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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어, 이게 누구신가!”
이리저리 움직이던 맹수의 눈동자가 강단위에 있는 로드를 발견하고는 멈췄다. 그의 입이 찢어질듯 히죽 벌어졌다.
“이런 곳에서 맞닥뜨리게 될 줄은 몰랐는걸! 로드!”
“……말렉!”
로드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터엉! 육중한 거구가 예고 없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로드는 재빨리 몸을 옆으로 굴렀고, 그가 있던 자리에 선명한 발톱자국이 콰직! 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크흐흐! 우리 사이에 다른 인사는 필요 없겠지?”
‘제길!’
말렉이 재차 로드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달려들었다. 로드는 다급히 허리춤의 단검을 꺼냈다.
‘한 합이라도 제대로 견딜 수 있을까?’
그가 단검을 세워들고 이를 악물었다. 두 사람이 맞부딪치려는 순간, 갑자기 로드가 보고 있던 풍경이 일그러지듯 뒤바뀌며 강단에서 한 참을 떨어진 흙바닥에 엉덩이가 떨어졌다.
까아아앙!
그리고 강단 쪽에서 맹렬한 금속음이 들렸다. 베아트리체가 로드와 위치를 바꿔 말렉과 격돌한 듯 했다.
“……허억, 헉. 고맙다, 베아.”
로드는 구슬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군의 본진에 말렉이 나타나다니…!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패배’라는 두 글자가 선명히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건 정말로, 핵탄두가 심장에 박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그때 시야 아래로 깜박거리는 알림창이 보였다. 로드가 모두 수락버튼을 누르자 치엘로와 올리버의 얼굴이 동시에 떠올랐다.
“로드 오빠! 어떻게 된 거예요?”
“로드 님! 게노세르크군이 왜 우리 본진에?”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로드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상황을 설명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설명을 들은 치엘로가 외쳤다.
“분명 주문의 통제권을 빼앗는 마법이 있기는 하지만, 워프게이트는 엄연히 흑마법이라구요! 체계가 완전히 다른데 마법사가 흑마법을 컨트롤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나도 믿기 힘들어. 하지만 그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로드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콜린이 그렇게 공들여 준비하고 있던 파티스펠을 이용한 전략이, 사실은 우리 워프게이트의 컨트롤을 빼앗아 버리는 거였던 거야. 완전히 허를 찔렀군.”
“어, 어, 어떻게 하면 좋죠? 로드 님!”
올리버가 바들바들 떨며 물었다. 로드는 속으로 대답했다.
‘…사실은 저도 막막합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지금도 끊임없이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떠올려보고는 있었지만, 쇼크를 먹어서 그런지 좀처럼 머리가 굴러가주지 않았다. 아직도 머릿속에는 ‘패배’라는 두 글자가 선명히 남아있었다.
‘정신 차려!’
로드는 힘껏 자신의 뺨을 짝! 소리가 나게 때렸다. 그 행동에 두 사람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직이다. 아직 안 졌다.
로드는 암시하듯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그리고 다시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본진에 말렉과 정예 병력이 들어왔고, 아군 전력은 정면 개활지에 쏠려있다.
전 병력을 되돌려 말렉과 수인병들을 역으로 포위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 동안 전면의 전선은 무너질 것이며, 말렉을 확실히 잡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아군이 큰 희생을 치르고 돌아와도, 말렉은 후위에 구멍을 뚫고 숲 쪽으로 도망치면 그만이었다. 그에겐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로드는 역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저쪽도 승부수를 던졌으니 우리도 승부수를 던진다.’
로드가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말렉의 병력들은 본진의 병력들만으로 상대합니다. 본진이 이들을 붙잡고 있는 사이, 총공세로 적을 밀어버리죠. 이기기 위해선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그, 그건 너무 무모합니다! 로드 님!”
올리버가 재빨리 말했다.
“본진이 버티지 못해도 패배, 전방이 적을 뚫지 못해도 패배에요! 차라리 여기서 퇴각해 후일을 도모하는 편이…….”
“적에게 후미를 잡혔는데 퇴각전이요? 그것도 이렇게 좁은 지형에서…? 저들이 본격적으로 물어뜯기 시작하면 살아남는 병력은 십분의 일 밖에 되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 물러나는 건 이번 동맹 전쟁의 패배를 우리 스스로 확정짓는 꼴이에요.”
로드의 말에 올리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로드가 목소리 볼륨을 한 단계 낮추며 다시 말했다.
“……물론 올리버님 말대로 승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패배할 바에는, 불안정한 도박수라도 두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게 제 생각입니다.”
올리버는 고민하는 듯 했고, 로드는 시선을 돌렸다.
“네 생각은 어때? 치엘로.”
치엘로는 로드의 얼굴을 관찰이라도 하는 듯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 말을 아끼고 있었다.
“……뭐야, 왜 그래?”
“로드 오빠.”
마침내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아직 뭔가 믿는 구석이 있죠?”
“…으응?”
“저는 좋아요!”
그녀는 로드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면, 발버둥이라도 쳐보는 편이 낫겠죠.”
올리버도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두 분 다 그러시다면 저도 로드 님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끝까지 한 번 해봐요.”
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두 분은 연락이 끝나는 대로 C급 이상의 영웅들을 본진으로 보내주세요. 본진의 침투병력 중에서 가장 무서운 건 말렉이고, 어떻게 해서든 놈의 발을 붙잡아둬야 하니까요. 그 외에 따로 내릴 지시는 없습니다. 두 분은 좌우익 병력을 이끌고 적의 본진으로 쭉 밀고 내려가세요.”
“네, 건투를 빌겠습니다!”
올리버가 대화를 종료했다. 로드와 치엘로만 남자 로드가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민트가…….”
치엘로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오빠가 왜 저한테 사과해요?”
“…응?”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로드 오빠도 아란 님을 잃었잖아요? 희생 없는 승리는 있을 수 없는 법이니까.”
그녀가 눈을 찡긋해보였다.
“같이 힘내요.”
그 말을 끝으로, 치엘도 대화를 종료했다.
“후우우.”
고개를 든 로드는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차렸다. 많은 목숨이 걸려있는 전쟁이었다. 그가 허리춤에서 새로운 마력 통신구를 꺼냈다. 하나밖에 없는 총사령관 전용 통신구로서, 각 부대의 부관들이 이와 연결된 통신구를 들고 있었다. 수정구 마력의 한계 때문에 한번 명령을 전달하면 끝나는 극단적인 소모품이었다. 그가 통신구를 작동시키며 입을 열었다.
“전군은 들어라.”
로드의 목소리가 전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우리 본진 한가운데에 말렉이 제 발로 기어들어왔다. 하지만 염려할 것 하나 없다. 그들은 소수일 뿐이고, 우리 본진의 병력들에게 포위당했다.”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들이 이런 수를 쓴다는 것은 급하다는 증거다! 말렉과 놈들의 최정예는 이제 없고, 우리는 승기를 잡았다. 뒤는 우리에게 맡기고 계속 전진하라! 총공세를 명하노니, 모든 힘을 쏟아 부어 눈앞의 적에게만 집중하라!”
로드의 말이 끝나자 각 부관들이 외쳤다.
“들었느냐! 후방은 신경 쓰지 말고 전진하라!”
“말렉보다 먼저 놈들의 본진을 박살내자!”
“와아아아아아아!”
어비스 연합군이 일제히 함성을 질러대며 달려들었다. 최전방 병사들은 방패 뒤로 숨긴 몸을 드러내며 직접 검을 부딪쳐왔다. 그 기세에 수인병들이 움찔하기도 했다.
“어림없는 소리!”
촤아아아아악!
게노세르크 연합군의 선봉장이자 우인족 무장, 가얄이 자신의 몸만큼 거대한 할버드를 휘둘렀다. 창의 범위에 들어온 병사들이 쩌적 갈라져 쓰러졌다.
“어비스의 왕이 헛소리를 늘어놓는구나!”
후웅! 후우우웅! 말렉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할버드의 위력은 대단했다. 막 방패에서 모습을 드러낸 병사들은 그 기세에 짓눌려 다시금 방패에 몸을 숨겨야했다.
“너희들의 본진에 산군님이 들어가셨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정녕 모르겠느냐?”
콰아아앙! 그가 방패를 든 병사들을 날려 보내며 소리쳤다.
“너희들의 패배는 100% 확실시 되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가얄을 중심으로 게노세르크군 선두의 사기가 크게 올랐다. 수인들에게 말렉은 무패의 신화를 쓰는 자이자 상식을 뛰어넘은 괴물. 말렉의 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자들이었기에 승리를 확신한 것이다.
가얄의 무지막지한 공세에 병사들이 무너져 내리며 전방 진형이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게 되었다.
직접 피가 튀고 검이 맞부딪치는 전장 한복판. 후방 사령관의 말 몇 마디보다 현장에 있는 장수들의 피와 땀이 더 빛을 발할 수 있는 무대였다. 힘과 기세에 밀린 어비스군 병사들이 점점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물러나지 마라!”
어비스 동맹군의 소년 선봉장, 키리안이 벼락처럼 가얄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두 손에는 아란의 유품인 배틀액스가 쥐어져 있었다. 투콰아앙! 가얄의 할버드가 뒤로 튕겨 나갔다.
“…윽!”
“흐아아아아압!”
키리안이 폭풍 같은 기세로 배틀액스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콰앙! 콰아앙! 뒤에서 지켜보는 병사들의 속이 뻥 뚫릴 만큼 시원시원한 일격들이었다. 가얄은 방어에 급급했다.
‘…이상하군.’
이 애송이의 일격은 대단한 기술이나 힘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역으로 수세에 몰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위압감은 대체!’
광채를 뿜어내듯 살벌한 눈으로 도끼를 휘두르는 그 모습은 악귀마저 서려있는 듯 했다.
까아아아앙! 가얄이 힘주어 상대무기를 쳐내며 한 발짝 물러났다. 키리안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숨을 헐떡였지만 다시 전투자세를 취했다.
“훌륭하구나! 이름이 무엇이냐? 소년.”
“나는 아란님의 후계자! 키리안이다!”
그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전투가 그의 첫 공식전 데뷔였고, 영광스러운 선봉장 자리를 맡았다. 그만큼 기합이 제대로 들어가 있었다.
“아란님의 원수인 우인족의 가얄! 낭인족의 타나토스! 두 사람 모두 이 키리안이 꺾겠다!”
“……흐음, 아란이라면 플랫랜치의 인간 지휘관을 말하는 것이군.”
가얄이 걸치고 있던 상의를 벗어 던지며 할버드를 고쳐 쥐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용맹한 전사였지! 이 가얄. 네놈이 그 이름을 계승할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주마!”
“크아아아아아압!”
두 남자가 동시에 서로에게 달려들어 무기를 휘둘렀다. 서로의 배틀액스와 할버드는 방어를 포기한 채 적의 목숨만을 노리며 휘둘러졌다. 일격에 목숨을 앗아가는 살수가 뒤섞이며 서로 부딪칠 때마다, 온 몸에서 누구의 것인지 모를 핏물이 튀어 올랐다.
“재미있구나! 인가아안!”
카아아앙! 두 사람은 연이어 삼십여 합을 주고받았지만 승부는 나지 않았다. 다만 가얄은 숨 한번 헐떡이지 않고 호흡이 고른 반면, 키리안은 거친 숨을 연신 토해내고 있었다.
“아직 기본기가 부족해!”
가얄이 할버드를 고쳐 쥐며 말했다.
“무작정 혈기로 부딪치는 것 만으로는 이 전장에서 버틸 수 없다!”
그가 할버드를 휘두르려는 순간 키리안이 엄청난 기합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훌쩍 도약했다. 그리곤 두 손으로 틀어쥔 배틀액스를 머리 뒤로 넘겼다. 그야말로 목숨을 내던진 공격의 준비. 가얄이 이대로 할버드로 찔러 그를 죽일 수 있었지만,
‘……!’
가얄은 이 소년의 머리 뒤에서 죽음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할버드를 내지르는 동시에, 자신의 몸 또한 두 조각으로 쪼개질 것이라는 강한 본능의 예감이 경고했다. 그는 결국 할버드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가드 자세를 취했다.
까아아아아아아앙!
배틀액스가 산사태와 같은 기세로 휘둘러졌다. 가얄의 코와 입, 할버드를 쥔 팔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바닥이 움푹 내려가며 흙과 자갈이 터져 나왔다.
‘커허억! 어떻게 이런 힘이……!’
가드 후 가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배틀액스를 손에서 놓으며 착지한 키리안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온 몸의 세포가 고통을 부르짖고 팔은 마비된 듯 떨렸지만 몸은 동작을 기억하고 있었다.
‘폐하께서 하사하신 보검, 이것으로……!’
허리춤의 검이 푸른빛을 뿜어내며 뽑혔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끝낸다!’
- 충전검 아인하르트 ‘참격’.
========== 작품 후기 ==========
일어났더니 순위가 더 올랐네요! 세상에나;; 주신전 1위 기념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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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윤 / 다음편도 기대해주시길!
니알라토텝 / 신관킬러 ㅠㅠ
복지국가 / 크으, 캐슬링!
Leessa / 앗,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
샤마신 / 플로라가 대체 왜 나왔을까요 ;ㅅ; 오타 지적 고맙습니다
푸른물결2 / 워프게이트 스틸!
미릿 / 네, 바뀌었습니다! 감사해용
그랑엘베르 / 그렇죠, 한복판에 온 퀸 조지기! 키메라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용
llSongOfBladell /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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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테니아 / 결국 비월이 생각나 울음을 터뜨리시는 알테님...
@마나리스 / 본문에 살짝 언급됐지만 적앞에 게이트를 소환한건 사실 탐지마법을 쓰고 있던 마법사까지 공격에 가담하게 해서 본 게이트를 숨기기 위함이었답니다. 물론 콜린이 간파해버렸지만...
@...(-1)... / 요, 용자 큰 고모님...! 무섭군요.. 그분께 이른다니..
@로리콤MK / ㅠㅠ 요즘 트렌드 자체가 사이다 위주라서 그런듯 해요. 그냥 일방적으로 사이다만 쭉쭉 쓰는 작품도 인기가 많으니..
@SW스윈 / 오오, 선물 감사합니다! ㅠㅠㅠ
@모라논 / 있습니다! 1연참 ㅠㅠ
@pray하악 / 핫산, 업무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