동을 통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바로 그 일환으로, 말렉은 본토에서 수인족 영주와 측근들을 보내 영지를 다스리게 했다. 정보에 따르면 그들은 영지민들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다고 한다. 거리에서 음악소리가 들리면 이유를 불문하고 체포했다고 하니, 영지민들이 얼마나 불만을 품었을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식민지의 국민들을 부려먹는 건 당연한 일이다만, 혁명군을 컨트롤 하는 나랑 싸우게 된 것이 불운이라 생각해라. 말렉.’

마침 장로급 인물들이 모두 영지성 안으로 집결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로드는 벤에게 혁명군에 대한 모든 것을 위임해 두고 베아트리체와 함께 영주 접견실로 들어갔다.

길목에 서있던 병사가 로드가 오는 모습을 보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모든 무법자와 낙오자들의 왕이자, 암흑가의 주인이며, 대륙의 그림자를 이끄는 어비스의 군왕이자, 게노세르크마저 굴복시킨 새로운 베틀린 시티의 영주! 로드 폴렌티아 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으아아, 그만둬.’

뭔가 전보다 오글거리는 호칭이 더 늘어난 느낌이지만 로드는 내색하지 않으며 베아트리체와 함께 걸어갔다. 이미 다섯 명의 영지 대표들이 바닥에 부복하고 있었다.

로드는 화려한 옥좌위에 털썩 걸터앉았다. 베아트리체가 호위하듯 그 옆에 섰다.

“일어나라.”

장로들이 빠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익숙지도 않은 위엄 있는 말투를 써야할 듯해서 로드는 가볍게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러던 중 로드는 몇몇 장로들이 뒤쪽을 힐끔거리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고보니 바깥이 유난히 소란스러운 것을 느꼈다.

“폐하.”

결국 한 장로가 움직였다.

“무례를 용서하시옵소서.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로드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로는 뭐가 그리 급한지 후다닥 뛰어나갔다. 벽 뒤라서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작게나마 목소리는 새어나오고 있었다.

“안 돼요! 할아버지!”

“……정신 나간 것이냐! 집 안에 있으라고 했더니 왜 여길!”

“할아버지들이 무슨 죄가 있어요? 왜 할아버지들이 죽어야 하는 거예요? 새로운 영주는 저를 찾는 거잖아요!”

“쉿! 쉿! 목소리가 크다! 어서 가거라! 혼쭐이 나기 전에!”

로드가 웃었다. 미안, 다 들어버렸다.

“…과인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가?”

로드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벽 뒤에서 움찔하는 모습들이 훤히 보이는 듯 했다.

“모두 앞으로 나와라.”

========== 작품 후기 ==========

Xedrions / 1등 갸아악!

벌레 / 키메라가 점점 성형수술화가 되어가고 있어 ;ㅅ;

그랑엘베르 / ...기, 기분탓입니다! ㅠㅠ

EOEW / 8ㅁ8 바로 그렇죠!

알테니아 / 새로운 여캐를 찾으시는게 빠르... (퍽!)

니알라토텝 / 1인 군단이겠죠!

llSongOfBladell / 2호 키메라가 비월이라니이;

시크병장 /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고 합니다

Speedwagon / 코멘창이 바람직한 취향을 가지신 분들이 많아 무척 뿌듯하군요 〉〈

마스터칼솔럼 / 뭐죠 초성! 몇분간 고민했으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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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학점으로 따지면 저도 A급 입...! 하하. 그리고 B급은 지옥에서도 데려오는 B급이라 조절하고 있습니다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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