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동전 -->
우우우우우웅!
오펙투스 진형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초거대 마법진 ‘파티스펠’. 그 아래에는 오펙투스 마법사들이 지팡이를 들고 마력을 보내고 있었다.
파티스펠 완성도가 80%가 넘어가는 시점부터, 마도사인 멜로디는 캐스팅을 중지하고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결국 이 파티스펠을 이용해 대형 마법을 일으키는 건 그녀의 몫이었기 때문에 잠시라도 숨 돌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스러진 책, 산산조각 난 피아노, 완전히 녹아 없어진 촛대 등 값비싼 마력무구들이 쓰레기가 된 채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한번 파티스펠을 사용할 때마다 역대 마도사들이 모아온 마법 무구들이 쓰레기가 되어 버리는 것은 가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선대 마도사들의 유품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은 오로지 하나,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멜로디는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실버시타델에서 수많은 기반 마법사들을 잃게 된 오펙투스는 역사상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고, 단 한 번의 패배가 나라의 멸망으로 직결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느끼며, 멜로디는 머리를 무릎에 푹 묻었다. 오펙투스를 수호하는 ‘마도사’는 언제나 초월적인 존재여야만 했다. 허나 급조된 마도사인 멜로디 본연의 힘만으로는 전성기 마도사의 전력을 따라잡을 수 없었고, 그래서 마법 무구의 힘을 빌렸다. 그녀는 이렇게라도 의무를 다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스승님.”
그녀는 잠시 하워드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도 참 괴짜 스승이었다. 역대 선배들은 모조리 육체 인형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허구한 날 자신의 속옷에 집착하는 100살 먹은 변태였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그 얼굴이 그리웠다.
그녀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마법사 소대장이 다가왔다.
“마도사님, 파티스펠의 준비가 거의 다 끝났습니다. 슬슬 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멜로디가 주섬주섬 지팡이를 챙겨 일어나고 있는데 자신을 바라보는 소대장의 눈길이 유난히 길었다. 그녀가 돌아보며 말했다.
“…왜요?”
“하워드님을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멜로디는 침묵했고 소대장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세상만사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법학교의 소문난 괴짜 후배가 미치광이 마도사의 제자가 되겠다고 선언했을 때는, 정말이지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죠.”
그가 그때 기억을 떠올리는 듯 조용히 웃었다.
“저를 비롯한 온 교직원이 달려가 막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 괴짜 후배는 정말로, 미치광이 하워드의 제자가 되었고 지금은 한 사람의 어엿한 마도사가 되어 제 앞에 서있군요. 허구한 날 선생님들께 혼나기만 하던 그 말썽쟁이가 마도사라니… 기분이 조금 이상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하하!”
“……그냥 운이 좋았어요.”
멜로디가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알란드에서 스승님이 돌아가시지 않으셨다면, 저도 그분의 마력 배터리 신세가 됐을 테니까요.”
“후후, 글쎄요. 그분이 굴러들어온 역대 급 재능을 내버려두고 또 새 제자를 찾을 정도로 정정했었나요?”
그 말에 멜로디도 흐릿하게나마 미소를 지었다.
“예전 후배에게 아부 떠는 기분은 어때요?”
“너무하는군요. 그리고 아부가 아니라 처세술입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웃었다.
우웅! 우우웅!
그러나 두 사람의 이야기는 금방 끝을 맺어야 했다. 주위의 허공에 구멍이 숭숭 뚫리며 이글거리는 보랏빛 마력이 확 떠올랐다. 이 이팩트는 본 적이 있었다.
“워프게이트……!”
멜로디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파티스펠을 준비하는 마법사 소대를 둘러싸듯 워프게이트 네 개가 동시에 발현된 것이다.
“큭, 망할 마녀들이 또 무슨 짓거리를!”
소대장이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멜로디는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한 소대만 파티스펠을 유지하고, 나머지 소대원은 모두 워프게이트의 소환을 막도록 하세요!”
“예!”
그녀의 지시에 따라 마법사들이 일제히 파이어볼을 워프게이트에 날려댔다.
하나 둘씩 먼지가 되어 사라져가는 워프게이트를 바라보며, 멜로디는 의구심을 가졌다. 마법사들의 앞으로 워프게이트를 소환하는 짓은 사실상 파괴시켜달라고 조르는 격이 아닌가? 물론 파티스펠을 방해할 이유겠지만, 저런 공간 마법은 시전하는 것부터가 방대한 마력이 소모될 터였다.
‘그런데 왜 굳이……?’
마법사들이 하나씩 하나씩 워프게이트를 깨고 있는 도중, 오펙투스 진형 쪽으로 한 무리의 군세가 몰려오고 있었다. 본진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니 적은 아니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멜로디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폐하!”
“멜로디!”
콜린이 허겁지겁 말에서 내렸다.
“이것들 말고 또 발견된 것이 있나?”
“네?”
그녀가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다른 워프게이트 말이다!”
“아, 지금은 탐색 마법을 쓰고 있던 마법사들도 전원 공격에 투입되어서…….”
콜린이 눈을 빛내며 ‘역시!’ 하고 중얼거렸다. 그가 소리치듯 말했다.
“멜로디! 지금 당장 근처의 마력을 탐색해라! 다른 워프게이트가 있는지 확인하는 거다.”
“아, 네!”
멜로디는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왕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그녀는 바로 새로운 아티펙트를 꺼내 발동시키며, 광범위 탐지 마법을 사용했다.
눈을 감고 주위를 느끼던 그녀의 눈썹이 일순간 떨렸다. 과연, 숲 쪽에 워프게이트로 추정되는 불길한 마력이 느껴졌다.
“…말씀대로 숲 쪽에 하나가 있습니다. 완전히 열리지는 않았고 소환중인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군.”
콜린이 흥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드디어 우리가 준비한 최고의 카드를 사용할 때다.”
멜로디의 눈이 크게 떠졌다가. 다시 차분히 가라앉았다.
“알겠습니다.”
멜로디가 바로 캐스팅 준비에 들어가고, 마법사 소대장이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폐하! 여긴 어쩐 일로…… 허억!”
그가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콜린이 누굴 데려왔는지 뒤늦게 알아 본 것이다.
“어, 어째서 저들이 여기에…….”
“놀랄 시간 없다. 파티스펠의 준비는?”
“이제 완성 직전입니다만…….”
“아직도 완성이 안됐는가? 자네도 어서 가서 돕게!”
“예, 옛!”
콜린은 고개를 들어 파티스펠이 완성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하늘에 뜬 채 점점 크기를 불려나가던 거대한 푸른 마력진이 이내 파창! 소리를 내며 멈췄다. 그리고는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파티스펠이 완성된 것이다.
“부탁한다, 멜로디!”
“네, 폐하!”
파티스펠의 완성과 동시에, 멜로디가 캐스팅을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우웅!
멜로디는 앞뒤 가리지 않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마력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마도사의 아공간에서 3층 건물 높이의 책장을 통째로 소환해 떨어뜨렸다.
쿠웅!
‘이것만큼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마법, 흑마법, 신성마법, 연금술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모든 마법의 정수라 불리는 ‘코란’. 그녀는 결국 무구를 작동시켰다. 책장에 빽빽하게 꽂혀있던 수백 권의 책들이 일제히 하늘을 날아다니며 스스로 페이지를 펼쳤다. 책들의 몸체에도 멜로디와 같은 푸른 마력이 흘러 나왔다.
“……큭!”
그녀의 입가에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곁에 있던 콜린이 놀라서 다가왔지만 그녀는 괜찮다는 표시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갑니다.”
그녀의 몸과 사방에 가득 날아다니는 책들의 푸른빛이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주문을 외웠다.
- 파티스펠, 주문 강탈.
쿨럭! 멜로디의 입에서 핏물이 한 움큼 쏟아져 나왔다.
*
한편 어비스 본진에서는 출전 준비가 한창이었다.
기병대는 전투준비를 끝내고 열을 맞춘 채 대기하고 있었으며 민트와 네 명의 마녀들은 워프게이트 소환에 여념이 없었다.
“폐하, 다 됐어요!”
민트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수고했어.”
로드가 앞을 바라보며 통신 구슬을 들어올렸다.
“암살단, 산적단. 주위는 어때?”
“……폐, 폐하!”
왠지 다급하게 들리는 암살단원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마침 보고하려는 참이었습니다! 적의 군대가 이쪽 워프게이트로 빠르게 몰려들고 있습니다!”
“군대?”
로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콜린이 알아채고 워프게이트로 소환되는 병력을 포위하려는 듯 했다.
“……어쩔 수 없지. 전원 철수해.”
로드가 통신을 종료했다. 별 상관은 없었다. 깔끔하게 미련을 버리고 바로 다른 워프 게이트 포인트를 찾으면 그만이었다.
“민트! 적이 눈치 챈 것 같아. 지금 워프게이트는 닫아버려도 돼.”
“…….”
그런데 민트에게서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로드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민트?”
워프게이트를 향해 빗자루를 뻗고 있는 그녀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캐스팅 자세를 바꿔보더니 안되겠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나와 워프게이트 정면에 섰다.
“…으으으!”
선채로 무릎을 구부리며 하체를 강조한 듯한 자세를 취한 그녀는 워프게이트를 향해 보랏빛 마력을 연신 뿜어 대기 시작했다.
“왜 그래? 민트. 무슨 일 있어?”
“…….”
그녀는 병자처럼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눈에는 눈물마저 작게 맺혀 있었다.
“민트!”
다른 병사들도 웅성거리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가 잘못됐나?
“……폐, 폐, 흐윽! 폐하. 훌쩍…….”
바들바들 떨던 그녀가 고장 난 인형처럼 삐걱 삐걱 고개를 움직여 로드들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로드는 흠칫 놀랐다. 경악, 공포, 죄책감 등 온갖 감정이 뒤섞여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던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야?”
로드가 놀라서 물었다. 그녀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대답했다.
“……죄송해요.”
그녀의 그 한마디가 끝나는 그 순간,
로드는 순간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눈이 전달하는 충격적인 정보를 뇌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죄송해요.’라고 말한 민트의 몸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는 무언가의 검은 파도에 떠밀려 나가고 있었다. 그 파도는 그녀를 집어 삼킨 채 계속 앞으로 뻗어나갔다.
‘이, 이게 무슨……?’
콰콰콰콰콰콰콰콰! 다시 소리와 시간이 돌아왔다. 그것은 그냥 검은 파도가 아니었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야수들의 함성과 함께, 수인병들이 워프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어비스 동맹의 본진의 한복판이었다.
“아…….”
상황을 완전히 인지한 로드는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사막의 메뚜기 떼를 방불케 하는, 어마어마한 수의 수인병들이 워프게이트를 통과해 아군 병사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게이트에서 나오고 있는 수인들의 대열에서 옆으로 슥 빠져나온 인물이 보였다.
“크흐흐! 그래. 이게 바로 체크메이트라는 거지?”
말렉이었다.
========== 작품 후기 ==========
...응? 투베 노블 1위라니? 내가? 얼떨떨하네요. 가, 감사합니다 여러분. ㅠㅠ 세상에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군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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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죠죠타로 / 세계관 최강자 산적왕 히그마!
Mr윤 / ㅠㅠ 탈출하고야 싶지만 한명을 골라 먹자니 독자님들 히로인 취향이 완전히 재각각인데다가... 가장 문제는 플랫폼연재네요! 끙;
Speedwagon / 그래서 마녀가 좋은겁니다 (응?
알테니아 / 이분... 정녕 일편단심인건가
프리워커 / 기본적으로 둘다 들어옵니다만, 콜린이 잡은 엘프쪽의 효과는 줄어들어요.
니알라토텝 / 흑마법 쓰게 하고 같이 자주면 되겠네요! 오호...
로리콤MK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안해 트롤아 ㅠㅠ 오타였어 ;ㅅ;
푸른물결2 / 감사합니닷! 저도 만족스러워요 ㅎㅎ
지리산의늑대 / 아직 스토리가 조금 더 남았습니다!
Dkwolf / 넵, 감사합니다! 무료 표지에서 완전히 벗어났네요 ㅎㅎ
@...(-1)... / ...민트는... 이제.....
火炎無 / 하하, 금발 주인공 맞습니다. ;
샤마신 / 그 포인트를 콕 집으시다니! 꼴잘알이시군요!
빛과하늘 / 힐링 코멘트 감사합니다. 마지막 갈군다는 말이 조금 의미심장하긴 하지만...
로리콤MK / 산언덕을 타고 올라온 의지의 사내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