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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
빠아악!
“크헉!”
선광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말렉이 씩 웃으며 입가에 뭍은 피를 닦았다.
“아무리 컨디션이 개똥같아도 네놈 때려잡는 정도는 문제없다.”
“……큭!”
선광이 바들거리는 다리로 상체를 일으켰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였다. 그런 치명상을 입었으면서 어떻게 이정도로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정녕 이 자는 괴물이란 말인가?
“네놈을 쳐 죽이고, 백제의 멸망 보너스를 빼앗아 전쟁을 속행한다.”
말렉이 살기를 흩뿌리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검을 쥔 선광의 팔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 또한 난전 중에 입은 상처와 피로가 남아있는 상태였다. 위기에 빠지자 눈앞에서 비월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제길! 다 왔는데 여기서……!’
말렉이 주먹을 당기는 순간 천막 밖에서 단검들이 날아왔다. 푹! 푹! 푹! 말렉이 몸을 움직여 회피동작을 취했지만 이어서 날아온 단검들이 그의 팔과 다리에 몇 발 더 박혔다.
평소 같으면 가뿐히 마력을 일으켜 쳐냈겠지만 치명상 때문에 몸이 물에 젖은 마냥 무거웠다.
“끄윽! 어떤 자식들이야?”
사방에서 천막이 찢어지며 어비스의 암살단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을 알아본 말렉이 분노하여 소리쳤다.
“로드 이 개자식이!”
꽈아앙!
암살단과 말렉이 서로 격돌했다. 무수히 많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말렉은 밀리는 기색 없이 맨 주먹으로 암살단 몇 명을 땅에 처박았다.
분노한 그의 기세가 무서웠으나, 아무리 초인의 경지에 올랐어도 말렉도 사람이었다. 전투가 계속될수록 움직임이 눈에 띄게 굼떠지고 있었다.
“쓰레기 같은 놈들! 전부 죽여버린다아아아아아!”
말렉이 가슴을 펴며 포효하자, 주위를 포위한 암살단원들이 움찔하며 일제히 그에게서 떨어졌다.
“크하하! 겁쟁이 놈들…… 응?”
콰콰콰콰콰콰쾅! 천막의 천장을 뚫고 떨어진 데스볼트들이 말렉에게 쏟아졌다. 검은 불꽃이 몸에 달라붙자 그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윽, 크아아아악!”
“어머, 볼품없는 꼴이네요. 말렉 님.”
하늘에서 나타난 켈타인의 마녀들이 바닥에 착지해 빗자루를 겨누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중앙에는 치엘로가 서있었다.
“……치엘로!”
“메모리얼 수정구를 들고 온다는 걸 깜빡했네요. 천하의 말렉이 바닥에 뒹굴고 있는 모습을 채팅방에 공유하고 싶었는데…… 아쉬워라.”
“네 년이 감히!”
말렉이 들려들자 치엘로가 ‘꺅!’ 하고 장난기 어린 비명을 지르며 옆에 있는 마녀의 품으로 쏙 들어갔다. 그 마녀가 빗자루를 휘둘렀다.
- 바이퍼 스트라이크
퍼어억!
달려들던 말렉이 측면에서 쇄도한 채찍 같은 마력 팔에 부딪쳐 날아갔다.
쿠쿠쿵!
“……크으윽!”
“아깐 신세 좀 졌습니다.”
흑발의 마녀, 루나가 빗자루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녀를 본 말렉의 얼굴에 절망감이 아른거렸다.
펄럭.
이번엔 뒤쪽의 천막이 젖혀지면서 새로운 남자가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하더니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치엘로도 귀엽게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맞이했다.
“결국 이런 결말이구나. 말렉.”
로드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를 본 말렉의 눈이 사납게 번뜩였다.
“……로드으으으!”
“네 본진은 우리 병사들이 거의 다 장악했다. 콜린이나 다른 병사들은 널 버리고 살길을 찾아 도망가는 중이야. 자업자득이지.”
“크으윽! 네놈! 네놈만큼은!”
말렉이 일어서려고 발을 버둥거렸다. 하지만 좀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는 듯 계속 넘어지고 있었다. 로드는 암살단원들과 마녀들을 재치고 가장 앞으로 나와 차가운 얼굴로 그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말렉이 눈을 부릅떴다.
“한 주먹도 안 되는 놈 따위가! 날 내려다보지 마라!”
그가 주먹을 치켜들자, 푸른 응어리가 맺혔다.
“내가 강자다! 한 발짜……!”
- 충전총 오덴발트 ‘포격’.
타아아아앙!
그가 마력을 일으켜 주먹을 뻗는 것 보다, 로드가 품에서 총을 꺼내 겨누는 것이 더 빨랐다. 푸른 마력의 포탄이 말렉의 몸을 밀어내 천막 벽을 뚫어버리며 날려 보냈다
콰아아아아아앙!
바닥에 거대한 자국을 남기며 밀려나던 말렉의 몸이 푸른빛의 마력 폭발에 집어삼켜졌다.
“커…커허어어억!”
하늘이 노랬다. 입에서 짙은 피 맛이 났다. 몸은 더 이상 움직여지지 않고 그저 간헐적으로 팔다리가 달달 떨리고 있었다.
누가 이 모습을 보고 최강의 플레이어라 불리는 그 말렉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대단한 체력이야.”
흙먼지를 뚫고 로드가 걸어오고 있었다.
“어떻게 널 죽여야 아란이 만족해 줄까?”
“끄윽! 끄우으! 끄으으으!
부딪칠 때 성대에 문제가 생겼는지 발음이 새어서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로드가 쯧하고 혀를 차며 포켓에서 단검을 꺼냈다.
“끄으으으읍! 끄아아악!”
말렉이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로드에게 달려들었다.
“…진짜 말도 안 된다니깐.”
로드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슈슛! 로드의 몸이 흐릿해지며 뒤바뀌는 순간, 말렉은 다시 한 번 절망을 느꼈다. 은발의 하프 밴시 소녀가 검을 든 채 기다리고 있었다.
촤아아아아악!
그녀가 유령이 쓰인 검을 휘둘렀다. 말렉이 꿈틀거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배꼽부터 어깨까지 선명한 검상이 드러나 있었다.
‘……아.’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텅 빈 공감각에 말렉은 머리를 젖히며 부들부들 떨었다. 몸의 갈라진 틈에서는 잿빛 연기가 흐르고 있었다. 정말 죽는 것인가? 내가?
파앗!
별안간 그의 시야가 새까맣게 변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그의 눈앞에 얼굴이 엉망으로 훼손된 채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끔찍한 얼굴의 여성이 튀어나왔다.
‘……화, 환영?’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여인이 기이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는 괴물처럼 입을 쩌억 벌렸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
말렉은 심장이 멎는 공포를 느끼며 정신을 놓고 말았다. 환상에 빠져 미동이 없는 말렉의 등 뒤로 로드가 걸어오며 말했다.
“잘 가라. 말렉.”
쿠웅!
결국 심장이 멈추며 거구의 호인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눈엔 경악한 감정이 한 가득 담겨 있었다. 이 모습이 최강의 플레이어의 최후였다.
- 어비스의 ‘베아트리체’가 게노세르크의 ‘말렉’을 처치했습니다.
- 어비스의 플레이어가 멸망 보너스를 획득합니다.
*
“……끝났나.”
천막너머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선광은 말렉의 죽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비월.’
이미 모든 것을 내던져버린 몸이었다. 달리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였다.
촤르르르륵! 마력으로 이루어진 쇠사슬 같은 것이 펼쳐져 그의 몸을 붙잡았다. 선광은 일어서자마자 다시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큭!”
고개를 드는 순간 마녀들이 그를 흉흉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켈타인의 영웅 루나가 손바닥을 펼쳐 선광을 겨냥했다.
“자, 잠깐만! 이게 무슨 짓입니까? 치엘로 님! 치엘로 님!”
선광이 애타게 치엘로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마녀들 사이에서 등을 돌린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녀가 빙글 몸을 돌렸다.
“에이, 다 아는 사람들끼리 이러지 말자구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강아지 같은 눈웃음을 지었다.
“백제의 멸망 보너스, 잘 가져가겠어요.”
“이, 이봐!”
선광이 다급히 소리쳤다.
“난 당신들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줬어! 말렉을 찔렀다고! 내가 입힌 치명상이 아니면 말렉을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었을 것 같아?”
“……이상한 말씀을 하시네요. 그쪽의 공을 어필한다고 해서, 왜 제가 당신을 살려줘야 하죠?”
선광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곁눈질로는 겨누어진 루나의 손바닥을 살피며, 머릿속으로는 필사적으로 다음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로, 로드 님과 사전에 이야기 된 상황이냐?”
“제 독단이에요.”
그녀가 다시금 미소 지었다.
“로드 오빠는 이상한 부분에서 마음이 여려질지도 모르니까요. 일단 저지르고 나중에 혼내시면 혼나죠, 뭐.”
치엘로가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루나의 펼쳐진 손바닥에 보랏빛 마력이 감돌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 내가 뭐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야!”
그가 애원조로 말했다.
“동맹에 다시 넣어달라고도 하지 않을게! 속국 처우도 감수할게. 아니, 다 필요 없어! 내 멸망 보너스 따위,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으니까!”
끝내 선광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비월! 그녀의 얼굴을 한번만 보게 해달란 말이다! 그 정도는 자비를 베풀어줄 수 있잖아!”
“……하아.”
치엘로가 팔짱을 낀 채 깊은 한숨을 쉬었다.
“…폐하.”
루나가 어서 명령을 내려달라는 듯 초조한 얼굴로 치엘로를 불렀다.
“가만히 있어요. 루나.”
“…하오나.”
“두 번 말하게 할 셈이에요?”
루나가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팔을 내렸다.
살았다. 선광은 이제야 살아날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치엘로가 팔을 펼치더니 옆에 놓인 테이블을 조준했다.
- 데스볼트
꽈앙! 테이블이 시꺼먼 불꽃에 휩싸여 박살났다.
- 데스볼트
이번엔 뒤쪽에 놓여있던 잡동사니들이 날아갔다. 물건들이 불타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치엘로가 등을 돌려 세 번째로 팔을 뻗었다.
“…치, 치엘로!”
이번엔 선광을 겨누고 있었다.
“싸구려 감성팔이, 진짜 기도 안차요.”
그녀가 냉기가 흐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행적, 정말 가관이더군요. 새로 만든 애인 때문에 당신이 통치해야할 의무가 있는 국민들을 전부 위험에 빠트리고, 당신에게 먼저 손 내밀어준 동맹국을 배신해 뒤통수를 쳤죠. 다음번에도 그러지 않을 거란 보장이 어디 있어요?”
“아, 아니야! 나는 그저!”
“좋아요. 만약 그녀의 얼굴을 보여준다고 쳐요. 그럼 다음은? 재회했으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더욱 헤어지기 싫어지겠죠. 그 다음은? 당신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좀 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야겠죠? 기회만 온다면 당신은 언제든지 베풀어준 은혜를 잊고 뒤통수를 칠 사람이에요. 당신 같은 이기적인 사람을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아, 아니야! 난……!”
그녀의 손바닥에 검은 불꽃이 일렁거렸다.
“민폐 덩어리 배신자.”
꽈앙! 새까만 불꽃이 날아가 선광의 몸을 완전히 집어 삼켰다.
“크아아아아아악!”
그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불꽃에 휩싸이자 쇠사슬에 묶인 그의 몸이 애벌레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곤 얼마안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치엘로는 ‘으휴.’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등을 돌려 걸어갔다.
- 켈타인의 ‘치엘로 블랙노트’가 백제의 ‘선광’을 처치했습니다.
- 켈타인의 플레이어가 멸망 보너스를 획득합니다.
============================ 작품 후기 ============================
세력 변화가 크게 일어나는 이번 에피소드입니다! 슬슬 끝나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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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가좋아요 / 오예에!
다크체리 / 정답입니다!
섭인룡 / 실로 개이득
abcto / 하지만 이번편에선 상황이 조금 달라졌네요 ㅎㅎ;
니알라토텝 / ㅋㅋㅋㅋㅋ 마지막까지 말렉은...
라퓨테르 / 크으!
푸른물결2 / 멸망보너스 일단 하나 확보!
T스톤 / 하하 사실은 살아있었다고 합니다
spespuer / 이건 그냥 순수하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실제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도 아니니, 밸런스가 너무 딱딱 완벽하면 재미없잖아요?
잇시키이로하스 / 크으! 쿠폰 감사해요! 감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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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갹임다 /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pelina / 네, 아마 맞을거예요. 설정 자체는 5년 전에 짠거라 완벽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이 게임 세계관을 쓴다고 온갖 게임들을 다 해보고 짬뽕했어요. 각종 유즈맵뿐만 아니라 미디블 토탈워, 워해머 등등 판타지 땅따먹기 느낌의 게임은 거의 다 해보고 만들었네요
@火炎無 / 역시 화염무님 잘 아시는군요. 저도 제 건전함이 날이 갈수록 강해져서 고민입니다.
@...(-1)... / 비월은 구해드릴수 있지만 민트는.... (먼산)
@로리콤MK / 꼼수 뒷공작 통수의 콤비네이션!
@SW스윈 / 정확하신 추측...
@아침과저녁 /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로아리아 / 그것이 바로 클리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