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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전 문명게임-149화 (149/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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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전쟁이 쉬웠어요

“아, 오셨습니까? 신관님.”

잠시 후 이브가 돌아오자 간수가 굽실거리며 맞이했다.

“이제 뒤는 제게 맡기고 돌아가세요.”

“예, 예, 수고하십시오!”

간수들이 떠나고, 이브는 수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갈까요?”

“옛!”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수인들이 목청껏 대답했다. 갑자기 군기가 바짝 들어간 모습이었다.

“……어머나.”

이브는 무안하게 웃으며 그들을 왕궁으로 데려갔다.

수인들은 먼저 호화로운 왕궁 목욕탕에서 몸을 씻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절로 쌓인 피로가 풀리는 듯 했다. 탕 안에서 메이드들이 가져다 준 차가운 과일주까지 마시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상쾌한 몸으로 목욕탕을 나온 그들은 때가 꼬질꼬질한 죄수복에서 벗어나 고급스러운 원단의 가운을 걸쳤다. 마사지사의 서비스를 받으며 잠시 기분 좋게 잠이 든 후, 곧장 연회장으로 향했다.

“…헉!”

“말도 안 돼!”

수인들이 입을 떡 벌렸다. 수용소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었던 호화로운 만찬이 테이블에 한가득 준비되어 있었다. 고급 와인같은 술도 눈에 띄었다.

“저, 저, 정말 먹어도 되는 겁니까? 저희가? 이런 음식을?”

수인 한 사람이 몸을 떨며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이브가 웃는 얼굴로 답했다.

“물론이죠. 오로지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만찬입니다. 부족하지만 부디 즐겨주세요.”

자리에 앉은 그들은 이 낮선 어비스인의 친절을 의심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잘해주지?’ ‘독이라도 든 게 아닐까?’ 하지만 그들의 의심은 금방 먹음직스러운 음식 냄새에 무장 해제되었다.

수인들은 눈이 돌아가고 말았다. 그들은 최고급 요리를 우걱우걱 씹어대며 감격의 눈물을 줄줄 흘렸다.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봐도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라 할만 했다. 세상이 이렇게 행복한 곳이었다니……! 행복은 이리 가까운 곳에 항상 있었는데 왜 게노세르크에서는 느끼지 못했단 말인가!

그들이 식사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왕실 집사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

수인들은 그제야 식기를 멈추었다. 드디어 올 사람이 왔다.

‘……저 사람이 로드 폴렌티아.’

모두의 시선이 복도를 가로질러 연회장으로 걸어오고 있는 금발의 남자에게 집중되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 드시지요.”

로드가 그렇게 말하며 상석에 걸터앉았다. 하지만 그들 입장에선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을 이 먼 타지까지 납치한 주범이자, 신관과 주군을 죽인 인물이 눈앞에 있었다.

“…….”

수인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식기를 내려놓고 침묵했다. 연회장은 깊은 정적에 휩싸였지만 로드는 그런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메이드로부터 와인을 받았다.

“한가로이 안부를 물을 분위기는 아닌 듯하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로드가 말했다.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신 이유는, 다시 여러분을 발트호른에 돌려 보내드리기 위함입니다.”

그 말에 수인들이 웅성거렸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네, 다만…….”

로드가 와인을 한 번 홀짝인 후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가게 될 곳은 게노세르크의 발트호른이 아닌, 어비스의 발트호른입니다.”

“……!”

수인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있는 한마디였다. 더 이상 멸망한 게노세르크가 아닌 어비스에 충성하면 고향에 돌려보내주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이보시오.”

다섯 명 중 C+로 가장 우수한 정치형 영웅, 마인 케이론이 입을 열었다. 그는 하반신은 말의 몸이라 의자에 앉지 않고 서 있었다.

“비록 포로의 입장이나, 말은 바로 해야겠소. 당신은 우리의 주군과 동료를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조국을 강탈한 원수요. 우리가 왜 그대들이 다스리는 발트호른에 가야 한단 말이오?”

로드는 와인잔을 빙빙 돌리며 출렁이는 레드와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까놓고 말씀드리지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저는 말렉에게 포로교환을 제안했었습니다. 말렉이 붙잡은 제 가신을 돌려받는 대신 여러분들 중 몇 사람을 돌려보내는 거래였죠.”

수인들이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로드가 물음을 던지자 수인들은 동시에 침울해졌다. 만약 말렉이 그 제안을 응했다면 자신들은 지금껏 여기 갇혀있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로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말렉이 했던 말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로드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알 바 아냐. 싸움에서 패배해 붙잡힌 개 따위, 죽어버리는 게 낫지.”

“……!”

“…큭!”

모두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로드가 지어낸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 대사를 듣는 순간 그들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로 말렉이 한 말 그대로라는 것을.

“저는 포기하지 않고 제안을 바꾸었습니다. 이미 처형된 신관을 포함해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를 무사히 돌려보내는 대신, 단 한사람의 가신을 돌려받고자 했죠. 그럼에도 말렉은 거절했습니다. 오히려 아이처럼 웃으며 제가 보는 앞에서 제 가신의 목을 잘라 보이려고 했죠. 자, 여러분께 하나 묻겠습니다.”

로드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

“당신들이 지금 말렉에게 바치려는 그 충성과 절개.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

수인들은 마른침을 삼킬 뿐 대답하지 못했다. 연회장이 숙연한 분위기로 변했다.

“그가 제 가신의 목을 베었기에, 저도 제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똑같이 신관의 목을 벨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사건의 전말입니다.”

“하…….”

“음….”

그들이 복잡한 표정으로 침음을 흘렸다. 로드는 와인잔을 굴리며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이브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보여드릴게 있습니다.”

로드가 고개를 까닥하자 대기하고 있던 정보부 요원이 메모리얼 수정구를 가져와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끼며, 로드는 수정구를 작동시켰다. 전에 집무실에서 보았던 수인들끼리 죽고 죽이는 발트호른의 상황이 담긴 영상이었다.

“이, 이 무슨……!”

“허허…….”

수인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로드는 영상을 종료하며 고개를 들었다.

“이게 현 발트호른의 상황입니다.”

수인들이 수군거리며 한 마디씩 했다.

“사태가 이정도로 심각하다니!”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군.”

그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로드가 본격적으로 운을 땠다.

“말렉은 죽었고, 게노세르크의 왕실은 소멸했습니다. 남은 건 전쟁이후 도탄에 빠진 백성들뿐이죠. 사태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결국 누군가는 게노세르크를 통치해야 합니다. 수많은 위협으로부터 그곳의 백성들을 보호해야합니다.”

“…….”

“저는 그들을 지킬 힘이 있습니다만, 외부인이기에 통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죠. 수인들을 제대로 다스릴 경험도, 노하우도 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를 도와주십시오.”

로드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동시에 여러분이, 외부인인 저로부터 수인들의 권리를 지켜내십시오. 누가 수인을 위해 저에게 조언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진정으로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지킬 수 있겠습니까?”

고개를 든 로드가 눈을 빛냈다.

“동족을 지켜낼 수 있는 건, 결국 같은 동족뿐입니다.”

“……음.”

“……크흠흠.”

말렉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왕의 모습에 수인들은 마음에 파문이 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한 말 또한 독특한 이야기였다. 전쟁에서 졌으니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이 아닌, 외부자인 자신으로부터 백성들을 지키라는 이야기였다.

그들 중에서 염소 수인이 입을 열었다.

“저는 동의합니다. 비록 어비스가 적이었다고는 하지만, 나라를 잃은 우리 백성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케이론 경.”

“…….”

케이론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반대요!”

하마 수인이 콧김을 뿜었다.

“한 번 조국은 영원한 조국. 사내가 태어나서 어찌 두 나라의 국민으로 살 수 있겠소! 백성을 핑계로 조국을 저버리는 것은 엄연히 배반행위요!”

그 말을 들은 로드가 시선을 움직였다.

“오호, 그럼 당신은 멸망한 왕실과의 의리를 핑계로 백성들을 저버리겠다는 거군요.”

“뭐, 뭐라고? 그런 뜻이 아니라……!”

“이런, 저는 다섯 분 모두 진정한 통치자라 생각해서 모신 것인데, 쓰레기 한 명을 걸러내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로드가 턱을 괸 채로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지옥의 하수인같은 수용소의 간수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히, 히익!”

수인들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명심하시길. 저는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해 봉사할 사람을 찾으려는 것이지, 권력자에 빌붙는 간신은 필요 없습니다.”

“자, 자, 잠깐!”

하마 수인이 간수들에게 끌려가면서 다급하게 외쳤다.

“새, 생각해보니 썩 나쁜 제안은 아닌 것 같소. 응? 물론 충성도 중요하지만, 백성들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 암! 이, 일단 이것 좀 놓고 이야기를 마저……!”

군대에 다시 잡혀가는 말년병장이라도 저보다 더 처절할 수 있을까? 결국 하마 수인은 간수들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연회장 밖으로 끌려 나갔다.

“……으으음.”

“…끙.”

남은 수인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게 보였다. 수용소에서의 한 달이 몹시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크으, 역시 케이지가 일 하난 잘한다니까.’

어비스 지하 수용소를 책임지는 영웅인 ‘케이지 인퀴지터’. 지금의 체계적인 수용소를 만든 1등 공신으로, C+급에서 B급 정치등급으로 성장하는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어비스의 여섯 번째 B급 영웅이 된 인물이었다.

나라 전체를 이끄는 이브와 맞먹는 역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용소’ 하나만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수용소만큼은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관리했다.

그가 서장이 된 이후 어비스 테라 광산 전체 작업량의 무려 30%를 수용소 노역이 차지하게 됐으며, 단 한 번의 사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교화측면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보였다. 수용소를 거쳐 밖으로 나온 사람은 완전히 새사람으로 변해, 모든 일에 열심인 모범국민이 되곤 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스카 파치노’였다. 천하의 골칫덩이였던 마피아 잔당들을 충실한 개로 길들여 로드에게 갖다 바쳤다. 케이지가 없었더라면 이번 전쟁에서 스카 파치노의 활약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상 눈에 보이지 않는 공이 있는 셈이었다.

물론 지하 수용소가 죄수들의 인권적인 측면에서는 마냥 칭찬받을만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에덴은 아직 인권이란 개념이 희미한 시대였고, 현대인인 로드도 ‘범죄자의 인권’같은 것에는 다소 회의를 가지고 있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로드는 수용소 운영과 죄인 결정권의 전권을 케이지에게 위임했다.

수용소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어비스 전체에서도 왕인 로드, 혹은 대리 권한을 가진 이브뿐이었다. 그만큼 케이지는 수용소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마틴 지배 시절부터 워낙에 청렴하고 대쪽 같은 인성으로 유명한 인물이라, 로드는 강력한 권력을 왕실 가신이 아닌 자에게 주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로드는 딱 한번 지하에서 올라온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는데, 왕실에서 일하면 어떻겠냐는 로드의 출세 제의를 ‘소신의 자리는 하늘이 아닌 밑바닥이 가장 어울립니다.’ 라며 깔끔하게 거절했다.

케이지는 로드의 기대 이상으로 일을 잘 해주고 있었다. 수용소라는 조직 하나만 잘 돌아가고 있을 뿐인데 나라의 범죄율, 반란율이 급감하고 있었다.

왕실총무이자 나라의 살림꾼인 이브, 이제는 어비스 경제를 떠받드는 ‘무기업’의 핵심인물인 노호준걸, 지하 수용소를 운영하는 케이지까지. 세 명의 정치형 B급 영웅들은 가히 무력형 영웅인 베아트리체나 유니벨 못지않은 성과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은 B급 더 가지고 싶다.’

로드가 그런 생각을 하며 혀를 찼다. 그리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수인들을 바라보았다. 세 명의 수인들은 힐끔거리며 자신의 우두머리 격인 케이론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케이론은 아까 하마 수인이 끌려갔을 때도 덤덤하게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었다. 로드도 긴장한 얼굴로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제발 나 좀 도와주라, 케이론! 너까지 수용소로 가면 곤란해. 네가 게노세르크 영토 운영의 핵심피스라고!’

오랜 고민 끝에, 케이론의 입이 열렸다.

============================ 작품 후기 ============================

Q: 결국 로드의 고유능력은 입털기인가요? A: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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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리스 / 프로 게이 머 띄워쓰기가 무척 의미심장하군요;

Mr윤 / 진짜수인 찍을각

잇시키이로하스 / 아직 사회물이 덜 빠져서 그렇...

kalba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줄리악 / 안타깝게 주어진 시간이 5분이라 ㅋㅋㅋㅋ

jonfull / 휴가나오면 공기마저 달콤하죠

오르타 / 그곳 경험담이 모티브입... 흑 ;ㅅ;

ads123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모님가지마자 ㅋㅋㅋ

EMVER / 눈치가 없군요 ㅠㅠ

독서중~ / 감사합니닷! ^^

왜이리들다재밌지 / 다행이네요! 응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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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현실에서 쓰면 정말 민폐 ㅡ.ㅡ!

@니알라토텝 / 떡타지 지향은 아닌지라.. 엘프 B급이면 티아인가요..

@로아리아 / 일단 털리고 시작합니다 ㅋㅋㅋㅋ

@아침과저녁 / 땀 뻘뻘흘리는 공포의 머리박아...

@알테니아 / 잘 받았습니다! 다음편을 기대해주세욧!

@centinel / 파워오타 ㅠㅠ 지적 감사합니다. 계속 몰랐을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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