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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C외전%3E 유니벨의 자각
어느 날 아침, 로드의 집무실.
“주고오오옹!”
꾀꼬리 같은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로드를 불렀다. 로드는 서류에 서명을 하면서 ‘네, 티아.’ 하고 대답했다.
“이것 좀 열어다오!”
로드와 단둘이서 있을 때 티아는 언제나 페어리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책상서랍을 붙들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로드가 무표정한 얼굴로 일어나 티아의 책상서랍을 열어주고는,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계속했다.
“주고오옹!”
잠시 후에 그녀가 다시 로드를 불렀다.
“네, 티아.”
“이 잉크 뚜껑 좀 열어다오!”
티아가 뚜껑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저 작은 체구로는 어림도 없어 보였다. 로드는 하는 수 없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잉크 뚜껑을 열어주고 돌아왔다.
“주고오옹!”
“……네, 티아.”
“이 펜에 잉크 넣는 것 좀 도와다오!”
로드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쿵쾅 거리는 걸음걸이로 다가가 일단 시키는 대로 펜에 잉크를 넣고 바닥에 두었다. 그리곤 옆에 있던 두꺼운 서적을 들어 펜대를 깔아뭉갰다.
“앗! 앗! 이게 무슨 짓인가? 주공!”
“이제 그만 엘프의 모습으로 돌아오시죠!”
로드가 제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 게으름만 부릴 겁니까? 이브가 발트호른에 가면 티아가 업무의 절반을 맡아서 해야 한다구요!”
“본녀는 게으름 부린 적 없느니라!”
그녀가 빽 소리쳤다.
“여기 땀 흐르는 거 안 보이는가?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지 않은가.”
“아, 글쎄 페어리의 몸으로 최선을 다하는 건 의미가 없다니까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의 속도가 스무 배는 넘게 느려져요!”
하지만 티아는 로드의 말을 듣지 않고 서적에 깔린 펜을 낑낑 거리며 꺼내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주고오옹! 정말 너무한다! 본녀가 일을 할 수 있게 해다오!”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하듯 말했다.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모습에 잠시 마음이 흔들릴 뻔 했지만 로드는 팔짱을 끼며 어림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티아가 엘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전까진, 절대 꺼내주지 않을 겁니다.”
“으아앙! 주공 나쁘다!”
“후후후, 계속 애써 보시죠. 하지만 그 몸으로는 절대 꺼내지 못할 거예요.”
“으으! 두고 보거라!”
티아가 책에 깔린 펜과 씨름하고 있는데, 갑자기 복도에서 쿵! 쿵! 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이 박력은 틀림없이 유니벨이 오는 소리였다.
‘앗!’하고 놀란 티아가 날개를 펼치며 옷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옷장 문이 열리지 않았다.
“주공! 왜 옷장이……!”
“아, 그거 요즘 자꾸 애니가 옷장에 숨었다가 놀래 켜서 잠가버렸는데요.”
“크, 큰일이다!”
이제는 문 바로 앞에서 발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티아는 즉시 로드 쪽으로 돌진하며 엘프의 몸으로 변신했다. 그녀의 몸에서 빛이 솟아올랐다.
“어어? 잠깐……!”
벌컥!
“안녕, 팬더! 결재 받으러 왔…….”
우당탕탕! 유니벨이 문을 열자마자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응? 무슨 소리야?”
당장 눈앞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니 책상아래에 로드가 깔려 있고 티아가 그 위에 엎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왔는가? 재정관.”
“……뭐, 뭐, 뭘 그렇게 태연하게 지껄이고 있어!”
유니벨이 새빨개진 얼굴로 버럭 소리쳤다.
“너희 지금 뭐하는 거야? 이브한테 다 이를 거야!”
“어리구나, 재정관.”
티아가 느긋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흔들며 대꾸했다.
“이것은 지극히 어른들끼리의 프라이버시이니라. 아무리 총무라고 해도 간섭할 수 없는 부분이지.”
“으으으으! 야, 팬더! 빨리 안 일어나?”
유니벨이 이빨을 바득 갈며 소리쳤다.
“아, 잠깐 뇌진탕이 와서…….”
라고 말하는 로드는 전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코에는 코피가 한 가득이었다. 물론 물리적인 타격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와. 살덩이에 짓눌리는 게 이런 거구나.’
행복한 상상도 잠시, 아랫도리에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로드는 민망한 상황이 오기 전에 티아에게 일어나달라고 했다.
“아, 미안하다. 주공.”
로드는 코에서 2차 파동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몸을 일으킬 때 꽉 끼는 정복 바지로 인한 볼륨감 넘치는 엉덩이가 눈앞에서 아찔하게 흔들거리며 지나갔다. 이것이 정녕 사람의 뒤태란 말인가?
“위험했잖아요. 티아.”
몸을 일으킨 로드가 옷을 털며 말했다. 여러모로 위험했다.
“면목 없군. 페어리의 모습을 남에게 보일 수는 없었으니라.”
“……이제 다 같은 동료인데 남이 좀 보면 어때요?”
“그 발언은 명백한 성희롱이니라.”
“어디가요!”
잠깐의 해프닝 후 두 사람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런데 유니벨은 어디 갔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일어날 때 방을 뛰쳐나가는 걸 봤다.”
로드가 눈을 깜빡거렸다.
“응? 결재할 게 있다고 했는데…….”
*
“미쳤어! 정말!”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걷고 있는 유니벨은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개자식! 짐승! 호색한!”
입에서는 그녀의 당혹감을 표하는 말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오, 재정관 님! 안녕하세요!”
반대편에서 복도를 지나고 있던 애니록스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유니벨은 너무 열이 뻗혀있는 나머지 그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이제 이런 취급을 당하는 건 익숙하다!’
각성한 애니록스의 제1의 가치관이자 삶의 목표는 ‘존재감 입증’이었다. 그가 빠르게 뛰어나가 유니벨의 앞을 가로 막았다.
“안녕하……!”
“비켜!”
빠악!
정강이를 얻어맞은 애니록스가 눈물을 찔끔 흘리며 통통 튀어 다녔다. 유니벨은 그대로 복도를 빠져나왔다.
‘짜증나. 짜증나. 다 짜증나!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거지?’
이대로는 업무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왕궁 밖으로 나와 신선한 바람을 쐬어 봤지만. 자꾸 티아와 로드가 바닥에 엉켜있는 모습만 떠올랐다.
‘이것은 지극히 어른들끼리의 프라이버시이니라.’
“끼야아아아아악!”
티아의 목소리가 떠오르자 유니벨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이 개 변태 자식들아아아아아!”
있는 힘껏 욕설을 퍼부어보았어도 답답한 기분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결국 업무를 중단하고 그녀가 향한 곳은 문짝이가 있는 상업지구였다.
아침임에도 문짝이의 상담을 듣기 위해 사람들 몇 명이 서 있었다. 잠시 기다리니 금방 그녀의 차례가 왔다.
“앗! 이게 누구야? 유니벨 님!”
“안녕.”
그녀는 툭 던져놓듯 인사를 마친 후 털썩 바닥에 걸터앉아 팔짱을 꼈다.
“화가 나있으신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
그녀는 말을 아끼며 주위를 흘겼다. 악명 높은 유니벨의 고민이 궁금했는지 몇몇 사람들이 주위를 기웃기웃 맴돌고 있었다.
“뭐해? 다들 안 꺼져?”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말고 볼일 보라고.”
사람들의 말에 그녀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손바닥에서 마력 폭탄을 만들어 냈다.
“이게 뭔지 알지?”
그리고는 하늘로 휙 던졌다.
“으, 으아악!”
“제정신이냐아!”
이미 유니벨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꽁지가 빠지게 도망쳤다. 분필 모양의 탄환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흥, 겁쟁이들.”
“……폭발 안하는 거네요?”
겁먹은 표정으로 탄환을 응시하던 문짝이가 말했다.
“……대체 무슨 고민이기에 사람들까지 쫒아내신 겁니까?”
“벼, 별거 아냐.”
“…일단 들어보죠.”
유니벨은 가상의 동물 캐릭터를 써서 아까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흠.”
이야기를 들은 문짝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잘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고민이신지요?”
유니벨은 얼굴을 붉히며 흠흠 헛기침을 했다.
“그 토끼가 내 친구거든? 화가 너무 나서 참을 수 없다고 자꾸 하소연을 해서…….”
“그렇군요. 토끼 씨가 유니벨 님의 친구 분이군요.”
“뭘 다시 되새기고 있어?”
“아, 아무튼 알겠습니다.”
문짝이의 이목구비가 잠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선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뭔데?”
“단순히 화가 나신 겁니까? 아니면 화가 나면서도 가슴이 꽉 막히는 것처럼 답답한 기분입니까?”
그 말을 듣고 유니벨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되돌아보았다. 처음엔 화가 났다. 자꾸 로드에게 엉겨 붙은 그 엘프에게, 그러고 그걸 또 좋다고 헬렐레한 표정으로 받아주는 로드에게도. 하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은 분노라기보다는 가슴속에 응어리가 맺힌 듯 먹먹했다.
“……후자인 것 같아.”
“후후후.”
“개새끼야. 한번만 더 이상한 웃음소리 내면 불태워 버린다?”
유니벨이 불편한 듯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아, 옙. 죄송함다. 제가 생각하기엔 단순히 젖소 씨를 골탕 먹이는 것으로는 유니벨… 아니, 토끼 씨의 감정이 해소되지 않을 것 같군요.”
“어째서?”
“토끼 씨가 정말로 신경 쓰고 있는 쪽은 팬더 씨 쪽이니까요.”
“……뭐어?”
유니벨이 발끈해서 외쳤다.
“왜 토끼가 그깟 변태 팬더 놈을 신경 쓴다는 건데?”
“왜 유니벨 씨가 흥분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자, 만약에 토끼 씨가 젖소 씨를 박살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팬더 씨가 젖소 씨를 불쌍하게 여겨 꽉 껴안아 준다면? 그리고 옆에 서있는 토끼 씨를 막 나무란다면?”
쾅!
문짝이가 흠칫 놀랐다. 유니벨이 근처의 성벽을 주먹으로 내리친 것이다. 마력까지 실려 있었는지 돌조각이 후두둑 떨어졌다.
“……시발 새끼들, 다 죽여 버려야지!”
“유, 유니벨 님? 왜 유니벨 님이 화를 내시는 건지…….”
“핫!”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팔을 내렸다.
“차, 착각하지 마! 그냥 내 친구가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감정 이입이 돼서…….”
‘예이, 예이, 그러시겠죠.’
상담가인 문짝이는 정말 샐 수도 없이 많이 겪어본 상황이었다. 내담자는 자신의 정체를 상담자에게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친구의 일이라느니, 아는 사람의 일이라느니 여러 핑계를 늘어놓지만 사실은 모두 본인이야기다. 타인의 고민을 상담자에게까지 찾아와서 말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문짝이는 이러한 내담자의 심리를 적극 이용하고 있었다.
“어쨌든, 젖소 씨를 어떻게 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으니, 타겟은 팬더 씨가 됩니다. 인정하시죠?”
“……응.”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 팬더 씨에게 토끼 씨의 새로운 매력을 어필해보라고 하는 겁니다! 평소에 입지 않던 옷을 입어도 좋고, 화장이나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줘도 좋습니다! 팬더 씨가 ‘어?’하고 토끼 씨를 다시 보도록 하는 거죠.”
유니벨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게! 마음에 안 들어. 왜 토끼가 팬더한테 잘 보여야 하는데?”
“자, 자, 상상해 보세요! 토끼 씨의 새로운 모습에 반해버린 팬더 씨의 모습을!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게 되는 젖소 씨의 심정은 어떨까요?”
“…….”
그 모습을 상상해보는 듯 유니벨의 입가에 서서히 음흉한 미소가 지어졌다.
“응. 괜찮은데?”
“그렇죠! 이것이야 말로 최고의 복수가 아니겠습니까?”
문짝이가 희미하게 웃었다. 물론 그는 이미 유니벨의 감정을 다 꿰차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내담자에게 바로 정답을 말해주면 효과가 적다. 납득하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의 벽을 만들어 버릴 염려도 있었다.
‘내담자가 직접 정답을 깨닫게 돕는 것이야 말로 프로 상담자의 자세지!’
문짝이가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제가 토끼 씨를 위해 괜찮은 사람을 소개시켜드리지요.”
“누군데?”
“언더하임 최고의 패셔니스타 입니다!”
*
“……가 당신이야?”
유니벨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분명히 문짝이가 가르쳐준 그 옷가게가 맞았다.
“오홍홍홍홍! 어서 와요! 내 가게에 잘 왔어용!”
그런데 옷가게 주인이 스카 파치노였다.
============================ 작품 후기 ============================
요즘 존재감이 흐려져서 급 부활시킨 유니벨 일상 외전 잠시 보고 가시죠! (사실상 티아 외전인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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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쉐니트 / 그렇군요. 3P가 되는군요. 시, 신비해...
남호들 / 히익; 사랑으로...
좀비두더지 / 음, 이분.. 무서워;;
로아리아 /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네요.
족제비족1 / 완전 통제는 불가능한 존재죠
ROK1198 / 네?;;
天空意行劍 / 오펙투스 근황도 나중에 언급될거예요. 알브헤임이랑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생존자들로 근근히 버티고 있죠.
알테니아 / 아직 프리미엄 생각은 없습니다 ㅠㅠ 비월에 대한 반응은 극과극인듯;; 무섭;
쿠죠죠타로 / 사실 어비스보다는 하데스에 더 가깝죠.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건, 키메라라서 시체가 아니라는 점?
spadel / 헉; 저번편에 나왔잖아요 ㅠㅠ 당분간 비월은 퍼들스퀘어로 휴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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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알라토텝 / 크으으! 제가 몰라뵜습니다!
@火炎無 / 사실 어비스내에서도 이런저런 사고는 있지만 이브와 문관선에서 처리되는 경우가 많죠 ㅋㅋㅋ
@...(-1)... / 남녀차별하는 던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비로fl / 그런데 던전 깊숙한 곳에 있어서 처치가 힘들죠;
@잔인한혈흔 / 물론 있습니다. 허허
@Karla / 후루루짭짭??? 경찰 아저씨 여기에요!
@설계가지림 / 맞습니다! 왕겜을 아시는 분이라니 반갑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