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동전 -->
“……죄송합니다, 폐하. 워프게이트가 끊겼어요.”
고개 숙인 민트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로드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을 저었다.
“콜린이 잘 대처했나보네.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야. 수고했어.”
이걸로 또 다시 양측 서로 한 방씩만 주고받은 격이 되었다. 전면에 폭주한 수인들을 투입해 시선을 끌고, 낭인병으로 후방을 급습한 게노세르크. 매혹 마법으로 마운틴 고블린들을 움직여 시선을 끌고, 후방에 워프게이트를 열어 기병대를 투입시킨 켈타인.
물론 피해규모의 차이는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전황이 통째로 뒤집어 질 만한 상황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로드는 정면으로 시선을 되돌려 보았다. 양 측의 개활지에서는 보병들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고 있었다. 이제는 진형이 서로 뒤엉키며 완전한 난전 양상이었다.
로드는 현장의 일은 티아와 부관들에게 맡겨둔 채, 앞으로의 계획을 고민했다.
‘……아마 저들의 다음 한 수는 파티스펠에서 나오겠지.’
근처 스파이의 눈으로 적진을 살펴보니, 4개의 마법사 소대 중 1개 소대만 화력지원이고, 나머지는 전부 파티스펠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파티스펠을 중심으로 한 전략을 준비했을 것이라고 로드는 예상했다.
‘그렇다면 파티스펠 사용을 다시 강요해볼까?’
로드는 치엘로에게 새로운 신호를 보냈다.
“……헤에, 벌써? 왜 이렇게 급하시담?”
좌익에서 신호를 받은 그녀가 지휘관 창을 움직였다.
“뭐어, 우리 총사령관님의 판단이라면 따라야죠.”
과열 중인 개활지 전장. 진형이나 좌우익 할 것 없이 서로 뒤엉켜 싸우고 있는 가운데, 또 다시 새로운 변수가 나타나려 하고 있었다.
중앙 어비스측 병사들의 머리위로 보랏빛 마력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워프게이트다!”
“워프게이트가 열린다!”
무려 난전중인 전장 한복판에 새로운 워프게이트가 소환되고 있었다.
“크윽, 뭔 진 모르겠지만 막아라!”
“게이트를 지켜라!”
소환되고 있는 워프게이트를 중심으로 병사들의 전투가 더욱 치열해졌다. 이 소식은 콜린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 자식들, 이번엔 또 무슨 수작이야?’
콜린이 버릇처럼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것들은 정상적인 전쟁을 하면 몸에 두드러기라도 난단 말인가? 계속해서 전황을 뒤흔드는 전략만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워프게이트 활용은 콜린도 이해할 수 없었다. 워프게이트의 의의는 공간을 초월하여 병력들을 순식간에 원하는 장소로 이동시키는 것에 있었다. 그런데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것도 최전방에 떡하니 워프게이트를 소환하다니. 저기서 증원 병력을 꺼내봐야 수천 병사들의 한 가운데에 떨어질 뿐이었다.
‘…으으, 하지만 저걸 그냥 못 본 척할 수도 없고…….’
감이 오지 않으면 부지런히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결국 콜린은 마법사 소대 하나를 개활지로 보내 워프게이트를 공격하도록 했다. 마법사들이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중앙으로 나아갔다.
“저기 보인다!”
“쏴버려…… 응?”
마법사들이 등장하는 타이밍에 맞추어, 그 주위에 몇 개의 워프게이트가 추가로 열렸다. 무려 워프게이트 다섯 개의 동시 소환이었다.
“제기랄! 마녀놈들이 개수작을!”
“처음에 열렸던 것부터 박살내!”
퍼버벙! 파이어볼들이 날아와 워프게이트 하나를 깨트렸다. 하지만 아직 네 개의 워프게이트가 더 남아있었다.
난전중인 아군 보병들의 지원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법사들이 허겁지겁 다음 캐스팅을 준비하고 있는 사이, 워프게이트 소환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파이어볼로 하나를 더 파괴했지만 남아있는 건 세 개였다.
결국 마법사 소대장이 소리쳤다.
“…그만! 그만! 마력을 아껴라! 어차피 저런 곳에 워프게이트를 소환해봐야 뭘 할 수 있겠느냐!”
그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워프게이트를 응시했다. 소환 직전인 세 개의 워프게이트 중 두 개가 취소되어 스스로 소멸하고, 나머지 하나만 완성되었다. 워프게이트가 완성되자 그것을 지키고 있던 주위의 어비스군이 우르르 도망쳤다.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쏴아아아아아아아아!
물이었다.
워프게이트의 크기가 한 순간 몇 배가량 커지더니 그 안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물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우, 우아아악!”
“피해라!”
콰콰콰콰콰콰! 정면의 병사들이 난데없는 물폭탄을 맞고 나가떨어졌다. 워프게이트는 수 백 톤의 물을 계속해서 뿜어댔다. 병사들은 아이들의 물장난을 피하는 개미가 되어 정신없이 도망쳤다.
“…저런 게 가능하다고?”
콜린이 입을 쩍 벌렸다. 아무리 워프게이트라지만 저런 방대한 양의 물을 옮기는 출력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한편 반대편 진형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치엘로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반적인 워프게이트로는 불가능했겠죠.’
켈타인이 자랑하는 세 명의 마녀 영웅. 에이스로 알려진 루나, 매혹 마법이 특기인 민트, 그리고 남은 한 명이 ‘모르페’. 조건만 충족된다면 사실상 켈타인 최강의 마녀였다.
“음냐, 음냐.”
치엘로가 타고 있는 하마 뒷좌석에는 원격으로 워프게이트를 소환해낸 뒤 다시 잠들어 버린 소녀가 누워 있었다.
치엘로의 고유능력 ‘트리거 - 세 번째 응시자’의 경우 같은 마법을 세 번 연속 사용할 때 세 번째 마법의 위력을 세배로 늘리는 권능이다. 그리고 과거 치엘로의 소꿉친구이자 같은 ‘멀린의 아이들’소속이었던 모르페는 그 고유능력이 ‘열 번째 응시자’였다.
치엘로는 모르페에게 아홉 번의 워프게이트를 사용하게 한 후 대기시키고 있었다. 그 다음,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호수 밑바닥에 워프게이트를 소환해 전장과 연결시킨 것이다. 일반 워프게이트의 10배의 출력이 가능한 모르페만이 쓸 수 있는 묘기였다.
“수고했어요, 모르페.”
치엘로가 잠든 모르페의 이마를 쓰다듬는 사이 거대한 물의 소용돌이는 병사들을 휩쓸고 지나가며 게노세르크 동맹의 본진 쪽 까지 들이닥치고 있었다. 콜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빌어먹을……!”
이대로 본진까지 휩쓸리면 사상자뿐만 아니라 병량과 각종 장비들이 전부 물에 젖게 된다. 그런 사태만은 피해야했다.
“멜로디! 파티 스펠을!”
“알겠습니다.”
결국 콜린의 선택은 이제 막 완성한 파티스펠을 방어 용도로 쓰는 것이었다. 그녀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 파티스펠, 어스 월(Earth Wall).
쿠구구구구구! 본진의 앞으로 거대한 흙의 벽이 일직선으로 쑥 솟아올랐다. 물세례는 자연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부딪쳐 파도치며, 벽을 타고 아래 방향으로 흘러갔다. 콜린이 안도하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워프게이트에서 솟구치는 물줄기의 기세도 점점 줄어들어갔다. 개활지 중앙은 물로 흥건해졌고, 게노세르크 동맹군 병사들은 물폭탄을 피해 아래의 우익쪽으로 도망쳤다.
콜린이 안도하기 무섭게 쾅! 하는 발포음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우익측 산언덕에서 들리고 있었다.
“쏴라! 쏴!
“박살내라!”
마운틴 트롤들이 뛰어 내려온 그 가파른 산언덕 위에, 이번엔 알란드의 캐논슈터들이 올라가 밀집 병력을 향해 화력을 퍼붓고 있었다. 본래 우익측과 언덕과의 거리는 떨어져 있어서 캐논슈터들이 쏘더라도 거리가 닿지 않았겠지만, 중앙에 생긴 물폭탄으로 인해 병사들이 아래쪽으로 밀고 내려오며 우익이 절벽쪽에 가까이 붙은 진형이 되었다. 이는 짧은 사정거리와 높은 화력을 가진 캐논슈터들이 활약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 준 셈이었다.
‘끄으으, 이번엔 켈타인과 알란드의 합동 전략이냐!’
콜린이 이를 갈았다.
“전령! 지금 바로 좌익 백제쪽에 연락해서 싸울아비를 이쪽으로 보내달라고……응?”
콜린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좌익에 있어야 할 싸울아비들이 산 언덕을 경공으로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오! 선광 님이!’
콜린이 흥분한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상당히 빠른 대처였다.
‘별로 의욕은 없어보였지만 할 때는 확실히 해주는군!’
싸울아비들은 순식간에 경공으로 언덕을 올라갔다.
“싸울아비 놈들이다!”
캐논슈터들도 근접전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들며, 산 언덕은 두 특화 병종간의 격전지가 되었다.
*
크나큰 격변 이후, 전쟁은 세 번째 고착화를 맞이했다. 죽는 만큼 죽이는 정직한 수의 싸움이 개활지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다만 지형에 변화가 생겼다. 호수 물의 범람으로 물이 다리까지 차오르는 바람에, 보병들의 움직임이 크게 굼떠졌다.
이번 세 번째 고착화 전투는 꽤나 길게 유지되었지만, 로드는 쉬지 않고 전황을 살피고 있었다.
‘이제 서로 비장의 카드는 거의 다 썼겠지.’
로드의 시선이 좌익쪽 오펙투스군 쪽으로 움직였다.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콜린의 파티스펠을 이용한 전략뿐.’
로드가 계속해서 방해했지만, 오펙투스도 끈질기게 세 번째 파티스펠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이대로 중앙 병력들이 전투에서 이기길 만을 기다리는 것은 하책이라 생각한 로드는 움직이기로 결심하고 통신 구슬을 들었다.
“암살단, 히그마 산적단. 응답해.”
“예, 폐하.”
“이히히힛! 히그마가 여기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산을 타고 오펙투스의 후방 숲에 잠입해 주위를 지키는 매복병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려 둔 뒤였다.
“남아있는 매복병들은?”
“적 본진 가까이 있는 자들은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더 움직였다간 콜린에게 들킬지도 모릅니다.”
“이히히힛! 이하동문입니다!”
“……알겠다. 거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워프게이트로 병력이 넘어오면 너희도 가세해.”
“예!”
로드는 이번엔 마법사들이 있는 곳으로 직접 기병들을 보내 파티스펠을 방해할 생각이었다. 콜린이 중간에 눈치 채더라도, 이 공격을 막기 위해 마법사들을 움직이게 하는 정도로도 손해는 아니었다.
로드는 본진에서 대기하던 기마병들을 집결시킨 뒤에, 민트를 불렀다.
“……민트?”
민트와 그녀를 보조하는 네 명의 마녀들은 강단에 누워 곤히 잠들어있었다. 로드의 부름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깨어났다.
“네, 넷! 폐하!”
“일 할 시간이야.”
“죄송합니다! 애들아, 이제 일어나.”
흑마법은 일정량의 힘을 쓰면 졸음이 쏟아지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로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다음 워프게이트를 위해 한 숨 자도록 내버려 두었다. 전장에서 저렇게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는 게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이어서 로드는 치엘로에게 연락해 워프게이트를 사용하겠다는 허락도 받아냈다.
“그렇군요. 마법사들이 있는 곳을 기마대로 다시 한 번 기습?”
“응.”
“하지만 한 번 쓴 전략인데 두 번이나 당해줄까요?”
“발각 당해도 괜찮아. 마법사들을 움직이게 해서 파티스펠을 방해하는 걸로 충분해.”
“……흐응.”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럼 오빠의 생각에 더해서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 작품 후기 ==========
로리콤MK / 끄�聞빱� 대체 왜 트롤이 튀어나온 걸까요 ㅠㅠ 대형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샤마신 / 그녀는 좋은 멸망보너스였습니다
알테니아 / 쳇, 실패했나.
니알라토텝 / 엥? 어비스 기마대 있는데요... 여러번 활약했는데 ㅠㅠ
지리산의늑대 / 열심히 쓰겠습니닷!
Mr윤 / 웁니다
...(-1)... / 뾰로롱꼬마마녀...? 처음들어보는 만화군요 ㅋㅋㅋ 마녀라는 점은 동일. 그리고 이번 코멘도 역시나 비월이 등장하며 마무리
Euphoria17 / 4000 찍었네요 ㅠㅠ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