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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대통합
“…으으음.”
케이론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로드의 계획을 곱씹었다.
“각 영지에선 강점을 보이는 생산 활동에만 집중하고, 그 이후 자원을 분배하는 통합 영지 운영이라……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자원을 분배하실 생각이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폐하.”
케이론의 물음에 로드는 깃펜을 들어 빈 용지에 간단한 모식도를 휘갈겨 그렸다.
“뼈대면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각 영지마다 일정 시간 내에 생산해야 할 ‘작업 할당량’을 부과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할당량은 게노세르크의 곡류, 알브헤임의 목재처럼 해당 영지에서 가장 상품성과 수확량이 높은 자원을 위주로 정합니다.”
케이론이 ‘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로드의 깃펜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할당량을 채운 자원을 중앙으로 보내도록 합니다. 식량을 비롯한 다양한 자원들이 한 곳에 모이겠죠? 이제 이 자원들을 필요한 각 영지에 골고루 분배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게노세르크에서는 ‘농업’ 한 분야에만 집중해도 다른 영지의 질 좋은 목재와 광물 등을 받아볼 수 있게 된다. 케이론이 흥미로운 듯 눈을 빛냈다.
“소신도 현재의 영지 생산 활동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 정책을 채용한다면 그 ‘할당량’을 누가, 어떻게 정하느냐가 무척 중요할 것이옵니다. 불만이 생기는 영지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건 걱정 마십시오. 우선 자원 분배에 대해선 저희 왕실에서 직접 관리할 겁니다.”
잠시 머릿속에 이브가 책상에 머리를 박는 장면이 떠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공정을 기해야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중앙에서 관리해야만 했다.
“할당량 지정도 최대한 공정하게 맞추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생산 자원의 특징과 계절, 해당 영지의 노동력 등도 고려해야겠죠. 대륙 시장의 시세도 참고할 생각입니다.”
“…할당량에 시장가를 참고하다니, 참신한 방법이군요!”
어느새 로드보다 더 흥분한 케이론이 박수를 짝 쳤다. 그가 자신의 깃펜을 꺼내 로드의 메모 옆에 글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각 영지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할 염려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보시는 건 어떤지요.”
“…좋네요. 여기에 성과제를 도입하는 건 어떨까요? 기존 할당량을 넘어서면 더 많은 자원을 배급받을 수 있도록…….”
“옳습니다! 그리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는 영지에 대한 처벌도 정해야겠지요.”
두 사람은 불이 붙은 듯 토론을 계속했다. 그리고 음악가 출신의 로즈안느는 저게 무슨 이야긴지 도통 이해가 안가는 얼굴로 멍하니 넋 놓고 앉아있었다.
“로즈안느, 뭔가 아이디어 없어? 아니면 뭐 궁금한 거라도?”
로드가 그녀에게 물음을 던졌다. 로즈안느는 어울리지 않게 소심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맞댔다.
“저어… 다 좋은데 저희 베틀린은 뭐랄까, 타 영지들처럼 특출난 생산품 같은 게 없어서…… 헤헤.”
“걱정 마. 베틀린은 내가 따로 생각해 둔 게 있지.”
“뭐, 뭔가요? 음악이라면 자신 있어요! 농부님들이 열심히 농사하고 계시면 저희가 음악으로 힘을 북돋아 줄…….”
“허허허!”
너털웃음을 터뜨린 케이론이 갑자기 날 선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고작 그런 걸로 우리의 귀한 식량을 배급받을 생각을 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로즈안느 님.”
‘…히, 히익!’
케이론의 기선제압에 그녀는 풀이 죽어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은 로드의 밑에서 각각 게노세르크와 베틀린의 영지를 책임지고 관리하게 될 인물들이었고, 영지의 이익을 위해 서로간의 견제는 당연한 것이었다. 로즈안느는 곧 특유의 긍정으로 다시 힘을 내서 외쳤다.
“여, 열심히 하겠어요! 원하신다면 밤에 자장가라도 연주하겠어요! 365일 어비스 전역에 연주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도록!”
“아니, 아니, 열심히 하는 걸로 해결 될 문제가 아니라니까.”
로드가 웃는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베틀린이 자유로운 문화 특구긴 하지만, 너흴 먹여 살리기 위해 고생하는 영지들도 있잖아. 한 영지로서 제대로 기능해주지 않으면 안 돼.”
“백번 옳으신 말씀이옵니다. 폐하.”
“히, 히잉.”
로즈안느가 울상이 되었다. 로드라면 자기편을 들어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대신 베틀린에는 완전히 새로운 임무를 맡길 생각이야.”
“앗, 그게 무엇인가요?”
로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상업.”
“……네?”
로즈안느와 케이론 둘 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허허, 폐하! 상업도시를 만들 계획이시라면 교통이 좋은 알브헤임 쪽이나 왕도인 언더하임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로즈안느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로드는 피식 웃으며 이어 설명했다.
“케이론 님, 혹시 기억하시나요? 어비스군이 발트호른을 점령한 뒤에 베틀린을 거쳐 배를 타고 빠져나갔었을 때를요.”
“물론이옵니다. 그때는 포로였었지만요.”
“그때 우리가 거쳐 간 베틀린의 항구, 꽤나 괜찮은 곳이더군요. 수심도 깊고 기반 시설도 좋았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거점 영지도 있었구요.”
“……그 말씀은 항구도시 개발을?”
“네, 맞습니다.”
지금처럼 대륙 전체가 전란에 빠져있을 때엔 육로 무역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각 나라의 영토를 지날 때마다 막대한 통행료는 물론이고 통행국의 적대국에 대한 거래일 경우 물건을 압수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각지에 득실거리는 몬스터들과 산적의 위협 또한 여전했다.
반면 해로는 아직까지 이러한 통제와 위협에서 자유로웠다. 본래라면 '해양국가 다이달로스'가 바다를 장악해야할 시점이었지만 가이아에 의해 멸망당하고 없다. 다이달로스의 멸망 보너스를 가진 가이아도 거의 지상 장악에만 힘을 쏟고 있었다. 즉 해상 무역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흐음, 하지만 폐하. 우리가 항구도시를 개발해도 상인들이 많이 올까요?”
“물론입니다.”
로드가 자신 있게 말했다.
“서부에서 마땅한 항만 상업 도시는 아직 없으니까요.”
현재 대륙에서 제대로 알려진 항구는 동부의 전 다이달로스 수도인 오션시티, 그리고 아크가 만든 북부의 항구도시 이렇게 두 곳 정도였다. 오가는 상선은 많으나 이를 수용할 인프라는 부족한 상황이었고, 서부에는 아직 알려진 항구가 없으니 나라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지원한다면 서부를 대표하는 항구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리고 베틀린에 항구가 생긴다면 오션시티와 연결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카루스, 에브게니아, 가이아, 아르곤까지 육로로 연결되기 힘든 국가들과도 이어질 수 있었다.
“폐, 폐하.”
로즈안느가 불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흰 여태껏 장사 같은 건 거의 해본 적이 없는데 괜찮을까요?”
“그런 부분은 차차 배워 가는 거니까 괜찮아. 그리고 항구의 항만 사업은 중계무역이 주가 되니까 그리 어려울 것도 없고.”
케이론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로즈안느는 전문 용어가 튀어나오니 다시 멍해졌다. 로드는 그녀가 좋아할만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 상업 특화는 너희 예술가들에게도 도움이 될 걸.”
“……네에? 정말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녀가 상체를 기울였다. 회의를 시작한 이후 가장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베틀린은 국민들의 대다수가 예술가잖아. 노래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들어주는 사람은 별로 없더라고.”
“……쪼오끔 그런 경향이 있긴 있죠.”
예전에 베틀린시티의 축제에 갔을 때, 사방에서 서로 다른 멜로디가 들려 머리가 지끈거리던 기억이 있었다. 자기들의 예술혼을 불사르기에만 바쁜 모습들이 실로 문화 포화상태라 할 만했다.
“상업도시가 만들어지면 그 근방은 자연스럽게 상인들뿐만 아니라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들게 될 거야. 그리고 너희는 이 사람들을 상대로 관광업을 하는 거지.”
“과, 관광업이요?”
예상 못한 이야기에 그녀가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베틀린 시티에서의 예술 활동은 단순히 취미일 뿐이지만 관광지에서의 예술 활동은 엄연히 부가가치가 생기는 서비스업이야. 너희들의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도 있고.”
“아…!”
“그리고 상업이 발달되면 그 루트를 이용해 너희들의 예술품을 대륙 각국에 팔 수 있을 거야. 금전적으로도 수익이 생기면 예술가들도 예술에 더 전념할 수 있지 않을까?”
로드의 말을 상상해 보는 듯 그녀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돈 걱정 없이 예술만 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거기에 너희들의 문화를 타국에 전파할 수 있는 기회인거지. 단순히 상업으로 돈을 버는 것뿐만 아니라, 예술까지 함께 발전시키는 거야.”
그녀가 기쁨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말만 들어도 행복해요! 좋아요! 상업 할게요!”
그녀가 너무 흥분한 것 같자 로드가 자제시켰다.
“…아하하,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건 아니고 아직까지는 이론일 뿐이…….”
“할 거예요! 상업하게 해주세요!”
이미 로즈안느는 완전히 꽂혀버린 듯 했다.
구체적인 할당량이나 생산 자원의 결정은 나머지 영지의 통치자들까지 모두 모이면 함께 정하기로 했다. 지금 인원으로 결정하기에는 사항이 너무 중대했다. 일단은 각자의 영지로 돌아가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한 준비 작업들을 해두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세 사람은 낮이 밝아오는 것도 모르고 밤을 새며 토론을 계속했다.
*
며칠 후, 위그드라실.
티아가 이끄는 어비스군과 엘프 토착 세력과의 전쟁은 6일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전쟁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어비스군의 후방 기지로 한 무리의 마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멈춰라!”
울타리를 지키던 경비들이 창을 세우며 마차 행렬을 멈춰 세웠다. 가장 고참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거들먹거리며 걸어왔다.
“어디서 왔나?”
선두의 마차에서 한 남자가 천 가리개를 걷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언더하임에서 온 병량 부대야. 여기 사인 좀.”
남자가 그렇게 말하며 서류판을 내밀었다. 병사는 그것을 건네받아 슥슥 서명했다.
“여기 있네. 그런데 자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왜 다짜고짜 반말인가? 몇 년차야?”
“그쪽에서 먼저 말을 낮추니 나도 똑같이 한 것뿐인데.”
남자의 말투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 챘는지 경비병이 눈을 깜빡이며 그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기겁한 얼굴로 경례를 취했다.
“폐, 폐하!”
“수고가 많아.”
로드가 서명 받은 서류를 마부에게 넘기며 말했다.
“화물 검사 안 해도 돼?”
“괘, 괜찮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상부에는 내가 왔다는 말은 빼고 보고해줘.”
“예, 옛!”
다시 마부가 마차를 출발시켰다. 로드가 휘파람을 불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크다.’
하늘을 떠받치듯 우뚝 솟아올라 있는 세계수 위그드라실. 이 거대한 나무 자체가 알브헤임의 수도였다.
‘금방 가겠습니다. 티아.’
============================ 작품 후기 ============================
다시 돌아왔습니다! 플랫폼 연재 준비도 다 끝냈고 이제 열심히 달릴일만 남았네요. 생각보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ㅅ; 다시 시작할게요! 그리고 잭팟 축해주신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24일 무료로 풀리니 못 보신분들 꼭 보시길! 연참은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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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쉐니트 / 넵, 네이버 카카오 다른 플랫폼에도 연재 진출할 예정이에요 ㅠㅠ 준비하느라 시간 엄청 잡아먹었네요
Mr윤 / 정말 소중한 시간 이었습니다 ㅠㅠ 비축분만 마련했다면 더 좋은 시간이었을텐데 ㅠㅠㅠ
EOEW / 하나의 자원에 몰빵하는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집중'하는 거니까요 ㅎㅎ 전시에는 또 체계가 바뀌겠죠.
아프게했어 / 다크아칸 ㅋㅋㅋㅋㅋㅋ
오즈의마법 / 넵, 오늘 아니면 내일 중으로 할 예정입니다.
발광하는소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있습니다.
Croness / 한줄요약 굿!
벌레 / 그게 단점이죠. 한 쪽이 마비될 우려가 있어요.
왜이리들다재밌지 / 감사합니다! 폭탄은 아니고 연참 색종이 폭죽 정도로...
알테니아 / ;ㅅ; 스토리상 어쩔수 없어요 비월은 당분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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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알라토텝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요! 우리 로드정도면 세지!
@로아리아 / 넵넵! 감사합니다 ㅠㅠ
@...(-1)... / 중간상인 ㅂㄷㅂㄷ... 사실 물류비가 좀 쌘편이긴 해요
@로리콤MK / ㅠㅠ 엉앙