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신전 문명게임-146화 (146/296)

145====================

변혁

“전위는 우측으로 붙어서 빠져나가는 적을 막아라. 후위는 그대로 전진.”

티아가 이끄는 중앙군은 적의 본진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섬멸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녀의 지휘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도망치는 게노세르크군을 옭아맸다. 연신 기침을 해대는 그녀의 건강이 걱정스러웠던 부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군사님. 목소리가 다 갈라지셨습니다. 전쟁은 승리했으니 이제 저희들에게 맡기시고 휴식을…….”

“아직.”

티아가 옷소매로 입가를 닦으며 확성구슬을 들었다.

“아직이다. 이 전투에서 적을 완전히 섬멸해야 후환이 없느니라.”

말렉이 죽고, 게노세르크의 멸망 보너스가 어비스에게로 넘어갔다. 수인병들에게 적용되던 지휘관 창의 권능이 사라져버리면서 수인병들은 통제를 벗어나 진형을 무시한 채 본능에 따라 도망치기에 바빴다. 실로 오합지졸이 따로 없었다.

“하하하! 대승! 대승이오, 키리안 족장!”

전사 연맹측 부관이 적을 썰어 넘기며 소리쳤다. 그런데 언제나 선두에서 활약하던 소년 영웅 키리안은 한 발짝 떨어져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뭐하쇼! 족장! 이렇게 손맛 볼 때가 흔한 줄 아쇼?”

“…….”

눈을 굴리며 전황을 살피기만 하던 키리안이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액스워리어들과 정예병들은 저를 따라오세요. 형님은 여기 남아 그 외의 병사들을 통제해주십시오.”

“상관없다만, 어디로 갈 거요?”

키리안이 배틀액스를 어깨에 짊어지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오펙투스의 왕을 잡으러 갑니다.”

키리안과 그가 이끄는 병력들이 말머리를 돌려 적진의 우측을 일점돌파로 꿰뚫기 시작했다. 자칫 포위당할 위험도 있었으나 통제를 벗어난 수인병들은 그들을 두려워해 도망치기에 바빴다.

마침내 진형을 뚫어내고 키리안군이 향한 곳은 오펙투스의 병력들이 있는 우익의 본진이었다.

‘분명히 여기 어딘가 있을 텐데…….’

키리안이 적병을 베어 넘기며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저기 있다!”

한 병사가 외쳤다.

“오펙투스의 왕이 저기 있다!”

“와아아아아아!”

“가자! 왕의 목을 따는 건 우리 전사 연맹이다!”

콜린을 발견한 키리안군이 무서운 기세로 우르르 내려왔다.

“…제기랄!”

새로운 군대의 출현을 본 콜린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말렉과 선광의 사망 이후, 그나마 진형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우익의 오펙투스군 뿐이었다. 정면에서 몰려오는 적과 싸우느라 병력이 모두 전방으로 쏠려있는 상황이었고, 우익 본진은 콜린이 이끄는 병력 외에는 텅 비어있었다.

그런 상황에 중앙 본진에서 우익으로 일직선으로 돌파해낸 키리안군이 그들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예리하군. 티아 그란디네가 눈치 챈 건가? 적장은 누구지?”

콜린의 물음에 부관이 재빨리 대답했다.

“어비스군의 키리안입니다.”

“키리안? 그건 또 누구야?”

“이번 적군의 선봉장입니다. 가얄 장군을 베었다는…….”

“아, 그 새파란 애송이인가.”

콜린이 이를 갈더니 말했다.

“……멜로디는?”

“전방에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을 겁니다.”

잠시 고민하던 콜린이 주먹을 꾹 쥐었다. 멜로디의 실력이라면 자기 한 몸 정도는 건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떻게든 자신이 살아남는 게 중요했다.

결국 콜린의 선택은 본진 병력만의 단독 후퇴였다.

“여기서 전방군이 돌아올 때까지 저들에게 발목이 붙잡혀 있으면 금방 어비스 본군이 몰려올 것이다. 우리는 이대로 후퇴한다!”

이 전장은 중앙 개활지와 앞뒤의 좁은 길목, 주위는 숲과 높다란 산언덕으로 둘러싸여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명확한 퇴로는 중앙의 좁은 길목 밖에 없었다. 실제로 게노세르크군은 모든 병력이 후퇴를 위해 중앙으로 몰려있었고, 그들을 잡아야하는 어비스 동맹도 중앙을 중심으로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콜린은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하여 숲을 거치는 퇴로를 준비해두었다. 우익진형에서 바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었다.

“자, 퇴각이다!”

콜린은 방책을 지킬 소수의 결사대만 남긴 채 숲으로 들어갔다.

‘…하, 이번에도 졌구나.’

퇴각을 하고 있으려니 다시금 현실이 느껴졌다.

콜린은 아직도 왕들의 연회에서, 로드가 최약체 동맹으로 자신들에게 싸움을 걸던 때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이게 웬 횡재냐고 생각했다. 어비스가 카사르를 등에 업으면 골치 아파졌을 텐데 로드는 스스로 싸우는 것을 선택해 준 것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콜린이 생각했던 것과는 상황이 달랐다. 실버시타델에서 플로라의 뒤통수를 맞아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었고, 반전을 꾀하기 위해 미래의 외교를 포기하고 플로라를 암살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다시금 전화위복하는 듯 했으나 결국 다시 이 중요한 전투에서 패배해 원점이었다. 이대로는 어비스의 속국, 혹은 멸망이었다. 절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나.’

하지만 언제나 돌파구는 있기 마련이었다. 플레이어의 목숨만 붙어있으면 얼마든지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후방이 소란스러운 것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딜 가느냐! 콜린!”

쩌억! 오펙투스군 병사하나가 키리안의 배틀액스에 유명을 달리했다. 키리안군이 어느새 뒤를 따라 잡은 것이다.

“큭, 벌써?”

“폐하! 피하셔야 합니다!”

콜린과 부하들은 전속력으로 숲을 가로질러 달렸다. 자연 장애물이 많은 지형이었지만, 조금만 더 가면 말을 탈 수 있는 오솔길이 나온다. 콜린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그곳에 사람과 말을 비치해 두었다. 이대로 플랫랜치에가서 구원군을 데리고 올 생각이었다.

‘다 왔다.’

콜린이 수풀을 뚫고 나와 오솔길을 바라보았다.

“……어?”

텅 비어있었다. 그가 준비해둔 말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이다! 쳐라!”

다른 한쪽의 숲에서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매복인가!’

콜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상대는 검정 슈트와 중절모차림의 병사들이었다. 주 무장인 단도에, 사슬과 장검, 단발 마력 머스킷까지. 무기의 종류는 제각각이었지만 그것을 다루는 그들의 솜씨는 정확하게 ‘죽이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동맹들에게도 이야기 한 적 없는 비밀 탈출로를 놈들이 어떻게……?’

뒤에서는 키리안군, 앞에는 마피아들, 완벽하게 틀어 막힌 상황이었다.

“폐하, 피하십시오! 어비스의 마피아들입니다!”

“폐하를 지켜라!”

곧이어 난전이 시작되었다. 어비스의 두 세력과 콜린이 이끄는 병력들간의 전투였다. 두 부대를 합쳐도 수는 그리 많지 않았기에, 콜린은 백병전을 지시했다. 그러나 마법사들이 없는 일반 보병부대의 한계인지 화력이 밀렸다. 상대는 수는 적을지 몰라도 특화 병종인 액스워리어와 토착세력 중에서도 최정예로 꼽히는 마피아였다.

‘포위당해서 진형이 별로 좋지 않아. 일단은 측면으로 우회해서…….’

“콜린은 나와서 목을 내놓아라!”

콜린은 상념에 깨어나며 소리가 난 방향을 돌아보았다. 촤아아악! 키리안의 배틀액스에 병사 세 명이 동시에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가공할만한 힘이었다.

‘……벌써 저기까지?’

중앙을 돌파해오는 키리안을 노리고 화살들이 날아왔으나, 키리안은 도움닫기를 하더니 한 번의 도약으로 수 미터를 뛰어넘어 병사 하나의 가슴을 짓밟으며 바닥에 착지했다. 그와 동시에 허리를 뒤틀며 다른 병사의 허리를 뭉텅 베어냈다.

“하아아아압!”

그가 기합을 내지르며 경쾌한 일격을 날려댔다. 달려오는 창병들이 장작처럼 둘로 쪼개졌다.

“미친놈!”

“잡아라!”

포위망에 스스로 들어와 주니 병사들이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었다. 키리안의 어깨와 허벅지에 연이어 검상이 생겼다.

“크으으으!”

그의 눈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키리안은 적진 더욱 깊숙한 곳으로 자신의 몸을 내던지며 야차처럼 배틀액스를 휘둘렀다. 촤악! 촤아아악! 병사들이 넋을 놓은 표정으로 나가떨어졌다. 언제나 냉정하고 침착한 오펙투스군에 이런 짐승 같은 무장은 전무했다. 키리안이 병사들을 베어 넘기며 외쳤다.

“나와라! 콜린!”

“……!”

콜린이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순식간에 병사들의 방어진을 뚫어낸 키리안이 콜린을 향해 배틀액스를 들어올렸다.

쐐애애애액! 배틀액스가 콜린을 두 조각으로 쪼개버릴 기세로 휘둘러졌으나, 그 앞으로 푸른빛이 감도는 마력방패가 나타났다.

까아앙!

‘큭!’

도끼가 튕겨나가며 그 반탄력에 키리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나도 마법사다.”

화르륵! 콜린이 비어있는 손에 파이어볼을 일으켜 양손으로 도끼를 틀어쥔 키리안의 복부에 던졌다.

콰앙!

파이어볼의 충격을 받은 키리안이 비틀거리며 물러났고, 다시 병사들이 콜린의 앞을 가로막았다. 여유를 가지게 된 콜린이 한숨 돌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젠장! 어떻게 하면 좋지? 어디로 빠져나가지?’

쩌억!

난데없이 앞을 막고 있던 병사들의 몸이 가로로 두 쪽 나서 갈라졌다. 키리안이 저승사자처럼 걸어왔다.

“날 상대로! 한 눈 팔지 마라!”

“…끈질긴 놈!”

키리안이 재차 달려들어 도끼를 휘둘렀고 콜린은 다시 한 번 두 팔을 뻗어 마력 방패를 소환해냈다.

까앙!

도끼와 방패가 격돌하며 그 사이로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날카로운 검이 콜린의 목덜미 앞으로 척. 하고 들이밀어졌다.

“……뭣?”

콜린이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대응하려 했으나, 칼날은 여지를 주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움직였다.

댕강!

다급한 콜린의 표정 그대로, 그의 목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병사들의 경악한 표정 위로 그의 머리가 빙글 빙글 허공에서 회전했다.

그리고는 털썩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오홍홍홍!”

스카 파치노가 손톱검을 거두며 웃었다.

“공은 내가 가져가겠어용! 애송이.”

“…쯧!”

“오홍홍홍!”

주위의 콜린을 지키던 병사들이 모두 넋 놓은 표정을 짓다가 파고들어온 마피아들의 공격에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폐, 폐하께서!”

“……승하하셨다.”

오펙투스군이 큰 혼란에 빠진 반면 그 모습을 본 마피아들은 일제히 큰 소리로 외쳤다.

“보스께서 오펙투스 왕의 목을 벴다!”

“마피아가 전공을 세웠다!”

“와아아아아!”

키리안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배틀액스를 내렸다. 이래서야 마피아들이 숨어있는 곳 까지 오펙투스군을 몰아준 격이었다.

“너무 상심 말게. 족장.”

뒤따라온 부관이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우리도 선봉장을 잡지 않았나? 놈들 못지않은 큰 전공을 세웠다.”

“예, 물론입니다.”

키리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음에는 꼭…….’

- 어비스의 ‘스카 파치노’가 오펙투스의 ‘콜린 롤링’을 처치했습니다.

- 어비스의 플레이어가 멸망 보너스를 획득합니다.

============================ 작품 후기 ============================

음, 마틴 꼭두각시 노릇하던 게 엊그제같은데 어느새 로드가 언터쳐블이 되어버렸군요.

----------

RGZ95 / 로맨티스트와 배신자의 사이...

박성빈 / 계속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만 요즘 워낙 할 일이 많아서 ㅠㅠ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올리겠습니다.

로아리아 / 응? 치엘로도 로드 것이었던가 ㅋㅋㅋ

잇시키이로하스 / 핡핡!

할레데임 / ㅋㅋㅋㅋ 치엘로 개이득!

다크체리 / ...헉?! 비월 근황도 기다려주시길 ~_~

섭인룡 / 실로 개이득이군요!

남호들 / ㅋㅋㅋㅋㅋㅋㅋ 선광 살아남았으면 열뻗칠 분들 몇분 계셨는듯

로미루스 / 히익?!

---

@로리콤MK / 결론은 멸망보너스 냠냠

@빛과하늘 / 비월 키메라화라니 ㅋㅋㅋ 참고로 키메라는 르네처럼 시약빨 받지 않으면 그냥 평범한 키메라가 되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ㅠㅠ

@왜이리들다재밌지 / ㅠㅠ 그동안 고생한게 있으니 그것ㄷ 좋은 엔딩이겠네요. 음.

@火炎無 / ...?

@니알라토텝 / A+ 영웅은 겟했는데 A급이라뇨?

@...(-1)...  / 안티마법소녀협회의 큐베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프게했어 / ㅠㅠ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다들 생일 하루 챙기기도 힘든 시기네요 ;ㅅ;

@x아호x  / 새로운 독자는 언제나 환영이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건필하십쇼! / 가능합니다만, 다른 플레이어가 먹은 멸망보너스의 경우 효과가 경감됩니다.

@ SW스윈 / 헉; 비월 킥 치엘로 지지파라니...! 그러고보니 스윈님은 꾸준히 치엘로를 미셨죠

@야뭐하냐 / 응?; 어떤 분량이요?

@그랑엘베르 / 헉? ㅠㅠ 혹시 골뱅이 안다셨는지... 제가 못본거라면 죄송해용 ㅠ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