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125화 (125/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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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생각해?”

“짧지만 제가 지켜봐온 폐하는, 그러실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로즈안느의 그 말에 로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곤란한 걸.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선인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인데….”

“호호, 이런 난세에 선인이 어디 있겠어요? 다만 폐하께서는 스스로의 소신과 원칙이 있으신 것 같아 멋지다고 생각해요.”

이런 칭찬은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더군다나 미녀다.

“꼴값 떨고 있네!”

가만 듣고 있던 유니벨이 참다못해 말했다.

“저 녀석한테 그런 아부 안 해도, 우린 알아서 물러날 거거든?”

로즈안느가 로드를 보았다.

“저, 정말인가요? 떠나시는 건가요?”

“뭐, 그렇지.”

“아쉬워라. 그럼 남은 시간동안이라도 더욱 열심히 폐하를 챙겨드려야겠네요!”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며 결연하게 말했다. 오히려 더 기합이 들어간 반응에 유니벨이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

“폐하께서는 우리의 은인이세요. 우리들에게 잠시나마 해방감을 주셨으니까요. 자, 한잔 받아주세요.”

로드가 그녀가 따라주는 술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나중엔 날 원망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그 해방감을 잊지 못하게 돼서.”

“그래도 전 폐하가 와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꿈을 버리지 않고, 희망을 붙잡을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니까요!”

‘파워 긍정녀로구만.’

로드가 술잔을 비우고 로즈안느가 바로 술을 따라주려고 하자, 유니벨이 냉큼 그녀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아 품에 안았다.

“그만 해! 이 녀석 술 잘 못 마신단 말야!”

“어머, 그런가요? 죄송해요.”

로즈안느가 물러났다. 그러자 유니벨이 바로 로드의 잔에 술병을 내밀었다.

“…….”

로드가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 뭐해? 팔 아파!”

“……넌 가끔 내뱉는 말과 하는 행동이 전혀 다르다는 생각, 해 본 적 없어?”

“시, 시, 시끄러워! 잔말 말고 받기나 해!”

그녀의 귀여운 투정에 로드는 못이기는 척 술을 받았다. 로즈안느의 입장에선 기분이 나쁠 법도 했지만 오히려 활짝 웃는 얼굴로 박수를 쳤다.

“그렇군요! 술을 마시더라도 폐하께서 과음하지 않으시도록 일깨워드리는 세심한 배려죠? 멋져요, 유니벨 님!”

“…응? 어, 음. 그렇지 뭐….”

유니벨이 무안한 표정으로 술병을 내려놓았다. 세상에나, 너의 완승이다. 로즈안느. 그렇게 티 없는 순수함에는 유니벨도 당해낼 수가 없는 듯 했다.

로드는 술을 홀짝거리며 곁눈질로 로즈안느를 바라보았다. 아, 정말 탐이 난다. B급 영웅이라니, 남의 나라의 영웅이라서 그런지 더더욱 군침이 돌 정도로 가지고 싶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인재로서 말이다.

“아얏!”

통증을 느낀 로드가 돌아보니 유니벨이 그의 허벅지를 꼬집고 있었다.

“……왜 쟬 보고 침을 흘리는 건데?”

“어, 응?”

로드는 뒤늦게 소매를 닦았다. 상상한다는 게 정말로 그렇게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어머나.”

로즈안느가 다시금 부끄러운 표정으로 뺨을 감쌌다. 로드는 술기운의 힘을 빌려 말했다.

“로즈안느.”

“네, 폐하.”

“방금 상황과 연관 짓지는 말고 그냥 들어 줘.”

“네!”

“어비스에 오는 게 어때?”

로즈안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팬더 너……!”

“아니, 아니, 정말 순수한 의미야. 어비스 왕실에서 일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보는 거야.”

잠시 생각하던 로즈안느가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간절한 눈으로 말씀하시면 밑도 끝도 없이 따라가고 싶어지잖아요.”

“……하하.”

“하지만 지금은 정중히 거절할게요.”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비록 망국이 되었지만, 저는 베틀린의 공주에요. 남아서 이곳의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요.”

“…그러냐.”

로드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으으, 그냥 확 납치해 버리고 싶다.’

자그마치 B급 통솔형 영웅이고, 어비스에는 없는 종류의 인재였다. 인재에 눈이 돌아가니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로드는 참기로 했다. 그녀를 강제해서 일을 맡기더라도 동기 없이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올지 의문일 더러, 그녀는 이번 계획에 중요한 조각이었다. 그녀를 중심으로 계획을 짰으면서 스스로 그 계획을 망치려 들다니, 아무리 인재가 좋아도 여기서는 참아야 했다.

‘어쩔 수 없지.’

로드가 일말의 망설임을 털어버리듯 술을 입에 넣었다.

“헤헤, 거절해 버렸지만 조금은 아쉽네요.”

그녀가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언젠가 또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꼭, 그럴 거예요!”

‘역시 마무리는 긍정이구만.’

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맞다. 만약 게노세르크를 무너뜨리고 베틀린의 영토를 취한다면 자연스럽게 그녀를 가지게 되는 것이리라. 이기면 B급 영웅이 보너스로 들어온다니, 이만큼 강력한 동기가 어디 있겠는가.

“그때는 반드시 데리러 올게.”

“어머나.”

“으으, 짜증나아아.”

유니벨은 칭얼거리며 스스로 술을 따라 마셨다.

“그럼, 그때의 만남을 위해 노래할게요!”

“…응?”

그녀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곧장 분수대 근처의 무대로 뛰어 나갔다. 그녀가 올라가자 주위에서 엄청난 박수와 환호갈채가 쏟아졌다.

“류트!”

로즈안느가 머리위로 손을 뻗자 그녀의 파트너 악기가 날아와 손 안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걸치고 있던 로브를 벗어던졌다.

“감사해요, 여러분! 이번에 연주할 곡은 ‘재회’입니다!”

아름다운 류트의 선율이 밤하늘을 풍부하게 물들였다.

*

다음날, 발트호른에 남아있던 티아와 이브의 병력들까지 베틀린 시티로 돌아왔다. 이것으로 출전했던 모든 멤버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생각보다 적의 복귀가 빠르다, 주공.”

티아가 말했다.

“네, 저도 소식은 들었습니다. 설마 하루 만에 플랫랜치를 공략해버릴 줄은…….”

이래서야 아란을 볼 면목이 없었다. 로드는 플랫랜치를 수성전으로 지켜내는 건 무리라고 판단, 오히려 주력 병력을 적의 수도를 공격하는데 사용하여 말렉이 플랫랜치를 포기하고 다시 되돌아오게끔 유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였다. 말렉이 돌아오도록 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그는 단 하루 만에 수천 병력이 지키고 있는 플랫랜치를 뚫어냈다. 아란의 소식 또한 끊겨 버렸다.

“장군은 괜찮을 거다, 주공.”

티아가 로드의 표정을 살피고는 상냥하게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란의 고유능력은 통솔 보정 효과 및 생환 확률 상승. 그가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얼마든지 살아나올 수 있을 것이다. 염려되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였지만.

“어쨌거나 우리도 서둘러야 한다.”

“알겠습니다. 가죠.”

어비스군은 베틀린 시티의 영지민들에게 성대한 작별 인사를 받으며 퇴군했다.

“폐하!”

작별의 자리에서, 로즈안느가 로드를 껴안았다.

“힘내세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폐하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어요! 저도 힘낼 테니까요!”

“…그, 그래.”

언제나 파이팅 넘치는 그녀였다.

“그리고 다시 만나면, 그땐 꼭 약속 지켜주시는 거예요?”

“물론이야.”

술렁 술렁

병사들과 가신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로드가 이마를 감쌌다. 하긴, 젊은 총각 왕과 망국 공주간의 약속. 오해할 그림으로는 딱 좋았다.

영지를 떠나 행군하는 중에서까지 그 소문은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폐하.”

결국 이브가 말을 걸어왔다.

“응?”

“…정략혼인을 할 생각이셨으면 제게 먼저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푸훗! 로드가 마시던 수통의 물을 뿜었다. 덕분에 타고 있던 드레이크의 머리가 흠뻑 젖는 사태가 벌어졌다. 로드가 미안함의 표시로 드레이크의 턱 아래를 쓰다듬었다.

“그런 거 아닌데.”

“정말인가요?”

“아니라니까!”

“……다행이네요.”

로드가 불안한 표정으로 ‘뭐가?’ 하고 되물었다.

“폐하께서 지금 미혼이라는 점은 메리트가 있습니다. 정략혼인으로 타국과 굳건한 관계를 맺을 수 있죠. 그런 찬스를 망국의 공주로 날리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드가 무안한 웃음소리를 냈다. 참으로 정치인다운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브는 만약 내가 로즈안느와 결혼한다고 하면 반대할 거야?”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정치적인 계산도 중요하지만, 폐하의 마음도 중요하니까요.”

로드가 눈을 빛냈다. 역시 이브! 정석은 지키면서도 유연한 사고까지! 이것이 젊은 정치인인가.

“…타국과의 정략결혼도 좋지만,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응? 뭐라고?”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행군 끝에 로드의 병력이 도착한 곳은 서부 끄트머리에 위치한 항구 도시였다.

거점영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수로를 통한 물류 활동으로 먹고사는 중소규모의 도시였다. 그곳의 선착장엔 로드가 막대한 돈을 들여 빌린 무수히 많은 선박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자, 이제 바다를 건넌다.”

올 때는 워프게이트로 편안히 왔지만 갈 때는 조금 고생길이 예정되어 있었다. 베틀린의 항구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동맹국인 알란드의 영토에서 내린 다음, 육로로 행군하여 언더하임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철저한 극비로 이루어졌고, 아마 타국에서는 워프게이트로 빠져나갔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째서 돌아올 때도 워프게이트를 쓰지 않고 번거로운 행로로 가냐고 묻는다면 답은 하나였다.

‘……자원이 없으니까.’

로드가 한숨을 쉬었다. 4천의 대군을 적의 수도 앞으로 순간 이동시킨 것이다. 이것이 별 대가없이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결코 여러 번 할 수 있는 미친 짓이 아니었다.

로드는 그동안 유나이티드 상인들의 테라 담합 때문에 아껴두었던 테라와 수많은 돈을 쏟아 부어 4천의 병력을 옮겼다. 배로 탈출하는 것은 자원 절약 차원으로 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또 대규모 워프게이트를 열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이정도 규모의 병력이 다시 게노세르크나 다른 적국의 수도로 넘어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국의 플레이어들은 그 비용을 추상적으로 짐작만 할뿐, 정확하게는 알지 못했다. 그들이 느끼는 것은 그저 워프게이트에 대한 공포. 언제 어디서 자신의 수도에 대군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만큼 게노세르크의 수도 발트호른이 함락 당했다는 사실은 파장이 컸다.

게노세르크의 동맹국들은 전력을 희생하더라도 수도의 방비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워프게이트를 쓸 여력이 없지 않을까?’ 하는 작은 의문으로 수도가 위험해 지는 커다란 리스크를 끌어안을 이유는 없었기에, 속 시원하게 방비를 강화해두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로드가 노린 부분이었다.

결국 로드는 이 전략으로 적국의 혁명군 출현준비 및, 말렉의 내정 붕괴와 더불어 조금의 시간을 벌었다. 거기에다가 적국으로 하여금 수도 방비에 병력을 쏟도록 강요해 출전군의 수를 줄이는 효과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앞으로 펼쳐질 전면전을 위해서였다. 워프게이트가 무한이 아닌 이상, 로드도 전면전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승률을 높이기 위해, 적들의 병력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해야 했다.

로드가 그런 생각을 하며 병사들을 통솔해 배에 태우고 있던 중, 그의 앞에 마력이 뭉치며 보랏빛 워프게이트가 열렸다.

“짜안!”

그리고 그곳에서 마녀 모자를 쓴 소녀가 손을 흔들며 나타났다. 로드도 웃는 얼굴로 화답했다.

“오랜만이야, 치엘로.”

========== 작품 후기 ==========

즐거운 월요일입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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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炎無 / ...사, 살려주세요

dsklfjkjfkls / 오타 지적 감사해용! 바로 수정했습니다.

벌레 / 미녀(미소녀)수집력이 불타오르는군요. 후후

니알라토텝 / ......저는 그분들처럼 초인이 아닙니다아앙

알테니아 / 크윽, 역시 로즈안느로는 무리였나!

그랑엘베르 / 어쨌든 두 쪽 모두 상당히 위험하군요! 허허허...

Speedwagon / ...! 그럼 로드 앞에서 옷을 벗으려고 했던던 대체 무엇.....!

Xedrions / 전 건전하니까요!

로리콤MK / 본처지망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ㅈㅂㅇㅂ / 딸과 아내 겸업 ㅋㅋㅋㅋㅋㅋㅋ 엄청난 포지션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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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결국은 기승전 비월로 끝나는군요! 히익; 비월파가 득세한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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