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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144화 (144/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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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

“좋아, 좋아. 좋아!”

속속 들어오는 승전보에 로드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군 선봉장 키리안이 상대 선봉장 가얄을 꺾으며 총력전의 포문을 열었다.

새로운 키메라 영웅 리리스가 말렉을 정면승부로 패퇴시켰다.

특히 스카 파치노가 이끄는 마피아 독립부대가 파티스펠을 무력화시키고 마법사 소대 대다수를 재기불능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로드는 격한 탄성을 내질렀다. 실로 어마어마한 전공이다. 반대를 무릅쓰고 마피아들을 참전시킨 보람이 있었다.

여기에 중앙 병력들이 크게 선전해주었다. 어비스 키메라, 켈타인 위치들의 화력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게노세르크군이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한 건 역시 말렉의 패전이후였다. 말렉은 수인들에게 절대적인 상징이자 기둥과도 같은 존재였고, 어비스 동맹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자 보면 도망쳐야할 존재였다. 그런 그가 패배해서 도주한 것이다. 로드는 이 사실을 모든 전령과 통신 수정구를 총 동원해 알렸다.

‘본진에 들어왔던 산군 말렉이 대패하여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쳤다.’

이 소식의 반향은 엄청났다. 게노세르크의 부관들은 선동이라며 병사들을 다독였지만, 이미 패배해서 본진에 들어간 말렉을 본 병사들의 소문이 퍼져나가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었다. 사기는 눈에 띌 정도로 떨어졌고, 반면 그만큼 사기가 오른 어비스군은 더욱 기세를 타고 밀어붙이고 있었다.

선봉의 키리안, 현장에서 군을 진두지휘한 티아, 말렉을 붙잡아 둔 베아트리체와 유니벨, 피닉스. 단독으로 활동해 큰 전공을 세운 스카 파치노까지. 모든 가신들이 제 역할을 해준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드디어 약점을 보이기 시작하는 구나.’

로드가 씩 웃었다. 적이 취약점을 스스로 노출했을 때야 말로 모략이 가장 활약하기 좋은 시점이었다. 자신이 나설차례임을 로드는 직감했다.

‘이제 쐐기를 박아주마.’

*

게노세르크 본진 지휘관 텐트.

말렉은 지휘관 텐트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온 몸이 붕대로 칭칭 감겨있었으며, 시뻘건 핏물로 흥건했다. 벌써 몇 번이고 붕대를 갈아치운 뒤였다.

말렉의 상태를 살피던 군의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

“지금까지 버틴 게 용할 지경입니다. 일반인이라면 몇 번이고 죽었을 상처예요.”

“…크흐흐! 그리 쉽게 죽을 것 같은가.”

그렇게 말하는 말렉은 아직도 몸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그나마 버틸 만했다.

퇴각 중에 리바운드가 왔을 때에는, 장기가 비비 꼬이고 온 몸이 분자 단위로 분해되었다가 다시 붙여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전력으로 숲을 내달리며 악을 내지르지 않았더라면 고통 속에 정신을 놓고 폐인이 됐을지도 몰랐다.

지금은 경이로운 호인의 신체 회복능력과 군의의 빠른 조치로 슬슬 팔에도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감각을 체크하고 있는데 군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산군, 도저히 전투를 속행할 몸 상태가 아닙니다. 여기선 물러나시는 게…….”

“헛소리 집어치워! 나 말렉이야. 패배란 없다.”

힘이 돌아오니 절로 전처럼 큰소리가 떵떵 나왔다. 다시 강자의 입장에서 모든 것이 내려다 보였다. 모두가 자신보다 약한 놈들뿐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머리를 뽑을 수 있었다. 그래, 이것이 정상이었다.

‘돼지가 던지는 돼지 똥을 피하지. 뭐가 예쁘다고 맞아주겠느냐.’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녀 앞에서 등을 돌리고 퇴각할 때는 참을 수 없이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아졌다. 그때는 여러 영웅들과의 전투로 인한 피로 때문에 제 컨디션이 아니었을 뿐, 다시 붙으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고통스럽겠지만 다시 폭주화를 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소릴 지껄였던 그년의 몸을 친히 으깨 주리라.

군의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한 후, 현장 병사들을 치료하기 위해 천막 밖으로 나갔다. 말렉은 여기서 조금 더 쉬었다가 다시 그 악마를 잡으러 갈 생각이었다.

“……쯧, 난리로군.”

본진 한복판인 이곳에서도 병사들의 함성과 무기가 맞부딪쳐지는 소리들이 생생히 들리고 있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에 본진까지 밀려버린 모양이었다.

‘오래 쉬진 못하겠구만.’

펄럭!

그때 마침 천막이 젖혀지며 선광이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크흐흐! 왔냐?”

말렉이 여유롭게 인사를 건넸다.

“……말렉!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겁니까?”

그도 말렉처럼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전투복 곳곳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진흙탕을 구르기라도 했는지 도포가 누렇게 흙 범벅이었다. 선광은 검을 바닥에 박고 거친 숨을 헐떡였다.

“본진 바로 코앞까지 적이 왔단 말입니다! 얼마나 많은 병사들은 죽었는지 알기나 합니까?”

“아, 알아. 알아. 막 나가려던 참이었어. 그리고…….”

말렉이 눈을 사납게 치켜떴다.

“내게 명령하지 마라, 선광.”

“……!”

그의 투기에 노출된 선광이 굳은 얼굴로 몸을 부르르 떠는 모습이 보였다. 말렉은 속으로 웃었다. 그래, 바로 이런 반응이다. 언제나 자신은 강자였고, 약자들은 이렇게 꼬리를 내려야만 한다. 그것이 순리이다.

기분이 좋아진 말렉이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알아들었으면 가자.”

말렉이 앞장서서 성큼 성큼 걸어가 천막을 젖혔다. 아직 진 게 아니다. 자신이 나가서 병사들에게 건재함을 보이면 다시 상황이 반전될 것이라고.

푸욱!

그렇게 생각했다.

“……커!”

말렉의 몸이 들썩거리며 멈추었다. 손으로 들쳤던 천막이 다시 내려와 그의 얼굴을 때렸다. 잠시 멍하니 가려진 시야를 응시하던 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숙여 몸을 보았다. 검이 가슴을 뚫고 나와 있었다.

“…크으윽!”

뒤늦게 고통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네놈이 감히이이이이이!”

빠악! 말렉이 팔을 젖혀 선광의 얼굴을 가격했다. 선광이 가볍게 붕 날아가 테이블에 부딪쳤다. 물건들이 떠들썩하게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감히 배신을……! 쿨럭!”

뿌옇게 피어오르던 먼지 속에서 선광이 큭큭 웃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새삼스럽게.”

항상 어딘가 나사 빠진 듯 멍해있던 선광의 눈빛은, 지금 이 순간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내가 충성하지 않는다는 건 당신도 알고 있었잖아.”

“…선광! ……큭!”

리리스에게 등을 당한 것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심각한 치명상이었다. 정신이 아늑해지며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저런 놈 따위에게 뒤통수를 맞다니! 비월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 이상 얼마든지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씹어죽일 자식! 네놈이 그토록 아끼는 애인을 돼지우리에 던져 ……큭!”

말렉이 한쪽 무릎을 꿇고 고통스러워하는 사이, 선광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까 로드에게 연락이 왔었다.”

“……뭐?”

“발트호른에 혁명군을 일으켰다 하더군.”

말렉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딴 헛소리를 믿나? 그 혁명인가 뭔가 하는 놈들이 날뛰어도 발트호른에 정규군을 4천이나 박아 놨다! 함락은 불가능하단 말이다!”

“…그 영지를 함락했다고는 안했다. 다만.”

이어 말하는 선광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혼란을 틈타 비월을 구출했더군.”

“……!”

사실은, 로드가 계획한 ‘발트호른 함락 전략’의 목적은 혁명군의 준비와 말렉의 약점인 내정 흔들기 외에도 한 가지 추가적인 목표가 있었다.

바로 ‘비월’의 구출.

비월은 B급 무력형 영웅이라는 눈에 보이는 가치 이전에, 백제의 선광을 컨트롤 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키포인트였다.

그러나 로드가 발트호른을 점령한 후 영지를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아쉽게도 비월은 이곳에 없었다. 말렉이 수도가 아닌 다른 영지에 숨겨 둔 듯했다.

언제나 100% 계획했던 대로 일이 풀리지는 않았고, 로드는 비월 구출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던 중 살짝 계획의 방향을 바꾸어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비월의 위치를 ‘확정’짓게 하는 것이다.

로드는 발트호른을 점령한 뒤, 병력을 나누어 게노세르크 영토의 주요 도시들을 점령했다. 물론 명목은 내정 흔들기였지만, 어비스군이 영지를 헤집고 다니는 일련의 행동들은 말렉에게 이런 생각을 심어주게 된다.

‘이제 게노세르크 영토의 그 어떤 영지든, 완전히 안전한 곳은 없다.’

어비스군이 물러나고 말렉은 영토를 복구했지만, 혁명단은 자신의 영토에 남아 바이러스처럼 득실거리고 있었다. 완전 박멸이 불가능한 존재들이었다. 언제 어디서 반란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베틀린은 독립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로드를 찾아내 죽일 때까지, 말렉은 수도인 발트호른을 확실하게 보호해야만 했다. 비용을 들여 그곳의 경비를 대폭 강화했고, 무려 4천의 정규군을 박아두었다.

그리고 이제 어비스 동맹군과의 전쟁이 남아있는 상황. 과연 전쟁동안 비월을 어디에 보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인가?

말렉도 그녀가 선광을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카드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전장에 데리고 다니는 것은 백제가 난전을 틈타 그녀의 탈출을 시도할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너무 위험했다. 멀고 안전한 곳에 가두어 놓고, 말을 듣지 않으면 그녀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렉은 발트호른에 비월을 데려와 숨겼다. 다른 영지는 안전하지 못하다. 완벽하게 요새화 된 발트호른말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로드가 유도해낸 것이었다. 그녀의 위치가 확정되었으니, 남은 건 탈출뿐이었다.

개활지 전투가 일어나려는 시점에서, 로드는 지휘관 창으로 <혁명의 바람>을 일으켰다. 동시에 베틀린시티에서 만나 호감을 사두었던 로즈안느에게 연락해 협력을 요청했다. 그녀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발트호른은 성의 안팎에서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 커다란 혼란을 틈을 타 혁명단이 움직였다. 그들의 제 1목표는 영지의 반란 성공이 아닌, 처음부터 오로지 단 하나 ‘비월의 구출’이었다. 이미 수뇌부에 잠입한 수인 혁명군으로부터 정보를 빼돌려 비월이 갇혀있는 위치를 알아낸 그들은 적지 않은 희생을 치르며 기어이 그녀를 구출해 냈고, 준비해둔 워프게이트로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다.

이후 로드는 선광에게 연락했다. 그리고는 통신 수정구로 그녀의 얼굴까지 확인시켜 주었다. 비월의 얼굴을 보는 순간 선광은 눈물부터 흘렸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계속해서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로드는 싸늘하게 말했다.

“왜 제게 감사인사를 하시죠? 착각하지 말아주시길. 순수하게 좋은 마음에서 한 일이 아닙니다.”

그 말을 들은 선광의 표정이 급격히 얼어붙었다. 로드가 이어서 말했다.

“더군다나 선광님은 저와 올리버님을 이미 한 번 배신하셨죠.”

“……예. 제 입장은 잘 알고 있습니다.”

로드는 여기서 완벽하게 자신이 주도권을 잡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나 시간이 흘러 그녀에 대한 마음이 무뎌질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선광은 여전히 그녀를 위해 모든 걸 집어던진 그 마음 그대로였다. 로드가 돌려 말했다.

“그녀를 적진 한복판에서 구해내기 위해 많은 부하들이 희생됐습니다.”

선광은 침묵을 지키다가,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완벽한 굴복 선언이었다.

“선광님에게도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요구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로드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에게 복수하십시오.”

============================ 작품 후기 ============================

블라토 / 완전한 짐승요? ...응??

잇시키이로하스 / 추코 감사! 근황은 보시다시피...

녹차가좋아요 / 잔머리왕 주인공은 통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JJJaYY / ㅠㅠ 감사합니다!

할레데임 / 후회되겠죠...

입문가이드 / 멸망보너스 핡!

제르디엘 / 글 속도가 느려서 죄송합니다 ㅠㅠ

웅성웅성 / 유혈사태가 벌어지겠군요 으아앙;

남호들 / !! 칭찬 감사해요 ^^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니알라토텝 / 삼미터 거구의 호랑이 인간, 이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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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리아 / 마틴입니다. 만약 마틴이 로드의 휘하로 들어왔더라면 어비스의 역사는 조금 더 바뀌었을지도...

@빛과하늘 / 참견이라뇨! 의견과 조언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슈톨라 / 폭주를 계속해서 쓰면 쓸수록 리스크가 몸에 쌓이게 됩니다. 나중엔 이성을 잃고 폐인처럼 변해버리죠.

@火炎無 / 보세요! 저도 로리 죽일줄 알... (퍽!)

@llSongOfBladell / 후후, 보시다시피..

@로리콤MK / 군사가 이래서 좋습니다! 헤헤

@치우환 / 왜 TS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 진지하게 코끼리 이야기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월과 민트가 도우미로 나와서 경악했습니다. ㅋㅋㅋㅋ

@ㅇㅈㅂㅇㅂ /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건전한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워 건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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